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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헌금 (고전8:1-7)

본문

믿음의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하나님께 지극한 은혜와 말할 수 없는 은사를 힘입고 사는 사람들입니다(고후 9:14-15).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이 마땅히 하나님께 봉헌(奉獻)하면서 살아야 하며, 봉헌하되 아낌없이 봉헌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임을 자부하는 사람 중에서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바치는 일에 힘쓰지를 못하고 인색한지 모릅니다. 우리는 본문의 말씀에서 지극히 은혜스러운 봉헌생활을 한 마게도냐 교회들(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의 아름다운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예루살렘에 있는 가난한 성도들을 위하여 고린도 교인들이 봉헌하기를 바라면서 마게도냐 교회 성도들의 은혜스러운 봉헌생활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것을 관리하는 청지기 인생관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지금 소유한 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잠시 관리하라고 맡겨주신 청지기 인생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바치는 헌금은 우리가 누릴 축복을 좌우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마게도냐 교회의 은혜스러운 봉헌생활을 배워서 하나님이 기뻐받으시는 헌금을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1. 환난 중에서도 기쁨으로 드려야 합니다. 본문 1-2절에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환난을 당하고 가난하다는 핑계로 헌금을 안합니다. 여러분, 환난당한다고, 가난하다고 헌금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게도냐 교회는 심한 환난을 만나 고초를 당했지만 풍성한 연보를 드렸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로마인으로부터 박대를 받았고, 교회적으로는 유대인들이 난동을 일삼아 어지러웠습니다(행 16:20, 빌 1:28-29, 살전 1:6, 2:14, 3:3-9). 이런 환난은 결국 그들을 궁핍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무수한 환난과 시련 중에서도 기쁨으로 하나님께 헌금을 드렸습니다. 성경의 역사를 보면 봉헌생활은 풍요한 환경에 처한 사람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환난과 가난 속에서 봉헌생활을 힘쓴 사람이 많은 것입니다. 사르밧의 과부는 우로가 없는 기근의 때에 마지막으로 음식을 만들어서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먹고 죽으리라는 한웅쿰의 가루와 조금의 기름으로 음식을 만들어서 엘리야 선지자에게 드리므로 크게 축복을 누렸으며(왕상 17:8-16), 예수님 시대의 한 가난한 과부는 자기의 소유 곧 생활비 전부인 두 렙돈을 바쳐 예수님께 크게 칭찬을 들었습니다(막 12:41-44). 헌금의 액수가 많든 적든 즐겨 내야 하나님이 기뻐받으시고 복을 주십니다. Chrysostom은 “만일 우리가 즐거운 마음으로 연보하면 이중 상급이 따른다.
첫째는 연보 그 자체 때문에 오는 상급이고,
둘째는 즐거운 마음으로 그것을 실행하는 때문에 오는 상급이다.”라고 했습니다.
2. 가난 중에서도 풍성하게 드려야 합니다. 본문 2절에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마게도냐 교회는 환난과 가난을 핑계거리로 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극한 가난 속에서도 헌금을 넘치도록 드렸습니다. 여기에서 “극한 가난”이란 말의 뜻은 밑바닥까지 내려간 가난을 뜻합니다. 항아리 속에 쌀이 밑바닥까지 거의 드러난 상태를 말합니다. 형편이 이쯤 되면 더 이상 감사할 것이 없다는 이유로 하나님을 외면하기가 일쑤입니다. 그러나 마게도냐 교회는 밑바닥까지 내려간 극한 가난 중에서도 헌금을 풍성하게 드렸습니다. 요한 웨슬레는 “돈 주머니가 회개하지 않는 회개는 참 회개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모든 것을 다 바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했습니다. 마게도냐 교회는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봉헌하였습니다(3절). 환난과 가난에 처한 사람들이 봉헌생활을 동참한다는 것만도 귀한 일이며, 칭찬할만한 일인데, 마게도냐 교회는 환난과 가난 속에서 풍성하게 바쳤으며 힘에 지나도록 까지 바쳤으니 참으로 아름다운 봉헌생활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은혜를 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이 재산을 모으면 인색해져서 못 드리고, 가난해지면 생활이 걱정되어서 못 드립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은 사람은 부유할 때는 물론이고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환경에 처하게 되더라도 풍성한 감사를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도 마게도냐 교회와 같이 가난 중에서도 풍성한 헌금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3. 절망 중에서도 믿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본문 5절에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라고 했습니다. 마게도냐 교회의 봉헌에서 놀라운 것은 절망 중에서도 믿음으로 자신을 주께 드리고, 다음에 하나님의 뜻을 좇아서 물질의 봉헌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먼저 자신을 드렸다는 말씀은 시간적으로 먼저 드렸다는 말씀이며, 또한 중요성에서 그것을 앞세웠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먼저 자기 자신을 주님께 헌신하여서 내맡기니, 재물을 자원하여서 기쁨으로 풍성하게 바치게 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귀결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은 우리 교회에 필요한 종각, 실내장식, 비품을 구입하기 위하여 특별헌금을 작정 하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네 보물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0-21)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종각공사 및 실내장식, 비품을 준비하는데 약 1천 7백만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어려움 중에도 오늘에 이르도록 인도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만져본 우리에게 이러한 일은 결코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함께 일어서고 함께 걷기만 한다면 쉬울 것입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고 했으니 믿음으로 참여하여 두고 두고 간증할 미담들이 많이 생겨지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마게도냐 교회처럼 환난 중에서도 기쁨으로, 가난 중에서도 풍성하게, 절망중에서도 믿음으로 자신을 주님께 드리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서 봉헌하시므로 하나님을 기뻐하시게 해드리시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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