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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영혼 속에 놀라운 진리가 빛나고 (출24: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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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前)의 일입니다. Pc통신에서 제 설교를 접한 어느 분께서, 제가 작성한 모든 자료를 구할 수 없겠느냐고, 문의해왔습니다. Pc통신에서 다 구할 수 있다고 했더니, ‘아직 통신이 서툴러서 그러니, 직접 디스켓에 담아달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자기도 자신의 자료들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디스켓에다가 자료를 담는 일이 좀 번거로운 일이었지만, 그분이 갖고 있다는 자료가 탐이 나서, 그의 제안에 동의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제 설교에 많은 호감을 갖고 있다는 바람에, 저는 괜히 우쭐해서, 직접 그를 만나기로 약속했던 것입니다. 막상 만나고 보니, 그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료를 가져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다만, 노트북에 있는 자료들을 제게 보여줄 뿐이었습니다. 그는 아주 많은 자료들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가 직접 작성한 자료들이라는데, 정말 무척 많은 정성과 노력을 기울인 듯 싶었습니다. 그는, 그 자료들을 제게 보여주면서, 은근히 자랑을 했습니다. 이제, 그 자료들을 가지고 이 땅의 복음화를 위하여 힘쓸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미 그 일로 인해서, 그는 아주 정신없이 바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와 대화 중인데도, 그는 계속 핸드폰으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와 헤어진 후, 제 마음이 영 개운치 않았습니다. 전철에 올라타자마자 눈을 감고 기도할 정도로, 그는 신앙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작성한 자료들을 봐서, 그의 복음 전도에 대한 열정은 정말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뭔가 속은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었습니다. 결코, 약속한 자료를 받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한 인간에 대하여, 실망이 컸던 때문이라고 해야 옳을 듯 싶습니다. 그의 열심과 노력에 비교할 때, 그의 매너는 형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신앙’이라고 하는 높은 수준의 규범을 알고 지키기 전에, 먼저 한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예의나 도리조차 모르는 사람으로 보였던 것입니다.
엊그제, 집에 돌아와서 통신에 들어가 보니, 부산의 지인(知人)으로부터 편지가 와 있었습니다. 제 설교를 읽고 소감을 적어보낸 글이었습니다. 제 설교가 A+급이라는 것입니다. 설교 내용이 좋다는 것이 아니고, 글 솜씨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편지를 받고서, 저 자신에 대해서 곰곰 생각해 봤습니다.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하고 말입니다. ‘설교는 조직적으로 잘 하는데, 목회는 엉망’이라고 할까 ‘설교는 그럴 듯하게 잘하지만, 그 인간성은 형편없다’고 말하지 않을까 저를 만나기 전에 설교문을 먼저 읽어본 분들이, 저를 직접 만났을 때 받는 느낌은 어떨까 설교와는 영 딴판이라고 평하지 않을까 저는, ‘목회는 시원치 않지만 설교는 잘 한다’거나, ‘설교는 신통치 않은데, 목회는 잘 한다’는 말을 들을까, 두렵습니다. ‘설교는 미끈하게 잘 하지만, 그 생활은 그렇지 않다’고 하는 말은, 더욱 원치 않습니다. 저는, 목회자로서 사람들에게 실망을 끼치지 않기를, 원합니다. 아니, 좀더 적극적으로 말한다면, ‘본받을 만한 사람, 또는 존경하는 목회자’라는 말을 듣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아내가 제 부족한 점을 많이 채워주고 있기 때문에 다행이지만, 저는 목회자로서 부적격자입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저를 부족한 그대로 사용하시는 까닭에, 감사한 마음으로 목회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에게 실망을 끼치고 있는 것 같아서, 늘 죄송스럽고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야말로, 외면(外面)과 내면이 같고, 그 말과 행동이 같아서, 사람들에게 신뢰와 존경을 받기란,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렇게 되기를 원하면서, 그것을 목표로 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느 날, 예수님은 사랑하는 세 제자와 함께, 높고 한적한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주의 모습이 변했습니다.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고, 옷은 눈부시게 희어졌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예수님과 이야기했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그들을 위해 초막 셋을 짓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구름 속에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17:5) 베드로가 그의 편지에서 이 사실을 증언했습니다. 그는 예수의 광채와 영광을 직접 보았다(벧후1:16)고 하면서, 하나님의 그 영광스럽고 위엄에 찬 음성을 들었노라(17)고 했습니다. 곧, 하나님은 예수님을 가리켜서 내 마음에 꼭 드는 사람이라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려면, 항상 주를 가까이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너는 내게 와서 머물러 있어라하신 다음,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을 주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가까이하다 보면, 언제나 주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깊이 깨닫게 될 때, 우리 영혼 속에 놀라운 진리가 빛나고, 예수께서 우리 마음에 샛별처럼 자리잡게 된다(벧후1:19)고,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말씀이 그 마음에 완전히 자리잡을 때, 그 얼굴은 해같이 빛나고, 그 생활 또한 거룩한 모습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기를 진정 원한다면, 성경 말씀이 하나님의 참된 말씀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주의 말씀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사람들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는 신앙인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 마음 속에 진리가 자리잡고서 빛을 발하고 있습니까 하지만, 진리가 우리 마음에 자리잡기에는, 오늘 우리의 사는 형편이,
1.너무나 복잡하고 정신이 없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그 사람이 어찌나 분주하게 굴든지, 저는 그에게 한 마디 했습니다. ‘조용히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피정(避靜)의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물론, 이 말은 저 자신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우리 내외는 한적한 시간을 갖기 위하여, 며칠 간 영춘 지역을 떠나 있다가 왔습니다. 우리는 세상살이에 너무 바쁘다 보니,
1주와 멀리 떨어져 살 때가 많습니다. 저희 내외가 하는 일이 교회 일인데도 불구하고, 그래서 교회 주변을 늘 맴돌고 있지만, 우리의 마음은 주님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음성을 잘 듣지 못했습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의 거룩한 모습을 뵈옵기에는, 너무나 거리가 먼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니, 진리 말씀이 우리 마음에 자리잡을 새가 언제 있었겠습니까
2그 때문에, 우리의 얼굴에서는 거룩한 성도의 모습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허장강의 아들인 허준호가 얼마 전 TV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가 전에는 무용수로 활동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무용수의 세계란 여자가 대부분인 까닭에, 남자인 그도 점차 여성화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웃을 때에도, 자신 모르는 사이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욕망이 들끓는 세상에서 살다보니, 아무리 천국을 목표로 하고 사는 성도라 하지만, 그 악한 세상을 본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거룩한 모습을 닮아가기 보다는, 세상의 악한 모습에 더 쉽사리 젖어들게 마련인 것입니다. 그 결과, 진리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자주 하게 되는 것입니다.
3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자연히 그 마음은 어둡게 됩니다. 그 현상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납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말씀은 어둠 속을 환하게 비추는 빛처럼,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준다(벧후1:19)고 했습니다. 그러나, 악행은 그 마음을 어둡게 합니다. 그런 생활이 계속되면, 어두운 얼굴로 굳어져버립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행위가 얼마나 수치스러운 짓인지, 잘 모릅니다. 죄악에 대하여 둔감한 것입니다. 그러니, 그 영혼이 지옥에 떨어질 때까지,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한다면 얼마나 큰 불행이겠습니까 학운교회에 있을 때, 간암에 걸려 배가 불룩한 상태 속에서도, 여전히 술병을 들고 다니던 분이 생각납니다. 자신이 죽을병에 걸렸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죽음을 재촉하는 술을 계속 마셨습니다. 그는 잠시 교회에 출석했지만, 술의 마력을 이겨내기에는 그의 의지가 너무 약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얼마 안 가서 죽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려고, 우리 가까이 오셨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 우리가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진리 말씀을 따라서 바르게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재물이나 지위를 가지고서 존경받으려는 생각을 버리고, 진리 안에서 바르게 살아감으로써 신뢰받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목표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진리의 성령님이 그 마음에서 활동을 시작할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가 그 마음에 완전히 자리잡으면, 그 빛을 받아서
2.우리는 주의 거룩한 모습을 닮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의 빛을 비추사 주의 길 바로 걸으며, 주님을 옆에 모시고 경건히 살게 하소서(찬송 171장 2절)〉하고, 우리는 늘 찬송 부르고 있습니다. 진리의 빛 속에서 산다는 것과, 주님을 옆에 모시고 산다는 말은, 같은 뜻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을 ‘경건 생활’이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경건 생활을 열심히 할 때, 우리 얼굴은 거룩한 모습으로 변화됩니다. 사람들이 바라볼 때, 믿음직한 모습으로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말만 잘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실망을 끼치지 않고, 신뢰와 존경을 받는 신실한 사람이 되리라 믿습니다.
1그러기 위해서는, 주님과 되도록 가까이 머물러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는 말을 아실 것입니다. 먹물을 가까이하면, 자신의 몸도 검게 된다는 뜻이 아닙니까 무엇을 가까이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상과 생활 태도가 달라지게 마련인 것입니다. 이번 주 수요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주께서 수난 당하신 날을 앞두고 40일 동안, 예수님의 고난을 되새겨 보면서 경건하게 지내게 되는 절기입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설날이 바로 그 전날입니다. 우리는 이 날을 기점으로 해서, 우리의 삶의 방향을 새롭게 재조정했으면 합니다. 우리의 눈이, 세상 영광이 아닌, 주님의 영광을 보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의 귀가, 세상 소리가 아니라,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2그 영광과 음성을 통하여, 우리의 생활과 얼굴이 주의 모습을 닮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우리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부자로 잘 사는 것보다는, 신실하고 진실한 모습이어야 합니다. 성경 지식을 많이 아는 것도 좋지만, 약속을 잘 지키며 선행을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듣고서 은혜를 받듯이,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생활을 보고서 감동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처음부터, 큰 결심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작은 것부터 실행에 옮겨야 합니다. 예를 들면, 시간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이 있습니다. 예배 시간이나 약속 시간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차츰 좀더 적극적인 신앙 생활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3그렇게 함으로써, 주의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생활로 보여줘야 합니다. 요 3:21에, 진리를 따르는 사람은, 빛으로 나아간다고 했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그 믿음 생활로써, 그 진리의 빛을 증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막힌 설교를 하거나, 천국에 수백 번 갔다오는 체험을 했을지라도, 그 생활이 천국 시민답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입니다. 아무 소용없습니다. 아무쪼록, 하나님 마음에 드는 거룩한 사람이 되도록, 더욱 힘쓰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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