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 얻지 못하는 까닭 (약4:1-3)
본문
1. 사람은 가능성을 가진 피조물이므로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사실상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성장과 직결된 교양이나 지식 또는 지혜 등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단순히 자신의 욕심을 따라 재물이나 권세 또는 명예 등을 얻기 위해 애를 쓰고 있습니다. 또, 벗이나 반려자를 얻기 위해 신경을 쓰기도 하고, 좋은 동업자를 얻기 위해 백방으로 손을 쓰기도 합니다. 그 무엇 또는 그 어떤 사람을 얻기 위해 내적 갈등 내지는 내적 분열을 일으키기도 하고, 심지어 얻고자 하는 대상의 노예가 되어 싸움과 살인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초대 교회 당시에도 교인들 사이에 이해 관계에 따른 파당을 이루어 서로 다투고 있었습니다.
2. 싸움의 원인 주님의 형제인 야고보는,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라고 예리하게 분석해 주고 있습니다. 싸움은 폴레모스(πλημο)로서, ‘전반적인 싸움’, ‘전쟁’을 뜻하고;다툼은 마케(μχη)로서, ‘부분적인 싸움’, ‘투쟁’, ‘전투’를 뜻합니다. 초대 교회 때에 분쟁과 다툼이 흔했다는 사실은,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나 빌립보 교회에 보낸 서신을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교회 내의 분쟁은 교회를 어지럽혔고, 많은 교파들을 만드는 요인이 되었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적인 사업에 커다란 장애 요인이 되어 왔습니다. 흔히들 이해 관계에 얽힌 개인간의 다툼이나, 당파간의 분쟁이나, 국가 사이의 전쟁 등에 대해서 여러 가지 원인들을 분석해 내고, 또 그 해결책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체로 공통적인 결론은 ‘남 탓’이라는 것이며, 따라서 해결도 남들이 하기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전혀 나나 우리 탓이 아니므로 나나 우리는 문제될 게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고보 사도는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인간 속에 제시한 올바른 삶의 원리로서의 영적 법칙을 거역하여 싸우는 “정욕”(헤도네, δον) 곧 이기적 욕심에 의해 모든 종류의 분쟁과 싸움이 발생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님의 소욕을 대적하는 인간 자신의 욕심 때문에 다툼과 전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결국 모든 싸움과 다툼의 궁극적 원인은 하나님의 뜻을 떠난 인간 자신의 악한 욕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욕심의 노예가 된 인간 자신이고, 해결은 자유케 하시는 주님께 있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얻지 못하는 이유 다툼과 싸움이 인간의 이기적 욕심에서 비롯된다고는 하지 만,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은 여전히 권력이나 재물, 지식이나 명예 등등에 대한 욕심을 내고 있습니다. 흔히들 욕심이 많아야 많이 얻는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욕심이 많아서 시기하고 살인하기까지 하면서 많은 것을 얻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야고보 사도는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세계 곳곳에 욕심이 많아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긁어모으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왜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한다고 했겠습니까 세계 곳곳에 독재자들이 저주받을 욕심 때문에 얼마나 많은 국민들을 고문하고 죽이면서 권력욕을 한껏 누리고 있는데, 왜 욕심 때문에 살인하고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며, 다투고 싸우기만 한다고 했겠습니까
첫째는, 하나님의 뜻을 떠난 인간의 욕심,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인간의 수단 방법으로 얻은 모든 것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창조주이시자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떠나 얻은 모든 것은 자기 자신을 상실한 대가로 얻어진 것이므로, 결국 얻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결정적 증거는 반드시 찾아올 죽음입니다. 죽음은 그 자신의 영혼은 물론, 실상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무참하게 일깨워 줍니다.
셋째는, 죽음이 찾아오기 이전에도,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욕심이 무엇인가를 얻을 때에는, 꼭 그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 상실되기 때문에 얻지도, 취하지도 못한다고 한 것입니다. 정부와 호텔에 투숙해서 외도를 즐기려던 스코틀랜드의 31살 된 유부남이, 들통이 날까 봐 숙박부에다 자기 이름 대신에 스코트 앤더슨이라는 가명을 썼습니다. 그리고는 막 즐기려는데, 갑자기 경찰관들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큰 망신만 당하고 말았습니다. 사연인즉슨, 숙박부에 적은 가명이 하필 경찰이 일주일 전부터 지명수배하고, 목격자를 찾기 위해 BBC 텔레비전에 방송까지 한 범죄자의 이름이었다는 것입니다. 누구나가 출세의 욕망이 있고, 성공의 욕망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건강을 잃어버린 출세, 가정을 잃어버린 출세, 친구를 잃어버린 성공, 상사와 부하 직원을 잃어버린 성공, 자기 자신을 상실해 버린 성공, 그리고 영생을 얻게 하는 믿음을 잃어버린 출세와 성공 등을 도처에서 볼 수 있습니다. 사방에서 “경쟁에서 이기는 자만이 살아 남을 수 있다.”라고 하는데, 묻고 싶은 것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승리인가 도대체 무엇을 위한 성공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믿는 우리는 성공하거나 승리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까 믿는 사람들은 누구 또는 무엇인가를 얻으려 해서는 안 됩니까 한마디로, 그렇지 않습니다. 문제는 얻는 방법이요, 얻는 태도입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고, 만복의 근원이 되시며, 풍성한 영의 복과 재물의 복과 건강의 복을 약속하신 하나님께 말씀을 좇아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수단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하여 얻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 주 예수님의 형제인 야고보는,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라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축복을 약속하신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으니까 으레 기도하며 산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 얻기 위해 염려하고 고민하며 사는 시간이 훨씬 더 많은 게 사실입니다. 매일 매일의 공부와 일을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치는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도 받지 못하는 것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기도란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는 이기적인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안드레 머레는 “하나님께서는 어떤 때에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수 없다. 그 이유는 우리 마음에서 세상을 사모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우리의 입술의 기도 소리보다 높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응답 받을 수 있는 기도는 주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고,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드리는 기도입니다. 여러분! 인생의 중심에서 자신을 옮겨 버리고, 그 중심에 주님을 모시기 전까지는 결단코 올바른 기도를 드릴 수 없습니다. 기도의 응답을 대단히 많이 받은 죠지 물러는, 요구가 있다고 해서 얼른 기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기도하기 전에 먼저 꿇어앉아 성경을 오랫동안 묵상하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한 후에야 기도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4. 맺음말 믿는 우리도 계속해서 누구 또는 무엇인가를 얻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은 무진장한 유형 무형의 보물 창고를 여시고 축복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분쟁과 싸움의 원인인 이기적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고, 성령님의 소욕을 좇아 기도하여 소망을 이루며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2. 싸움의 원인 주님의 형제인 야고보는,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라고 예리하게 분석해 주고 있습니다. 싸움은 폴레모스(πλημο)로서, ‘전반적인 싸움’, ‘전쟁’을 뜻하고;다툼은 마케(μχη)로서, ‘부분적인 싸움’, ‘투쟁’, ‘전투’를 뜻합니다. 초대 교회 때에 분쟁과 다툼이 흔했다는 사실은,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나 빌립보 교회에 보낸 서신을 보아서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교회 내의 분쟁은 교회를 어지럽혔고, 많은 교파들을 만드는 요인이 되었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적인 사업에 커다란 장애 요인이 되어 왔습니다. 흔히들 이해 관계에 얽힌 개인간의 다툼이나, 당파간의 분쟁이나, 국가 사이의 전쟁 등에 대해서 여러 가지 원인들을 분석해 내고, 또 그 해결책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체로 공통적인 결론은 ‘남 탓’이라는 것이며, 따라서 해결도 남들이 하기에 달렸다는 것입니다. 전혀 나나 우리 탓이 아니므로 나나 우리는 문제될 게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고보 사도는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인간 속에 제시한 올바른 삶의 원리로서의 영적 법칙을 거역하여 싸우는 “정욕”(헤도네, δον) 곧 이기적 욕심에 의해 모든 종류의 분쟁과 싸움이 발생한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님의 소욕을 대적하는 인간 자신의 욕심 때문에 다툼과 전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결국 모든 싸움과 다툼의 궁극적 원인은 하나님의 뜻을 떠난 인간 자신의 악한 욕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제는 욕심의 노예가 된 인간 자신이고, 해결은 자유케 하시는 주님께 있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얻지 못하는 이유 다툼과 싸움이 인간의 이기적 욕심에서 비롯된다고는 하지 만,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은 여전히 권력이나 재물, 지식이나 명예 등등에 대한 욕심을 내고 있습니다. 흔히들 욕심이 많아야 많이 얻는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욕심이 많아서 시기하고 살인하기까지 하면서 많은 것을 얻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야고보 사도는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세계 곳곳에 욕심이 많아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긁어모으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왜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한다고 했겠습니까 세계 곳곳에 독재자들이 저주받을 욕심 때문에 얼마나 많은 국민들을 고문하고 죽이면서 권력욕을 한껏 누리고 있는데, 왜 욕심 때문에 살인하고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며, 다투고 싸우기만 한다고 했겠습니까
첫째는, 하나님의 뜻을 떠난 인간의 욕심,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인간의 수단 방법으로 얻은 모든 것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창조주이시자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떠나 얻은 모든 것은 자기 자신을 상실한 대가로 얻어진 것이므로, 결국 얻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결정적 증거는 반드시 찾아올 죽음입니다. 죽음은 그 자신의 영혼은 물론, 실상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무참하게 일깨워 줍니다.
셋째는, 죽음이 찾아오기 이전에도,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욕심이 무엇인가를 얻을 때에는, 꼭 그것보다 더 소중한 것이 상실되기 때문에 얻지도, 취하지도 못한다고 한 것입니다. 정부와 호텔에 투숙해서 외도를 즐기려던 스코틀랜드의 31살 된 유부남이, 들통이 날까 봐 숙박부에다 자기 이름 대신에 스코트 앤더슨이라는 가명을 썼습니다. 그리고는 막 즐기려는데, 갑자기 경찰관들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큰 망신만 당하고 말았습니다. 사연인즉슨, 숙박부에 적은 가명이 하필 경찰이 일주일 전부터 지명수배하고, 목격자를 찾기 위해 BBC 텔레비전에 방송까지 한 범죄자의 이름이었다는 것입니다. 누구나가 출세의 욕망이 있고, 성공의 욕망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건강을 잃어버린 출세, 가정을 잃어버린 출세, 친구를 잃어버린 성공, 상사와 부하 직원을 잃어버린 성공, 자기 자신을 상실해 버린 성공, 그리고 영생을 얻게 하는 믿음을 잃어버린 출세와 성공 등을 도처에서 볼 수 있습니다. 사방에서 “경쟁에서 이기는 자만이 살아 남을 수 있다.”라고 하는데, 묻고 싶은 것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승리인가 도대체 무엇을 위한 성공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믿는 우리는 성공하거나 승리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까 믿는 사람들은 누구 또는 무엇인가를 얻으려 해서는 안 됩니까 한마디로, 그렇지 않습니다. 문제는 얻는 방법이요, 얻는 태도입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고, 만복의 근원이 되시며, 풍성한 영의 복과 재물의 복과 건강의 복을 약속하신 하나님께 말씀을 좇아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수단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하여 얻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 주 예수님의 형제인 야고보는,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라고 안타까운 심정으로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축복을 약속하신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으니까 으레 기도하며 산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 얻기 위해 염려하고 고민하며 사는 시간이 훨씬 더 많은 게 사실입니다. 매일 매일의 공부와 일을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마치는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도 받지 못하는 것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기도란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는 이기적인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안드레 머레는 “하나님께서는 어떤 때에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수 없다. 그 이유는 우리 마음에서 세상을 사모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우리의 입술의 기도 소리보다 높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응답 받을 수 있는 기도는 주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고,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드리는 기도입니다. 여러분! 인생의 중심에서 자신을 옮겨 버리고, 그 중심에 주님을 모시기 전까지는 결단코 올바른 기도를 드릴 수 없습니다. 기도의 응답을 대단히 많이 받은 죠지 물러는, 요구가 있다고 해서 얼른 기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기도하기 전에 먼저 꿇어앉아 성경을 오랫동안 묵상하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한 후에야 기도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4. 맺음말 믿는 우리도 계속해서 누구 또는 무엇인가를 얻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은 무진장한 유형 무형의 보물 창고를 여시고 축복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분쟁과 싸움의 원인인 이기적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고, 성령님의 소욕을 좇아 기도하여 소망을 이루며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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