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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날선 검 (히4:11-14)

본문

어떤 사람이 객지에서 장사를 하다가 명절이 되어 서둘러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답니다. 부인을 위해선 물을 하나 사고 싶어서 시장을 기웃거리는데 한 스님이 ‘개어,(불교의 교훈을 담은 시구)를 팝니다’ 라는 팻말을 걸고 앉아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답니다. 그는 호기심이 나서, “스님, 에어를 팔다니 그것이 무엇입니까 또 값은 얼마입니까” 라고 물었답니다. 스님이 대답하기를, “원래는 한수에 황금 스무 냥이지만 보아하니 댁은 인연이 있는 사람인 것 같으니 반 딱 잘라서 열 냥만 주시오” 하였다. 그 사람은 너무 비싸 어이가 없었지만 스님의 넉살에 “좋아요, 개어 한 개 주시오” 라고 엉겁결에 승낙하고 말았다. 그러자 스님은, “앞으로 세 걸음 걸으며 생각하고 뒤로 세 걸음 물러나 생각하라 성이 날 때에는 이렇게 생각하여 노여움의 불을 끄는 것이 길이 좋으리라” “이 시구를 잘 기억하시오. 특히 분 심히 날 때 반드시 이 시구를 외우도록 하시오” 하였답니다. 이 사람은 고작 이 말 한마디에 황금 열 냥을 받는 것에 화가 났지만 나이도 많고 더욱이 스님인 것을 생각하며 불공한 셈치고 그 자리를 일어섰답니다. 이윽고 집에 도착했을 때 이미 어두운 방이 되었답니다. 아니!
그런데이게 웬일인가! 댓돌 위에 여자 신발 한 켤레, 남자 신발 한 켤레. “이 괘씸한 여편네, 감히 이런 짓을!” 그는 부엌에 들어가 식칼을 가지고 뛰쳐나왔답니다. 방문을 열려는 순간 낮에 장에서 산 개어 생각이 났답니다. 그는 그 개어 가만히 외기 시작했답니다. “앞으로 세 걸음 걸으며 생각하고 뒤로 세 걸음 물러나 생각하라” 그 사람이 씩씩대며 시구를 외면서 앞뒤로 왔다 갔다 하는 소리에 그 부인이 놀라 깨어났다. “어머, 당신 어째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하고 능청을 떠는 것이 아닌가! “네 이년! 어떤 놈이지”하고 다그쳐 물었답니다.“아니 어떤 놈이라뇨” 저 신발은 아하 오늘 당신이 오실 날인데 기다려도 오시지 않기에 당신 신발이라도 댓돌 위에 놓고 마음을 달랬지요 이 말을 들은 그는 칼을 던지며 “정말 값진 것이군. 참으로 값진 것이야! 만 냥을 주어도 아깝지 않아!” 라고 외치면서 부인을 얼싸 안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답니다. 사람들은 조그마한 일도 참지 못하고 많은 것을 읽고 손해를 보는 경우가 아 주 많습니다.
본문에 (히4: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라고 말씀하고 있어 주님 주님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안식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바로 털어놓지 않고 서로가 마음을 닫아 놓고 싸우기만 한다면 이보다 더 악하고 힘든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서로가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서 생각하면 되는 것이고 차분히 주님 안에서 서로가 이해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더욱 화목한 가정과 사회를 이루고 살 수 있을 것입니다.
'1'말세에 일어날 마음의 악한 일들이 나에게 당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말세에는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분주함과 빠른 문화 발달로 인하여 참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어디에서든지 본능적인 마음을 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 안식과 주 안에서 안식을 누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때를 구별하고 자신을 잘 살펴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보니까(딤후3:1-5)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2)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4)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 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라고 말씀하고 있어 주님은 그 백성을 향하여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는데 이것은
ㄱ. 자기를 사랑한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편안해야 하고 자기가 먼저 만족함을 얻어야 하는 것이고 자기가 먼저 만족함을 누릴 수 있어야 다른 사람을 돌아보게 되는 것입니다.
ㄴ. 돈을 사랑한다고 합니다. 돈을 최고의 가치로 두고 많은 사람이 돈을 버는데 혈안이 된다고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ㄷ. 자기 자랑을 밥먹듯이 하며 교만합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집이 어떻고 자기 차가 어떻고 자기 옷이 어떻고 자기 것을 자랑하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말은 안해도 행동으로 많은 것을 남에게 자랑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최고라고 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ㄹ. 훼방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이웃의 권위를 생각치 않고 모욕하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지 않고 이웃에게 마구잡이로 말을 하고 함부로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악한 말을 함부로 합니다. 이러므로 이웃이 상처를 받고 이웃이 주님에게서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ㅁ. 부모를 거역하고 감사치도 아니한다고 합니다. 남에게 무엇을 바라지 말고 오직 주님의 영광과 그 나라를 위한 봉사요 수고가 되어야 합니다. (눅6:35)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빌리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 우시니라” 이와 같이 헌신적인 사랑과 수고는 하나님의 많은 사랑과 위로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바로 섬기지 않으면 (롬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롬1: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 하게 되어” 스스로가 미련 한자가 되고 만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공경하되 온 정성을 다하는 사람이 되고 그 부모를 향해 감사하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ㅂ. 거룩치 아니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을 무시하고 생각지 않고 행동합니다 (딤전1:9) 알 것은 이것이니 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오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치 아니하는 자며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며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며 아비를 치는 자와 어미를 치는 자며 살인하는 자며 (딤전1:10) 음행 하는 자며 남색 하는 자며 사람을 탈취하는 자며 거짓말하는 자며 거짓 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리는 자를 위함이니 (딤전1:11)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 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좇음이니라 ㅅ. 거짓된 말을 잘 한다고 합니다. 남에게 악한 말로 꾸며서 나쁜 일을 당하게 하고 ㅇ. 무정하여 남의 인정을 봐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지 않고 자기 입장만을 생각한다고 합니다. ㅈ. 그리고 남에게 원통한 마음을 품게 하고도 이것을 풀지 않는다고 합니다. 한 번 싸우면 이 싸운 사람과 영영 원수 맺게 되고 화해를 할 생각을 안한다고 합니다. ㅊ. 그리고 절제하지 못하며 조급한 사람이 되고 사나운 사람이 된다고 합니다. 현대인은 참으로 이와 같이 악하고 악하여 참지 못하고 인내가 부족하고 무엇 때문인지 사람들은 참지 못하는 버릇이 있고
그러므로 싸우고 화목하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배반하며 친구고 뭐고 자기 이익을 위하여는 모든 일들 다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쾌락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ㅋ.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 하는 자가 많다고 합니다. 세상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과학을 믿고 합리주의로 빠져 주님을 믿는 믿음이 살아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세대에서 믿음을 유지하고 신앙을 지키려면 자신의 모습을 돌아 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주님을 모르고 자기만 아는 사람이요 신앙적 냄새가 나지 않고 악한 냄새 불 신앙적 냄새만 풍기는 사람에게서 주님은 떠나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이러한 자에게서 돌아서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본문에 보면 (히4: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주님은 이러한 사람에게서 돌아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진정한 안식을 누리고 안식에서 제외되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우리는 주위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에게 악한 성분을 다 재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악한 사람에게서 돌아서라고 말씀하고 있기는 하지만 세상에 예수님 외에 누가 이 악한 성분이 없고 죄가 없는 이가 있겠습니까. 모든 이는 하나님께 죄인이요 주님 앞에 모든 이가 범죄 함으로 사망에 이르게 되었던 사실을 생각하면 모든 이가 이 악한이요 누구든지 그 사람에게 돌아서야 할 사람인 것을 부인 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선 한자요 누가 악한 자라는 말이겠습니까. 이것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려고 하는 사람이요 자기의 행위를 고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 중에 잘못이 없고 범죄 함이 없고 허물이 없다면 이러한 악한 사람이라도 피할 필요가 없겠지요 그러나 모든 이가 죄인인 것이기에 자기가 의로움이 약함으로 인하여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에게서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1)우리가 자신을 고치고 개선하려는 마음을 품을 때 충분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적용을 받아 자신을 고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에 보면 (12)“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으며 좌우에 살선 검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히4:13)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 아빠에게 온 몸이 드러나 숨기 움을 받지 못하듯이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숨기 우지 못하고 다 드러나 숨기울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앞에 아무 것도 숨기울 수 없고 아무 것도 벗어 날수 없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1)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고쳐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일에 부족함을 느낄 때 주님 앞에 신앙 인으로의 삶이 시작 되는 것입니다. 자기의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자기가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주님 앞에 기도하고 간구하는 것이오 주님을 향해 온 힘을 기울이는 거입니다.
ㄱ.
그러므로 자기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ㄴ. 다음은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ㄷ.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알지 않는다면 마치 그 자녀가 가기 부모를 모른다는 말과 같은 말로 자기 부모를 모르는 자녀가 없듯이 자기 애인을 모르는 사람이 없듯이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주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ㄹ. 그 다음 주님의 말씀에 적용하는 삶이 우리에게 있을 때 우리는 이 말씀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인도하고 주관하고 역사 하는 것입니다.
2)자신의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아무리 노력하고 노력해도 우리는 악한 자신의 모습을 고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에 자신이 고치고자 할 때 맘대로 고칠 수 있다면 우리는 신이지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고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11절에 힘쓰다는 재촉하다 열심히 노력하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자신에게 자신이 재촉하여야 하고 자신이 노력해야 하는 일인 것입니다.
ㄱ.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데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함을 인하여 악한 일을 당하는 것이고 믿음이 분명치 않음도 신앙에 관한 올바른 인식이 되어 있지 않음으로 모든 이가 바른 삶을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ㄴ.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힘을 얻으려면 힘써 기도해야 합니다.
(2)주님 앞에 숨김이 없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마치 모든 것을 숨기고 혼자만 알고 있는 착각에 빠진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남 모르는 죄를 짖고자 하고 남이 알지 못한다고 하며 자기가 저지른 죄를 아무런 잘못을 느끼지 않고 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의 눈에서 몸이 다 드러나 있는 것과 같이 우리는 주님 앞에 다 드러나 있는 것입니다. (히4:13)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1)기도하는 사람에게도 숨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 앞에 다 드러나 있다면 우리는 주님 앞에 기도하는 사람이 주님의 알고 있는 것을 또한 알게 된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 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기도하면 모든 것이 드러나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숨김이 있게 되면 이 사람에게 말은 안하지만 그 사람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는데 왜 저렇게 말을 하고 저렇게 행동하는가 하고 의심이 벗어날 길이 없는 것입니다.
2)자신에게 숨길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자신도 모르게 숨기고 자기 자신에게 거짓을 말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이 것은 자신의 개으른 결과이고 나약한 결과입니다. 자신이 약하고 연약하여 어쩔 수 없이 자신도 모르게 거짓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기도한다고 하고 기도하지 않고 말씀 읽는 다고 하고 말씀을 읽지 않고 봉사한다고 하고 자기 자신이 한 말을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3'믿음의 도리를 굳게 잡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을 믿는 믿음이 분명하고 그 신앙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히4: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 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요한 복음1:1에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고 예수님은 바로 말씀 자체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의 주인이고 이 말씀이 우리 위하여 죽어 주셨고 다시 사셨습니다.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요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그러므로 우리의 제사장은 한분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우리의 제사장의 도리를 지켜야 우리는 참된 신앙인이 되는 것입니다.
(1)믿는 도리는 신앙고백을 가리키는 말로 예수님을 믿는 신앙을 자기 사진이 자신에게 날마다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가 자신에게 신앙인의 삶을 사는가 하고 의심하고 물어 보고 반문해 봐서 진정한 신앙인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삶을 통하여 주님의 자녀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2)굳게 붙잡으라는 단단히 쥐다 혹을 들러 붇다 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우리는 꼭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단단히 들러붙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신앙을 인정받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1)주님의 말씀을 꼭 붙잡으려면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실천하는 삶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실천하는 삶은 말씀에 적용하여 자신의 잘못된 부분을 고치는 사람인 것입니다. 말세에 많은 사람이 자기 잘못을 고치려 하지 않는 다는 그러한 사람이 아니라 진정코 자신의 고쳐야 할 부분을 날마다 고치려 해야 하는 것입니다.
2)그 다음 꼭 붙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주님의 백성은 주님의 말씀에 꼭 붙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말씀을 사단에게 빼앗기고 말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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