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만 바라보나이다 (대하20:1-13)
본문
부모의 사랑이란 말할수 없이 큰 사랑입니다. 지난 수요일에 탈영병을 둔 어머님이 그 아들을 위하여 정한수를 떠 놓고 그 자식 잘 되기를 추위와 더워를 아랑곳하지 않고 온갖정성을 다 하며 비는 것을 봤습니다. 그 아들은 나중에 그 어머님의 모습이 못잊어 꿈에 자기를 떠나는 모습을 보고는 어머님께 돌아오지만 그만 그 어머님은 죽고 그 누나 한분은 그 동생이 온것을보고 그 동생으로 화병으로 죽은 어머님생각하면서 하염없이 흐느끼더군요 연기지만 어쩌면 저렇게 슬피 울수가 있는가 나도 눈물이 찡한것이 느껴 지더군요 그러나 만약 정한수를 떠 놓고 싹싹 비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와 주님깨 그 토록 기도 했다면 아마 비록 그 아들이 평생을 망가진 모습을 하고 살지는 않았을 탠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의 어머님 시골에 계실때 무엇을빌었는지 큰형 학교를 서울로 보내시고 형을위해 빌었는지는모르나 싹싹 빌었는지 부엌에서 싹싹 비십디다. 중요한것은 혹 그 부모는 잊고 그 어머님은 그 자식을 잊을 지라도 주님은 결코 버리지 않고 우리 백성들을 잊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국희가 아파 축 늘어지니까 울면서 우리 국희가 죽을것 같다고 전화 하셨다지요 그러나 주님은 그 백성을 향해 그 보다 더 사랑 하신답니다. 그 독생자 예수를 아낌 없이 우리에게 보내신 사랑이 바로 주님의 사랑 입니다. 그 부모가 아무리 자기 자식을 버리고 떠났어도 그 자식을 잊겠습니까
그런데주님은 잊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1'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을 사람 되십시다. 하나님의 사랑은 끝 없는 사랑이고 그 다함이 없는 사랑이지만 그러나 사람들은 그 사랑을 입을만한 자격을 가추지 않은 것이 문제 입니다.
(1)주님의 사랑을 입을려면 주님의 원하시는 신앙과 지식이 준비 되어있어야합니다. 작년에 기도원에 갔을때 목사님이 각자 하나님 앞에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그만한 믿음 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라고 하시면서 덧 붇여서 학교 안들어간 아이가 돈 달라면 300원이나 줘서 보내는 것이다 라고 합니다. 그리고 대학생은 돈을달라면 만원짜리 주는 것이다 .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이와 마찬 가지로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받을 자격이 가춰 있지 안기 때문에 우리는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주님의 도우심을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2)사명에 따라 주님앞에 고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사람들 중에 주일만 교회 다녀도 잘 되는 사람 있고 어떤이는 공예배만 참석 하고도 잘 되는 사람 있고 어떤이는 세벽 예배를 참석 해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각자 다른 것은 그 사람의 사명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우리 성도들에게 각자 다른 사명을 주시고 주님이 우리에게 특별한 고난을 주신다 생각 하는 사람이 있으면 우리는 그만큼 주님의 사랑을 더 많이 받을 사람으로 더많은 고난을 통하여 더 많은 축복을받을 그릇을 만들고 있다 하고 생각하면 틀림 없습니다.
1)이 사건이나 고난은 내가 피하고 십다고 피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끝까지 책임지듯이 우리를 사명의 길로 인도하는 것도 끝까지 인도 하시는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을이기지 못하면 계속해 고난이 따라 올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원하시는 사람되는 것이 가장 빠는 방법입니다.
ㄱ. 주님앞에 다른 길이전혀 없습니다.
그러므로 본문 의 여호사밧 왕은 다른 구원병을 찾은것이 아니라 주님을 찾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이 엄청난 사랑 앞에 겸손하게 나오는 길 밖에 없고 고난속에서도 주님의 사랑을발견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1)여호사밧왕은 사건앞에 주님앞에 나와 주님을바라 봤습니다. 많은 사건 속에서 우리들은 방황하고 많은 고뇌 속에서 인간적인 노력을 찾아 헤매 이는데 여호사밧왕은 이 사건 앞에 오직 주님 앞에 있는 것을 봅니다.
1)그 많은 군사들이 엔게디에 있습니다.
ㄱ. 군사들이 어디에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사건이 확실한 사건이라 하는 것과 이 문제가 주님 앞에 있다는 것을 인식 하는 것입니다.
ㄴ. 우리는 많은 사건을 당하면 무감각해져서 사건이 있는지 없는지 도대체가 알 수 없는 생활을 할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러한 사건 속에 성경에는 분명히 존재 해 있는 사건이라 하는 사실입니다.
2)이런때 주님께서는 합심해서 기도 하기를 원하십니다. 여호사밧은 자기의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사건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왕은 백성들을 다 모이게 했고 그 백성들 중간에 서서 기도 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자기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그 순간부터 주님의 역사 하심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3)여호사밧은 두려워하여 낯을 여호와께 향했습니다. 겸손함으로 주님 앞에 나왔다는 말 입니다.
1)여호사밧은 자기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알고 주님께 사건의 악함을 인하여 두려워했습니다. 이 두려운 사건 앞에 우리들이 어떻게 했느냐 가 중요합니다. 마치 여호사밧이 전쟁이 일어나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 군사를 모집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향해 기도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에 한얼산 원장 목사님이 건물 질 때 인부들에게 줄 돈이 없어 주님을 향해 돌 두개를 앞에 놓고 하나는 예수님앞에 하나는 목사님 앞에 놓으면서 “주여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 해 보십시오” 하고 얼마를 기도했는지 모를 만큼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입장을 바꿔 놓고 란 말만 계속 반복했답니다. 이렇게 기도 했더니 그 당시 목사님이 원하신 돈을 보내 주시더랍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와같이 기도 하고 승리 하고자 하는 마음이 많이 식어진 것이 문제입니다.
2)여호사밧은 전쟁을 인하여 금식을 선포했습니다. 이 사건을 주님이 해결해 주지 않으면 모두가 망할 수밖에 없고 모두가 죽을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자기 문제를 생각해 보시고 이 문제를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나에게 가장 적합한 일을 찾아 봐야 합니다.
ㄱ. 금식은 기도를 열심히 하지 않는자가 해야 합니다. 주님께 사력을 다해 기도 하지 못하는 사람은 금식을 하게 됩니다.
ㄴ. 금식은 성격이 모난 사람에게 유용합니다. 주님 앞에 고칠 것이 많고 내스스로 하지 못할 때 주님의도우심을 받기위하여 자신을 하나님 앞에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3)전혀 모르는 사람이라 해도 같은 기도 장소에서 기도 할 때는 서로가 의지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마음을 모아야 하고 기도는 서로가 의지해야 합니다. 비록 모르는 사람이라 해도 주님 앞에 한 형재요 자매이기 때문 입니다.
4)서로가 마음을 모으듯 서로가 용서와 화해가 있어야 합니다. 왕이 백성들 중앙에서 기도했듯이 우리들도 수많은 사람들 앞에 조금도 부끄러운 기도나 행동을 해서는 안됩니다. 서로가 기도하며 원수시 한다거나 서로가 마음을 닫아 둔다면 기도는 올바로 되지 못합니다. 기도는 서로가 마음을 열어 놓고 기도하는 것이 여야 하고 서로가 원망이나 시기나 질투나 죄악을 품지 말아야 합니다.
(2)여호사밧왕은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행함을 통해 기도 했습니다. 먼저 하님은 상천하지에 유일하신 하나님 이시라는 것입니다. (대하20:6) 가로되 우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니시니이까 이방 사람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지 아니하시나이까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막을 사람이 없나이다 (대하20:7) 우리 하나님이시여 전에 이 땅 거민을 주의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시고 그 땅으로 주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영영히 주지 아니하셨나이까 (대하20:8) 저희가 이 땅에 거하여 주의 이름을 위하여 한 성소를 건축하고 이르기를 (대하20:9) 만일 재앙이나 난리나 견책이나 온역이나 기근이 우리에게 임하면 주의 이름이 이 전에 있으니 우리가 이 전 앞과 주의 앞에 서서 이 환난 가운데서 주께 부르짖은즉 들으시고 구원하시리라 하였나이다 (대하20:10) 옛적에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올 때에 암몬 자손과 모압 자손과 세일산 사람을 침노하기를 주께서 용납하지 아니하시므로 이에 치우쳐 저희를 떠나고 멸하지 아니하였거늘 (대하20:11) 이제 저희가 우리에게 갚는 것을 보옵소서 저희가 와서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주의 기업에서 우리를 쫓아 내고자 하나이다 라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여호사밧왕은 기도하기를 하나님이 진정한 구원자 이시라는것과 각자 기업이 따로 있다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남이 나의 받을 복을 가로 채거나 빼앗을수 없는 것입니다.
1)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고난 중에 연단 받아 주님의 축복을 받은 민족이 되었습니다. 주님이 성도를 향해 말씀하는 것은 풀무 불에서 연단 한 금을 사서 부하게 하고 안약을 발라 보게 하라 하셨습니다. 주님을 믿음으로 세상을 바로 보게 되고 믿음을 바로 보게 됩니다.
2)이들은 주님의 요구하심에 응했습니다. 그 당시에 주님이 이 백성에게 직접 보이시고 역사와 기적이 충분히 나타나 보이시고 자기 백성 을 삼아 주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들은 주님을 참 구세주로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백성들은 주님을 믿되 분명한 신앙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백성은 주님이 요구하심에 합당한 삶을 살았습니다.
3)이스라엘 백성이 주님을 믿는 믿음을 하나님이 보시고 약속을 들어주셨습니다. 속담에 “우물에 가서 숭늉 찾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아직 약속이 이행되기에 합당한 시간이 되지도 않았는데 약속만 바라보는 사람을 말하는 것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은 절대로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어야 주님은 응답 해 주시는 것입니다.
ㄱ.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앞에 중심을 보이는 그 행위 즉 과거 그리고 지금 내가 동일하게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행위를 충분히 보이는 기도, 과거에 행한 내용의 기도 이런 기도여야 합니다. 여호사밧은 과거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광야에서 연단 중에 바로 주님을 고백하게 되었고 주님의 뜻에 맞춰 행한 것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대하20:10) “옛적에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올 때에 암몬 자손과 모압 자손과 세일산 사람을 침노하기를 주께서 용납하지 아니하시므로 이에 치우쳐 저희를 떠나고 멸하지 아니하였거늘 (대하20:11) 이제 저희가 우리에게 갚는 것을 보옵소서” 이들을 멸하는 것은 주님의 뜻이 아니기에 참았던 것입니다. 나에게 손해가 된다고 해도 결코 주님의 뜻이라면 행함이 있어야 하고 주님을 바로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ㄴ. 주님의 뜻과 의지대로 행한 것을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이 기도하고 응답한 것을 지금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앞에 다윗이 아름다운 신앙의 삶을 살아 그 후손이 복을 받은것입니다.
ㄷ. 그 복은 우리에게도 적용이 되어 우리가 주님을 향해 부르짖으면 주님은들어 주신다는것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죄를 깨닭고 주님앞에 돌아서기만 하면주님은 그 백성을 받아 주시는 하나님 입니다.
(3)기도는 어른만의 전유물이 아니고 믿음 좋은 성도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남녀노소 처음 나온 자나 오래 신앙생활 한자 모두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이 약한 사람도 기도 할 수 있고 처음 나온 사람도 주님께 진실 한 기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시찰 어느 목사님은 기도 할 때 종종 어린아이나 처음 신앙 생활하는 사람이기도 하듯이 기도하는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보면 “하나님 오늘은 어제 설교하고 하루 종일 주의 일을 했더니 참 힘드네요 그러니 힘좀 주시오 그리고 주님의 일을 하려면 지혜도 필요하니 나에게 지혜도 좀 주시오” 이와 같이 기도하는 모습을 종종 봅니다. '
4'여호사밧은 여호와를 바라봤습니다. 여호와를 바라 봤다는 것은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 한 것입니다. 주님만이 오르지 대안이라는 사실을 알고 주님앞에 나올때 문제가 해결되개 됩니다.
바라 본것은 행동이 따른 것을 말 합니다. 여호사밧은 그 백성들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 백성들에게 금식 하며 기도 하라고 했고 모두가 하나님 성전에서 어린아이 에서 부터 노인까지 다 모여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 한 것입니다.
1)이 사건은 전쟁과 거리가 먼것처럼 보입니다. 이와 같이 때로는 주님을바라 본다는 것이 이와 같이 전혀 맞지 않는다 하는생각이 들 때 주님을 믿고 의지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뜻대로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믿음의 삶을 바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들 처럼 기도 하면서 원망이나 한 것이 아니고 죄를 날마다 짖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날마다 의심하고 원망 미움 질투 등만 가득 하다면 기도 하는 것을 대부분 그 죄를회개하는 부분에 사용해야 할 것이니 낭비적 신앙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3)
그러므로 경건의 삶을 살아야 참 기도가 되고 참 주님을 바라 본 사람이 됩니다. 기도만 그렇게 하고 삶은 전혀 바라본 삶이 아니라면 주님 앞에 우리는 바르지 못한 자신의 삶을 회개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기도 하는데 이런 것을명심해야 합니다. 참경건의 삶과 믿음이 합해져 주님을 바라 볼때 능력이 나타나는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 13절에 “유다 모든 사람은 그 아내와 자녀와 어린 자로 더불어 여호와 앞에 섰더라 ”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주님을 바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우리를 둘러 덮을 때 우리는 주님을 바라보고 주여 나는 약한 자라 이 사건 이 병 이 문제로 인하여 나는 감당할 힘이 없고 나는 주님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고백할 줄 아는 참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주님앞에 서는 것을 개을리한 사람은 마지막 주님 앞에 서는 날은 참으로 바르지못한 자기 삶을내놓고 계산 해야 할 것이 많개될것입니다.
그런데주님은 잊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1'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을 사람 되십시다. 하나님의 사랑은 끝 없는 사랑이고 그 다함이 없는 사랑이지만 그러나 사람들은 그 사랑을 입을만한 자격을 가추지 않은 것이 문제 입니다.
(1)주님의 사랑을 입을려면 주님의 원하시는 신앙과 지식이 준비 되어있어야합니다. 작년에 기도원에 갔을때 목사님이 각자 하나님 앞에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그만한 믿음 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라고 하시면서 덧 붇여서 학교 안들어간 아이가 돈 달라면 300원이나 줘서 보내는 것이다 라고 합니다. 그리고 대학생은 돈을달라면 만원짜리 주는 것이다 .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이와 마찬 가지로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받을 자격이 가춰 있지 안기 때문에 우리는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주님의 도우심을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2)사명에 따라 주님앞에 고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사람들 중에 주일만 교회 다녀도 잘 되는 사람 있고 어떤이는 공예배만 참석 하고도 잘 되는 사람 있고 어떤이는 세벽 예배를 참석 해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각자 다른 것은 그 사람의 사명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우리 성도들에게 각자 다른 사명을 주시고 주님이 우리에게 특별한 고난을 주신다 생각 하는 사람이 있으면 우리는 그만큼 주님의 사랑을 더 많이 받을 사람으로 더많은 고난을 통하여 더 많은 축복을받을 그릇을 만들고 있다 하고 생각하면 틀림 없습니다.
1)이 사건이나 고난은 내가 피하고 십다고 피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끝까지 책임지듯이 우리를 사명의 길로 인도하는 것도 끝까지 인도 하시는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을이기지 못하면 계속해 고난이 따라 올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원하시는 사람되는 것이 가장 빠는 방법입니다.
ㄱ. 주님앞에 다른 길이전혀 없습니다.
그러므로 본문 의 여호사밧 왕은 다른 구원병을 찾은것이 아니라 주님을 찾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이 엄청난 사랑 앞에 겸손하게 나오는 길 밖에 없고 고난속에서도 주님의 사랑을발견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1)여호사밧왕은 사건앞에 주님앞에 나와 주님을바라 봤습니다. 많은 사건 속에서 우리들은 방황하고 많은 고뇌 속에서 인간적인 노력을 찾아 헤매 이는데 여호사밧왕은 이 사건 앞에 오직 주님 앞에 있는 것을 봅니다.
1)그 많은 군사들이 엔게디에 있습니다.
ㄱ. 군사들이 어디에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사건이 확실한 사건이라 하는 것과 이 문제가 주님 앞에 있다는 것을 인식 하는 것입니다.
ㄴ. 우리는 많은 사건을 당하면 무감각해져서 사건이 있는지 없는지 도대체가 알 수 없는 생활을 할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러한 사건 속에 성경에는 분명히 존재 해 있는 사건이라 하는 사실입니다.
2)이런때 주님께서는 합심해서 기도 하기를 원하십니다. 여호사밧은 자기의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사건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왕은 백성들을 다 모이게 했고 그 백성들 중간에 서서 기도 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자기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그 순간부터 주님의 역사 하심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3)여호사밧은 두려워하여 낯을 여호와께 향했습니다. 겸손함으로 주님 앞에 나왔다는 말 입니다.
1)여호사밧은 자기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알고 주님께 사건의 악함을 인하여 두려워했습니다. 이 두려운 사건 앞에 우리들이 어떻게 했느냐 가 중요합니다. 마치 여호사밧이 전쟁이 일어나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 군사를 모집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향해 기도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에 한얼산 원장 목사님이 건물 질 때 인부들에게 줄 돈이 없어 주님을 향해 돌 두개를 앞에 놓고 하나는 예수님앞에 하나는 목사님 앞에 놓으면서 “주여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 해 보십시오” 하고 얼마를 기도했는지 모를 만큼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입장을 바꿔 놓고 란 말만 계속 반복했답니다. 이렇게 기도 했더니 그 당시 목사님이 원하신 돈을 보내 주시더랍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와같이 기도 하고 승리 하고자 하는 마음이 많이 식어진 것이 문제입니다.
2)여호사밧은 전쟁을 인하여 금식을 선포했습니다. 이 사건을 주님이 해결해 주지 않으면 모두가 망할 수밖에 없고 모두가 죽을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자기 문제를 생각해 보시고 이 문제를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나에게 가장 적합한 일을 찾아 봐야 합니다.
ㄱ. 금식은 기도를 열심히 하지 않는자가 해야 합니다. 주님께 사력을 다해 기도 하지 못하는 사람은 금식을 하게 됩니다.
ㄴ. 금식은 성격이 모난 사람에게 유용합니다. 주님 앞에 고칠 것이 많고 내스스로 하지 못할 때 주님의도우심을 받기위하여 자신을 하나님 앞에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3)전혀 모르는 사람이라 해도 같은 기도 장소에서 기도 할 때는 서로가 의지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는 마음을 모아야 하고 기도는 서로가 의지해야 합니다. 비록 모르는 사람이라 해도 주님 앞에 한 형재요 자매이기 때문 입니다.
4)서로가 마음을 모으듯 서로가 용서와 화해가 있어야 합니다. 왕이 백성들 중앙에서 기도했듯이 우리들도 수많은 사람들 앞에 조금도 부끄러운 기도나 행동을 해서는 안됩니다. 서로가 기도하며 원수시 한다거나 서로가 마음을 닫아 둔다면 기도는 올바로 되지 못합니다. 기도는 서로가 마음을 열어 놓고 기도하는 것이 여야 하고 서로가 원망이나 시기나 질투나 죄악을 품지 말아야 합니다.
(2)여호사밧왕은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행함을 통해 기도 했습니다. 먼저 하님은 상천하지에 유일하신 하나님 이시라는 것입니다. (대하20:6) 가로되 우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니시니이까 이방 사람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지 아니하시나이까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막을 사람이 없나이다 (대하20:7) 우리 하나님이시여 전에 이 땅 거민을 주의 백성 이스라엘 앞에서 쫓아내시고 그 땅으로 주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영영히 주지 아니하셨나이까 (대하20:8) 저희가 이 땅에 거하여 주의 이름을 위하여 한 성소를 건축하고 이르기를 (대하20:9) 만일 재앙이나 난리나 견책이나 온역이나 기근이 우리에게 임하면 주의 이름이 이 전에 있으니 우리가 이 전 앞과 주의 앞에 서서 이 환난 가운데서 주께 부르짖은즉 들으시고 구원하시리라 하였나이다 (대하20:10) 옛적에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올 때에 암몬 자손과 모압 자손과 세일산 사람을 침노하기를 주께서 용납하지 아니하시므로 이에 치우쳐 저희를 떠나고 멸하지 아니하였거늘 (대하20:11) 이제 저희가 우리에게 갚는 것을 보옵소서 저희가 와서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주의 기업에서 우리를 쫓아 내고자 하나이다 라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여호사밧왕은 기도하기를 하나님이 진정한 구원자 이시라는것과 각자 기업이 따로 있다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남이 나의 받을 복을 가로 채거나 빼앗을수 없는 것입니다.
1)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고난 중에 연단 받아 주님의 축복을 받은 민족이 되었습니다. 주님이 성도를 향해 말씀하는 것은 풀무 불에서 연단 한 금을 사서 부하게 하고 안약을 발라 보게 하라 하셨습니다. 주님을 믿음으로 세상을 바로 보게 되고 믿음을 바로 보게 됩니다.
2)이들은 주님의 요구하심에 응했습니다. 그 당시에 주님이 이 백성에게 직접 보이시고 역사와 기적이 충분히 나타나 보이시고 자기 백성 을 삼아 주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들은 주님을 참 구세주로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백성들은 주님을 믿되 분명한 신앙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백성은 주님이 요구하심에 합당한 삶을 살았습니다.
3)이스라엘 백성이 주님을 믿는 믿음을 하나님이 보시고 약속을 들어주셨습니다. 속담에 “우물에 가서 숭늉 찾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아직 약속이 이행되기에 합당한 시간이 되지도 않았는데 약속만 바라보는 사람을 말하는 것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은 절대로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어야 주님은 응답 해 주시는 것입니다.
ㄱ.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앞에 중심을 보이는 그 행위 즉 과거 그리고 지금 내가 동일하게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행위를 충분히 보이는 기도, 과거에 행한 내용의 기도 이런 기도여야 합니다. 여호사밧은 과거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광야에서 연단 중에 바로 주님을 고백하게 되었고 주님의 뜻에 맞춰 행한 것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대하20:10) “옛적에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올 때에 암몬 자손과 모압 자손과 세일산 사람을 침노하기를 주께서 용납하지 아니하시므로 이에 치우쳐 저희를 떠나고 멸하지 아니하였거늘 (대하20:11) 이제 저희가 우리에게 갚는 것을 보옵소서” 이들을 멸하는 것은 주님의 뜻이 아니기에 참았던 것입니다. 나에게 손해가 된다고 해도 결코 주님의 뜻이라면 행함이 있어야 하고 주님을 바로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ㄴ. 주님의 뜻과 의지대로 행한 것을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이 기도하고 응답한 것을 지금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앞에 다윗이 아름다운 신앙의 삶을 살아 그 후손이 복을 받은것입니다.
ㄷ. 그 복은 우리에게도 적용이 되어 우리가 주님을 향해 부르짖으면 주님은들어 주신다는것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죄를 깨닭고 주님앞에 돌아서기만 하면주님은 그 백성을 받아 주시는 하나님 입니다.
(3)기도는 어른만의 전유물이 아니고 믿음 좋은 성도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남녀노소 처음 나온 자나 오래 신앙생활 한자 모두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이 약한 사람도 기도 할 수 있고 처음 나온 사람도 주님께 진실 한 기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시찰 어느 목사님은 기도 할 때 종종 어린아이나 처음 신앙 생활하는 사람이기도 하듯이 기도하는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보면 “하나님 오늘은 어제 설교하고 하루 종일 주의 일을 했더니 참 힘드네요 그러니 힘좀 주시오 그리고 주님의 일을 하려면 지혜도 필요하니 나에게 지혜도 좀 주시오” 이와 같이 기도하는 모습을 종종 봅니다. '
4'여호사밧은 여호와를 바라봤습니다. 여호와를 바라 봤다는 것은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 한 것입니다. 주님만이 오르지 대안이라는 사실을 알고 주님앞에 나올때 문제가 해결되개 됩니다.
바라 본것은 행동이 따른 것을 말 합니다. 여호사밧은 그 백성들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그 백성들에게 금식 하며 기도 하라고 했고 모두가 하나님 성전에서 어린아이 에서 부터 노인까지 다 모여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 한 것입니다.
1)이 사건은 전쟁과 거리가 먼것처럼 보입니다. 이와 같이 때로는 주님을바라 본다는 것이 이와 같이 전혀 맞지 않는다 하는생각이 들 때 주님을 믿고 의지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뜻대로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믿음의 삶을 바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들 처럼 기도 하면서 원망이나 한 것이 아니고 죄를 날마다 짖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날마다 의심하고 원망 미움 질투 등만 가득 하다면 기도 하는 것을 대부분 그 죄를회개하는 부분에 사용해야 할 것이니 낭비적 신앙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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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경건의 삶을 살아야 참 기도가 되고 참 주님을 바라 본 사람이 됩니다. 기도만 그렇게 하고 삶은 전혀 바라본 삶이 아니라면 주님 앞에 우리는 바르지 못한 자신의 삶을 회개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기도 하는데 이런 것을명심해야 합니다. 참경건의 삶과 믿음이 합해져 주님을 바라 볼때 능력이 나타나는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 13절에 “유다 모든 사람은 그 아내와 자녀와 어린 자로 더불어 여호와 앞에 섰더라 ”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주님을 바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우리를 둘러 덮을 때 우리는 주님을 바라보고 주여 나는 약한 자라 이 사건 이 병 이 문제로 인하여 나는 감당할 힘이 없고 나는 주님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고백할 줄 아는 참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주님앞에 서는 것을 개을리한 사람은 마지막 주님 앞에 서는 날은 참으로 바르지못한 자기 삶을내놓고 계산 해야 할 것이 많개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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