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지음 받은 이름 값을 하자! (사61:10-62:3,갈4:4-7,눅2:22-40)
본문
우리나라에는 성명학(姓名學)이라고 하는 이상야릇한 학문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름 석자가 인생의 운명을 판가름한다고 믿는, 역학(易學)의 일종인 잡학(雜學)입니다. 성명학 관계자들은 성씨나 이름이 ‘금목수화토’ 오행(五行)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이름을 연구해 보면 인간의 미래와 운명을 미리 점쳐볼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기독교에서는 이런 성명학이나 사주팔자(四柱八字)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디 의지할 데가 없으니까, 사람이 태어난 연월일시와 이름 석자에 자신의 운명을 맡겨보고 있는 것입니다. 참 어리석고 미련한 짓입니다. 설령 사주팔자와 이름 석자가 인생 행로(行路)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가정할지라도, 우리 기독교인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를 믿어 다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를 구주로 믿고 거듭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새로운 생일과 이름을 얻었습니다. 그런고로, 육신의 부모로부터 태어난 날짜와 그 지음 받은 이름이 우리에게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중생한 날짜와 하나님께로부터 새로 지음 받음 이름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야말로, 팔자가 바뀐 것입니다. 세상에서 부르는 이름도 물론 필요하지만, 우리가 예수를 믿어서 얻게 된 새 이름은 영생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정말 중요한 이름입니다. 이사야는 백성이 그 지은 죄로 말미암아 캄캄한 어둠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것을 보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오셔서 이스라엘을 도와주실 때까지, 나는 쉬지 않고 계속 부르짖으리라(62:2고 다짐했습니다. 그는 확신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면, 이스라엘은 찬란한 영광을 누리리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네게 옛 이름 대신에 새 이름을 지어 주시리라(62:2)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 새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새 인생을 살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주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여 자유의 몸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죄의 노예가 되어 살던 우리를 해방하여,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녀 삼고자, 예수는 이 어둔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런고로, 예수를 영접하여 살고 있는 우리는 죄의 노예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을 상속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사주팔자나 이름 석자에 얽매여 사는 불쌍한 죄인들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영광스런 새 이름이 주어졌습니다. 아무개 성도, 집사, 권사, 장로, 목사라는 새 이름으로 우리는 불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이름 값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어 새롭게 지음 받은 이름은, 하나님께서 귀한 보좌를 버리고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새 이름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됩니다. 정말 그 이름에 어울리는 인생을 살아, 그 이름 값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1.그 이름 값에 어울리는 새 인생을 살고 있는 것입니까 이 자명종(自鳴鐘)은 목사관에 있던 것입니다. 그동안 저를 깨워서 새벽기도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시계입니다. 그러나, 어저께부터는 시간이 되어도 울지 않았습니다. 하마터면 새벽기도회에 빠질 뻔했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먼저 있던 것과 바꿔치기 했습니다. 이제는 이 시계가 이름뿐인 자명종으로서, 시간만 알려주는 평범한 시계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름뿐인 성도들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 값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집사와 권사, 목사와 장로가 있습니다. 물론, 저 자신도 목사라는 명함에 적합한 사람이라 말할 자신이 없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합니까
1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주께서 오신 목적이, 죄의 노예가 되어 살던 우리를 구원하여 자유를 얻게 하시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노예상태에서 벗어나게 된 것만 해도 너무나 큰 은혜를 입게 된 것인데, 거기에다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니, 이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된 감격과 그 영광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사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 값을 잘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여전히 세상 중심으로 살면서, 사탄이 유혹하는 대로 이끌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제 고향 친구 중에는 아버지가 중학교 교사인 사람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를 같이 다녔는데, 저는 그 친구가 늘 부러웠습니다. 제가 그토록 싫어하는 체육 시간에도, 그 친구는 자주 빠질 수 있었기 때문에 더욱 부러웠습니다. 몸이 아프다는 이유였지만, 교사인 그 친구 아버지의 부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누구도 부럽지 않습니다. 이제는 예수를 믿어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신분 상승도 이만저만 아닙니다. 정말 부끄러운 ‘죄의 종’이라는 자리에서 가장 귀한 신분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한편, 저는 염려치 않을 수 없습니다. 저의 생활이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고 오히려 누만 끼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두려운 마음이 들기 때문입니다.
2우리 모두, 과연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고 있는지 깊이 반성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2장에 나오는 ‘시므온’이라는 사람은 언제나 바르고 경건하며 성령님 충만하게 살았습니다. 그는 메시아가 오리라는 계시를 받고 항상 성전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드디어 아기 예수를 뵙게 되는 영광을 누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될까 과연, 다시 오실 주님을 만나뵐 자격이 있을까 저으기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시므온과 같은 열심과 노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동의보감을 지었다는 허준을 보십시오. 이름뿐인 의사가 아니라, 진정한 의사가 되기 위하여 얼마나 애쓰고 노력하던가요 우리는 지금,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하여, 어떤 수고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까 유명무실한 집사와 권사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어떤 열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가 먼저 진실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하여 애쓸 때, 하나님은 우리를 보살펴 주시리라 믿습니다. 다시 한 번, 허준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그가 스승인 유의태의 관심을 끌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인물됨이 출중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의술을 익히기 위하여 밤낮 없이 피눈물나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영생이 되는 말씀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까 춥다고 해서, 또는 바쁘다고 해서 진리 탐구를 소홀히 할 경우, 하나님의 보살피심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3그렇게 되면, 우리는 새로 지음 받은 이름 값을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팔자가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영광스런 이름과 지위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 이름 값을 하지 못할 경우, 달라진 팔자와 신분이 아무 소용없게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만 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주께서 하시던 일을 계속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시므온이 마리아에게 말하기를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그런고로, 그의 제자가 되는 우리 또한,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기쁨이란, 우리가 바르고 경건하게 살 때,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줄 때에 주어지는 기쁨입니다. 옷 로비 사건과 같은 일은 결코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도 그와 비슷한 일을 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을 냉철하게 살펴봐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 자신이 달라져야 합니다. 새롭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름만 바뀌었다고, 무슨 소용 있습니까 차라리, 집사 권사 대신에, 옛날처럼 아무개 엄마 아버지가 더 낫지 않을까요 하지만, 바울이 말했듯이, 우리는 죄의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런고로, 새로워진 이름에 걸맞게 우리 생활이 달라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새 천년이 곧 시작됩니다. 뭔가 달라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결단의 모습을 보이는 분들이 있어서 참 감사합니다. 잘 감당할 수 없노라고, 새 이름을 던져버릴 생각 하지말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자녀들을 생각해서라도, 우리는 달라져야 합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2.성령님의 도움을 받아서, 바르고 경건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아내가 친정에 갔을 때, 양손에 물건을 쥐고 있어서 발로 TV를 껐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어린 조카가 이모 하는 것을 보고 있다가 자기도 발로 TV를 끄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게 마련입니다. 술집을 자주 드나들면 술꾼이 되고, 화투치는 데 자주 가면 화투꾼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바르고 경건한 생활을 하려면 성전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말씀을 자주 듣고 배우게 되어 온전한 신앙인으로 자랄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2장에 보면, ‘시므온’뿐만 아니라, ‘안나’도 아기 예수를 뵙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성전 중심으로 살았다고, ‘누가’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안나’는 성전을 떠나지 않고 밤낮으로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섬겼던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교회에서만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만은 늘 성전 중심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슨 집회든지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참석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주님의 모습을 닮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 주님처럼,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고 세상 사람들에게는 기쁨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1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고 살아야 합니다. 이사야처럼, 우리도 새로운 구원과 인생의 승리를 위해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다운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의복으로 몸을 감싸듯이 우리를 구원으로 감싸주실 것입니다. 외투로 몸을 덮듯이 우리를 승리로 인도해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진리 안에서 바르게 살려고 노력할 경우, 하나님은 우리를 바라보고만 계시지 않을 것입니다. 성령님을 보내셔서 우리를 보살피시고 도와주실 것입니다.
2우리는 늘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해마다 연초에는 믿음생활을 바로 하겠다고 결심했다가도, 날이 가고 달이 가면서 그 결심은 퇴색하고 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일년 365일 늘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죽는 날까지, 우리는 거듭 거듭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육에 속한 것을 물리치고 영적으로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성령님은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바르게 살도록 말씀도 들려주시고, 경건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시련도 주십니다. 그런 수고가 있을 때에 믿음도 성장합니다. 그리고, 그런 성장을 통하여,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도 기쁨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3그렇게 될 때, 하나님 손에 들려진 영광스러운 면류관이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이름 값을 제대로 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름뿐이라는 수치를 벗게 될 것입니다. 이제는 팔자 타령을 하거나 배경과 환경 탓하는 버릇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주님만을 진실하게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새롭게 열려진 영광스러운 기회를 잃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아무쪼록, 새롭게 주어진 새 이름에 어울리는 인생을 살아감으로써, 주를 믿는 목적을 이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를 믿어 다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를 구주로 믿고 거듭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새로운 생일과 이름을 얻었습니다. 그런고로, 육신의 부모로부터 태어난 날짜와 그 지음 받은 이름이 우리에게는 별 의미가 없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중생한 날짜와 하나님께로부터 새로 지음 받음 이름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야말로, 팔자가 바뀐 것입니다. 세상에서 부르는 이름도 물론 필요하지만, 우리가 예수를 믿어서 얻게 된 새 이름은 영생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정말 중요한 이름입니다. 이사야는 백성이 그 지은 죄로 말미암아 캄캄한 어둠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것을 보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오셔서 이스라엘을 도와주실 때까지, 나는 쉬지 않고 계속 부르짖으리라(62:2고 다짐했습니다. 그는 확신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면, 이스라엘은 찬란한 영광을 누리리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네게 옛 이름 대신에 새 이름을 지어 주시리라(62:2)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 새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새 인생을 살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주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여 자유의 몸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죄의 노예가 되어 살던 우리를 해방하여,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녀 삼고자, 예수는 이 어둔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런고로, 예수를 영접하여 살고 있는 우리는 죄의 노예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을 상속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사주팔자나 이름 석자에 얽매여 사는 불쌍한 죄인들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영광스런 새 이름이 주어졌습니다. 아무개 성도, 집사, 권사, 장로, 목사라는 새 이름으로 우리는 불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이름 값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어 새롭게 지음 받은 이름은, 하나님께서 귀한 보좌를 버리고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새 이름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됩니다. 정말 그 이름에 어울리는 인생을 살아, 그 이름 값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1.그 이름 값에 어울리는 새 인생을 살고 있는 것입니까 이 자명종(自鳴鐘)은 목사관에 있던 것입니다. 그동안 저를 깨워서 새벽기도회에 참석할 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시계입니다. 그러나, 어저께부터는 시간이 되어도 울지 않았습니다. 하마터면 새벽기도회에 빠질 뻔했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먼저 있던 것과 바꿔치기 했습니다. 이제는 이 시계가 이름뿐인 자명종으로서, 시간만 알려주는 평범한 시계가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름뿐인 성도들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 값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집사와 권사, 목사와 장로가 있습니다. 물론, 저 자신도 목사라는 명함에 적합한 사람이라 말할 자신이 없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합니까
1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주께서 오신 목적이, 죄의 노예가 되어 살던 우리를 구원하여 자유를 얻게 하시려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노예상태에서 벗어나게 된 것만 해도 너무나 큰 은혜를 입게 된 것인데, 거기에다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니, 이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된 감격과 그 영광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사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 값을 잘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여전히 세상 중심으로 살면서, 사탄이 유혹하는 대로 이끌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제 고향 친구 중에는 아버지가 중학교 교사인 사람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를 같이 다녔는데, 저는 그 친구가 늘 부러웠습니다. 제가 그토록 싫어하는 체육 시간에도, 그 친구는 자주 빠질 수 있었기 때문에 더욱 부러웠습니다. 몸이 아프다는 이유였지만, 교사인 그 친구 아버지의 부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누구도 부럽지 않습니다. 이제는 예수를 믿어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신분 상승도 이만저만 아닙니다. 정말 부끄러운 ‘죄의 종’이라는 자리에서 가장 귀한 신분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한편, 저는 염려치 않을 수 없습니다. 저의 생활이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고 오히려 누만 끼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두려운 마음이 들기 때문입니다.
2우리 모두, 과연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고 있는지 깊이 반성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2장에 나오는 ‘시므온’이라는 사람은 언제나 바르고 경건하며 성령님 충만하게 살았습니다. 그는 메시아가 오리라는 계시를 받고 항상 성전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드디어 아기 예수를 뵙게 되는 영광을 누릴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될까 과연, 다시 오실 주님을 만나뵐 자격이 있을까 저으기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시므온과 같은 열심과 노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동의보감을 지었다는 허준을 보십시오. 이름뿐인 의사가 아니라, 진정한 의사가 되기 위하여 얼마나 애쓰고 노력하던가요 우리는 지금,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하여, 어떤 수고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까 유명무실한 집사와 권사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어떤 열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입니까 우리가 먼저 진실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하여 애쓸 때, 하나님은 우리를 보살펴 주시리라 믿습니다. 다시 한 번, 허준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그가 스승인 유의태의 관심을 끌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인물됨이 출중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의술을 익히기 위하여 밤낮 없이 피눈물나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영생이 되는 말씀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까 춥다고 해서, 또는 바쁘다고 해서 진리 탐구를 소홀히 할 경우, 하나님의 보살피심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3그렇게 되면, 우리는 새로 지음 받은 이름 값을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팔자가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영광스런 이름과 지위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 이름 값을 하지 못할 경우, 달라진 팔자와 신분이 아무 소용없게 되는 것입니다. 오히려, 세상 사람들의 비웃음만 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주께서 하시던 일을 계속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시므온이 마리아에게 말하기를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리라”고 했습니다. 그런고로, 그의 제자가 되는 우리 또한,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기쁨이란, 우리가 바르고 경건하게 살 때,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줄 때에 주어지는 기쁨입니다. 옷 로비 사건과 같은 일은 결코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도 그와 비슷한 일을 행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신을 냉철하게 살펴봐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 자신이 달라져야 합니다. 새롭게 변화되어야 합니다. 이름만 바뀌었다고, 무슨 소용 있습니까 차라리, 집사 권사 대신에, 옛날처럼 아무개 엄마 아버지가 더 낫지 않을까요 하지만, 바울이 말했듯이, 우리는 죄의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런고로, 새로워진 이름에 걸맞게 우리 생활이 달라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새 천년이 곧 시작됩니다. 뭔가 달라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결단의 모습을 보이는 분들이 있어서 참 감사합니다. 잘 감당할 수 없노라고, 새 이름을 던져버릴 생각 하지말고,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 자녀들을 생각해서라도, 우리는 달라져야 합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2.성령님의 도움을 받아서, 바르고 경건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아내가 친정에 갔을 때, 양손에 물건을 쥐고 있어서 발로 TV를 껐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어린 조카가 이모 하는 것을 보고 있다가 자기도 발로 TV를 끄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게 마련입니다. 술집을 자주 드나들면 술꾼이 되고, 화투치는 데 자주 가면 화투꾼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바르고 경건한 생활을 하려면 성전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말씀을 자주 듣고 배우게 되어 온전한 신앙인으로 자랄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2장에 보면, ‘시므온’뿐만 아니라, ‘안나’도 아기 예수를 뵙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성전 중심으로 살았다고, ‘누가’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안나’는 성전을 떠나지 않고 밤낮으로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섬겼던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교회에서만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만은 늘 성전 중심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슨 집회든지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참석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주님의 모습을 닮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 주님처럼,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고 세상 사람들에게는 기쁨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1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고 살아야 합니다. 이사야처럼, 우리도 새로운 구원과 인생의 승리를 위해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다운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의복으로 몸을 감싸듯이 우리를 구원으로 감싸주실 것입니다. 외투로 몸을 덮듯이 우리를 승리로 인도해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진리 안에서 바르게 살려고 노력할 경우, 하나님은 우리를 바라보고만 계시지 않을 것입니다. 성령님을 보내셔서 우리를 보살피시고 도와주실 것입니다.
2우리는 늘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해마다 연초에는 믿음생활을 바로 하겠다고 결심했다가도, 날이 가고 달이 가면서 그 결심은 퇴색하고 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일년 365일 늘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죽는 날까지, 우리는 거듭 거듭 새롭게 태어나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육에 속한 것을 물리치고 영적으로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성령님은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바르게 살도록 말씀도 들려주시고, 경건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시련도 주십니다. 그런 수고가 있을 때에 믿음도 성장합니다. 그리고, 그런 성장을 통하여,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도 기쁨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3그렇게 될 때, 하나님 손에 들려진 영광스러운 면류관이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이름 값을 제대로 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름뿐이라는 수치를 벗게 될 것입니다. 이제는 팔자 타령을 하거나 배경과 환경 탓하는 버릇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주님만을 진실하게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새롭게 열려진 영광스러운 기회를 잃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아무쪼록, 새롭게 주어진 새 이름에 어울리는 인생을 살아감으로써, 주를 믿는 목적을 이뤄갈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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