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잠에서 깨어나라! (삼상16:1-13,엡5:8-14,요9:1-41)
본문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도 후회하신 일이 있습니다. 창 6:6에,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하셨다고 했습니다. 삼상 15:11에서는, 내가 사울을 왕으로 삼은 것을 후회한다고 했습니다. 사무엘은 사울 때문에 골치를 썩고 있었습니다. 사울이 주께서 일러주시는 대로 하지 않고 자기 맘대로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사울에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말씀을 따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삼상15:22)고 했던 것입니다. 사울 때문에 근심하고 있던 사무엘에게언제까지 사울 때문에 슬퍼만 하고 있을 것이냐(삼상16:1)고, 하나님께서 따져 묻습니다. 그리고, 새 왕을 세우도록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왕의 선택 기준을 말씀했습니다. 그것은용모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삼상16:7)는 것입니다. 주께서는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나는 사람의 마음속을 들여다보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겉만 보고 사람을 평가할 게 아니라, 그 속마음이 어떠한지 살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겉모습이 그럴싸해서, 우리를 선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마음속이 깨끗하기 때문에,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신 것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 빛으로 오신 주님을 우리 마음에 모셔들임으로써, 하나님과 우리는 끊을 수 없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영국의 계관시인인 ‘테니슨’이 친구와 같이 후원을 거닐면서, 신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가 ‘테니슨’에게 물었습니다. “자네는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하나” ‘테니슨’은 말없이 한참을 걷다가, 가장 아름다운 꽃 앞에서 이렇게 입을 열었습니다. “여보게, 내게 있어서 예수는 이 꽃과 저 태양의 관계와도 같다네. 이 꽃은 태양 빛과 열이 없으면 죽을 수밖에 없쟎은가” 우리는 ‘예수 없이 살 수 없다’고 고백하면서 사는 신앙인들입니다. 예수의 빛을 받지 못하면, 우리 인생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야말로, 꽃이 빛을 받지 못할 경우 죽게 되듯이, 우리도 예수의 가르침을 떠나서 살면 죽은 존재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삶은 어떠합니까 주의 진리를 따라서 사는 자답게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바울은 우리에게 ‘빛에 속한 자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과거 어두운 죄악 세상에 속해 살다가, 이제 주의 빛을 받아서 새 인생을 살기로 했다면, 그 빛을 드러내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를 선택하여 부르신 주님께서 후회하지 않으실 것이고, 또한 우리와 늘 함께 하시는 성령님의 마음을 근심시키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사울은, 그를 선택하여 왕으로 삼은, 하나님을 후회하게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를 부르신 주님을 실망시켜드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만일
그렇다면, 어째서 그런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까 그것은, 어둠 속에서 죄를 짓고 있건만, 자신이 죄를 짓고 있는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죄에 관해서 장님인 것입니다.
1.영적으로 눈이 멀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9장에는, 주께서 어느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는 기사가 나옵니다. 그 맹인의 눈을 뜨게 해 준 다음에,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세상에 온 것은 영적으로 눈먼 자들의 눈을 뜨게 하고, 맹인이면서 스스로 본다고 생각하는 자들을 심판하기 위해서(요9:39)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스스로 마음에 찔리는 것이 있던지 “지금 우리를 맹인이라고 말하는 거요”하고 따져 물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너희가 차라리 맹인이었더라면, 죄를 짓지 않았을 것이다. 너희가 본다고 말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남아 있다(요9:41)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바리새인들의 육안은 멀쩡했지만 영안은 멀어 있었기에,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는 죄를 짓지 않았으나, 속으로 은밀하게 죄를 지었던 것입니다. 바울은불신자들이 은밀히 행하는 일들은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것(엡5:12)이라고 말합니다. 바리새인들이 바로 그런 죄를 짓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보이지 않는 죄는 고사하고, 보이는 죄도 얼마나 많이 짓습니까 물론, 그렇지 않은 분도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그런 죄를 짓고 있으면서도, 영적으로 눈이 멀어서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산다는 점입니다.
1다시 말하면, 어둔 죄악 세상에 속하여 죽음의 잠을 자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주무시다가 돌아가시기도 합니다. 그렇게 죽는 것은 행복한 죽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지금 말씀드리는 죽음의 잠은, 영혼이 잠들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자기 인생의 앞날에 어떤 결과가 주어질지도 모르고, 마냥 편안하게 잠을 자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울은 성경을 인용하여,잠에서 깨어나라, 죽음에서 일어나라!(엡5:14) 외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제가 새벽에 전화벨을 울리면서 기도하는 내용과 비슷합니다. 본인은 편안하게 잠을 자고 있지만, 그의 영적 지도자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 영혼을 깨우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잠만 자는 것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부끄러운 일까지 행하고 있습니다. 원래, 잠을 잘 잔다는 것도 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잘 먹고(快食) 변 잘 보고(快便) 잘 자는(快眠) 것, 이 세 가지 기쁨(三快)을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아무튼, 잠 잘 자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 정도를 지나칠 때, 불행스러운 일이 됩니다. 더군다나, 영혼의 잠은 아예 자지 말아야 하는데, 깊은 잠에 빠진 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영혼의 잠은, 사람이 원해서 자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둠의 세력이 가져다주는 흉악한 재난입니다. 이 죽음의 잠을 자게 될 때에는, 주의 음성은 듣지 못하고 세상 소리만 잘 듣게 됩니다. 그래서, 무가치한 일에 힘쓰거나, 해서는 안 되는 부끄러운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에는 태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같이, 영적으로 눈먼 사람들은, 죄를 지으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살다가,
3마지막 날에 주의 심판을 받습니다. 주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영적으로 눈먼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고, 맹인이면서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을 심판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요9:39). 결국, 주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은,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을 빛 가운데로 인도하고, 이것을 거부하는 자들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이미 빛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빛의 자녀라고 하면서, 그 빛 된 행위를 드러내지 못할 경우에는, 불신자들과 똑같은 취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은, 우리 스스로가 어둠의 일을 완전히 벗어버리고, 아직도 죽음의 잠을 자고 있는 사람들을 깨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빛의 자녀라고 하는 우리들조차, 아직도 영적으로는 눈이 멀어있는 상태라서, 행해서는 안 되는 죄를 짓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가 은밀하게 행하고 있는 모든 일을 다 아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육안만 멀쩡하지 영안은 멀어 있는 까닭에, 자신이 은밀하게 행하는 죄를 주께서 다 보고 계신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불신자들의 악행을 다 드러내셨습니다. 그 결과,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자는 빛의 자녀로 삼으시고, 끝끝내 빛을 거부하는 자들은 무저갱(無底坑) 속에 빠뜨리게 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은 외모로 판단치 않으시고, 그 중심을 들여다보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솔직해야 합니다. 조금치도 속일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 앞에서 모든 가면(假面)과 위장(僞裝)을 벗어버리고, 진실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빛으로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하루아침에 완전히 변화될 수는 없습니다. 썩고 병들어있는 구각(舊殼)을 벗겨낸 후에, 깨끗한 새살이 돋아날 때까지, 거듭나기를 계속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보다 먼저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런고로, 앞서 가는 사람으로서 많은 고충을 겪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잘 감당하노라면 보람도 있을 것입니다. 조금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자기 자리에서 물러서게 되면, 보람의 열매를 거두는 영광을 누릴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2.주님의 빛을 담뿍 받아서, 그 증인된 삶을 충실하게 감당하도록 합시다. 웬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리스의 고대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하루는 대낮에 등불을 들고 길을 나서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이상스러워서 여쭙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대낮에 등불이 웬일입니까” 그러자, 스승은 “너희들의 눈에는 사람이 보이느냐 나에게는 어두워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계속 촛불을 들고 무엇인가 부지런히 찾는 듯 두리번거리면서 걸어갔습니다. 한참 후에야, 제자들은 그가 혼탁한 아테네 사회에서 길을 밝혀 줄 양심 있는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를 밝혀줄 등불은 누구겠습니까 말할 것 없이, 우리가 믿고 따르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나, 오늘 이 사회에서는 작은 예수를 많이 요구하고 있습니다. 작은 등대가 되어, 세상을 바른 길로 인도할 사람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주께서는 우리가 바로 그런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죽음의 잠에서 깨어나라’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내가 세상의 빛이다(요9:5)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우리는 그의 작은 제자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그 작은 빛이 되어, 이 세상을 밝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1다시 한 번, 빛이신 주님을 바로 영접하고, 어둠의 눈을 밝혀야 하겠습니다. 죽음의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이 순간, 자신이 지은 죄가 생각나는 사람은 잠에서 깨어난 사람입니다. 그러나, 자기 죄가 생각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서 속히 잠에서 깨어나, 자기 지은 죄를 회개함으로써, 완전히 어둠의 세력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구원의 빛이 되시는 분은, 오직 주 예수뿐이라는 것을 확실히 믿고 고백해야 합니다.
2그리고, 빛에 속한 자로서, 그 증인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바울은 말하기를,빛을 간직한 이는 선한 일과 옳은 일, 그리고 진실한 일만 해야 한다(엡5:9)고 했습니다. 빛에 속한 자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생활을 해야, 주께서 기뻐하실 지 생각해 봐야(엡5:10)합니다. 우리에게 좋은 일이 아니라, 주께서 좋아하실 일을 찾아서 행해야 합니다. 물론, 주님께서 싫어하실 일이라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거꾸로 행할 때가 많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원해서 하는 일이 아니고, 어둠의 세력에게 붙잡힐 경우, 그렇게 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3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성령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다윗이 사무엘 선지자로부터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게 되었을 때, 그 순간 성령님께서 다윗을 사로잡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성령님께서는 다윗에게서 떠나지 않고 함께 계셨다고 했습니다(삼상 16:13). 우리도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물론, 가능합니다. 우리 자신이 예수만을 바라보면서 주님 닮기를 간절히 소원한다면, 성령님은 늘 우리와 함께 계실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이 세상의 빛이 되어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서 솔직한 사람이 되고 바르게 살아감으로써, 빛에 속한 자라는 것을 증명해 보일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겉모습이 그럴싸해서, 우리를 선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마음속이 깨끗하기 때문에,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신 것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 빛으로 오신 주님을 우리 마음에 모셔들임으로써, 하나님과 우리는 끊을 수 없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영국의 계관시인인 ‘테니슨’이 친구와 같이 후원을 거닐면서, 신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가 ‘테니슨’에게 물었습니다. “자네는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하나” ‘테니슨’은 말없이 한참을 걷다가, 가장 아름다운 꽃 앞에서 이렇게 입을 열었습니다. “여보게, 내게 있어서 예수는 이 꽃과 저 태양의 관계와도 같다네. 이 꽃은 태양 빛과 열이 없으면 죽을 수밖에 없쟎은가” 우리는 ‘예수 없이 살 수 없다’고 고백하면서 사는 신앙인들입니다. 예수의 빛을 받지 못하면, 우리 인생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야말로, 꽃이 빛을 받지 못할 경우 죽게 되듯이, 우리도 예수의 가르침을 떠나서 살면 죽은 존재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삶은 어떠합니까 주의 진리를 따라서 사는 자답게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바울은 우리에게 ‘빛에 속한 자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과거 어두운 죄악 세상에 속해 살다가, 이제 주의 빛을 받아서 새 인생을 살기로 했다면, 그 빛을 드러내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를 선택하여 부르신 주님께서 후회하지 않으실 것이고, 또한 우리와 늘 함께 하시는 성령님의 마음을 근심시키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사울은, 그를 선택하여 왕으로 삼은, 하나님을 후회하게 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를 부르신 주님을 실망시켜드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만일
그렇다면, 어째서 그런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까 그것은, 어둠 속에서 죄를 짓고 있건만, 자신이 죄를 짓고 있는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죄에 관해서 장님인 것입니다.
1.영적으로 눈이 멀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9장에는, 주께서 어느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해 주는 기사가 나옵니다. 그 맹인의 눈을 뜨게 해 준 다음에,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세상에 온 것은 영적으로 눈먼 자들의 눈을 뜨게 하고, 맹인이면서 스스로 본다고 생각하는 자들을 심판하기 위해서(요9:39)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스스로 마음에 찔리는 것이 있던지 “지금 우리를 맹인이라고 말하는 거요”하고 따져 물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너희가 차라리 맹인이었더라면, 죄를 짓지 않았을 것이다. 너희가 본다고 말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남아 있다(요9:41)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바리새인들의 육안은 멀쩡했지만 영안은 멀어 있었기에,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는 죄를 짓지 않았으나, 속으로 은밀하게 죄를 지었던 것입니다. 바울은불신자들이 은밀히 행하는 일들은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것(엡5:12)이라고 말합니다. 바리새인들이 바로 그런 죄를 짓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보이지 않는 죄는 고사하고, 보이는 죄도 얼마나 많이 짓습니까 물론, 그렇지 않은 분도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그런 죄를 짓고 있으면서도, 영적으로 눈이 멀어서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산다는 점입니다.
1다시 말하면, 어둔 죄악 세상에 속하여 죽음의 잠을 자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주무시다가 돌아가시기도 합니다. 그렇게 죽는 것은 행복한 죽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지금 말씀드리는 죽음의 잠은, 영혼이 잠들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자기 인생의 앞날에 어떤 결과가 주어질지도 모르고, 마냥 편안하게 잠을 자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울은 성경을 인용하여,잠에서 깨어나라, 죽음에서 일어나라!(엡5:14) 외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제가 새벽에 전화벨을 울리면서 기도하는 내용과 비슷합니다. 본인은 편안하게 잠을 자고 있지만, 그의 영적 지도자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 영혼을 깨우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잠만 자는 것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 부끄러운 일까지 행하고 있습니다. 원래, 잠을 잘 잔다는 것도 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잘 먹고(快食) 변 잘 보고(快便) 잘 자는(快眠) 것, 이 세 가지 기쁨(三快)을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아무튼, 잠 잘 자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 정도를 지나칠 때, 불행스러운 일이 됩니다. 더군다나, 영혼의 잠은 아예 자지 말아야 하는데, 깊은 잠에 빠진 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영혼의 잠은, 사람이 원해서 자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둠의 세력이 가져다주는 흉악한 재난입니다. 이 죽음의 잠을 자게 될 때에는, 주의 음성은 듣지 못하고 세상 소리만 잘 듣게 됩니다. 그래서, 무가치한 일에 힘쓰거나, 해서는 안 되는 부끄러운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에는 태만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같이, 영적으로 눈먼 사람들은, 죄를 지으면서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살다가,
3마지막 날에 주의 심판을 받습니다. 주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영적으로 눈먼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고, 맹인이면서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을 심판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요9:39). 결국, 주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은,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을 빛 가운데로 인도하고, 이것을 거부하는 자들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이미 빛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빛의 자녀라고 하면서, 그 빛 된 행위를 드러내지 못할 경우에는, 불신자들과 똑같은 취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은, 우리 스스로가 어둠의 일을 완전히 벗어버리고, 아직도 죽음의 잠을 자고 있는 사람들을 깨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빛의 자녀라고 하는 우리들조차, 아직도 영적으로는 눈이 멀어있는 상태라서, 행해서는 안 되는 죄를 짓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가 은밀하게 행하고 있는 모든 일을 다 아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육안만 멀쩡하지 영안은 멀어 있는 까닭에, 자신이 은밀하게 행하는 죄를 주께서 다 보고 계신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불신자들의 악행을 다 드러내셨습니다. 그 결과,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자는 빛의 자녀로 삼으시고, 끝끝내 빛을 거부하는 자들은 무저갱(無底坑) 속에 빠뜨리게 될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은 외모로 판단치 않으시고, 그 중심을 들여다보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솔직해야 합니다. 조금치도 속일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 앞에서 모든 가면(假面)과 위장(僞裝)을 벗어버리고, 진실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빛으로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하루아침에 완전히 변화될 수는 없습니다. 썩고 병들어있는 구각(舊殼)을 벗겨낸 후에, 깨끗한 새살이 돋아날 때까지, 거듭나기를 계속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보다 먼저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런고로, 앞서 가는 사람으로서 많은 고충을 겪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일을 잘 감당하노라면 보람도 있을 것입니다. 조금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자기 자리에서 물러서게 되면, 보람의 열매를 거두는 영광을 누릴 수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2.주님의 빛을 담뿍 받아서, 그 증인된 삶을 충실하게 감당하도록 합시다. 웬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리스의 고대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하루는 대낮에 등불을 들고 길을 나서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이상스러워서 여쭙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대낮에 등불이 웬일입니까” 그러자, 스승은 “너희들의 눈에는 사람이 보이느냐 나에게는 어두워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계속 촛불을 들고 무엇인가 부지런히 찾는 듯 두리번거리면서 걸어갔습니다. 한참 후에야, 제자들은 그가 혼탁한 아테네 사회에서 길을 밝혀 줄 양심 있는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를 밝혀줄 등불은 누구겠습니까 말할 것 없이, 우리가 믿고 따르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나, 오늘 이 사회에서는 작은 예수를 많이 요구하고 있습니다. 작은 등대가 되어, 세상을 바른 길로 인도할 사람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주께서는 우리가 바로 그런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죽음의 잠에서 깨어나라’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내가 세상의 빛이다(요9:5)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우리는 그의 작은 제자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그 작은 빛이 되어, 이 세상을 밝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1다시 한 번, 빛이신 주님을 바로 영접하고, 어둠의 눈을 밝혀야 하겠습니다. 죽음의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이 순간, 자신이 지은 죄가 생각나는 사람은 잠에서 깨어난 사람입니다. 그러나, 자기 죄가 생각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서 속히 잠에서 깨어나, 자기 지은 죄를 회개함으로써, 완전히 어둠의 세력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구원의 빛이 되시는 분은, 오직 주 예수뿐이라는 것을 확실히 믿고 고백해야 합니다.
2그리고, 빛에 속한 자로서, 그 증인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바울은 말하기를,빛을 간직한 이는 선한 일과 옳은 일, 그리고 진실한 일만 해야 한다(엡5:9)고 했습니다. 빛에 속한 자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생활을 해야, 주께서 기뻐하실 지 생각해 봐야(엡5:10)합니다. 우리에게 좋은 일이 아니라, 주께서 좋아하실 일을 찾아서 행해야 합니다. 물론, 주님께서 싫어하실 일이라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거꾸로 행할 때가 많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원해서 하는 일이 아니고, 어둠의 세력에게 붙잡힐 경우, 그렇게 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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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성령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다윗이 사무엘 선지자로부터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게 되었을 때, 그 순간 성령님께서 다윗을 사로잡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성령님께서는 다윗에게서 떠나지 않고 함께 계셨다고 했습니다(삼상 16:13). 우리도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 물론, 가능합니다. 우리 자신이 예수만을 바라보면서 주님 닮기를 간절히 소원한다면, 성령님은 늘 우리와 함께 계실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이 세상의 빛이 되어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서 솔직한 사람이 되고 바르게 살아감으로써, 빛에 속한 자라는 것을 증명해 보일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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