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님으로 세례를 받읍시다 (행1:5)
본문
성령님충만을 받읍시다. 성례의 두 가지가 무엇인가 세례와 성찬입니다. 세례는 주님의 공생애 초기에 행하신 것이고, 성찬은 주님의 공생애 말기에 행했던 것입니다. 세례에는 요한이 베푼 회개의 물세례와 주님이 베푸는 성령님의 불세례가 있습니다. 여기에 대하여는 신학적으로 여러 가지 견해가 많습니다. 저는 양무리를 치는 목회자로서 성경을 목회학적인 입장에 비추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메시지를 PC통신과 인터넷을 통하여 접하는 분들도 서로 다른 견해를 존중해 주기를 바라며, 이를 인하여 영적인 소모전이 없기를 바랍니다. 이 시대가 무엇을 요구하는가 교회사적으로 볼 때 각 시대별로 교회의 관심사가 달랐음을 알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 시대에는 주로 성부 하나님에 대한 신론의 논쟁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삼위일체 교리가 이때부터 체계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 교부시대에는 성자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에 관한 문제로 많은 논쟁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중세에 와서는 구원의 문제에 대하여 행함과 믿음에 관한 분쟁의 불씨가 종교개혁운동으로 번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기독교와 천주교가 갈라지게 된 것입니다. 현대교회의 이슈는 성령님론에 대한 은사문제입니다. 마지막 때에 우리가 감당할 사역입니다. 당신의 영적상태는 어떠한가 우리의 영적인 상태를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중생의 단계입니다. 물세례로 인하여 회개하여 거듭난 상태를 말합니다. 영적으로 갓난 어린아이의 상태입니다.
둘째, 성령님충만의 단계입니다. 성령님세례를 통해 성령님을 충만히 받은 상태를 말합니다. 이때 비로소 복음을 담대히 증거할 수 있는 증인이 됩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셋째, 지속적인 경건생활의 단계입니다. 성령님충만이 단회적인 한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삶입니다. 목회현장에서는 이와같은 영적상태를 쉽게 진단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영적인 상태는 어떠한가
첫째:요한이 베푼 회개의 세례를 받읍시다. 세례는 어떠한 자에게 베푸는가 교회를 출석하여 신앙교육을 통해 학습을 받고 신앙생활을 통해서 예수를 구주로 영접할 때 세례를 베풀게 됩니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교회에서는 약 6개월에서 1년 정도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세례의 근본 의미는 이러합니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베드로전서 3:21)고 했습니다. 당신이 이렇게 세례를 받게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성령님의 도움이 아니고는 불가능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한복음 1:12-13)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하기를 “…또 성령님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린도전서 12:3)고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게신 내 아버지시니라”(마태복음 16:16-17)고 했습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게 되는 것이 육신적인 지각이나 감정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의 감화와 감동으로만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아직은 부족합니다. 이제 영적으로 갓난 어린아이이기 때문입니다. 갓난아이는 부모의 양육을 통해서 자랄 뿐입니다.
그러므로 영적 믿음이 자라야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증인이 됩니다. 오늘 세례를 받은 자들은 기도하여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증인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혹시 연약하여 실수하여 넘어져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당신도 실수하여 넘어질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바른 신앙을 고백했습니다(마태복음 16:16-19). 그러나 그 다음 순간에 사단의 미혹을 받아 주님께 책망을 받았습니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태복음 16:23)고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주님을 빌라도 법정에서 주님을 세번까지 부인하고 저주했습니다(마태복음 26:69-7
5). 나중에 주님이 십자가 죽으심으로 그는 디베랴 바다로 물고기 잡으려 갔습니다(요한복음 21:3).
그러므로 이러한 요한의 물세례 곧 회개의 세례로는 주님의 증인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요한이 성령님의 세례 곧 불세례를 받게 하신 것입니다.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님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마태복음 3:11)고 했습니다. 주님도 말씀하시기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님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사도행전 1:5)고 했습니다.
둘째:성령님세례 곧 성령님충만을 받읍시다. 성령님세례 시작은 이러합니다. 성령님세례 운동은 1900년 말 미국 캔사스의 토폐카 성서대학(Bible College in Topeka)에서 집회할 때 찰스 폭스 파르함이 오즈맨(A. Ozman)이란 학생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자 중국어로 방언을 하였습니다. 이때 많은 학생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들은 이 사실을 순회하면서 간증하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들 중에 세이모라는 목사가 최초로 성령님세례를 주장하고 설교하여 오순절(Pentecost)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성령님운동이 그 이전에는 없었다는 말인가 아닙니다. 그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은사를 풀어서 활용한 자가 없었을 뿐입니다. 성경은 초대교회 시절부터 이 운동이 일어났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례요한도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님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마태복음 3:11)고 했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어떤 세례를 베풀었는가 사실 주님 자신이 직접 세례를 베풀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사도들이 대신해서 베풀게 하신 것입니다(마태복음 28:18-19). 이 말씀은 세례요한 이후에 주님을 통해서 일어날 오순절 사건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승천하기 직전에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님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사도행전 1:5)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오순절에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님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사도행전 1:1-4)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성령님세례를 받고 나니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담대하게 증거할 수 있는 담력이 생겼습니다(사도행전 4:19-20). 바울의 주장도 그러합니다. 바울은 물세례와 성령님의 세례를 동시적으로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사도행전 9:17).
바울이 에베소를 다녀간 이후에 아볼로가 잠깐 사역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알렉산드리아 출신 유대인 학자로서 성경에 능한 자입니다. 그러나 요한의 세례만 알았습니다(사도행전 19:24-25). 바울이 3차여행때 에베소에 방문했을 때 에베소교회가 아볼로의 영향을 받아 지극히 초보적인 중생의 단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님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님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바울이 가로되 요한의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가 열두 사람쯤 되니라”(사도행전 19:2-7)고 했습니다. 당신도 기도하여 성령님세례를 받아야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경건생활로 성령님충만을 지속적으로 유지합시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오순절 사건을 구원역사에 나타난 단회적인 사건으로만 강조하다 보니 오순절 사건이 두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신랑 신부가 결혼하여 맞이하는 첫날밤은 두 번 있을 수 없는 단회적인 사건입니다. 그러나 그와같은 아름다움과 즐거움은 일평생 일어나야 합니다. 구원역사에 나타난 오순절 사건은 단회적입니다. 그러나 오순절에 나타났던 그 능력은 그 이후에도 수없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빌립이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 전했을 때도 그와 같은 역사가 일어났습니다(사도행전 8:14-17). 사울이 다베섹에 갔을 때도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사도행전 9:10-22). 베드로가 가이사랴의 백부장 고넬료의 집에 갔을 때 오순절 역사가 일어났습니다(사도행전 10:44-48). 성령님운동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성도의 경건생활을 통하여 성령님의 역사가 지속되어야 합니다. 바울의 예베소교회를 향해 다음과 같은 경건생활을 당부합니다(에베소서 5:15-21).
1 세월을 아끼라(16) 세속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사서 구원의 시간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2 주의 뜻을 이해하라(17) 열심히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위해 사느냐는 더 우선적입니다. 주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별하는 신령한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3 성령님의 충만을 받으라(18) 세상의 술에 취하지 말고 성령님의 술에 취해야 합니다.
4 서로 화답하고 주께 찬송하라(19) 이웃간에는 신령한 노래들로 화답하고, 주님께는 찬양하고 경배해야 합니다. 5 범사에 감사하라(20) 영적으로 가장 성숙한 단계의 신앙이 감사신앙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믿음은 하나님의 주권신앙을 믿는 신앙입니다. 6 피차 복종합시다(21). 우리에게는 절대적인 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르치기도 하고 가르침을 받기도 하여 피차 복종해야 합니다. 배드로는 권합니다(베드로전서 4:7-11).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는 항상 깨어 정신을 차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1 열심히 서로 사랑합시다(8). 일방적으로 하는 짝사랑은 안됩니다. 서로 사랑해도 부족합니다. 가슴에 불을 가지고 열심히 서로 사랑합시다. 상대방의 허물이 보이지 않을 때 온전한 사랑을 하게 됩니다.
2 원망 없이 서로 대접합시다(9). 받기를 계산하고 베풀면 그것은 뇌물입니다. 만약에 되돌려 받지 못할 때는 원망하게 됩니다. 주님은 섬기는 자로 오셔서 기쁨으로 드렸습니다.
3 선한 청지기같이 봉사합시다(10). 봉사할 때 반드시 기억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청지기 정신입니다. 청지기 정신이 사라질 때 대가를 요구하게 됩니다. 주인의 뜻을 따라 봉사하는 선한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님으로 충만합시다. 물세례와 성령님세례가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경우도 있습니다(사도행전 9:17-18, 10:44-48). 그러나 보편적으로 목회현장에서는 다르게 나타날 경우가 많습니다(사도행전 1:5, 2:1-4, 19:1-7).
그러므로 오늘 세례를 받은 자들은 성령님세례 곧 성령님충만을 받도록 힘써 기도합시다.
첫째, 중생의 단계입니다. 물세례로 인하여 회개하여 거듭난 상태를 말합니다. 영적으로 갓난 어린아이의 상태입니다.
둘째, 성령님충만의 단계입니다. 성령님세례를 통해 성령님을 충만히 받은 상태를 말합니다. 이때 비로소 복음을 담대히 증거할 수 있는 증인이 됩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셋째, 지속적인 경건생활의 단계입니다. 성령님충만이 단회적인 한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삶입니다. 목회현장에서는 이와같은 영적상태를 쉽게 진단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영적인 상태는 어떠한가
첫째:요한이 베푼 회개의 세례를 받읍시다. 세례는 어떠한 자에게 베푸는가 교회를 출석하여 신앙교육을 통해 학습을 받고 신앙생활을 통해서 예수를 구주로 영접할 때 세례를 베풀게 됩니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교회에서는 약 6개월에서 1년 정도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세례의 근본 의미는 이러합니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베드로전서 3:21)고 했습니다. 당신이 이렇게 세례를 받게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성령님의 도움이 아니고는 불가능합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한복음 1:12-13)고 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하기를 “…또 성령님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린도전서 12:3)고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게신 내 아버지시니라”(마태복음 16:16-17)고 했습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게 되는 것이 육신적인 지각이나 감정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의 감화와 감동으로만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아직은 부족합니다. 이제 영적으로 갓난 어린아이이기 때문입니다. 갓난아이는 부모의 양육을 통해서 자랄 뿐입니다.
그러므로 영적 믿음이 자라야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증인이 됩니다. 오늘 세례를 받은 자들은 기도하여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증인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혹시 연약하여 실수하여 넘어져도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당신도 실수하여 넘어질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바른 신앙을 고백했습니다(마태복음 16:16-19). 그러나 그 다음 순간에 사단의 미혹을 받아 주님께 책망을 받았습니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태복음 16:23)고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주님을 빌라도 법정에서 주님을 세번까지 부인하고 저주했습니다(마태복음 26:69-7
5). 나중에 주님이 십자가 죽으심으로 그는 디베랴 바다로 물고기 잡으려 갔습니다(요한복음 21:3).
그러므로 이러한 요한의 물세례 곧 회개의 세례로는 주님의 증인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요한이 성령님의 세례 곧 불세례를 받게 하신 것입니다.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님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마태복음 3:11)고 했습니다. 주님도 말씀하시기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님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사도행전 1:5)고 했습니다.
둘째:성령님세례 곧 성령님충만을 받읍시다. 성령님세례 시작은 이러합니다. 성령님세례 운동은 1900년 말 미국 캔사스의 토폐카 성서대학(Bible College in Topeka)에서 집회할 때 찰스 폭스 파르함이 오즈맨(A. Ozman)이란 학생의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자 중국어로 방언을 하였습니다. 이때 많은 학생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들은 이 사실을 순회하면서 간증하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들 중에 세이모라는 목사가 최초로 성령님세례를 주장하고 설교하여 오순절(Pentecost)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성령님운동이 그 이전에는 없었다는 말인가 아닙니다. 그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은사를 풀어서 활용한 자가 없었을 뿐입니다. 성경은 초대교회 시절부터 이 운동이 일어났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례요한도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님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마태복음 3:11)고 했습니다. 그러면 주님이 어떤 세례를 베풀었는가 사실 주님 자신이 직접 세례를 베풀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사도들이 대신해서 베풀게 하신 것입니다(마태복음 28:18-19). 이 말씀은 세례요한 이후에 주님을 통해서 일어날 오순절 사건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승천하기 직전에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님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사도행전 1:5)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오순절에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님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사도행전 1:1-4)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성령님세례를 받고 나니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담대하게 증거할 수 있는 담력이 생겼습니다(사도행전 4:19-20). 바울의 주장도 그러합니다. 바울은 물세례와 성령님의 세례를 동시적으로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사도행전 9:17).
바울이 에베소를 다녀간 이후에 아볼로가 잠깐 사역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알렉산드리아 출신 유대인 학자로서 성경에 능한 자입니다. 그러나 요한의 세례만 알았습니다(사도행전 19:24-25). 바울이 3차여행때 에베소에 방문했을 때 에베소교회가 아볼로의 영향을 받아 지극히 초보적인 중생의 단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님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님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바울이 가로되 요한의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님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가 열두 사람쯤 되니라”(사도행전 19:2-7)고 했습니다. 당신도 기도하여 성령님세례를 받아야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경건생활로 성령님충만을 지속적으로 유지합시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오순절 사건을 구원역사에 나타난 단회적인 사건으로만 강조하다 보니 오순절 사건이 두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신랑 신부가 결혼하여 맞이하는 첫날밤은 두 번 있을 수 없는 단회적인 사건입니다. 그러나 그와같은 아름다움과 즐거움은 일평생 일어나야 합니다. 구원역사에 나타난 오순절 사건은 단회적입니다. 그러나 오순절에 나타났던 그 능력은 그 이후에도 수없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빌립이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 전했을 때도 그와 같은 역사가 일어났습니다(사도행전 8:14-17). 사울이 다베섹에 갔을 때도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사도행전 9:10-22). 베드로가 가이사랴의 백부장 고넬료의 집에 갔을 때 오순절 역사가 일어났습니다(사도행전 10:44-48). 성령님운동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성도의 경건생활을 통하여 성령님의 역사가 지속되어야 합니다. 바울의 예베소교회를 향해 다음과 같은 경건생활을 당부합니다(에베소서 5:15-21).
1 세월을 아끼라(16) 세속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사서 구원의 시간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2 주의 뜻을 이해하라(17) 열심히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을 위해 사느냐는 더 우선적입니다. 주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분별하는 신령한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3 성령님의 충만을 받으라(18) 세상의 술에 취하지 말고 성령님의 술에 취해야 합니다.
4 서로 화답하고 주께 찬송하라(19) 이웃간에는 신령한 노래들로 화답하고, 주님께는 찬양하고 경배해야 합니다. 5 범사에 감사하라(20) 영적으로 가장 성숙한 단계의 신앙이 감사신앙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믿음은 하나님의 주권신앙을 믿는 신앙입니다. 6 피차 복종합시다(21). 우리에게는 절대적인 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르치기도 하고 가르침을 받기도 하여 피차 복종해야 합니다. 배드로는 권합니다(베드로전서 4:7-11).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는 항상 깨어 정신을 차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1 열심히 서로 사랑합시다(8). 일방적으로 하는 짝사랑은 안됩니다. 서로 사랑해도 부족합니다. 가슴에 불을 가지고 열심히 서로 사랑합시다. 상대방의 허물이 보이지 않을 때 온전한 사랑을 하게 됩니다.
2 원망 없이 서로 대접합시다(9). 받기를 계산하고 베풀면 그것은 뇌물입니다. 만약에 되돌려 받지 못할 때는 원망하게 됩니다. 주님은 섬기는 자로 오셔서 기쁨으로 드렸습니다.
3 선한 청지기같이 봉사합시다(10). 봉사할 때 반드시 기억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청지기 정신입니다. 청지기 정신이 사라질 때 대가를 요구하게 됩니다. 주인의 뜻을 따라 봉사하는 선한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님으로 충만합시다. 물세례와 성령님세례가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경우도 있습니다(사도행전 9:17-18, 10:44-48). 그러나 보편적으로 목회현장에서는 다르게 나타날 경우가 많습니다(사도행전 1:5, 2:1-4, 19:1-7).
그러므로 오늘 세례를 받은 자들은 성령님세례 곧 성령님충만을 받도록 힘써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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