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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믿음 (갈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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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교회사가 필립 샤프는 그의 저서 '기독교회사'에서 말하기를 “종교개혁은 기독교에 대한 소개 다음으로 설명해야 할 역사상의 가장 큰 사건이다. 그것은 중세시대의 종말을 고하고 근대의 시작을 나타낸다”라고 종교개혁의 역사적 의의를 설명했습니다. 카톨릭 역사신학자 김성태 교수는 '종교개혁의 역사적 원인'이라는 글에서 말하기를 “교회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항상 개혁을 필요로 하였다(‘Ecclesia semper reformanda’). 이것은 교회사에 있어서 하나의 공리(公理)이다. 교회가 속회된 모습을 보였을 때마다 그 내부에서 개혁의 외침과 쇄신의 움직임이 있었다”라고 말하면서 교회개혁의 필요성이 지상교회에는 언제나 있음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16세기의 종교개혁에 관하여 “교회의 역사에 있어서 그리스도교 세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교회혁신운동은 16세기에 일어난 종교개혁이다. 이 사건 자체는 교회쇄신에 대한 열망의 표현이다”라고 언급했습니다. 김 교수는 종교개혁이 주는 역사적 반성 및 교훈을 논하면서, “중세 말기의 교회의 세속화는 종교개혁의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우리는 이러한 세속화를 개탄하기 이전에 우리들 자신이 세속화되어가고 있지 않는가 반성해야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종교개혁의 공헌과 그 결과가 많지만, 그 가운데 세 가지만 말한다면 이신득의의 교리와 만인의 책이 된 성경, 그리고 만인 제사장직입니다.
1. 이신득의의 교리 이신득의(以信得義) 혹은 이신칭의(以信稱義)의 원리는 우리가 믿음을 통해서 의롭게 된다는 가르침입니다. 물론 믿음조차도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우리는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을 우리의 것으로 삼습니다. 믿음 자체는 공로와 같은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라는 ‘공로’를 통해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와 구원을 주시되 믿음의 손으로 받게 하신 것입니다. 콜럼비아 신학교의 로빈슨(Robinson)교수는 그의 저서 '종교개혁:은혜의 재발견'(1962)에서 말하기를, 개혁자들의 목적은 그리스도와 그 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에 의하면, 종교개혁은 어거스틴주의의 부흥이요, 하나님을 재발견한 사건입니다. 로빈슨 교수는 “종교개혁은 어거스틴이 했던 것보다 더 깊이 복음의 의미에로 뛰어들어간 사건”이라는 샤프의 말을 인용하였습니다. 종교개혁은 모든 것에 충분한 그리스도를 선포했습니다.
왜냐하면 종교개혁은 그 분의 복음으로 옷입은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로빈슨 교수에 의하면, 종교개혁은 단 하나의 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이시다!” 그리고 종교개혁은 신학적 부흥입니다. 종교개혁은 교회의 생명인 성경적 신학을 증거하였습니다. 또한 종교개혁은 말씀 선포의 심오한 의미를 재발견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종교개혁의 증거를 통하여 16세기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셨고, 우리는 그 믿음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긍휼과 은혜와 은총을 알게 되고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믿음을 통해서’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였고 죄사함을 받았고 구원의 확신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이 재발견한 이신칭의 교리는 매우 값진 진리입니다. 그러면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의 생활 속에는 어떤 특징들이 나타납니까 그들은 세 가지를 가지고 삽니다.
1) 십자가를 바라보는 믿음의 눈을 가지고 삽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는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만을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민수기 21장을 보면,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하나님과 보세를 향해 원망하다가 불뱀에 물렸습니다. 이때 모세는 놋으로 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고 불뱀에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보면 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모세의 말을 믿고 그 놋뱀을 쳐다 본 자는 모두 살았습니다. 마찬가지로 믿음은 세상 죄악의 불뱀에게 물린 사람들이 십자가에 달리신 믿음의 주를 쳐다보는 눈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믿음의 눈이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살면서도 그 눈으로 하나님의 세계를 바라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절망 중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는 궁핍 속에서도 미래의 하나님의 축복을 볼 수 있고, 실망 가운데서도 영원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자비, 하나님의 은혜를 봅시다.
2) 예수님만을 붙잡는 믿음의 손을 가지고 삽니다. 믿음에는 붙잡는 손이 있습니다. 효부 룻은 시어머니 룻을 붙잡았습니다(룻 1:16).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은 여인은 예수님께 나아와 옷에 손을 대어 고침을 받았습니다(막 5:28). 그 여인은 예수님의 옷을 붙잡았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믿음으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주님을 붙잡고 사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생활은 예수님과 직결되는 생활입니다(요 15:5).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입니다. 나는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은 내 안에 계십니다(요 14:20). 우리는 믿음의 손을 가지고 주님을 붙잡아야 합니다. 믿음의 손으로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은혜도 받고 사랑도 받고 축복도 받습니다. 믿음의 손으로 우리는 남을 대접하고 구제하며 봉사하기도 하고 섬기며 수고도 합니다.
3) 예수님을 전하는 믿음의 발을 가지고 삽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성도는 부지런히 전도하는 발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수가성 야곱의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믿은 후 제일 먼저 사마리아성에 들어가 예수님이 메시야라고 전했습니다(요 4:39). 로마서 10:15에서는 이와 같이 전도에 부지런한 발을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의 발이여”라고 했습니다. 이 발이 이르는 곳마다 복음의 씨가 뿌려지고 기쁜 소식이 전파되며 사람들의 마음에 기쁨이 생기고 소망과 새 희망의 싹이 납니다.
2. 종교개혁의 큰 공헌은 만민이 성경을 가질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종교개혁 이전에는 아무나 성경을 소유하거나 볼 수 없었습니다. 오로지 교황청의 사제들만 성경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14세기 영국의 위클리프는 라틴어로 된 성경을 영어로 번역해서 사람들에게 읽게 했다는 죄목으로 그의 사후에 무덤을 파헤치고 그 뼈를 화형에 처하였으며 그 재를 바다에 뿌렸습니다. 이처럼 종교개혁 이전에 성경은 만인을 위해 펼쳐진 책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일부 성직자와 학자들의 전유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이 성경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라고 가르치고 명령합니다(시 1:2; 수 1:8).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말씀으로 그 자녀를 부지런히 가르치라고 명하셨습니다(신 6:7). 또한 성경말씀은 우리 믿는 자에게 주신 귀한 생명의 양식입니다(벧전 2:2). 하나님의 말씀은 영적 만나요(고전 10:3) 신령한 양식입니다.
그런데 어찌 이러한 양식을 만인에게 나누어주지 않고 성직자들만 독점한단 말입니까
종교개혁은 성경을 만인을 위한 책으로 만들었습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을 위한 책으로 번역되고 공개되었습니다. 루터와 멜랑톤은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을 해서 독일국민이 자국어로 성경을 읽을 수 있게 했습니다. 성경은 지금도 번역되고 있습니다. 지속적인 베스트셀러인 성경은 각나라의 방언으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뿐입니까 성경이 이 세상에 끼친 감화는 엄청납니다. 미국의 클리브런트 대통령은 말하기를,“나는 성경에서 ‘죄값은 사망’이라고 한 구절이 나를 방탕의 길에서 돌아서게 해줌으로 나는 미국의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라고 했습니다. 링컨도 성경은 천지창조 이후 인간에게 주어진 최대의 선물이라고 말했습니다. 죠지 워싱톤은 하나님과 성경 없이 세상을 바르게 통치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장발장'을 쓴 빅토르 위고는 말하기를, 영국은 두 권의 책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세익스피어의 책이요 다른 하나는 성경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세익스피어의 작품들은 영국이 쓴 책이요 성경은 영국을 만든 책이라고 했습니다. 영국의 여왕 빅토리아는 “영국은 성경 위에 서 있는 나라”라고 하면서, 영국의 보배는 오직 성경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루터는 말하기를, 성경이 어린아이에게는 젖과 같고 어른에게는 굳은 밥과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공부할 때, ‘난해구절’에 매달리지 말고 우선 이해되는 말씀부터 붙잡고 잘 기억하면서 생활에 적용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성경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특권인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공부하여 깨닫고 실천하는 일에 정성을 쏟아야 할 것입니다.
3. 종교개혁은 만인제사장직의 가르침을 널리 펼쳤습니다. 모든 신자가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이라는 가르침은 종교개혁의 중요한 공헌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성전 지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 쪽으로 찢어졌습니다(마 27:51). 그후로부터 신자는 누구나 제물의 피나 제사장의 중개없이 하나님께 직접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우리 각사람이 직접 기도하라고 가르치셨고(마 7:7), 주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다 응답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요 15:16). 하나님께서는 직접 인간과 대화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사 1:18). 그러나 천주교에서는 지금도 7성례를 주장하고 있고, 사제(신부)를 통해서 고백성사를 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요 성도의 영적 호흡인데 어찌 사제를 통해서 해야 됩니까 이 세계는 세 가지 힘에 의해서 운영됩니다. 생각하는 머리와 일하는 손 그리고 기도하는 입에 의해서 역사가 운영됩니다. 특히 성령님께서는 기도하는 성도를 통해 많은 일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개혁자들은 많이 기도했습니다. 루터는 “바쁘면 더 많이 기도하라”고 했고, 그는 매일 세 시간이상씩 기도했습니다. 종교개혁은 이신득의의 진리를 재발견하고 선포했습니다. 종교개혁을 통해 만인은 성경에로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종교개혁은 모든 신자가 제사장이라는 성경진리를 가르쳐주었습니다. 우리는 종교개혁의 전통과 그 정신을 계승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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