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사명자를 찾으십니다 (창50:22-26)
본문
우리 모두 사명자가 됩시다. 바울이 밀레도에서 에베소교회 장로들에게 부탁하실 때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사도행전20:24)고 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마음 중심에 새기고 밀알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오늘은 창세기 6-50장에 기록된 노아에서 요셉까지 사명자를 향해 말씀하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합니다. 한 세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세대를 열어가는 창조역사의 사명자 노아와 히브리민족의 기원이 된 구원역사의 주역을 맡은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에게 나타난 사명자의 삶을 통해 당신도 이 시대를 감당할 사명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사명자는 언약에 신실해야 합니다. 노아의 시대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불신앙의 시대요, 내피림의 시대요, 죄악이 관영한 시대였습니다(창세기6:2, 4,
5). 이러한 때 노아는 의인이요, 완전한 자요,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로 살았던 것입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러한 삶을 가능하게 했는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창세기6:8-9). 그래서 그는 120년 동안 한 사명을 위하여 살아 갈 수 있었습니다. 그는 방주를 지음에 있어서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던 것입니다. “노아가 그와 같이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창세기 6:22, 7:5도 참고)고 했습니다. 그가 방주에서 나왔을 때는 제일 먼저 행했던 것이 하나님께 단을 쌓는 일입니다.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창세기8:19-20)라고 했습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지상에서 행할 최고의 사역이 단을 쌓는 일입니다. 인간이 사명의 현장에서 사역을 하기 이전에 그 사명을 주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홍수심판 후에 노아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셨습니다(창세기9:1). 포도농사를 시작한 노아는 구름이 덮이거나 바람이 불거나 비가 내리면 불안과 두려움과 공포가 떠나지를 않습니다. 그것은 홍수를 통해 받은 노이로제 증상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노아에게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속에 나타나면, 내가 나와 너희와 및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다시는 물이 모든 혈기 있는 자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창세기9:13-15)고 했습니다. 당신의 삶에 불안과 초조와 염려와 근심과 걱정이 몰아쳐 올 때 갈보리에 세우신 무지개 십자가를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당신에게 참된 평안과 안식을 주실 것입니다(마태복음11:28-30).
둘째:사명자는 믿음에 굳게 서야 합니다. 노아의 후예중에 아비의 권위에 도전한 함과 그 아들 가나안으로 통하여 세상에는 하나님의 언약을 불신하는 니므롯 같은 족속들이 일어나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바벨탑운동을 일어킨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셈의 족속중에 경건한 종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세기12:1)고 했습니다. 본토인 갈대아 우르는 우상의 도시요, 친척들은 세속주의에 물든 자이며, 아비집을 떠남은 안일주의에 머물지 않고 개척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히브리서11:8)나갔습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와서 조카 롯과 헤어질 때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세기13:8-9)고 했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포기했습니다.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창세기13:14-15)는 위로와 축복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아브라함의 생애중에서 잊을 수 없는 것은 모리아 사건입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기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창세기22:2-3)라고 했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 나이 백세에 사라의 경수가 끊어진 때 기적으로 얻은 사랑하는 독자의 아들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를 받치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으며 믿음으로 받은 아들 믿음으로 받치면 하나님이 다시 준비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셋째:사명자는 순종을 바로 배워야 합니다. 이삭은 순종의 모델입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창세기22:9-10)라고 했습니다. 이삭은 체력으로나 이성적인 지각으로나 애정어린 감정으로 아버지께 호소하고 설득하고 항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계시적인 말씀에 순복하여 언약의 줄에 묶임을 받았습니다. 이삭에게 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사건은 그랄에서 빼앗긴 우물사건입니다.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가로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창세기26:22)고 했습니다. 그랄인이 빼앗았을 때 하나님은 더 넓은 곳을 예비해 두셨던 것입니다. 온유하면 땅을 기업으로 받습니다(마태복음5:5). 이삭은 혈육의 정보다는 하나님의 섭리에 순복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야곱보다는 에서를 더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에서보다 야곱을 사랑함을 깨닫았을 때(창세기25:23) 그는 자신을 속인 야곱을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부탁하여 가로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 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고, 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너의 외조부 브두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너의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취하라”(창세기28:1-2)고 했습니다. 이것은 이삭이 하나님의 주권에 순복하는 순종심입니다.
넷째:사명자는 기도훈련을 잘 받아야 합니다. 야곱은 기도로서 모친의 태중에서 잉태함을 받고, 기도로서 여생을 마치고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창세기25:21, 49:33). 기도의 사람은 항상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습니다. 그가 형 에서의 칼을 피하여 루스들판에서 불안한 밤을 보낼 때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창세기28:15)고 했습니다. 루스들판은 하나님과 영적인 채널이 개통되는 삶의 전환기였습니다. 다음으로 야곱에게 중요한 사건은 야폭나루에서 천사와 씨름한 사건입니다. 그는 이곳에서 전인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창세기32:28)고 했습니다. 그로 인하여 그는 에서의 침략군대를 호위병으로 변화시킨 것입니다. 야곱이 임종시 자식들에게 복을 베풀 때 “이들은 이스라엘 십이지파라 이와같이 그 아비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되 곧 그들 각인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창세기49:28)고 했습니다. 자신이 아비 이삭으로부터 복을 받을 때는 불안과 초조와 두려움 가운데서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평온한 가운데 열두 아들에게 각인의 분량대로 복을 베풀었습니다. 다섯째:사명자는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요셉은 불의한 형들과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 요셉이 십칠세의 소년으로서 그 형제와 함께 양을 칠 때에 그 아비의 첩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로 더불어 함께 하였더니 그가 그들의 과실을 아비에게 고하더라”(창세기37:2)고 했습니다. 요셉이 형들을 미워해서 그렇게 한 것도 아니며, 그가 아비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으려고 한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려는 중심입니다. 그래서 아비는 그에게 채색옷을 입혔으며, 하나님은 그에게 꿈을 주신 것입니다. 그 형들이 그의 채색옷을 벗겨서나 하나님은 후일에 그보다 더 값진 옷을 입혀 주신 것입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도 거절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해 올 때 그는 “.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창세기39:9)라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조그만한 악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보디발의 집에서 육신을 즐기기보다는 옥중에서 심령의 자유함을 택했던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창세기39:21, 23)고 했습니다. 요셉에 주신 꿈을 상황이 빼앗아가지 못했습니다. 요셉은 자신을 판 형들에게 증오심을 품지 않았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창세기45:4-5)고 했습니다. 후일에 그 아비가 돌아가자 형들이 찾아와 무릎을 꿇었을 때 요셉은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창세기50:21)고 했습니다. 그후에 자신이 죽을 때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명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창세기50:24)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명자는 언약에 신실해야 합니다. 사명자는 믿음에 굳게서야 합니다. 사명자는 순종을 바로 배워야 합니다. 사명자는 기도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사명자는 소망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주님은 당신을 사명자로 불렀습니다. 성령님은 보혜사로 당신을 도우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첫째:사명자는 언약에 신실해야 합니다. 노아의 시대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불신앙의 시대요, 내피림의 시대요, 죄악이 관영한 시대였습니다(창세기6:2, 4,
5). 이러한 때 노아는 의인이요, 완전한 자요,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로 살았던 것입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러한 삶을 가능하게 했는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창세기6:8-9). 그래서 그는 120년 동안 한 사명을 위하여 살아 갈 수 있었습니다. 그는 방주를 지음에 있어서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던 것입니다. “노아가 그와 같이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창세기 6:22, 7:5도 참고)고 했습니다. 그가 방주에서 나왔을 때는 제일 먼저 행했던 것이 하나님께 단을 쌓는 일입니다.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창세기8:19-20)라고 했습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지상에서 행할 최고의 사역이 단을 쌓는 일입니다. 인간이 사명의 현장에서 사역을 하기 이전에 그 사명을 주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홍수심판 후에 노아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셨습니다(창세기9:1). 포도농사를 시작한 노아는 구름이 덮이거나 바람이 불거나 비가 내리면 불안과 두려움과 공포가 떠나지를 않습니다. 그것은 홍수를 통해 받은 노이로제 증상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노아에게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속에 나타나면, 내가 나와 너희와 및 혈기 있는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다시는 물이 모든 혈기 있는 자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창세기9:13-15)고 했습니다. 당신의 삶에 불안과 초조와 염려와 근심과 걱정이 몰아쳐 올 때 갈보리에 세우신 무지개 십자가를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당신에게 참된 평안과 안식을 주실 것입니다(마태복음11:28-30).
둘째:사명자는 믿음에 굳게 서야 합니다. 노아의 후예중에 아비의 권위에 도전한 함과 그 아들 가나안으로 통하여 세상에는 하나님의 언약을 불신하는 니므롯 같은 족속들이 일어나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바벨탑운동을 일어킨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셈의 족속중에 경건한 종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세기12:1)고 했습니다. 본토인 갈대아 우르는 우상의 도시요, 친척들은 세속주의에 물든 자이며, 아비집을 떠남은 안일주의에 머물지 않고 개척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히브리서11:8)나갔습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 가나안에 와서 조카 롯과 헤어질 때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세기13:8-9)고 했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포기했습니다.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창세기13:14-15)는 위로와 축복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아브라함의 생애중에서 잊을 수 없는 것은 모리아 사건입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기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창세기22:2-3)라고 했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 나이 백세에 사라의 경수가 끊어진 때 기적으로 얻은 사랑하는 독자의 아들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를 받치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으며 믿음으로 받은 아들 믿음으로 받치면 하나님이 다시 준비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셋째:사명자는 순종을 바로 배워야 합니다. 이삭은 순종의 모델입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창세기22:9-10)라고 했습니다. 이삭은 체력으로나 이성적인 지각으로나 애정어린 감정으로 아버지께 호소하고 설득하고 항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계시적인 말씀에 순복하여 언약의 줄에 묶임을 받았습니다. 이삭에게 잊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사건은 그랄에서 빼앗긴 우물사건입니다.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가로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창세기26:22)고 했습니다. 그랄인이 빼앗았을 때 하나님은 더 넓은 곳을 예비해 두셨던 것입니다. 온유하면 땅을 기업으로 받습니다(마태복음5:5). 이삭은 혈육의 정보다는 하나님의 섭리에 순복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야곱보다는 에서를 더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에서보다 야곱을 사랑함을 깨닫았을 때(창세기25:23) 그는 자신을 속인 야곱을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부탁하여 가로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 들 중에서 아내를 취하지 말고, 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너의 외조부 브두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너의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취하라”(창세기28:1-2)고 했습니다. 이것은 이삭이 하나님의 주권에 순복하는 순종심입니다.
넷째:사명자는 기도훈련을 잘 받아야 합니다. 야곱은 기도로서 모친의 태중에서 잉태함을 받고, 기도로서 여생을 마치고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창세기25:21, 49:33). 기도의 사람은 항상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습니다. 그가 형 에서의 칼을 피하여 루스들판에서 불안한 밤을 보낼 때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창세기28:15)고 했습니다. 루스들판은 하나님과 영적인 채널이 개통되는 삶의 전환기였습니다. 다음으로 야곱에게 중요한 사건은 야폭나루에서 천사와 씨름한 사건입니다. 그는 이곳에서 전인적인 변화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창세기32:28)고 했습니다. 그로 인하여 그는 에서의 침략군대를 호위병으로 변화시킨 것입니다. 야곱이 임종시 자식들에게 복을 베풀 때 “이들은 이스라엘 십이지파라 이와같이 그 아비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되 곧 그들 각인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창세기49:28)고 했습니다. 자신이 아비 이삭으로부터 복을 받을 때는 불안과 초조와 두려움 가운데서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평온한 가운데 열두 아들에게 각인의 분량대로 복을 베풀었습니다. 다섯째:사명자는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요셉은 불의한 형들과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 요셉이 십칠세의 소년으로서 그 형제와 함께 양을 칠 때에 그 아비의 첩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로 더불어 함께 하였더니 그가 그들의 과실을 아비에게 고하더라”(창세기37:2)고 했습니다. 요셉이 형들을 미워해서 그렇게 한 것도 아니며, 그가 아비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으려고 한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려는 중심입니다. 그래서 아비는 그에게 채색옷을 입혔으며, 하나님은 그에게 꿈을 주신 것입니다. 그 형들이 그의 채색옷을 벗겨서나 하나님은 후일에 그보다 더 값진 옷을 입혀 주신 것입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도 거절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해 올 때 그는 “.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창세기39:9)라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조그만한 악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보디발의 집에서 육신을 즐기기보다는 옥중에서 심령의 자유함을 택했던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창세기39:21, 23)고 했습니다. 요셉에 주신 꿈을 상황이 빼앗아가지 못했습니다. 요셉은 자신을 판 형들에게 증오심을 품지 않았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창세기45:4-5)고 했습니다. 후일에 그 아비가 돌아가자 형들이 찾아와 무릎을 꿇었을 때 요셉은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창세기50:21)고 했습니다. 그후에 자신이 죽을 때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명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창세기50:24)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명자는 언약에 신실해야 합니다. 사명자는 믿음에 굳게서야 합니다. 사명자는 순종을 바로 배워야 합니다. 사명자는 기도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사명자는 소망을 품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 주님은 당신을 사명자로 불렀습니다. 성령님은 보혜사로 당신을 도우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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