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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위대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수3:7-17,살전2:9-13,마2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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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가끔, 누군가가 ‘목사님’하고 부를 때에 ‘저 사람이 과연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저렇게 부르는 것일까’하면서,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혹시, ‘네 까짓 게 무슨 목사냐’하고 속으로 비웃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목사면 목사답게 행동해야지, 너 같은 위선자가 어떻게 목사라고 할 수 있는가’하고 욕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떤 사람은 노골적으로 이렇게 말할 때도 있습니다. “목사님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하고 공박을 하는 사람도 있고, “목사님은 왜 설교하는 것과는 다르게 행동하는 것입니까”하고 따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을 정도로 한없이 많은 부끄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물론,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저와 가깝게 지내는 분들입니다. 그들은 농담 삼아 가볍게 하는 말들이지만, 저는 아주 무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목사’라는 위치가 그렇게 쉬운 자리가 아님을 실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비록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대언자(代言者)라고는 하지만, 그냥 말만 전하는 것으로 그칠 수 없는 위치에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시간을 빌어서,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목사로서 실망을 끼친 일이 있으면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말한 대로 지키지 않은 것도 있고, 목사답지 못한 언행을 한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도 또한 그런 실수를 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럴 때마다, 주님의 사랑으로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23장에서, 율법학자와 바리새인들의 문제점을 지적하심으로써, 오늘 우리에게 교훈의 말씀을 전해주고 있습니다.그들이 말하는 것은 그대로 지켜 행하되, 그들의 행위는 본받지 말라
(3)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말만 그럴싸하게 할 뿐이지, 그들의 실제 행동은 그들이 말한 대로 행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기들도 할 수 없는 어려운 일을 사람들에게 행하도록 강요하면서도, 그들 스스로는 그대로 행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행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하는 일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무슨 일이든지 남을 의식하고 행한다는 것입니다
(5). 그래서, 그들은 어느 모임에서든지 윗자리와 높은 자리만을 선호하고, 길에 나서면 거드름을 피우며 인사 받기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7). 그리고, 그들은 거룩한 사람인 것처럼 옷치장을 하거나, ‘선생님’이라는 소리를 듣기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의 그런 잘못된 점을 이렇게 지적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굳이 선생 칭호를 들으려 하지 말라(8)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시기를너희 중에서 가장 낮아져서 남을 섬기는 사람이 가장 위대한 사람이다(11)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께서는 ‘말만 앞세우면서 그대로 행치 않는 ‘빈말’도 버리고, 남에게 보이기 위한 ‘거짓된 행동’도 버려야 한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겸손하게 자신을 낮춰서 남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존중받는 사람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주께서 비판하신 율법학자와 바리새인들의 생활 모습과, 오늘의 우리가 얼마나 다르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자신이 말한 대로 얼마나 잘 실천하고 있습니까
1.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는 그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에게 너희를 대하는 우리의 행동이 경건하고 올바르며 흠 잡힐 데가 없었다(2:10)고 자신있게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바울이 진실로 부럽기가 그지없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째서 바울처럼 살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까
1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는 주의 말씀을 진실하게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강단에서 선포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말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이 전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선포하는 자는 어디까지나 대언자에 불과합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대언자가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가 전하는 말씀의 내용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대언자, 곧 설교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신뢰가 가지 않는 사람이 설교할 때에는 그 말씀까지 무시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불신사회입니다. 말씀을 대언하는 목사들까지 많은 불신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말씀을 듣고 은혜 받기가 무척 어려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2그러니, 말씀을 통해서 인격과 성품의 변화를 기대하기란 어렵게 된 것입니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면, 그 인격과 성품은 점진적으로 변화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바울도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에게 너희는 우리가 전한 복음을 인간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다(살전2:13)고 말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말씀으로 인한 생활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훨씬 더 많지 않나 싶습니다. 신앙생활을 아주 많이 했건만, 그 인격이나 생활의 변화가 거의 없는 것입니다. 옛날의 그 성품을 그대로 지닌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생활 태도가 전혀 변하지 않은 분들도 있습니다. 그 성품과 인격이 변화되어야, 다시 말해서 영적인 거듭남이 있어야 하나님 마음에 들도록 살 수 있습니다. 그래야만, 주님의 은총과 사랑이 임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은혜로 받아들여 그대로 실천할 경우, 생활의 변화가 있게 되는 것이고, 그 결과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과 은혜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3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은혜의 체험을 하지 못하고 사는 분들이 많습니다. 오랫동안 예수를 믿었으면서도 은혜의 체험을 거의 하지 못하고 사는 것은, 마치 신발 장사가 떨어진 신발을 신고 있는 것처럼, 보기가 민망스러운 일입니다. 여호수아가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었을 때, 그에게는 백성들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가야 하는 사명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마침 강물이 범람하는 시기라서 강을 건널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시를 내렸습니다. 제사장들로 하여금 법궤를 메게 하고 강을 건너가라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했습니다. 그는 제사장들이 법궤를 메고 강을 건너가도록 지시했습니다. 제사장들이 강물에 발을 내딛자, 강물은 갑자기 뚝 끊기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요단강을 무사히 건널 수 있었습니다. 보통 상식으로는 믿기가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행하는 사람에게는, 오늘도 그와 같은 능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실천이 중요합니다. 실행해보기도 전에, 자신의 얄팍한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안 된다’고 부정해버리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생명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부정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입니다. 그런고로, 오늘 우리는 자신을 낮추고 또 낮춰야 합니다. 율법학자나 바리새인들처럼, 잘난 것도 없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힘쓰는 그런 위선적인 생활을 버리고, 좀더 온전케 되기 위하여 우리 자신을 낮춰야 합니다.
2.자기 자신을 완전히 낮춰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받아들여 실천함으로써, 그 뜻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우리 한나가 하는 말이 요즘 코미디언 중에는 남희석이가 가장 인기가 좋다고 합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누가 그에게 묻기를 “지금 제일 무서워하거나 경계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누구냐”고 질문했습니다. 그는 의외의 대답을 했습니다. 그가 지금 가장 무서운 하는 사람은, 경쟁자나 시청자가 아닌, 바로 그의 아버지라고 했습니다. 그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코미디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힘이 컸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아버지가 ‘겸손하라’고 계속 강조하신다는 것입니다. 인기가 좀 올라간다고 해서 교만하지 말고, 더욱 훌륭한 코미디언이 되기 위해서 겸손한 태도를 지녀야 한다고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임을 받게 될 것이다(마23:12)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가장 낮아져서 남을 섬길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결국은, 자신을 겸손하게 낮출 수 있어야 하나님의 말씀을 은혜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낮춰야 인격이나 성품의 변화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그런 거듭나는 변화가 있어야, 주님의 거룩한 모습을 닮아가게 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큰 인물도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에게 잘 보이려고 힘쓸 것도 아니고, 말만 앞세우면서 다른 사람에게 바르게 살도록 강요할 것도 아니라, 다만 우리 자신이 먼저 말씀으로 변화되어 바르게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1누가 전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태양 빛을 많이 받아야 곡식이 잘 익듯이, 우리는 생명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주 듣거나 읽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말씀의 뜻을 잘 깨닫고 실천함으로써, 우리의 성품과 인격이 온전케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를 향하여 너희는 그 말씀을 믿음으로써, 그 말씀이 너희의 생활을 변화시켰다(살전2:13)고 말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주의 말씀으로 우리의 생활이 변화되기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2우리는 언제나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생활을 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율법학자와 바리새인들은, 그 말과 행동이 너무나 달랐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는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핏대를 세워가며 강조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사람들의 칭찬과 높임과 인정을 받으려고 그토록 애썼던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처럼 살아야 합니다. 그는 자신부터 경건하고 올바르게 살아가려고 힘쓰면서, 다른 사람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권면하고 가르쳤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을 권면하더라도, 아버지가 자녀를 타이르듯 가르쳤다고 했습니다. 또한, 우리는 법궤를 메었던 제사장들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들은 여호수아의 지시를 받고 강물에 발을 내디뎠습니다. 그리고, 강 중앙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백성들이 다 지나갈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강물에 빠져 죽을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에서, 그들은 그 자리를 끝까지 지킴으로써 백성들의 모범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직물에 충실해야 합니다. 타인의 행위에 대해서 가타부타 따지기 전에, 자신이 지금 있어야 할 자리에 바로 서있는지 자신부터 먼저 돌아봐야 합니다.
3그렇게 살려고 애쓸 때에,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는 모범이 되고, 자신은 보람과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인정을 받게 되어, 장차 하늘나라에 가게 되면 주님과 함께 영원히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그 나라에 가기까지, 더욱 거듭나고 변화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가장 낮은 자리에서 남을 섬길 수 있는, 그런 성숙한 믿음을 가질 때까지, 언제나 겸손한 마음과 태도로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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