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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에 대하여 (롬12:1-2)

본문

당신은 좋은 청지기입니다. 1974년도 고려신학대학을 입학할 때입니다. 도서관에서 이상한 책 한권을 발견했습니다 제목이
그러므로의 생애 였습니다. 너무도 특이한 이름이었습니다. 도대체
그러므로 라는 사람이 누구이며, 어떻게 살았는가 호기심에서 책을 보았습니다. 저자를 보니 현 고신대학교 총장을 역임하셨던 오병세 박사가 쓴 작은 설교집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란 말은 바로 로마서 12장 1절에 나오는 접두사를 두고 한 말입니다. 바울 서신의 대부분이 그러합니다. 서신의 전반부에는 원리편인 교리를 가르치고, 후반부에서는 실천편인 행위를 다루고 있습니다. 실천이 없는 교리는 죽은 정통이요, 바리새인의 외식에 불과한 것입니다. 반면에 계명이 없는 행위는 한 시대의 도덕과 윤리에 불과한 것입니다. 로마서는 1-11장까지는 교리편이 기록되어 있고, 12-16장까지는 실천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이렇게 가르쳤으니
그러므로 너희들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입니다. 청지기(οκονμο)란 말은 집(οκο)+관리하다(νμω) 라는 말의 복합어로 “집을 관리하는 자”란 뜻입니다. 이제 1998년 묵은 한해를 마무리하고, 1999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청지기직의 사명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청지기는 먼저 주인 되신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1-2절). 다음으로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가를 잘 알아야 합니다(3-8절). 그 다음으로 청지기로서 사명을 감당할 교회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9-13절). 마지막으로 청지기가 추수해야 할 사회를 잘 알아야 합니다(14-21절). 오늘은 청지기의 주인 되신 하나님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청지기가 주인 되신 하나님에 대하여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
첫째: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알라 읽을말씀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1) 당신은 하나님의 성품을 아십니까 성품 이란 말을 사용하면 하나님을 인간의 마음과 성격에 일치시키고, 제한 받을 것 같아서 신학자들이 이러한 용어를 잘 쓰지 않고, 그 대신 속성-屬性 이란 말을 사용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에는 하나님 자신만이 가지는 고유한 속성을 절대적인 속성이라고 부릅니다. 즉 스스로 자존하시고, 불변하시고, 무한하시고, 유일하신 성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과 공통적으로 가지는 보편적인 속성이 있습니다. 선하시고, 지혜로우시고, 거룩하시고, 의로우심 같은 것은 인간과 함께 가지는 공유적인 속성입니다. 여기 자비하심 이란 말도 공유적인 속성의 하나입니다. 개역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란 말을 공동번역에는 “하나님의 자비가 이토록 크시니”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여기 자비(οκτιρμ)란 말은 긍휼, 친절, 은혜란 말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사용된 자비 란 말은 하나님의 속성을 대표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은 이러합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가 탕자 비유(누가복음 15:11-32)라고 생각합니다.
1 자비는 자유로운 행위를 억제하지 않습니다. 하루는 둘째 아들이 와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12)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그의 계획된 행동을 꺾지 않고 허용해 주었습니다. 자비는 미성숙한 상태라고 해서 억지로 굴복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허용해 주었다가 성숙한 상태에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돌아오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2 자비는 측은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탕자는 자신의 분깃을 다 탕진 한 후 주려 죽는 돼지 인생이 되어서 아비집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그가 아비집에 왔을 때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20) 입을 맞추신 것입니다.
3 자비는 아낌없는 희생입니다. 아비는 돌아온 아들을 위하여 종들에게 명하기를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22)고 하시고는 살진 송아지를 잡아 이웃을 불러 잔치했습니다. 어떠한 것도 아끼지 않고 투자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합니다. 토마스 헤스팅스(T. Hastings 1784-1872)는 미국 코네티컷주 태생의 교회 음악가입니다. 그는 집안이 가난하여 의무교육인 초등학교 밖에 받지를 못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질병으로 고생하면서도 남다른 정열과 노력으로 독학을 하여 음학박사 학위까지 받았습니다. 그는 천편이 넘는 찬송곡을 지었습니다. 수백편의 찬송시를 지었습니다. 수십권의 노래집을 펴내어 미국 음악계에 크게 공헌을 했습니다. 그가 작시한 찬송가 450장 자비하신 예수여 1절에서 “자비하신 예수여 내가 사람 가운데 의지할 이 없으니 슬픈 자가 됩니다. 맘이 어두웠으니 밝게 하여 주소서 저를 보호하시고 항상 인도하소서”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인도하심으로 역경중에서도 기쁨을 잃지 않고, 찬양의 삶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둘째:거룩한 산 제사를 드리라 읽을말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1) 영적 예배를 드립시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예배입니다. 예배는 인간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가치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사귀는 영적인 교통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습니다. 그러나 계약을 파괴하므로 교통이 깨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제사입니다(창세기3:21).
그런데 이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종식이 되었습니다(히브리서 9:12). 이젠 이전에 끊어진 관계가 예수 안에서 예배를 통해서 다시 회복된 것입니다. 몸으로 하나님을 기뻐시게 합시다. 신약시대는 살아 있는 몸으로 드리는 인격적인 예배입니다. 예배시간에 대하여 특별히 경고합니다. 시간을 온전히 받치도록 힘씁시다. 습관적으로 지각하는 벌레 먹은 시간들을 하나님 앞에 드리지 맙시다.
1 건강한 몸으로 봉사합시다. 건강할 때 주의 일을 많이 해야 합니다. 세월을 아낍시다(에베소서 5:16). 우리의 년수가 오래지 못합니다(시편 90:10).
2 재능을 주를 위해 받칩시다. 다윗은 양을 치면서 짬짬이 배운 물맷돌 던지는 기술을 블레셋 전투에 나가서 골리앗 앞에서 하나님 영광을 위하여 사용했습니다(사무엘상 17:45-47).
3 물질을 받쳐서 봉사합시다. 동방의 의인 욥은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욥기 1:21)라고 고백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왜 많은 보물을 가져오게 하셨는가 성막을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은 성막 때문에 광야에서 보호받을 수 있었습니다.
4 권세와 명예를 사용하여 봉사합시다. 본디오 사람 빌라도는 로마가 자기에게 주는 총독의 권세로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자리에 내어 주었습니다(마태복음 27:26). 그러나 바울은 로마가 주는 시민권을 복음전하는 도구로 사용하신 것입니다(사도행전 22:28). 우리의 지체를 구별하여 드립시다.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로마서 6:13)고 했습니다.
1 눈은 언약의 성소를 바라봅시다. 롯은 눈을 들어 요단들을 바라보았습니다(창세기 13:10). 그러나 믿음의 아브라함은 눈을 들어 언약의 땅 동서남북을 바라보았습니다(창세기 13:14).
2 귀는 성령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입시다. 우리의 귀는 성령님이 교회를 통해서 하시는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복된 귀가되어야 합니다(요한계시록 2:7).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으로 주어집니다(로마서 10:17).
3 입은 증인으로서 파숫꾼의 나팔이 됩시다. 예수 십자가 사건을 증언하는 어두움을 밝히는 빛이 되어야 합니다(사도행전 4:19-20).
4 손발이 깨끗해야 합니다. 손으로 부정한 것을 멀리합시다(야고보서 4:8). 발은 악인의 꾀와 죄인의 길과 오만한 자리로 나아가는 것을 피합시다(시편 1:1).
셋째: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 읽을말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2) 이 세대를 본받지 맙시다. 사단의 역사는 시간과 공간과 문화를 초월하여 동일하게 역사합니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에베소서 2:2)고 했습니다. 바울이 경고했던 그 시대나 지금 우리 시대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시대나 이 시대를 지배하는 사단이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로마서 13:11-14)고 했습니다. 마음에 변화를 받읍시다. 기독교는 마음을 변화시키는 생명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한동안 세상 항략에 빠졌던 솔로몬이 고백하기를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언 4:24)고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메섹에서 영적인 심장 이식 수술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심장을 이식받았습니다(빌립보서 1:8).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새롭게 지음받은 새 사람을 입어야만 심령의 변화가 가능합니다(고린도후서 5:17, 에베소서 2:24).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합시다.
1 선하신 뜻을 이룹시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가 공평하신 하나님이란 말입니다. 공평하신 하나님 앞에 불평하지 말고 감사합시다(마태복음 5:45).
2 기뻐신 뜻을 이룹시다. 하나님이 쓰신 사람들은 다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뻐시게 못하나니”(히브리서 11:6)고 했습니다.
3 온전하신 뜻을 이룹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 어떻게 이루는가 회개를 통하여 그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베드로전서 1:16)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스코틀랜드의 보너(Bonar Horotius 1808-1889) 목사는 찬송가 작가입니다. 어느날 꿈을 꾸었는데 천사가 보너의 신앙열심을 저울질했습니다. 그의 열심을 분석한 결과 100근입니다. 그 내용을 분석해 보니 이기심 때문에 행한 열심이 14근이며, 파당적인 열심히 15근이며, 명예 때문에 행한 열심히 22근이며, 친교적 사랑으로 행한 열심히 23근이며, 순수한 하나님을 위한 사랑의 열심은 26근이었습니다. 그는 일어나서 깊이 회개하고 새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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