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성도가 열린 교회를 만듭니다. (사43:18-21)
본문
당신은 열린 사람입니다.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우리가 서로 대화를 해보면 마음에 와 닫는 느낌(feeling)이 있습니다. 지난주간에 어느 일간지에 목회자가 쓴 칼럼 하나를 읽었습니다. 글의 내용은 열린 사람이 열린 사회를 창조해 간다는 논지입니다. 열린 사람은 큰 목표와 이상을 가진 사람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작은 걸림돌에 얽매여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지 않습니다. 열린 사람은 매는 사람이 아니라 푸는 사람입니다. 매는 사람은 그 마음에 응어리진 한과 상처가 많습니다. 그러나 푸는 사람은 그 마음이 밝고, 그 언어가 긍정적이고, 그 행동이 적극적입니다. 열린 사람은 전통과 형식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모든 일에 상식이 통하는 범위에서 수용하고 포용하니 항상 개방적입니다. 이들은 수직적인 사고와 함께 수평적인 사고를 동시에 하므로 하나의 가치관이나 문화나 이념적 사상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열린 사람은 모험적이면서 창조적입니다. 머리로만 생각하지 않고 행동으로 불가능에 도전합니다.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지 않고 사다리를 준비하여 따로 올라갑니다. 요즈음은 지구촌 시대입니다. 세계가 일일 문화권으로 좁혀졌습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자들도 하루만에 만날 수 있습니다. 온 세계가 문을 열어 놓고 있습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미개한 북한도 이제는 서서히 문이 열리고 있습니다. 닫힌 인생, 닫힌 사회, 닫힌 민족은 결국 망합니다. 열린 사람만이 열린사회를 창조해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모든 문화 앞에 문을 다 열어 놓아서도 복음 앞에 문을 닫아 버리면 참으로 불행한 인생입니다. 주님은 지금 이 순간에 당신의 마음 문을 열기를 원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요한계시록 3:20)고 했습니다. 밀알교회는 열린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1997년 한해는 축복이 역사 하는 열린 한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열린 성도가 열린 교회를 만듭니다. 밀알교회는 지역과 민족과 세계를 향하여 열린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열린 교회는 다음과 같은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첫째:과거에 집착하지 맙시다. 읽을말씀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18) 과거에 집착하지 맙시다.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고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 과거를 잊어버리라는 말인가 아니면 과거를 무시하라는 말인가 이 말은 과거에 집착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인생에게 여러 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불행한 인생은 과거 지향주의 인간이 있습니다. 과거에만 집착하는 인생은 미래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들은 지나온 어제의 향수에 젖어 오늘의 아름다운 삶을 허송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정체를 밝힐 때도 오늘보다는 전직이 더 많이 부각되는 인생은 별로 소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과거가 무용한 것은 아니나 과거에 묶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오늘을 무시한 내일의 소망은 허왕된 꿈에 불과합니다. 기독교적인 삶은 과거를 성찰해서 내일의 소망을 위해 오늘에 충실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좋은 본을 보여 줍니다. 그가 다메섹에서 예수를 발견한 이후에 이전의 유대교에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1 그는 과거를 배설물처럼 버렸습니다.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립보서 3:8-9)고 했습니다. 만약에 그가 과거에 묶이는 인생이 되었다면 스데반을 죽이고 교회를 핍박한 죄의식에 사로잡혀 복음을 위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2 그는 뒤에 있는 것을 잊어 버렸습니다. “오직 한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빌립보서 3:13) 했습니다. 복음을 위해 달려가는 인생이 뒤에 있는 세상적인 것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면 롯의 처와 같이 소금 기둥이 됩니다.
3 그는 상을 위하여 좇아갔습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립보서 3:14)고 했습니다. 상을 위하여 달려가는 인생에게는 지체하지 않는 삶입니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달려갈 푯대입니다. 푯대를 향하여 달음질하는 인생에게 상급이 있습니다. 복음은 새로운 것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린도후서 5:17) 주님은 지나온 과거의 자연적인 허물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혀 온 여인을 향해 말씀하시기를 “.나도 너를 정죄치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요한복음 8:11)고 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상에서 강도의 부르심에 과거를 묻지 않았습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누가복음 23:43)고 했습니다. 부활하신 후에도 고기 잡으려 디베랴 바다에 간 베드로에게 “.내 어린양을 먹이라”(요한복음 21:15)고 했습니다.
둘째:새일에 관심을 가집시다. 읽을말씀 “보라 내가 새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날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의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19-20) 새일을 행합시다. 그러면 새일이 무엇인가 새일이 있으면 옛일이 있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바울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로마서 13:12-14) 옛적 일은 밤에 일 곧 어두움의 일인 방탕하고 술취하고 음란하고 호색하고 시기하고 쟁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일은 낮에 일 곧 빛의 일인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사는 의로운 일을 말합니다. 당신은 새사람입니다. 주님을 구주로 영접한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요한복음 1:12). 누구든지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롭게 지음 받은 인생입니다(고린도후서 5:17). 이사야 선지자는 출애굽 사건을 통하여 새 역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백성은 약속을 붙들고 언약을 따라 사는 새사람입니다. 이들은 새일을 행하며 살아갑니다.
1 광야에 길을 내십니다. 하나님은 애굽의 고센에서 바로에 묶여 있는 인생을 풀어서 자유 함을 주어서 언약의 땅 가나안으로 불러 내실 때 광야로 이끌어 그들을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2 사막에 강을 내셨습니다. 그들이 사십년 광야 길을 여행하면서도 마실 물이 없어서 목말라 죽게 하신 적이 없습니다. 쓴 물도 달게 하시고 반석에서도 샘이 솟게 하셔서 마른 광야에서도 생수의 강이 흐르게 하셨습니다.
3 시랑과 타조도 존경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광야를 여행할 때 언약에서 버려진 야생 들짐승과 같은 아말렉과 이방 세력들이 그들을 위협해 왔으나 하나님은 여호와 닛시 로 그들에게 승리의 깃발을 주셨습니다. 그 이후에 이방의 모든 무리들이 그들을 괴롭히는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새사람은 새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이 땅위에서 해야 할 가장 복된 일이 무엇인가 주님은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마가복음 16:15) 복음은 영원한 새일이요, 복음 전파자는 새사람입니다. 당신에게 복음의 눈이 열리기를 축원합니다.
셋째:찬송을 부르며 삽시다. 읽을말씀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21) 찬양은 영원합니다. 이 땅에 가장 복된 인생이 누구인가 찬송을 부르며 사는 인생입니다. 이 땅 위에 있는 것은 다 불타서 소멸되고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천국에 가서도 영원히 행할 것은 찬양입니다. 이사야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성전에서 스랍들이 찬송하는 환상을 보고 선지의 소명을 받았습니다. 스랍들이 여섯 날개를 가지고 그 둘로 얼굴을 가리우고, 그 둘로는 발을 가리우고, 그 둘로는 날면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도 감격해서 자신도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도록 부정한 입을 정하게 해 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때 천사가 단에서 취한 숯불로 그 입술을 찢져 정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때 그에게 선지의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찬송을 부르며 삽시다. 찬양을 부르며 사는 것이 얼마나 복된 삶인지 모릅니다.
1 찬양은 가장 아름다운 것입니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시편 150:6) 찬양은 피조물이 창조주에게 드리는 최고의 가치입니다. 하나님은 인생들에게 예배를 받기 원하시며, 예배 중에 찬양을 듣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시편 148편에서는 모든 피조물이 여호와를 찬송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어떤 자가 찬양을 할 수 있는가
2 찬양은 성령님으로 충만한 자만이 부를 수 있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으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에베소서 5:18-19)고 했습니다. 찬양은 중생한 성도가 성령님으로 충만할 그 입술에 열매로 맺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찬양하면 어떠한 역사가 일어나는가
3 찬양은 홀연한 역사를 일어 킵니다. 바울은 실라와 함께 빌립보 옥중에서 찬송을 불렀습니다.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사도행전 16:25) 홀연한 순간에 지진이 나서 옥터가 흔들리고 옥문이 열리고 죄수들을 맨 쇠사슬이 풀렸습니다. 찬양이 넘치는 삶이 복된 삶입니다. 복음성가 가수 김석균씨가 지은 찬양중에 “찬양이 언제나 넘치면 은혜로 얼굴이 환해요 성령님의 충만한 모습을 서로가 느껴요 .” 찬양이 넘치면 마음에는 평화가 있고, 얼굴에는 웃음이 만발하고, 말에는 사랑이 넘치게 됩니다. 1997년 한해에는 우리의 가정과 교회에 찬양이 넘치는 한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당신은 마음 문을 열었습니까 마음 문을 열어야 역사가 일어납니다. 열린 사람만이 열린 사회를 만듭니다. 열린 성도가 열린 교회를 세웁니다. 열린 사람은 항상 싱싱합니다. 과일도 싱싱할 때 광택이 나고, 빛깔이 좋아 많은 사람의 시선을 끌게 됩니다. 그러한 것은 먹으면 역시 맛도 좋습니다. 사람도 싱싱해야 역사를 창조합니다. 싱싱한 사람은 꿈을 가진 미래가 있는 사람이요, 삶의 철학이 있고, 주관이 분명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사고가 밝고, 아름답습니다. 밀알교회는 열린 성도들의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지역과 민족과 세계를 향하여 복음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합니다.
첫째:과거에 집착하지 맙시다. 읽을말씀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18) 과거에 집착하지 맙시다.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고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는 말이 무슨 뜻인가 과거를 잊어버리라는 말인가 아니면 과거를 무시하라는 말인가 이 말은 과거에 집착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인생에게 여러 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불행한 인생은 과거 지향주의 인간이 있습니다. 과거에만 집착하는 인생은 미래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들은 지나온 어제의 향수에 젖어 오늘의 아름다운 삶을 허송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정체를 밝힐 때도 오늘보다는 전직이 더 많이 부각되는 인생은 별로 소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과거가 무용한 것은 아니나 과거에 묶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오늘을 무시한 내일의 소망은 허왕된 꿈에 불과합니다. 기독교적인 삶은 과거를 성찰해서 내일의 소망을 위해 오늘에 충실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좋은 본을 보여 줍니다. 그가 다메섹에서 예수를 발견한 이후에 이전의 유대교에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1 그는 과거를 배설물처럼 버렸습니다.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립보서 3:8-9)고 했습니다. 만약에 그가 과거에 묶이는 인생이 되었다면 스데반을 죽이고 교회를 핍박한 죄의식에 사로잡혀 복음을 위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2 그는 뒤에 있는 것을 잊어 버렸습니다. “오직 한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빌립보서 3:13) 했습니다. 복음을 위해 달려가는 인생이 뒤에 있는 세상적인 것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면 롯의 처와 같이 소금 기둥이 됩니다.
3 그는 상을 위하여 좇아갔습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립보서 3:14)고 했습니다. 상을 위하여 달려가는 인생에게는 지체하지 않는 삶입니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달려갈 푯대입니다. 푯대를 향하여 달음질하는 인생에게 상급이 있습니다. 복음은 새로운 것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린도후서 5:17) 주님은 지나온 과거의 자연적인 허물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혀 온 여인을 향해 말씀하시기를 “.나도 너를 정죄치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요한복음 8:11)고 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상에서 강도의 부르심에 과거를 묻지 않았습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누가복음 23:43)고 했습니다. 부활하신 후에도 고기 잡으려 디베랴 바다에 간 베드로에게 “.내 어린양을 먹이라”(요한복음 21:15)고 했습니다.
둘째:새일에 관심을 가집시다. 읽을말씀 “보라 내가 새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날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 장차 들짐승 곧 시랑과 및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의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19-20) 새일을 행합시다. 그러면 새일이 무엇인가 새일이 있으면 옛일이 있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바울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로마서 13:12-14) 옛적 일은 밤에 일 곧 어두움의 일인 방탕하고 술취하고 음란하고 호색하고 시기하고 쟁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일은 낮에 일 곧 빛의 일인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사는 의로운 일을 말합니다. 당신은 새사람입니다. 주님을 구주로 영접한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요한복음 1:12). 누구든지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롭게 지음 받은 인생입니다(고린도후서 5:17). 이사야 선지자는 출애굽 사건을 통하여 새 역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백성은 약속을 붙들고 언약을 따라 사는 새사람입니다. 이들은 새일을 행하며 살아갑니다.
1 광야에 길을 내십니다. 하나님은 애굽의 고센에서 바로에 묶여 있는 인생을 풀어서 자유 함을 주어서 언약의 땅 가나안으로 불러 내실 때 광야로 이끌어 그들을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2 사막에 강을 내셨습니다. 그들이 사십년 광야 길을 여행하면서도 마실 물이 없어서 목말라 죽게 하신 적이 없습니다. 쓴 물도 달게 하시고 반석에서도 샘이 솟게 하셔서 마른 광야에서도 생수의 강이 흐르게 하셨습니다.
3 시랑과 타조도 존경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광야를 여행할 때 언약에서 버려진 야생 들짐승과 같은 아말렉과 이방 세력들이 그들을 위협해 왔으나 하나님은 여호와 닛시 로 그들에게 승리의 깃발을 주셨습니다. 그 이후에 이방의 모든 무리들이 그들을 괴롭히는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새사람은 새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이 땅위에서 해야 할 가장 복된 일이 무엇인가 주님은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마가복음 16:15) 복음은 영원한 새일이요, 복음 전파자는 새사람입니다. 당신에게 복음의 눈이 열리기를 축원합니다.
셋째:찬송을 부르며 삽시다. 읽을말씀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21) 찬양은 영원합니다. 이 땅에 가장 복된 인생이 누구인가 찬송을 부르며 사는 인생입니다. 이 땅 위에 있는 것은 다 불타서 소멸되고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천국에 가서도 영원히 행할 것은 찬양입니다. 이사야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성전에서 스랍들이 찬송하는 환상을 보고 선지의 소명을 받았습니다. 스랍들이 여섯 날개를 가지고 그 둘로 얼굴을 가리우고, 그 둘로는 발을 가리우고, 그 둘로는 날면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도 감격해서 자신도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도록 부정한 입을 정하게 해 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때 천사가 단에서 취한 숯불로 그 입술을 찢져 정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때 그에게 선지의 사명이 주어졌습니다. 찬송을 부르며 삽시다. 찬양을 부르며 사는 것이 얼마나 복된 삶인지 모릅니다.
1 찬양은 가장 아름다운 것입니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시편 150:6) 찬양은 피조물이 창조주에게 드리는 최고의 가치입니다. 하나님은 인생들에게 예배를 받기 원하시며, 예배 중에 찬양을 듣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시편 148편에서는 모든 피조물이 여호와를 찬송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어떤 자가 찬양을 할 수 있는가
2 찬양은 성령님으로 충만한 자만이 부를 수 있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으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에베소서 5:18-19)고 했습니다. 찬양은 중생한 성도가 성령님으로 충만할 그 입술에 열매로 맺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찬양하면 어떠한 역사가 일어나는가
3 찬양은 홀연한 역사를 일어 킵니다. 바울은 실라와 함께 빌립보 옥중에서 찬송을 불렀습니다.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사도행전 16:25) 홀연한 순간에 지진이 나서 옥터가 흔들리고 옥문이 열리고 죄수들을 맨 쇠사슬이 풀렸습니다. 찬양이 넘치는 삶이 복된 삶입니다. 복음성가 가수 김석균씨가 지은 찬양중에 “찬양이 언제나 넘치면 은혜로 얼굴이 환해요 성령님의 충만한 모습을 서로가 느껴요 .” 찬양이 넘치면 마음에는 평화가 있고, 얼굴에는 웃음이 만발하고, 말에는 사랑이 넘치게 됩니다. 1997년 한해에는 우리의 가정과 교회에 찬양이 넘치는 한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당신은 마음 문을 열었습니까 마음 문을 열어야 역사가 일어납니다. 열린 사람만이 열린 사회를 만듭니다. 열린 성도가 열린 교회를 세웁니다. 열린 사람은 항상 싱싱합니다. 과일도 싱싱할 때 광택이 나고, 빛깔이 좋아 많은 사람의 시선을 끌게 됩니다. 그러한 것은 먹으면 역시 맛도 좋습니다. 사람도 싱싱해야 역사를 창조합니다. 싱싱한 사람은 꿈을 가진 미래가 있는 사람이요, 삶의 철학이 있고, 주관이 분명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사고가 밝고, 아름답습니다. 밀알교회는 열린 성도들의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지역과 민족과 세계를 향하여 복음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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