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엣 것을 찾으라 (골로새3:1-4)
본문
인류학에서 머리를 하늘로 향하고 두 발로 걸어다니는 직립 동물을 고등 동물이라고 하고, 머리를 땅으로 향하고 네 발로 기는 땅엣 것을 찾는 동물을 하등동물이라고 합니다. 종교학에서도 위엣 것을 바라보고 위엣 것을 찾는 종교를 고등종교라하고 땅엣 것만 바라고 땅엣 것을 찾는 종교를 하등종교라 합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골로새 교인들에게 땅엣 것을 생각지 말고 위엣 것을 찾으라고 교훈 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이 어떤 땅이기에 그는 이와 같이 말했을까요 또 바울이 말한 땅엣 것은 무엇이며 위엣 것은 무엇일까요
1. 우리가 살고 있는 땅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창세기에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본래 보기 좋은 땅, 그리고 아름다운 땅으로 창조되었습니다(창 1:4,10,13,18,21,31). 하나님께서는 하루하루 만물을 창조하실 때마다 ‘보시기에 좋았더라’(It was good). 그러나 아담의 범죄 이후 땅의 모든 조화로운 상태는 파괴되고 자연 만물은 모두 아름다움의 균형을 잃었습니다. 그때부터 인간은 죄에 눈을 뜨게 되었고(창 3:7), 땅은 가시와 엉겅퀴로 덮이게 되었습니다(창 3:18). 형제가 형제를 죽이는 전쟁이 시작되었고(창 4:8), 땅에 있는 모든 생물을 휩쓸어버리는 홍수가 시작되었습니다(창 7:8). 또 지축을 흔드는 지진과 쉴사이없는 천재지변이 계속되었습니다. 이런 환경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현실입니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발생한 천재지변을 생각해 보십시오. 전대미문의 무서운 재앙들이 아닙니까 미국과 일본에서 진도 6-7의 강진이 발생했습니다. 일본의 경우, 1923년의 관동대지진은 많은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냈습니다. 그 지진은 9월 1일 오전 11시 58분에 발생했습니다. 14만 2천명이 죽었고, 4만 3천 여명이 행방불명되었으며 10만 명 이상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가옥은 수십만 호가 전파되거나 반파되었고 일부는 유실되었습니다. 한 차례의 지진으로 엄청난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세계 곳곳에 천재지변(天災地變)의 이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재앙이 세 가지 있습니다. 전쟁과 온역(유행병) 그리고 천재지변입니다. 천재지변 중에서도 제일 무서운 것이 지진입니다. 그리고 지진 중에서도 제일 무서운 지진은 땅이 갈라지는 지진입니다. 민수기 16:31을 보면, 땅이 갈라져 고라와 고라에게 속한 모든 가족들과 건물들을 삼켜 버렸습니다. “이 모든 말을 마치는 동시에 그들의 밑의 땅이 갈라지니라. 땅이 그 입을 열어 그들과 그 가족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과 그 물건을 삼키매 그들과 그 모든 소속이 산채로 음부에 빠지며 땅이 그 위에 합하니 그들이 총회 중에서 망하니라”(민 16:31-33). 이러한 전쟁과 병마와 천재지변은 모두 다 인간들의 죄악의 결과입니다.
다윗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삼하 24:1-7; 대상 21:1-14). 하나님의 축복으로 남정북벌(南征北伐)하고 국력을 떨치게 되었을 때, 다윗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망각하고 자기 힘으로 나라가 그렇게 강대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교만해진 다윗은 백성들의 두령들과 요압장군에게 징병을 병역조사를 명령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괘씸하게 여기셨고, 선지자를 통해 세 가지 재앙을 말씀하신 후 그 가운데 하나를 택하도록 하셨습니다. 3년간의 흉년이냐, 3개월간 적에게 패배하는 것이냐 아니면 3일간의 온역이냐 다윗은 3일간의 온역을 택했는데 이때에 재앙으로 죽은 사람이 7만명이나 되었습니다. 고라가 당했던 재앙은 원망하다가 당한 재앙이요(고전 10:10), 다윗이 당한 재앙은 교만 때문에 당한 재앙입니다. 국가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면 하나님은 전쟁의 재앙을 주셨고, 국민적으로 죄를 범하면 천재지변의 재앙이 있었으며, 개인적으로 죄를 범하면 하나님은 무서운 병을 유행시켰습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은 사람들이 죄를 회개하고 각성하게 하셨습니다. 다윗 뫙도 하나님의 징계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나니 그제야 깨닫고 금 600세겔을 주고 오르난의 타작마당을 사서 그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를 위하여 화목제와 번제를 드렸습니다(대상 21:26-27).
2.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고 했습니다. 땅엣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31-32에서 땅엣 것에 대해 세 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그리고 무엇을 입을까”의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의식주 세 가지는 인간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라고 여깁니다. 이 중에 하나만 없어도 사람이 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땅엣 것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사람들은 위엣 것을 찾지 않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2:3을 보면, 이 큰 구원을 등한히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땅엣 것을 추구하다가 하늘의 큰 구원을 잊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요일 2:15). 우리는 세상에 살고 있으나 세상에 너무 집착하면 안됩니다. 세상 가운데 있지만 세상 속으로 빠져들지 말아야 합니다. 배는 물 위에서만 배의 기능을 다할 수 있습니다. 배 밑창으로 바닷물이 들어오면 배는 침몰하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3. 위엣 것을 찾으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있는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시 42:1). 시편 기자의 영혼은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였습니다. 사람은 본래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사람들은 재물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미국과 같이 부요한 나라도 1년에 영매자들에게 갖다 바치는 금액이 1천 2백억원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것은 그들이 풍요하지만 만족을 못한다는 증거입니다. 사람들은 정치적인 자유를 찾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상태가 더 나빠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사람들은 과학의 발달과 의학의 발전을 추구하면서 여기서 만족을 찾고자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과학과 의학이 발달해도 살상 무기만 더 만들어 내고, 또 치료가 어려운 암이나 에이즈 같은 병이 나타납니다.
결국 인간이 세상에서 추구하는 것들은 결코 만족이나 완전한 해결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위엣 것을 찾으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있는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이 만나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영혼의 최대 축복과 클라이맥스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남으로써 우리의 모든 부족은 사라지고 만족으로 차고 넘치게 됩니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을 만나 후에 나의 영혼에 참된 안식을 얻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 영원한 만족과 기쁨을 얻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곳에 새로운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찾는 곳에는 진정한 평안이 있습니다. 잠언10:22에 보면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세상의 그 무엇을 추구하면 결국 재난이 따르지만 하나님을 찾고 찾는 곳에는 근심을 동반하지 아니한 축복을 주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있든지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여기에 완전한 해결책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위엣 것을 찾는 성도가 됩시다.
1. 우리가 살고 있는 땅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창세기에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본래 보기 좋은 땅, 그리고 아름다운 땅으로 창조되었습니다(창 1:4,10,13,18,21,31). 하나님께서는 하루하루 만물을 창조하실 때마다 ‘보시기에 좋았더라’(It was good). 그러나 아담의 범죄 이후 땅의 모든 조화로운 상태는 파괴되고 자연 만물은 모두 아름다움의 균형을 잃었습니다. 그때부터 인간은 죄에 눈을 뜨게 되었고(창 3:7), 땅은 가시와 엉겅퀴로 덮이게 되었습니다(창 3:18). 형제가 형제를 죽이는 전쟁이 시작되었고(창 4:8), 땅에 있는 모든 생물을 휩쓸어버리는 홍수가 시작되었습니다(창 7:8). 또 지축을 흔드는 지진과 쉴사이없는 천재지변이 계속되었습니다. 이런 환경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현실입니다. 최근 전세계적으로 발생한 천재지변을 생각해 보십시오. 전대미문의 무서운 재앙들이 아닙니까 미국과 일본에서 진도 6-7의 강진이 발생했습니다. 일본의 경우, 1923년의 관동대지진은 많은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냈습니다. 그 지진은 9월 1일 오전 11시 58분에 발생했습니다. 14만 2천명이 죽었고, 4만 3천 여명이 행방불명되었으며 10만 명 이상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가옥은 수십만 호가 전파되거나 반파되었고 일부는 유실되었습니다. 한 차례의 지진으로 엄청난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세계 곳곳에 천재지변(天災地變)의 이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재앙이 세 가지 있습니다. 전쟁과 온역(유행병) 그리고 천재지변입니다. 천재지변 중에서도 제일 무서운 것이 지진입니다. 그리고 지진 중에서도 제일 무서운 지진은 땅이 갈라지는 지진입니다. 민수기 16:31을 보면, 땅이 갈라져 고라와 고라에게 속한 모든 가족들과 건물들을 삼켜 버렸습니다. “이 모든 말을 마치는 동시에 그들의 밑의 땅이 갈라지니라. 땅이 그 입을 열어 그들과 그 가족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과 그 물건을 삼키매 그들과 그 모든 소속이 산채로 음부에 빠지며 땅이 그 위에 합하니 그들이 총회 중에서 망하니라”(민 16:31-33). 이러한 전쟁과 병마와 천재지변은 모두 다 인간들의 죄악의 결과입니다.
다윗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삼하 24:1-7; 대상 21:1-14). 하나님의 축복으로 남정북벌(南征北伐)하고 국력을 떨치게 되었을 때, 다윗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망각하고 자기 힘으로 나라가 그렇게 강대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교만해진 다윗은 백성들의 두령들과 요압장군에게 징병을 병역조사를 명령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괘씸하게 여기셨고, 선지자를 통해 세 가지 재앙을 말씀하신 후 그 가운데 하나를 택하도록 하셨습니다. 3년간의 흉년이냐, 3개월간 적에게 패배하는 것이냐 아니면 3일간의 온역이냐 다윗은 3일간의 온역을 택했는데 이때에 재앙으로 죽은 사람이 7만명이나 되었습니다. 고라가 당했던 재앙은 원망하다가 당한 재앙이요(고전 10:10), 다윗이 당한 재앙은 교만 때문에 당한 재앙입니다. 국가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면 하나님은 전쟁의 재앙을 주셨고, 국민적으로 죄를 범하면 천재지변의 재앙이 있었으며, 개인적으로 죄를 범하면 하나님은 무서운 병을 유행시켰습니다 이를 통해서 하나님은 사람들이 죄를 회개하고 각성하게 하셨습니다. 다윗 뫙도 하나님의 징계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나니 그제야 깨닫고 금 600세겔을 주고 오르난의 타작마당을 사서 그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를 위하여 화목제와 번제를 드렸습니다(대상 21:26-27).
2.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고 했습니다. 땅엣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31-32에서 땅엣 것에 대해 세 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그리고 무엇을 입을까”의 문제입니다. 사람들은 의식주 세 가지는 인간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라고 여깁니다. 이 중에 하나만 없어도 사람이 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땅엣 것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사람들은 위엣 것을 찾지 않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2:3을 보면, 이 큰 구원을 등한히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땅엣 것을 추구하다가 하늘의 큰 구원을 잊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요일 2:15). 우리는 세상에 살고 있으나 세상에 너무 집착하면 안됩니다. 세상 가운데 있지만 세상 속으로 빠져들지 말아야 합니다. 배는 물 위에서만 배의 기능을 다할 수 있습니다. 배 밑창으로 바닷물이 들어오면 배는 침몰하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3. 위엣 것을 찾으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있는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시 42:1). 시편 기자의 영혼은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였습니다. 사람은 본래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사람들은 재물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미국과 같이 부요한 나라도 1년에 영매자들에게 갖다 바치는 금액이 1천 2백억원이나 된다고 합니다. 이것은 그들이 풍요하지만 만족을 못한다는 증거입니다. 사람들은 정치적인 자유를 찾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상태가 더 나빠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사람들은 과학의 발달과 의학의 발전을 추구하면서 여기서 만족을 찾고자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과학과 의학이 발달해도 살상 무기만 더 만들어 내고, 또 치료가 어려운 암이나 에이즈 같은 병이 나타납니다.
결국 인간이 세상에서 추구하는 것들은 결코 만족이나 완전한 해결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위엣 것을 찾으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있는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이 만나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영혼의 최대 축복과 클라이맥스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남으로써 우리의 모든 부족은 사라지고 만족으로 차고 넘치게 됩니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을 만나 후에 나의 영혼에 참된 안식을 얻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 영원한 만족과 기쁨을 얻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곳에 새로운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찾는 곳에는 진정한 평안이 있습니다. 잠언10:22에 보면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세상의 그 무엇을 추구하면 결국 재난이 따르지만 하나님을 찾고 찾는 곳에는 근심을 동반하지 아니한 축복을 주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있든지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여기에 완전한 해결책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위엣 것을 찾는 성도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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