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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 (요3:16-21)

본문

요한복음 3:16은 신구약 성경의 요절이요, 기독교복음의 요약입니다. 본문을 자세히 상고해 보면 여기서는 단순히 성부 하나님의 사랑만 언급된 것이 아니라 성 삼위 하나님의 사랑이 함께 나타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성부 하나님의 사랑 우리는 요한복음 3:16에서,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는 천지가 다 아름답고 선하고 보기에 심히 좋았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 이후 세상은 질서가 있는 코스모스(Cosmos)의 세계가 아니라 죄로 가득찬 카오스(Chaos), 즉 혼돈의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죄로 물든 세상을 깨끗하게 정화시켰던 두 가지 사건이 성경 속에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하나는 노아 시대 때 죄를 정화시키기 위해 물로 세상을 심판했던 사건이요, 다른 하나는 소돔과 고모라 시대 때 죄를 멸하기 위해 불로 세상을 심판했던 사건입니다. 이와 같이 죄로 말미암아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절망적인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세상이 사랑 받을 가치가 있어서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했으나,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내어 주시기까지 이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성탄절은 어떤 날입니까 독생 성자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사람에게 오신 날입니다. 그래서 이 날이 우리에게는 기쁘고 즐거운 소중한 날입니다.
2.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지시고 피를 흘리시며 당신의 놀라운 희생적 구원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1) 성자 예수님의 사랑은 이미 구약성경에서 예언된 사랑이었습니다. 이사야 53:5절에서는 우리를 위한 주님의 사랑을 말하기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3:21에 의하면,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고 무화과 나무 잎으로 자기 몸을 가리고 하나님 앞에서 몸을 숨기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양을 잡아 그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아담과 하와에게 입혔습니다. 이때 피 흘린 어린 양은 바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2) 독생자의 사랑은 여인의 후손인 인간의 몸을 통해 오신 겸손한 사랑이었습니다.
창세기 3:15에는,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실 때 반드시 여인의 몸을 통해서 여인의 후손으로 오실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여인의 몸을 통해 겸손한 자세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늘의 왕자님이 인간이 되셔서 인간의 고통과 슬픔을 친히 맛보시고 경험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겸손한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3)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은 성령님으로 잉태되어 동정녀의 몸에서 탄생하신 순결한 사랑이었습니다.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나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 우리는 매일 사도신경을 통하여 이 사실을 고백합니다.
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은 십자가를 지신 어린양의 희생적 사랑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이런 사랑을 보여 주신 주님이시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역사의 중심에 우뚝 서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역사에 끼친 영향을 생각해 봅시다. 만약 예수께서 우리 인간의 죄와 구원과 상관없이 단순히 일개 평범한 인간으로 왔다가 갔더라면 그가 주는 영향력은 이렇게까지 크지는 않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적과 영향력을 낱낱이 기록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의 책을 두기에는 부족합니다(요 21:25). 그래서 어떤 이는 어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업적을 지금까지 진군했던 모든 육군과, 조직되었던 모든 해군과, 개회되었던 모든 회의와 통치했던 모든 왕들의 힘을 다 합하고 지금까지 지구상에 존재했던 전인류를 다 합한다 해도 고독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영향만 못한다고 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입니다.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었습니다. 역사 가운데 탄생하신 주님께서는 세상 끝날 까지 우리 가운데 계실 것입니다. 역사 속에서 어떤 사람을 제하여 버린다고 할지라도 역사는 아무 지장없이 진행될 것입니다. 예를 들면 불교의 석가모니나 유교의 공자나 이슬람교의 모하멧을 제한다 할지라도 역사에 아무 지장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예수 그리스도를 제하여 버린다면 이는 마치 생물계에서 태양을 제해 버림과 같고, 동물계에서 습기와 공기를 제해 버림과 같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하 인간 중에 구원을 얻을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만이 그의 백성을 자기 죄에서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기독교에 있어서 십자가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는
첫째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요,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표시입니다.
3. 성령님의 사랑 믿는 자에게 행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는 참으로 엄청납니다. 그래서 저는 성령님의 사랑을 교회론적 사랑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일을 살펴 봅시다. 성령님께서는 성도에게 능력을 주십니다(마 3:11). 성령님께서는 거듭나게 하십니다(요 3:3-5). 성령님께서는 세례를 주십니다(행 2:17-41). 성령님께서는 거룩하게 하십니다(롬 15:16, 살후 2:13).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로 인치십니다(고후 1:21, 엡 1:13).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명하신다(롬 8:16). 성령님께서는 위로하십니다(요 14:16-26). 성령님께서는 기쁨을 주십니다(롬 14:17). 성령님께서는 영을 분별하게 하십니다(요일 4:1-6). 성령님께서는 열매맺게 하십니다(갈 5:22-23). 성령님께서는 은사를 행하게 하십니다(고전 12:3-12). 성령님께서는 전도하게 하십니다(행 13:9-31). 성령님께서는 기도하게 하십니다(엡 6:18) 성령님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를 믿게 하시고 동시에 영생에로 들어가도록 인도하신 분이십니다(요 16:13). 우리가 성령님 안에 거하면(롬 8:11) 성령님께서 우리가 예수를 믿도록 감동시키시고, 우리로 하여금 멸망의 길로 행하지 않도록 보호하시고, 영생에 들어가도록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지만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여신 이는 성령님이십니다.
어떤 목사님은 ‘성령님’말만 해도 힘이 생긴다고 합니다. 성부의 사랑은 본체론적 사랑이시고 성자의 사랑은 구원론적 사랑이시며 성령님의 사랑은 코이노니아(Koinonia) 교회론적 사랑입니다. 인간의 감정은 반사적이라고 했습니다.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의 본체론적 사랑이 모든 사랑에 반사되면 이 사랑을 받는 사람에게는 남녀간의 사랑이 생기며, 부부간의 사랑이 생기며, 부모와 자녀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겨납니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이 있을 때 겸손하고 순결하며 희생적인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성령님의 코이노니아 사랑이 있을 때, 서로가 서로를 참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 성탄의 계절은 하나님 사랑을 본받아 사람을 사랑하는 계절이요 예수의 사랑 본받아 서로 사랑하는 계절이요 성령님 본받아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랑의 계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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