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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양은 가치가 있습니까? (마18: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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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삼풍백화점의 붕괴 사건으로 전국이 흥분되어 있습니다. 먼저 이시간을 통하여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위로가 임하기를 기도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극적으로 살아난 여직원에게 방송국 기자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구출되기 전까지 무섭지 않았습니까” 그 기자의 질문에 그 여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에게 왜 이런일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일이 생겨도 나에게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무섭다는 생각보다 이런 생각이 먼저 났다.” 어느날 갑자기 찾아오는 생명의 불안은 우리의 삶의 허구를 냉정하게 비난하는 것입니다. 그 백화점은 강남에서도 일류로 통하는 곳이었습니다. 그 곳을 찾아온 고객의 대부분은 생활에 충분한 풍요를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한번도 자신의 생명의 위기를 그런 식으로 당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평상시의 생각과 무관하게 비극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것입니다. 이번 삼풍백화점 사건은 우리에게 다시한번 생명의 의미를 생각하게 해주는 교훈을 주었습니다.
진희가 사는 집이 그 근처였고 사망자 명단에 김진희라는 자막이 화면에 나오는 순간 식구들에게 긴장이 생겼습니다. 승훈이가 전화로 진희가 무사합니까 하는 전화방문에 서울로 전화 확인을 하고 살아있다는 소식에 안도감을 갖는 모습을 보면서 속썩이고 싸워도 살아있어주는 것이 위로가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가져봤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은 중요합니다. 우리가 생명에 대해 자유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천국이라는 약속된 세계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최소한 자유하지 못해도 위로는 충분히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이러한 실제적인 삶 앞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자주 귀한 것들을 잊어버립니다. 우리는 인생을 가치있는 것들을 위해 살기보다는 눈앞의 이익을 위해 삽니다. 그래서 죽음을 두려워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후회없이 살았다는 말은 후회없이 죽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삶은 가치있는 인생을 살아왔다는 말이기도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심각하게 우리의 삶을 말씀 앞에서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영혼의 소중함을 가르치기 위한 잃은 양의 비유입니다. 본문의 시작은 질문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1.잃은 양이 과연 소중한가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라고 묻습니다. 우리는 이 질문앞에 당연히 “네” 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이성은 그리고 우리의 문화는 그렇게 쉽게 동의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남은 아흔 아홉마리 양과 잃어버린 한 마리 양! 그리고 그 잃버버린 한 마리를 찾을 수 있는 보장이 있는것도 아닌데 더 나가서 그 양을 찾다가 무슨 일을 당할지도 모르는데 과연 그 한 마리의 양을 위해 그 모든 것을 희생할 만한 가치가 있을까 하는 것이 우리의 이성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합리적인 사고방식은 그리고 ‘우리’ 라는 개념보다 ‘나’ 라는 개념에 익숙한 우리의 의식앞에 예수님의 이런한 질문은 별로 도전적이고 감동적이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당연히 한 마리의 양을 찾으러 갑니다.’ 라고 대답하기 앞서 책임있는 대답을 해야 할 것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네’ 라는 대답에 책임질수 있습니까 책임을 지지 않는 대답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시고자 하는 교훈은 결코 양에 대한 토론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 영혼의 가치와 그 한 영혼을 위해 바치는 삶이 가치있는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한 교훈인 것입니다. 우리는 잃은 양보다 남은 양으로 위로 받는데 익숙합니다. 찾고자 하는 위험을 무릅쓴 희생보다 안전한 오늘의 행복이 훨씬 더 매력적인 것이 우리의 가치관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이 소중하며 가치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러한 사랑이있습니까 영혼을 구하는 일에 무슨 변명이 그렇게 많을 수 있습니까 이제 우리는 잃어버린 한 마리 양에 대한 열망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잃은 양이 중요한 것은 당연하다고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2.삶의 의미는 어디에!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 비유를 주실 수 있었던 것은 제자들의 인생관이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상식적인 생각과 이생의 만족을 추구하는 무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르며 진정한 가치있는 인생이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건강한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 비유의 교훈을 찾을 줄 아는 사람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은 자신이 물은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이와 같이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기준과 인간의 기준은 얼마나 다릅니까 우리에게 소중하다는 말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유익을 주느냐 하는 데서 기준을 찾는데 익숙한데 하나님은 잃은 것의 회복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인생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긴장일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얼마나 부패했는가를 실감하지 못하는것 같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고, 또 그리스도와 같은 가치관으로 인생을 누리고 싶다면 우리는 우리의 망가진 정체를 발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죄로 찌든 인간인가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바로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이었다는 사실과 나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누군가가 자신을 희생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저에게 의미있는 친구가 한 사람 있습니다. 제가 복음을 전해 준 사람입니다. 처음부터 그 친구가 저에게 의미있는 친구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친구가 저에게 이렇게 도전해왔습니다. “너는 내 생명의 은인이야! 네가 아니었으면 나는 예수님을 몰랐을꺼야! 나를 전도한 것은 바로 너였서!” 너무도 새삼스러운 감사에 나는 당황했습니다. 그리고 생각하기를 과연 나는 이 친구의 감격만큼 그 친구의 영혼에 대한 사랑이 있었는가 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부끄러움과 기쁨을 함께 가졌습니다. 그 친구는 지금 지구촌교회에서 아주 귀한 평신도 사역자로서 존경받고 있는 성도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면서 어디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까 도대체 어떤 삶이 가장 의미있는 인생이라고 여러분은 말하겠습니까 우리는 신앙에 의미가 어디있는지 말로 하기에는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의미를 생활로 말하기는 그렇게 쉽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저는 주님의 말씀과 저와 동일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로 도전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진정으로 가치있는 인생이 영혼을 구하는 것이라는 사실에 동의하십니까
그렇다면 그 열매를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위한 여러분의 희생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이런한 삶은 바로 주님이 우리에게 권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마지막 말씀 “이 소자 중에 하나라도 잃어지는 것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라는 귀절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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