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의를 위하는 자의 축복 (마5:10)

본문

최근들어 금요일 저녁시간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급히 귀가를 서두른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판관 포청천’이라는 드라마를 보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이 드라마가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매력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은 포청천이라는 한 인물이 정의를 실현 시키는 것을 최고의 인생에 가치로 두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권력과의 결탁도, 지연이나 혈연이라는 인간의 정도, 어떤 물질의 뇌물이나 혜택도 정의가 아닌 것에는 자신의 생명을 포기 하면서라도 정의를 지키고자 하는 그의 삶의 모습에 시청자들이 커다란 매력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대신해 주는 후련스러운 드라마라고. 이제 우리의 현실로 돌아와 봅시다.
우리가 드라마에 나타난 정의를 갈증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부정의 하다는 반증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는 양심이나 도덕이나 진실이 인간을 지배하지 않는다고 거침없이 말합니다. 이 시대는 권력과 배경과 물질이 인간을 지배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정의를 부르짖고 정의롭게 살고자 하는 사람을 ‘동키호테’적인 인간으로 취급합니다. 우리는 아니라고 말하면서 모두 정의를 부정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정의를 가르치거나 정의를 위한 희생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많은 권력과 좋은 배경과 많은 물질을 소유하는 법을 가르칩니다. 우리들에 자식에게 조차 말입니다. 그리고 아무도 정의를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불의하다고 해서 정의가 없다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땅에 “정의”를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을 도덕적으로 본다면 그것은 절대 정의와 사랑이 모든 인간들을 지배하게 되는 생활일 것입니다. 최소한 그러한 삶에 지배를 받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 이며, 이러한 공동체가 교회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성경에서 말하는 “정의”에 개념과 이 정의와 핍박이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I.정의란 무엇인가 우리는 이제 심각하게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 하시는 정의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단순히 내가 억울하지 않는 삶을 정의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이 정의는 분배의 개념을 가지고 있는 말이며 이것은 생활적인 용어인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마땅히 주어야 할 것을 할당한다는 개념인 것입니다. 성경은 이 정의로 부터 사랑이 시작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의”의 개념은 추상적이며 관념적일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공평이라는 당연한 상식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는 ‘의인’을 요구합니다. 여기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의로움을 경제활동과 관련 시켜서 자주 설명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일을 시키는 자와 일을 행하는 자에게는 정당한 계약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부터 정의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객관적이고 타당한 계약이 이루어지게 될 때 공평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만약 여기에 공평이 없다면 잘못된 물질이 하나님께 송사한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에 하나님이 개입한다는 것이 성경의 약속인 것입니다. 만약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정의”를 실천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결코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 정의는 바로 우리들의 교회라는 공동체부터 시작되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이러한 정당한 자신의 몫을 다른 사람을 위하여 줄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성경적인 공동체가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성경은 정의를 말할 때 인격과 관계시켜서 설명합니다. 그리고 정의와 사랑을 함께 존재하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게 사랑을 말할 때 “불의를 기뻐하지 않는”다고 가르쳤습니다. 이제 이러한 정의를 우리가 실현시키고자 할 때 사단의 공격은 시작되며 우리는 이로인해서 핍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정의”와 “핍박”의 관계를 생각해 보돌고 하겠습니다.
Ⅱ.“정의”와 “핍박”의 관계 핍박이라는 말은 “박해하다,괴롭히다,지근거리다.” 라는 말로도 해석이 되는 말입니다. 다시말해 사람의 마음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상태를 의미하고 있는 말인 것입니다. 정의를 실현하고자 할 때 우리의 상식은 모든 사람들이 환영하고 기뻐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여기에도 고통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의는 공평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공평이란 더 가진자가 가지지 못한 자에게 준다는 생활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결코 정의가 모든 사람에게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옳은 것을 주장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미움을 받고 더 나가서는 누명을 쓰게 되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인간은 모두 죄를 범한 불의한 존재이기 때문에 결코 정의를 환영하지 않는다는 것이 성경의 결론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정의를 사랑하는 분들이십니까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기쁨과 설레임으로 받아 들입니까 아니면 말씀앞에 끊임없이 부담과 죄책으로 받아 들이십니까 만약 여러분이 후자의 마음이라면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회개가 필요하며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필요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리고 전자의 마음이라면 여러분은 주님의 말씀으로 충분한 위로와 평안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정의와 핍박이 존재하는 것은 바로 “의”와 “죄”의 갈등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갈등에 놓인 존재며 그래서 그리스도가 우리의 삶에 필요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정의를 실현 시키는 삶의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Ⅲ.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물음은 우리의 갈증입니다. 우리는 온전한 정의를 실현 시키지는 못하지만 정의를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인격적으로 부족하지만 주님을 닮기 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렇게 고민만 하고 살아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안에 계신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그러한 인생을 살도록 도울 수 있는 힘이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그럴수 없다고 말할 것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문제는 결코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문제는 바로 우리의 편견과 자기 중심적인 감정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축복하시기 위해 우리의 변화를 가르치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변하지 않고서는 결코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도 정의가 요구 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셨습니다. 자신이 죄인인 것을 먼저 깨달아라! 그래서 겸손과 용서를 경험해라! 그리고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감당해라! 그리하면 하나님의 능력을 네가 가지게 되리라. 그래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된다고 약속하시며 그 사실을 믿으라고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결코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를 비참한 인생으로 전락 시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인생을 원수의 목전에서 높이 들리게 하신다고 말씀 하십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저도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단지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 제한되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나의 사랑을 나타내지 못하는 아픔이 있음을 알아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사랑을 표현할 때 자신이 가진 것으로 나타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물질이 있는 사람은 그 물질을 사용하여 사랑을 나타낼 것이며 재능이 있는 사람은 그 재능을 사용하여 자신의 사랑을 나타낼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있는 사람은 그 시간을 사용하여 자신의 사랑을 나태게 될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사랑을 시작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제 주님은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주님은 자신의 모든것을 모두 준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천국은 하나님만의 소유입니다.
그런데 그 나라를 우리의 미래에 주신다고 약속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는 의롭게 살아야 할 이유가 너무도 많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지금부터 시작합시다. 서로를 구체적으로 돌아보며 자신의 삶을 주님께 완전히 맡기도록 합시다. 결코 주님께 자신의 인생을 맡기지 못한자가 다른 사람을 돌아 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자신을 맡기지 못한자는 자신의 삶에 몰입될 수 밖에 없으며 그런 사람들은 결코 다른 사람을 돌아 볼 수 있는 여유로움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말씀을 믿는 우리는 당연히 말씀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씀을 권면으로 드리며 함께 기도 하시기 바랍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935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