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되어야 할 한국교회 (욜2:28-32)
본문
한 시대의 종교는 그 시대의 정신적 양심이요 동시에 도덕적 심장입니다. 심장이 심장의 역할을 다하고 양심이 양심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는 현대교회는 반드시 개혁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교회는 네 가지 의미의 개혁이 필요합니다.
첫째, 신앙적 개혁,
둘째, 도덕적 개혁,
셋째, 가치관 개혁,
넷째, 올바른 생활관 개혁을 해야 합니다.
1. 신앙적 개혁을 해야 합니다. 이는 현대의 세속주의와 혼합주의의 영향권 아래 있는 교회가 다시 순수한 개혁자들의 신앙과 청교도들의 신앙으로 개혁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신관과 인간관 그리고 교회관이 정립되어야 합니다.
1) 신관 정립 종교개혁 이후의 개신교의 교리를 모두 종합해 보면, 여호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했고 인간의 최대의 목적은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신관의 정립이란 하나님의 절대주권 정립을 뜻합니다. 다니엘서 3:28에서 느부갓네살이 다니엘의 세 친구인 사드락,메삭,아벳느고가 극렬히 타는 불 가운데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아 살아난 것을 보고, “하나님을 찬송할 찌로다. 그가 그 사자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 몸을 버려서 왕의 명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는 오로지 하나님만이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시면 역사를 다스리신다는 것을 믿는 고백입니다. 이처럼 악한 이방왕도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다고 인정하면서, 만일 누구든지 함부로 하나님께 말하는 자가 있다면 그 집을 허물고 그 집터를 거름 터를 삼을 것이라고 했습니다(단 3:29).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의 신관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버리고 종교의 다원화를 주장하여 모든 종교가 기독교와 같이 구원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하나님의 위치에서 퇴위시키고 인간 스스로가 하나님이 되어보려고 까지 시도합니다.
지금 세계에 자기자신을 하나님 혹은 그리스도라고 자칭하는 자가 무려 거의 3백 여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자기의 인기를 위해서 기독교를 혼합종교로 만들고 기독교를 이방종교와 혼합시키고 있습니다. 기복신앙, 유물주의, 천박한 신비주의, 요즈음 유행하고 있는 뉴에이지(New Age)운동 같은 것이 다 여기에 속합니다. 일본의 기독교가 왜 부흥이 안되는 줄 아십니까 일본사람들의 신 개념 속에는 하나님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그들은 신(神)하면 ‘가미’로 통할 뿐, 우리처럼 유일신의 개념이 없습니다. 일본의 신 개념은 물신론,범신론,다신론의 개념입니다. 그래서 8백만 신을 다 인정하며 신은 다 같은 것이니 아무 것이나 믿으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모든 물건에 반드시 ‘어’(御)자를 붙여 물건 하나하나를 신격화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이방인의 물신사상이 점차적으로 교회에까지 만연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상대화시키며 하나님의 절대주권주의를 희석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의 하나님이시며 우주에 충만하시고 어디에서나 우리 인간의 행위를 한 눈에 보고 계십니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시 139:7,8). 하나님은 피할 길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대다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상대화시키고 있습니다. 즉, 내가 눈을 감으면 하나님도 눈을 감으시면, 내가 거짓말을 하면 하나님도 하나님도 거짓말을 하시며, 내가 배고프면 하나님도 배고프시고, 내가 할 수 없으면 하나님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하나님을 제한합니다. 우리의 신관이 바로 정립되어야만 오늘의 기독교가 이방 믿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불신을 받지 않고 오히려 존경을 받을 것입니다.
2) 인간관 정립 성경에는 두 가지 인간관이 나와 있습니다. 골로새서 3:1,2에 의하면, 위엣 것을 바라보는 인간과 땅의 것만 찾는 인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위엣 것을 찾는 인간은 신앙이이며 땅의 것만 찾는 인간은 생물학적 인간입니다. 진화론 후 인간은 하나의 생물로 전락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번에서는 “사람의 제일 되는 계명”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종교개혁의 정신을 이어받은 청교도적 신앙을 가진 개혁주의자들이 1643년 7월부터 1948년 9월까지 영국 웨스트민스터 교회에 모여 작성한 장로교회 문서입니다. 140여명의 학자와 성직자들이 작성한 이 <대 소요리문답>의 제 1문에서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9월 23일부터 27일까지 5일간 그 신앙고백서를 작성한 바로 그 장소에 모여 350년만에 다시 그 때의 신앙고백을 확인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인간관! 내 존재의 의미도, 내 생존의 목적도 모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데 있습니다.
3) 교회관 정립 교회관 정립이란 교회로 하여금 교회 되게 하는 교회 되게 하는 작업입니다. 따지고 보면 중세의 종교개혁이나 1917년의 러시아혁명은 모두 그 당시 교회가 교회의 구실을 다하지 못한데 그 원인이 있습니다. 교회는 무엇을 하는 곳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성례를 행하고 성도가 서로 교제하며 봉사하는 곳입니다. 또한 질서를 위해 권징도 하는 곳입니다. 이 모든 것은 교회의 필수적인 표식들입니다. 신앙적 개혁을 하기 위해 우리는 교회관을 성경적으로 정립해야 합니다.
2. 도덕적 개혁을 해야 합니다. 오늘의 도덕을 두 가지로 분류하면, 하나님의 영광 중심의 도덕과 인간의 이권 중심의 도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인간사회의 최대의 부족한 점은 도덕성의 부재입니다. 그래서 요즈음 정치하는 사람들도 자주 도덕정치라는 말을 쓰곤 합니다. 요즈음 볼 수 있는 살인, 강도,방화,마약 등 사회의 모든 범죄행위는 모두 인간의 도덕성 결함에서 오는 것입니다. 1960년에 리더스다이제스트에서 세계에서 가장 정숙하다고 하는 일본의 중상층 여성을 상대로 앙케이트를 작성했는데 놀랍게도 자기 남편에게 들키지만 않는다면 어떤 일도 할 수 있다고 답한 사람이 60%나 되어 당시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요즈음 사람들의 도덕성은 법망에 걸리지 않는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다고 답하는 사람이 90%이상은 될 것입니다. 며칠 전에 언론사에서 여론 통계를 발표했는데, 기독교인의 도덕성 순위가 신부,수녀,의사,변호사,승려에 이어 여섯 번째였습니다. 한국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재산비리자 중 개신교인이 52%,천주교인이 15%, 불교도가 15%, 무종교가 8% 등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시점에서 교회가 도덕성 개혁에 앞장서야하지 않겠습니까 교인들은 교통순경이 없어도 신호를 지켜야 하고 신문가판대의 파는 사람이 없어도 몰래 집어 가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3. 가치관을 개혁해야 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가치관입니다. 오늘날 세계는 점점 만연해 가는 사회학적 병리현상 때문에 완전히 전도된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치관에는 성경적 가치관과 일반 사회학적 가치관이 있습니다. 성경적 가치관은 어떤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수 있느냐에 초점을 두는 가치관이고, 일반 사회학적 가치관이란 어떤 것이 간접적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직접적으로는 나에게 유익한가를 따지는 가치관입니다. 가치관이 전도된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을 고려대학교 한 사회학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첫째, 오늘날 사람들은 가공할만한 죄를 저지르고도 죄에 대한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중범자일수록 파렴치하고 뻔뻔스럽습니다.
둘째, 오늘의 모든 범죄행위는 철저하게 자기만을 생각하는 극단의 이기주의적 현상을 보입니다. 세상을 모조리 파멸시키더라도 자기만은 살았으면 하고 생각하는 이기주의입니다.
셋째로,사람이 세상에서 버림받고 따돌림을 받았다는 열등의식과 갈등 때문에 생기는 극단의 증오심과 자포자기에서 오는 악의 폭발입니다. 이같은 극단의 증오심과 이기주의 때문에 많은 죄가 저질러지고 있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을 여인이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라고 하셨습니다(마 11:11). 그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지만 한번도 자기를 불행하다거나 가난하다거나 부족하다거나 못났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어느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고서 스스로 가치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예수의 선구자로 광야의 외치는 소리로 4백년 간의 유대의 침묵을 깨는 선지자로 살았습니다. 성경적 가치관은 “어떤 것이 잘 사는 것이냐”가 아니라, “어떤 것이 바로 사는 것이냐”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가치관의 개혁은 “잘 살아보세”가 아니라, “바로 살아보세”가 되어야 합니다. 제3공화국 때 박 대통령의 새마을운동이 잘 살기운동 이전에 바로 살기 운동이었다면 지금쯤 우리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나라가 되었을 것입니다.
4. 올바른 생활관 개혁을 해야 합니다. 현대문명은 더불어 사는 문명입니다.
그러므로 더불어 사는 공동체 의식과 공중도덕을 잘 지키는 자율성부터 배워야 합니다. 일본 상사 주재원이었던 어떤 분의 아들이 5학년 때 복도에서 소리나지 않게 걸었다고 상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일본 소학교에서는 예쁘게 걷는 상, 예쁘게 먹는 상, 인사 잘하는 상, 친구에게 상냥한 상을 준다고 합니다. 일본 아이들은 학교에 가면 제일 먼저 “죄송합니다”와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배웁니다. 이는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한국에서는 학부모가 왜 많은 사람 앞에서 자식의 길을 죽였냐고 선생님의 뺨을 때리기도 했습니다. 학교 선생님이 학생들을 꾸중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머리 좋은 사람은 데모를 주동하는 사람이 되었고, 그들은 논리가 정연하기는 하지만 사회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사회는 머리가 좋은 사람보다 마음씨가 좋은 사람이 앞장서야 합니다. 더불어 사는 교육을 받고 더불어 사는 생활을 하는 개혁운동을 일으킵시다. 현대교회는 반드시 개혁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중심의 신앙적 개혁을 합시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도덕적 개혁을 합시다. 바르게 살기 위한 가치관 개혁을 합시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며 더불어 사는 생활개혁을 이룩합시다.
첫째, 신앙적 개혁,
둘째, 도덕적 개혁,
셋째, 가치관 개혁,
넷째, 올바른 생활관 개혁을 해야 합니다.
1. 신앙적 개혁을 해야 합니다. 이는 현대의 세속주의와 혼합주의의 영향권 아래 있는 교회가 다시 순수한 개혁자들의 신앙과 청교도들의 신앙으로 개혁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신관과 인간관 그리고 교회관이 정립되어야 합니다.
1) 신관 정립 종교개혁 이후의 개신교의 교리를 모두 종합해 보면, 여호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했고 인간의 최대의 목적은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신관의 정립이란 하나님의 절대주권 정립을 뜻합니다. 다니엘서 3:28에서 느부갓네살이 다니엘의 세 친구인 사드락,메삭,아벳느고가 극렬히 타는 불 가운데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아 살아난 것을 보고, “하나님을 찬송할 찌로다. 그가 그 사자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 몸을 버려서 왕의 명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는 오로지 하나님만이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시면 역사를 다스리신다는 것을 믿는 고백입니다. 이처럼 악한 이방왕도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다고 인정하면서, 만일 누구든지 함부로 하나님께 말하는 자가 있다면 그 집을 허물고 그 집터를 거름 터를 삼을 것이라고 했습니다(단 3:29).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의 신관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버리고 종교의 다원화를 주장하여 모든 종교가 기독교와 같이 구원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하나님의 위치에서 퇴위시키고 인간 스스로가 하나님이 되어보려고 까지 시도합니다.
지금 세계에 자기자신을 하나님 혹은 그리스도라고 자칭하는 자가 무려 거의 3백 여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자기의 인기를 위해서 기독교를 혼합종교로 만들고 기독교를 이방종교와 혼합시키고 있습니다. 기복신앙, 유물주의, 천박한 신비주의, 요즈음 유행하고 있는 뉴에이지(New Age)운동 같은 것이 다 여기에 속합니다. 일본의 기독교가 왜 부흥이 안되는 줄 아십니까 일본사람들의 신 개념 속에는 하나님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그들은 신(神)하면 ‘가미’로 통할 뿐, 우리처럼 유일신의 개념이 없습니다. 일본의 신 개념은 물신론,범신론,다신론의 개념입니다. 그래서 8백만 신을 다 인정하며 신은 다 같은 것이니 아무 것이나 믿으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모든 물건에 반드시 ‘어’(御)자를 붙여 물건 하나하나를 신격화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이방인의 물신사상이 점차적으로 교회에까지 만연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상대화시키며 하나님의 절대주권주의를 희석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의 하나님이시며 우주에 충만하시고 어디에서나 우리 인간의 행위를 한 눈에 보고 계십니다.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시 139:7,8). 하나님은 피할 길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대다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상대화시키고 있습니다. 즉, 내가 눈을 감으면 하나님도 눈을 감으시면, 내가 거짓말을 하면 하나님도 하나님도 거짓말을 하시며, 내가 배고프면 하나님도 배고프시고, 내가 할 수 없으면 하나님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하나님을 제한합니다. 우리의 신관이 바로 정립되어야만 오늘의 기독교가 이방 믿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불신을 받지 않고 오히려 존경을 받을 것입니다.
2) 인간관 정립 성경에는 두 가지 인간관이 나와 있습니다. 골로새서 3:1,2에 의하면, 위엣 것을 바라보는 인간과 땅의 것만 찾는 인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위엣 것을 찾는 인간은 신앙이이며 땅의 것만 찾는 인간은 생물학적 인간입니다. 진화론 후 인간은 하나의 생물로 전락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번에서는 “사람의 제일 되는 계명”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종교개혁의 정신을 이어받은 청교도적 신앙을 가진 개혁주의자들이 1643년 7월부터 1948년 9월까지 영국 웨스트민스터 교회에 모여 작성한 장로교회 문서입니다. 140여명의 학자와 성직자들이 작성한 이 <대 소요리문답>의 제 1문에서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9월 23일부터 27일까지 5일간 그 신앙고백서를 작성한 바로 그 장소에 모여 350년만에 다시 그 때의 신앙고백을 확인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인간관! 내 존재의 의미도, 내 생존의 목적도 모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데 있습니다.
3) 교회관 정립 교회관 정립이란 교회로 하여금 교회 되게 하는 교회 되게 하는 작업입니다. 따지고 보면 중세의 종교개혁이나 1917년의 러시아혁명은 모두 그 당시 교회가 교회의 구실을 다하지 못한데 그 원인이 있습니다. 교회는 무엇을 하는 곳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며 성례를 행하고 성도가 서로 교제하며 봉사하는 곳입니다. 또한 질서를 위해 권징도 하는 곳입니다. 이 모든 것은 교회의 필수적인 표식들입니다. 신앙적 개혁을 하기 위해 우리는 교회관을 성경적으로 정립해야 합니다.
2. 도덕적 개혁을 해야 합니다. 오늘의 도덕을 두 가지로 분류하면, 하나님의 영광 중심의 도덕과 인간의 이권 중심의 도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인간사회의 최대의 부족한 점은 도덕성의 부재입니다. 그래서 요즈음 정치하는 사람들도 자주 도덕정치라는 말을 쓰곤 합니다. 요즈음 볼 수 있는 살인, 강도,방화,마약 등 사회의 모든 범죄행위는 모두 인간의 도덕성 결함에서 오는 것입니다. 1960년에 리더스다이제스트에서 세계에서 가장 정숙하다고 하는 일본의 중상층 여성을 상대로 앙케이트를 작성했는데 놀랍게도 자기 남편에게 들키지만 않는다면 어떤 일도 할 수 있다고 답한 사람이 60%나 되어 당시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요즈음 사람들의 도덕성은 법망에 걸리지 않는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다고 답하는 사람이 90%이상은 될 것입니다. 며칠 전에 언론사에서 여론 통계를 발표했는데, 기독교인의 도덕성 순위가 신부,수녀,의사,변호사,승려에 이어 여섯 번째였습니다. 한국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재산비리자 중 개신교인이 52%,천주교인이 15%, 불교도가 15%, 무종교가 8% 등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시점에서 교회가 도덕성 개혁에 앞장서야하지 않겠습니까 교인들은 교통순경이 없어도 신호를 지켜야 하고 신문가판대의 파는 사람이 없어도 몰래 집어 가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3. 가치관을 개혁해야 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가치관입니다. 오늘날 세계는 점점 만연해 가는 사회학적 병리현상 때문에 완전히 전도된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치관에는 성경적 가치관과 일반 사회학적 가치관이 있습니다. 성경적 가치관은 어떤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수 있느냐에 초점을 두는 가치관이고, 일반 사회학적 가치관이란 어떤 것이 간접적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직접적으로는 나에게 유익한가를 따지는 가치관입니다. 가치관이 전도된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을 고려대학교 한 사회학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첫째, 오늘날 사람들은 가공할만한 죄를 저지르고도 죄에 대한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중범자일수록 파렴치하고 뻔뻔스럽습니다.
둘째, 오늘의 모든 범죄행위는 철저하게 자기만을 생각하는 극단의 이기주의적 현상을 보입니다. 세상을 모조리 파멸시키더라도 자기만은 살았으면 하고 생각하는 이기주의입니다.
셋째로,사람이 세상에서 버림받고 따돌림을 받았다는 열등의식과 갈등 때문에 생기는 극단의 증오심과 자포자기에서 오는 악의 폭발입니다. 이같은 극단의 증오심과 이기주의 때문에 많은 죄가 저질러지고 있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을 여인이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라고 하셨습니다(마 11:11). 그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지만 한번도 자기를 불행하다거나 가난하다거나 부족하다거나 못났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어느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고서 스스로 가치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예수의 선구자로 광야의 외치는 소리로 4백년 간의 유대의 침묵을 깨는 선지자로 살았습니다. 성경적 가치관은 “어떤 것이 잘 사는 것이냐”가 아니라, “어떤 것이 바로 사는 것이냐”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가치관의 개혁은 “잘 살아보세”가 아니라, “바로 살아보세”가 되어야 합니다. 제3공화국 때 박 대통령의 새마을운동이 잘 살기운동 이전에 바로 살기 운동이었다면 지금쯤 우리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나라가 되었을 것입니다.
4. 올바른 생활관 개혁을 해야 합니다. 현대문명은 더불어 사는 문명입니다.
그러므로 더불어 사는 공동체 의식과 공중도덕을 잘 지키는 자율성부터 배워야 합니다. 일본 상사 주재원이었던 어떤 분의 아들이 5학년 때 복도에서 소리나지 않게 걸었다고 상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일본 소학교에서는 예쁘게 걷는 상, 예쁘게 먹는 상, 인사 잘하는 상, 친구에게 상냥한 상을 준다고 합니다. 일본 아이들은 학교에 가면 제일 먼저 “죄송합니다”와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배웁니다. 이는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한국에서는 학부모가 왜 많은 사람 앞에서 자식의 길을 죽였냐고 선생님의 뺨을 때리기도 했습니다. 학교 선생님이 학생들을 꾸중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머리 좋은 사람은 데모를 주동하는 사람이 되었고, 그들은 논리가 정연하기는 하지만 사회에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사회는 머리가 좋은 사람보다 마음씨가 좋은 사람이 앞장서야 합니다. 더불어 사는 교육을 받고 더불어 사는 생활을 하는 개혁운동을 일으킵시다. 현대교회는 반드시 개혁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중심의 신앙적 개혁을 합시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도덕적 개혁을 합시다. 바르게 살기 위한 가치관 개혁을 합시다. 그리고 서로 사랑하며 더불어 사는 생활개혁을 이룩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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