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 돌아가자 (호6:1-11)
본문
회개라는 말은 ‘메타노오에’로 ‘마음을 바꾸다, 회개하다’는 말이며, 메타노니아는‘회심, 회개’라는 말입니다. ‘회개하라’는 메시지는 세례 요한의 외침이었고, 예수님의 첫 설교였고, 성령님을 받은 주님의 제자들이 가장 먼저 외침 메시지였습니다. 그러나 구약에는 회개라는 말이 3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욥 42: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시 7:12 “사람이 회개치 아니하면 저가 그 칼을 갈으심이여 그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겔 18:30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국문할지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리한즉 죄악이 너희를 패망케 아니하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과 제자들이 ‘회개하라’는 메시지를 전파한 것은 회개의 메시지가 이미 구약에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회개의 개념은 제의나 예배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일반적인 재난과 민족적인 위기는 범죄가 원인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여러 가지 위기와 문제에 부딪칠 때에 포로가 되고, 노예가 된 원인은 바로 우상숭배의 죄 때문이라고 하였으며, 폭풍, 지진, 홍수 등의 재앙도 누군가의 죄악으로 인하여 일어난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요나가 탄 배에 갑자가 폭풍이 닥쳤을 때 누구의 죄인가 알아보기 위하여 제비를 뽑았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면 됩니다.
그러므로 선지자들은 ‘돌아오라’, ‘돌아가자’고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
선지자들이 회개의 메시지를 외칠 때에 참된 회개는 형식과 함께 죄에서 돌이키는 일이 함께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회개하라는 말이 아니라 ‘돌아오라’는 말을 썼습니다. ‘…에서 돌아온다’는 것은 ‘나쁜 길에 빠진 후에 되돌아 온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회개의 방향은 하나님이고, 이전에 하던 일은 악행, 폭력, 우상숭배. 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돌아오라(회개하라) 것을 세가지 방향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⑴ 하나님에 대한 순종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하는 것을 말하며, 순종은 하나님을 무조건적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⑵ 하나님을 신뢰 인간적인 방법, 인간적인 도움, 우상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⑶ 불경건한 모든 일에서 그 얼굴을 돌리는 것입니다. 신약에 나타난 회개는 공관복음과 사도행전에 주로 쓰이는 말로 마음의 변화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회심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⑴ 세례 요한의 메시지-임박한 심판에서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마 3:7-9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 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⑵ 예수의 메시지의 핵심 회개는 율법이 아니라 곧 복음입니다.
⑶ 초대교회(베드로)의 메시지 행 2:37-38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니” 행 5:30-31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본문 1절에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는 이 메시지는 호세아서의 총 제목인 동시에 성경 전체의 총 제목이기도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범죄한 우리 인생들을 향하여 돌아오라고 부르십니다. 그런고로 우리들은 여호와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1. 왜 돌아가야 하는가
찢어지고, 상한 이스라엘을 부르고 계십니다. ‘찢어지고 상한 이스라엘아 하나님께 돌아가자’는 것이 바로 호세야의 외침입니다. 찢어지고 상하였기 때문에 치료자 되시고, 위로자 되시는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하나님의 자녀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런데 이방인에 의해서 짓밟히고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자존심과 마음, 육체가 찢기고 상하였습니다. 이것은 단지 이스라엘의 모습만은 아닙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 인간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지어진 것이 오늘 인간입니다.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그 안에 있고, 하나님의 숨이 그 안에 있습니다. 이것은 선민인 이스라엘 보다도 더 큰 사랑을 입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들에게는 평화만 있고, 기쁨만 있고, 생명만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불순종하여 범죄한 후에 인간은 가장 불쌍한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창 3:14-24에서 보면 인간의 찢기고 상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 3: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잉태의 수고로 자녀를 낳는데, 그 자녀로 말미암아 고통받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자녀가 없으면 없어서 고통, 있으면 있어서 걱정입니다. 잉태의 고통은 인간이 겪는 고통 가운데 최고의 아픔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여자들이 아이를 낳은 후에는 독해진다고 합니다. 인생의 가장 큰 고통을 경험하기에, 그 이후에는 무서운게 없다고 합니다. 가정은 협력의 관계로 하나님이 만드셨는데, 여자는 남편을 기다리고, 남편은 여자를 다스리는 관계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계에서 오는 가정의 갈등은 끝이 없습니다.
창 3:17-19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한다. 하나님이 만든 인간은 에덴에서 그 동산의 모든 실과를 따 먹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종신토록 땀흘려 수고하지 않아도, 걱정하지 않아도 먹고 살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종신토록 땀흘려 수고해야할 뿐만 아니라, 그래도 제대로 얻지 못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 인간은 결국 흑으로 돌아가는 죽음을 맞이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죽음의 고통은 인간이 맞이하는 가장 큰 고통입니다. 죽음 앞에 두려워 떨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창 3:22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더 문제는 인간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며, 영생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영생을 그리워하며, 사모하지만 얻을 수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문제입니다. 오늘 우리는 찢긴 심령이 아닙니까 가정 문제가 오늘 우리를 짖누르고 있지 않습니까 자녀, 고부, 부부 사는 문제가 오늘 우리를 짖누르고 있지 않습니까 경제위기의 한파, 실업, 고물가 죽음의 문제가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까 누구에게나 있는 병마, 사고 영적인 문제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영적인 갈급함, 여적인 공허 이런 문제 앞에 마음이 찢기고, 가정이 찢기고, 육체가 찢긴 것이 오늘 우리 인간의 모습입니다. 찢기고 상한 심령은 주님께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2. 이스라엘이 왜 그렇게 되었는가 이스라엘이 찢기고 상한 원인은 이미 말씀을 드렸듯이 죄로 말미암아 그렇습니다. 그러면 오늘 호세아는 그 죄를 어떻게 지적하고 있는가
1 하나님을 적게 사랑하였다. (4)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쉽게 사라지며, 변덕스러운 것이다. 기적을 보고, 능력을 체험하고, 징계의 매를 맞으면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께 충성한다고 맹세를 하고 다짐을 하지만, 금새 그 다짐과 맹세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마는 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왜 그렇게 됩니까 자신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가족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물질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명예를 더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화) 엘리 제사장은 자녀들을 더 사랑했습니다.-비참한 최후 부자 청년은 물질을 더 사랑했습니다.-영생을 빌라도는 명예를 더 사랑했습니다.
2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내게 패역을 행하였다.(7)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하나님을 배반하였다.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선악과를 따먹은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만 지키지 않는 죄를 범한 것입니다. 결국 인간의 죄악은 아담의 죄와 동일한 것입니다. 말씀을 따라 살지 않는 것이 죄이고,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며, 배반인 것입니다.
3 행악(8) 길르앗은 범죄로 가득찬 행악자들의 도시이다. 거기에는 흉포한 살인자들이 가득찼다. 미움, 시기, 살인, 분쟁, 다툼, . 온갖 죄악이 그곳에 넘치고 있다. 본문은 말하기를 핏발자취가 가득찼다.고 말하고 있다. 사탄이 좋아하는 일만 그 땅에 가득찼다. 사람은 그 생각하는 것이 어려서부터 악할 뿐만 악한 생각은 악한 행동을 유발하는 것이다. 악한 행동은 곧 죄이다.
4 지도자의 타락(9) 제사장들의 타락은 곧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의 타락을 말하는 것이다. 물질에 현혹되어서 예배하러 가는 자들을 약탈하는 사악한 무리가 되었다. 지도자의 타락은 사회의 전반적인 타락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5 행음과 더러힘을 당함(10)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제적인 음행 뿐만 아니라 우상숭배를 통한 죄악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성적인 타락일 뿐만 아니라 영적인 타락이다. 성적 타락과 영적 타락은 언제나 연관되어 나타나고 있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은 성적 타락으로 말미암은 것이며, 이스라엘의 포로됨은 영적 타락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3. 회복하는 길 호 6:1-2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 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여호와께 돌아가는 것이 상하고 찢긴 것을 치유하는 길이다. 여호와께 돌아가는 자는 하나님이 그를 일으키시며, 하나님이 그를 보호하실 것이다. 회복의 길은 오직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은 어떤 것인가
1 힘써 하나님을 알자(3, 6)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호 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고 하였습니다.
예)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유대인들. 대표적인 사람으로 사울.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므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잡았고, 스데반을 죽이는 일에 가장 앞장 섰는데, 바울은 이것이 곧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께 대한 충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 그것이 무지에서 온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누구인지, 어떤 분인지 확실히 깨닫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 심판하는 하나님,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하나님을 깨달아 알고 바르게 섬기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에 대한 바른 깨달음이 있으면 복된 사람이 되며, 모든 상처와 찢김은 치유될 것입니다.
2 사랑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않는 하나님(6)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가 예배참석, 주일성수, 헌금, 봉사. 우리는 여러 가지 항목들을 이야기 합니다. 사랑이란 오직 그에게만 관심을 두는 것이라는 글귀가 생각납니다. 그러면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을 무엇인가 우리의 모든 삶을 하나님께 두는 것입니다. 우리의 관심도 오직 하나님, 우리의 목표도 오직 하나님, 우리의 생각도 오직 하나님, 우리의 행동도 오직 하나님, 우리의 삶도 오직 하나님. 자나 깨나 먹으나 일하나 언제나 하나님. 우리의 죄악으로 인하여 (하나님 사랑하지 않음, 말씀을 순종하지 않음, 행악, 지도자의 타락, 행음과 더러워짐) 찢기고 상한 심령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삶의 전반적인 문제) 지금 현재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경제위기의 이 고난도 결국 우리의 죄악으로 인해 찢기고 상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돌아가면 회복됩니다. 치료됩니다. 힘써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만 사랑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힘써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만 사랑해서 우리의 찢긴 마음, 육체, 가정, 삶이 회복되며, 이 나라의 경제와 영적인 회복이 일어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선지자들은 ‘돌아오라’, ‘돌아가자’고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
선지자들이 회개의 메시지를 외칠 때에 참된 회개는 형식과 함께 죄에서 돌이키는 일이 함께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회개하라는 말이 아니라 ‘돌아오라’는 말을 썼습니다. ‘…에서 돌아온다’는 것은 ‘나쁜 길에 빠진 후에 되돌아 온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회개의 방향은 하나님이고, 이전에 하던 일은 악행, 폭력, 우상숭배. 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돌아오라(회개하라) 것을 세가지 방향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⑴ 하나님에 대한 순종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하는 것을 말하며, 순종은 하나님을 무조건적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⑵ 하나님을 신뢰 인간적인 방법, 인간적인 도움, 우상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⑶ 불경건한 모든 일에서 그 얼굴을 돌리는 것입니다. 신약에 나타난 회개는 공관복음과 사도행전에 주로 쓰이는 말로 마음의 변화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회심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⑴ 세례 요한의 메시지-임박한 심판에서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마 3:7-9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 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⑵ 예수의 메시지의 핵심 회개는 율법이 아니라 곧 복음입니다.
⑶ 초대교회(베드로)의 메시지 행 2:37-38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니” 행 5:30-31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본문 1절에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는 이 메시지는 호세아서의 총 제목인 동시에 성경 전체의 총 제목이기도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범죄한 우리 인생들을 향하여 돌아오라고 부르십니다. 그런고로 우리들은 여호와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1. 왜 돌아가야 하는가
찢어지고, 상한 이스라엘을 부르고 계십니다. ‘찢어지고 상한 이스라엘아 하나님께 돌아가자’는 것이 바로 호세야의 외침입니다. 찢어지고 상하였기 때문에 치료자 되시고, 위로자 되시는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하나님의 자녀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런데 이방인에 의해서 짓밟히고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자존심과 마음, 육체가 찢기고 상하였습니다. 이것은 단지 이스라엘의 모습만은 아닙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 인간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지어진 것이 오늘 인간입니다.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그 안에 있고, 하나님의 숨이 그 안에 있습니다. 이것은 선민인 이스라엘 보다도 더 큰 사랑을 입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들에게는 평화만 있고, 기쁨만 있고, 생명만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불순종하여 범죄한 후에 인간은 가장 불쌍한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창 3:14-24에서 보면 인간의 찢기고 상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 3:16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잉태의 수고로 자녀를 낳는데, 그 자녀로 말미암아 고통받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자녀가 없으면 없어서 고통, 있으면 있어서 걱정입니다. 잉태의 고통은 인간이 겪는 고통 가운데 최고의 아픔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여자들이 아이를 낳은 후에는 독해진다고 합니다. 인생의 가장 큰 고통을 경험하기에, 그 이후에는 무서운게 없다고 합니다. 가정은 협력의 관계로 하나님이 만드셨는데, 여자는 남편을 기다리고, 남편은 여자를 다스리는 관계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이런 관계에서 오는 가정의 갈등은 끝이 없습니다.
창 3:17-19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한다. 하나님이 만든 인간은 에덴에서 그 동산의 모든 실과를 따 먹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종신토록 땀흘려 수고하지 않아도, 걱정하지 않아도 먹고 살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종신토록 땀흘려 수고해야할 뿐만 아니라, 그래도 제대로 얻지 못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 인간은 결국 흑으로 돌아가는 죽음을 맞이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죽음의 고통은 인간이 맞이하는 가장 큰 고통입니다. 죽음 앞에 두려워 떨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창 3:22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더 문제는 인간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며, 영생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영생을 그리워하며, 사모하지만 얻을 수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문제입니다. 오늘 우리는 찢긴 심령이 아닙니까 가정 문제가 오늘 우리를 짖누르고 있지 않습니까 자녀, 고부, 부부 사는 문제가 오늘 우리를 짖누르고 있지 않습니까 경제위기의 한파, 실업, 고물가 죽음의 문제가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까 누구에게나 있는 병마, 사고 영적인 문제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영적인 갈급함, 여적인 공허 이런 문제 앞에 마음이 찢기고, 가정이 찢기고, 육체가 찢긴 것이 오늘 우리 인간의 모습입니다. 찢기고 상한 심령은 주님께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2. 이스라엘이 왜 그렇게 되었는가 이스라엘이 찢기고 상한 원인은 이미 말씀을 드렸듯이 죄로 말미암아 그렇습니다. 그러면 오늘 호세아는 그 죄를 어떻게 지적하고 있는가
1 하나님을 적게 사랑하였다. (4)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쉽게 사라지며, 변덕스러운 것이다. 기적을 보고, 능력을 체험하고, 징계의 매를 맞으면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께 충성한다고 맹세를 하고 다짐을 하지만, 금새 그 다짐과 맹세가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마는 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왜 그렇게 됩니까 자신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가족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물질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명예를 더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화) 엘리 제사장은 자녀들을 더 사랑했습니다.-비참한 최후 부자 청년은 물질을 더 사랑했습니다.-영생을 빌라도는 명예를 더 사랑했습니다.
2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내게 패역을 행하였다.(7)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고,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고, 하나님을 배반하였다.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선악과를 따먹은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만 지키지 않는 죄를 범한 것입니다. 결국 인간의 죄악은 아담의 죄와 동일한 것입니다. 말씀을 따라 살지 않는 것이 죄이고,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반역이며, 배반인 것입니다.
3 행악(8) 길르앗은 범죄로 가득찬 행악자들의 도시이다. 거기에는 흉포한 살인자들이 가득찼다. 미움, 시기, 살인, 분쟁, 다툼, . 온갖 죄악이 그곳에 넘치고 있다. 본문은 말하기를 핏발자취가 가득찼다.고 말하고 있다. 사탄이 좋아하는 일만 그 땅에 가득찼다. 사람은 그 생각하는 것이 어려서부터 악할 뿐만 악한 생각은 악한 행동을 유발하는 것이다. 악한 행동은 곧 죄이다.
4 지도자의 타락(9) 제사장들의 타락은 곧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의 타락을 말하는 것이다. 물질에 현혹되어서 예배하러 가는 자들을 약탈하는 사악한 무리가 되었다. 지도자의 타락은 사회의 전반적인 타락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5 행음과 더러힘을 당함(10)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제적인 음행 뿐만 아니라 우상숭배를 통한 죄악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성적인 타락일 뿐만 아니라 영적인 타락이다. 성적 타락과 영적 타락은 언제나 연관되어 나타나고 있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은 성적 타락으로 말미암은 것이며, 이스라엘의 포로됨은 영적 타락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3. 회복하는 길 호 6:1-2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 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여호와께 돌아가는 것이 상하고 찢긴 것을 치유하는 길이다. 여호와께 돌아가는 자는 하나님이 그를 일으키시며, 하나님이 그를 보호하실 것이다. 회복의 길은 오직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은 어떤 것인가
1 힘써 하나님을 알자(3, 6)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호 4:6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고 하였습니다.
예)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유대인들. 대표적인 사람으로 사울.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므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잡았고, 스데반을 죽이는 일에 가장 앞장 섰는데, 바울은 이것이 곧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께 대한 충성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 그것이 무지에서 온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누구인지, 어떤 분인지 확실히 깨닫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 심판하는 하나님,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하나님을 깨달아 알고 바르게 섬기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에 대한 바른 깨달음이 있으면 복된 사람이 되며, 모든 상처와 찢김은 치유될 것입니다.
2 사랑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않는 하나님(6)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가 예배참석, 주일성수, 헌금, 봉사. 우리는 여러 가지 항목들을 이야기 합니다. 사랑이란 오직 그에게만 관심을 두는 것이라는 글귀가 생각납니다. 그러면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을 무엇인가 우리의 모든 삶을 하나님께 두는 것입니다. 우리의 관심도 오직 하나님, 우리의 목표도 오직 하나님, 우리의 생각도 오직 하나님, 우리의 행동도 오직 하나님, 우리의 삶도 오직 하나님. 자나 깨나 먹으나 일하나 언제나 하나님. 우리의 죄악으로 인하여 (하나님 사랑하지 않음, 말씀을 순종하지 않음, 행악, 지도자의 타락, 행음과 더러워짐) 찢기고 상한 심령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삶의 전반적인 문제) 지금 현재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경제위기의 이 고난도 결국 우리의 죄악으로 인해 찢기고 상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돌아가면 회복됩니다. 치료됩니다. 힘써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만 사랑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힘써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만 사랑해서 우리의 찢긴 마음, 육체, 가정, 삶이 회복되며, 이 나라의 경제와 영적인 회복이 일어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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