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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자는 믿음에 굳게서야 합니다 (창15:4-7)

본문

믿음이 좋은 성도가 됩시다. 아브라함에 대한 기록은 창세기 12-25장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유대인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인물입니다. 유대인들은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 됨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요한복음8:33). 그래서 아브라함의 품을 천국으로 생각합니다(누가복음16:22). 유대인들을 가리켜 히브리민족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강을 건너온 자”란 말인데 이는 아브라함의 소명에서부터 출발합니다(창세기12:1, 14:13). 아담 이후에 세계를 심판하신 하나님은 노아를 통하여 새역사를 시작합니다(창세기9:1-2). 그러나 노아의 저주를 받은 함의 후예 구스의 아들 니므롯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바벨탑운동을 일어 킴으로 하나님이 그들을 흩어시고(창세기11:1-9),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하여 새로운 구원역사를 시작하신 것입니다(창세기12:1-4).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십니다(마태복음1:1).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세기15:6)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은 하박국 선지에게 전승되어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리니 그러나 나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하박국2:4)고 고백합니다. 하박국의 신앙은 신약에 바울에게 그대로 전수됩니다(로마서4장). 바울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갈라디아3:6)고 했습니다. 이러한 계시신앙은 로마카톨릭이 병들었을 때에 종교개혁자 루터는 교황청을 향한 95개조항의 반박문을 비텐베르그 성당에 내걸었던 것이 종교개혁운동의 불씨가 되어 칼빈은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개혁운동을 일어키게 된 것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아브라함의 생애를 집약한 핵심적인 성구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하나의 약속 안에 세가지 사건이 얽혀 있는 유기적인 관계를 알아야 합니다. 땅(가나안)과 씨(이삭)와 의(믿음)의 열매가 약속의 땅에서 아브라함의 씨로 복의 근원되신 메시야를 얻게 됨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약속이 아브라함의 생애속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아브라함은 믿음으로 갈대아 우르를 떠났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세기12:1)고 했습니다.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본토인 갈대아 우르를 떠나라고 했는가 우르란 “빛”, “불”이란 말입니다. 바벨탑을 쌓은 자들이 탑 꼭대기에 해와 달을 만들어 놓고 섬기는 우상숭배하는 세속도시입니다. 그러면 친척은 왜 떠나야 합니까 세속도시에 사는 친척을 떠나라는 말은 세속적인 가치관과 인간중심을 벗어나라는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아비집을 떠나야 합니다. 아버지 데라는 하란에 머물다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란은 하나님이 지시한 최후의 약속한 땅이 아닙니다. 이는 안일주의를 청산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열심히 살아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세기12:1)고 했습니다. “지시하여 미리 보여준 땅”이 아니고 “매일 매일 지시할 땅”입니다. 누가는 “가라사대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사도행전7:3)고 했습니다. 이에 대한 아브라함의 반응은 어떠한가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히브리서11:8)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은 절대주권적인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후일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훈련하실 때에 그 조상 아브라함을 훈련하신 것처럼 매일 매일마다 일용할 하늘 양식을 거두게 하신 것입니다(출애굽기16:4). 하나님은 먼저 당신의 개인적인 잘못된 습관과 버릇을 고치라고 말씀하십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로마서13:13-14)고 했습니다. 당신이 아직도 술이나 담배나 노름 같은 잘못된 습관이 있으면 고쳐야 합니다.
다음으로 당신이 고쳐야 할 것은 사회적인 풍습과 관습입니다(사도행전17:23, 에베소서2:1-2), 바울은 말하기를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로마서1:23)고 했습니다. 당신은 샤머니즘과 제사문화로 오염된 우상숭배 행위에서 떠나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잘못된 신앙적인 전통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빌립보서3:7-9)고 했습니다. 당신은 이전에 믿었던 율법적인 아집과 고착된 유대교적인 전통에서 떠나야 합니다.
둘째: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롯에게 양보했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에서 롯과 헤어짐은 그의 생애에서 받은 두번째 큰 충격입니다.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세기13:8-9)고 했습니다. 사람은 만날 수도 있고 헤어질 수도 있습니다. 다투지 않고 화목하는 것이 좋으나 그렇치 못할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아브라함에게 배워야 할 원리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면에서 롯에게 당당하게 훈계하고 책망하면서 취할 수 있으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스스로 모든 것을 포기하는 편에 서기로 작정했습니다(창세기13:10-11).
그런데 문제는 그 이후입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창세기13:14-15)고 했습니다. 롯이 떠난 후에 하나님의 위로와 긍휼과 축복의 음성이 아브라함에게 들려왔습니다. 너는 롯의 안목으로 세상을 보지 말고 눈을 들어 세속적인 차원이 아닌 언약의 차원에서 보라는 것입니다. 취할 것과 버릴 것을 알고 보라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너는 동서남북을 보라는 것입니다. 계곡에서 롯처럼 소알 한면만 보지 말고 영적인 고지를 정복하여 동서남북을 보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보이는 땅 곧 네 마음에 새겨둔 언약의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창세기13:16, 15:5, 22:17)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당신을 언약에 굳게 세우기 위해서 당신 곁에 있는 롯과 헤어지게 만듭니다. 롯은 세상적인 것을 얻기 위하여 아브라함을 등지고 소알로 내려갔고, 아브라함은 언약편에 서기 위하여 세상적이고 인간적인 방법을 거부했던 롯에게 모든 것을 양보했던 것입니다. 세상적인 안목으로 보면 롯은 지혜로운 재치꾼이요, 아브라함은 어리석고 미련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불행한 것은 아브라함 곁을 떠난 롯입니다. 그는 아비집을 떠나는 탕자와 같고 하나님의 품을 떠난 인생과 같았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롯은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문제될 것이 없는 선택사항이나 롯에게 있어서 아브라함은 꼭 곁에 있어야 하는 필수조건입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창세기12:2-3).
셋째: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이삭을 제물로 드렸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일생 일대 최대의 시험은 아들 이삭을 모리아에서 번제로 받치는 일입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세기22:2)고 했습니다. 왜 하필이면 사람인 아들을 받쳐야 합니까 그것도 나실인으로는 안되고 번제인 제물로 드려야 합니까 그러면 왜 사흘길을 걸어서 모리아에 가서 받쳐야 합니까 도무지 이성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시험입니다. 이것은 순종의 열쇠(Key)로서만이 풀 수 있는 문제입니다. 이 시험에 임하는 아브람의 자세는 어떠한가 아침에 일찍기 일어나는 적극적인 믿음입니다. 번제에 쓸 장작을 미리 쪼개어 준비한 믿음입니다. 사흘길을 걸어서 간 인내하는 믿음입니다. 지시한 산으로 가는 약속을 믿는 믿음입니다. 아들을 드리기로한 혈육의 정을 초월한 믿음입니다. 하인을 산 아래 두고 올라간 경건한 믿음입니다. 아들 이삭을 결박해서 단에 올려놓고 칼을 뽑는 온전히 믿음입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믿음을 확인한 하나님은 너무도 급해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두번 연이어 부르시며 그가 뽑았던 칼을 멈추시고 수불에 예비해 둔 수양을 보게 하신 것입니다(창세기22:1-14). 하나님은 지금 당신에게 가장 소중한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번제로 드리라”(창세기22:2)고 합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창세기22:12).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것은 경외하는 마음으로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이삭이 아니고 이삭을 바치라는 말씀에 순종함을 보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어디까지 순종할 수 있는지를 시험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이 당신의 이성적인 지각으로 이해되지 않아도 믿고 순종하고 나아가면 역사는 하나님이 하십니다(찬송가344장). 하나님은 당신 앞서 모리아에 수양 하나를 매달아 놓으시고 당신을 그리고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즐겨 순종하고 나아가면 여호와 이레의 복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있다면 믿음과 순종과 예배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인간이 드릴 수 최상의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예배입니다(로마서12:1-2).
그런데 그 예배보다 우선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언약을 따라 순종함입니다(사무엘상15:22-23). 순종하되 어떻게 순종해야 하는가 즐겨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는 아브라함 같은 믿음입니다(창세기12:3). 이런 믿음은 성도가 소유해야 할 가장 값진 보배입니다(베드로후서1:1).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한일서5:4)고 했습니다. 당신도 믿음에 굳게 서서 세상을 이기는 사명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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