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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대하여 (롬12: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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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청지기가 됩시다. 화란에 고리텐 붐 이란 여사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부흥사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붐 여사의 가족은 유대인을 숨겨 두었다는 이유로 독일 라벤스부르크 수용소에 수감되었습니다. 이곳에서 그녀의 부모와 언니는 모진 고문을 견디다 못해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서 고국에 돌아왔습니다. 그녀는 남은 여생을 주님께 바치기로 결심하고 신학을 공부하여 복음 전선에 나섰습니다. 하루는 독일 민족에게 용서의 복음을 전하라는 성령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녀에게 독일이란 악몽의 나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은 거역할 수 없었습니다. 패전의 비참속에서 용서의 복음을 듣은 독일 민족들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감사했습니다. 어느 날 설교를 마치고 강단에서 내려오는데 수많은 무리들이 악수를 청하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때 그녀 앞에 손을 내밀은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를 보는 순간 온 몸이 굳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수용소에서 자신에게 모진 고문을 가했던 병사였습니다. 강단에서는 담대하게 원수를 내몸 같이 사랑하라 고 했으나 자신의 청춘을 무참히 짓밟은 이 남자를 보는 순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그녀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나는 도저희 이 병사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나를 도와주소서…” 그 순간 성령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내가 나를 죽인 사람을 용서한 일을 알고 있지. 어서 너 손을 내밀어 붙잡으라”고 했습니다. 그때 천근같은 손을 내밀어 그 병사의 손을 잡는 순간 비둘기 같은 성령님이 임하여 그 병사를 진정으로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입으로 헤아리기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이를 남에게 가르치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를 몸으로 실천함은 정말 어렵습니다. 아니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바로 부패한 인간의 연약성입니다. 병든 세상은 치료함을 받아야 합니다. 주님은 이 병든 세상을 치료하려 오셨습니다. 주님이 갈보리에서 흘린 보혈의 피는 이 세상의 모든 죄를 깨끗이 씻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의 선한 청지기로서 이 세상을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아가폐가 아니고는 이 세상을 치료할 약이 없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 받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린도전서 1:18)고 했습니다. 이 십자가를 놓치는 순간 우리는 세상에게 삼킴을 당하게 됩니다.
첫째:핍박자를 축복하라 읽을말씀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14) 핍박자를 축복합시다. 사랑하는 자를 축복하는 것은 쉬우나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를 십자가에서 몸소 실천해 보여 주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누가복음 23:34)고 했습니다. 초대교회 스데반 집사는 자기를 향해 돌을 던지는 자들을 향하여 기도하면서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인생은 복되게 지음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세기 1:28)고 했습니다. 인간은 복되게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복을 받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복을 베풀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이 더 많은 복을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범하기 쉬운 죄가 무엇인가 원수를 저주하는 일입니다. 왜 우리의 삶에 저주가 떠나지 않은가 우리의 입술에서 저주가 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삶에 저주를 끊는 비결은 당신의 입술의 변화를 통해서만이 가능합니다. 당신을 향해 핍박을 할지라도 당신은 그를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합시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창세기 12;
2)고 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복의 근원자입니다. 복을 베풀자이지 저주할 자가 아닙니다. 저주할 일은 하나님에게 맏깁시다. 어떠한 경우에도 복을 비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고난당한 자를 위로하라 읽을말씀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있는 체 말라”(15-16) 주님은 고난의 종으로 오셨습니다. 식민지 국가의 작은 마을에 천한 목수의 가문으로 오셔서 구유에 누웠습니다. 가난을 몸소 체휼했으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서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병든 자를 치료해 주었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광야에서 사십일간 금식하므로 배고프고 주린 자의 심정를 누구보다도 더 잘 아십니다. 그래서 벳세다 들녘에서도 제자들이 거져 돌려보내고자 했을 때 주님은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요한복음 6:37)고 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칠 때 일용할 양식 을 위해서 반드시 기도하게 했습니다(마태복음 6:11). 최후에는 버림받은 몸으로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었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이사야 53:4)고 했습니다. 고난보다 더 좋은 스승은 없습니다. 환경은 창조주 하나님이 내게 주신 최고의 스승입니다. 성민에게 주신 환경은 나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 가는 영적인 용광로입니다.
그러므로 환경을 원망하거나 비관하지 말고, 범사에 감사하면서 나가면 하나님이 유익하게 해 주십니다. 범사에 감사할 줄 아는 자는 하나님의 주권신앙을 믿는 자입니다. 자신이 고난을 당해 보아야 고난당한 자의 아픔을 알게 됩니다. “우리의 모든 환란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은 위로로써 모든 환란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린도후서 1:4)고 했습니다.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은 요셉은 아비가 죽자 두려움과 불안으로 떨고 있는 형들을 위로했습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창세기 50:19, 21)고 했습니다.
셋째:모든 사람과는 평화하라 읽을말씀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17-18) 모든 사람과 더불어 평화합시다. 이 땅 위에 최고의 행복이 평화의 복입니다. 평화가 깨어지면 행복이 달아납니다. 평화가 깨어지면 사단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주님은 우리와 하나님과의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누가복음 2:14)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평화를 깨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그래서 주님은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태복음 5:9)라고 했습니다. 선한 일을 도모합시다. 서양의 속담에 “선을 악으로 갚는 것은 악마의 일이요, 악을 악으로 선을 선으로 갚는 것은 사람의 일이요, 악한 것을 선으로 갚는 것은 하나님 같은 행동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평화를 깨지 않기 위해서는 널리 이해하고 용납하여 양보하는 것입니다. 이삭은 평화의 사람입니다. 그는 그랄지역에서 농사를 지어 백배의 수확을 얻었습니다. 그를 시기한 무리들이 우물을 가로채고자 했을 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싸워 취하기보다는 양보하고 잃는 편을 택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브엘세바까지 왔습니다. 후일에 그들이 이삭에게 와서 고백하기를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 하는 것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다(창세기26:28)고 했습니다. 그때 이삭은 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고 이튿날 아침에 평안히 돌아가게 했습니다(창세기 26:30-31). 성경에서 예수님의 온유하심을 가장 잘 드러낸 분이 평화의 사람 이삭입니다.
넷째:원수를 대적하지 말라 읽을말씀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19-21) 원수를 대적하지 맙시다. 우리에게는 원수 갚을 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폭력의 악순환은 계속되게 됩니다. 불의한 세상을 심판하실 분은 하나님뿐이십니다. 그래서 원수 갚는 일은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우리의 할 일은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성령님이 그의 머리에 숯불을 올려놓아서 회개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도록 하십니다. 이것이 선으로 악을 이기는 비결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오른빰을 치면 왼편도 돌려 되고, 속옷을 가지고자 하면 겉옷까지 주고,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면 십리까지 동행하게 했습니다(마태복음 5:39-41). 원수는 하나님의 장중에 맡깁시다. 다윗은 일평생 사울에게 쫓김을 당했습니다. 그는 중심으로 사울을 미워해 보지 않았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기 위하여 엔게디 들판에 삼천 군대를 거느리고 수색을 나갔습니다. 다윗은 마치 굴에 피신해 있었습니다. 사울 역시 그 굴속으로 들어와어 그의 목전에서 잠들었을 때 “다윗의 사람들이 가로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붙이리니 네 소견에 선한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날이니이다.”(사무엘상 24:4)고 했습니다. 그때 다윗은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신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사무엘상 24:6)고 했습니다. 그는 원수를 갚기 위하여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지 않았습니다. 공평하신 하나님의 장중에 맡기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주님의 청지기입니다. 주님은 십자가 하나로 세상을 정복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핍박자라도 축복합시다. 고난받는 자를 위로합시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평화합시다. 원수를 대적하지 맙시다. 세상을 정복하는 위대한 힘은 아가폐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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