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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의 열심을 배웁시다 (왕상19: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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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의 열정을 배웁시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아십니까 이는 아이삭 뉴톤(Isaac Newton 1642-1727)에 의하여 발견되었습니다. 그는 근대 이론 과학의 선구자입니다. 그러나 그만큼 불행한 삶을 살았던 자도 없을 것입니다. 그는 태어나기도 전에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출생과 동시에 어머니는 재혼해 갔습니다. 그는 부득불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소년 시절에는 몸도 허약했고, 학교 성적은 항상 꼴지에서 1-2등이었습니다. 친구들과 선생님은 그를 바보로 취급했습니다. 그러니 그 자신도 바보 인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는 한번도 열심히 공부를 해 본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는 아이와 심한 말다툼을 했습니다. 분명히 그 아이가 잘못했는데 친구들이 자기의 편을 들어주지를 않았습니다. 그때 그는 이러한 것을 생각했습니다. 머리가 나쁜 사람의 말은 옳은 것이라도 믿어 주지 않는구나 하는 사실을 알고 그때부터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노력했더니 놀랄 만큼 성적이 올라갔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자신감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여 훌륭한 과학자가 되었습니다. 영국 캠임 브리지 대학에 뉴톤기념비 가 있는데 그 서두에 이러한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 천재, 인류를 뛰어 넘었다. 그러나 뉴톤은 결코 천재로 태어난 것이 아니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성경을 공부하는데 보내었습니다. 그리고 영적 믿음의 일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엘리야의 열심을 배웁시다. 그는 주전 870년경 사람입니다. 그는 길르앗 디셉(열왕기상 17:1) 출신으로 요단 동편에 자리잡은 이스라엘의 영토로서 목양과 향로의 산지입니다. 디셉 이라는 곳은 이곳에만 한 번 언급이 된 지명으로 아주 작은 촌락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엘리야는 아주 작은 시골 출신으로서 북쪽 이스라엘의 예언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가장 악한 아합(BC 876-854)왕 때에 선지자가 되어 가장 열정적으로 사역한 대표적인 선지입니다. 그는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승천한 사람입니다. 성경에 이러한 분이 세분 계십니다. 노아 홍수 이전에 에녹이 그러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300년을 동행하다가 들림을 받았습니다(창세기 5:24). 엘리야는 구약의 대표적인 선지로서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했습니다(열왕기하 2:11). 마지막으로 주님은 부활의 주로서 구름을 타고 올라갔습니다(사도행전 1:9). 하나님은 각 시대마다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 있음을 임상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엘리야는 참으로 열정을 가지고 살았던 분입니다. 우리는 그의 열심을 배워야 합니다.
첫째:구약의 청교도인입니다. 그는 청교도 인입니다. 저는 엘리야의 신앙 색깔을 청교도(Puritans) 정신으로 비유하고 싶습니다. 16세기 영국교회 내에 로마 카톨릭적 불순물을 제거하고 미신적인 행사를 타파하고 교회를 정화하기 위하여 일어난 운동으로 1620년 9월에 102명이 신앙의 자유를 위해 대서양을 힁단하여 신대륙에 도착하여 오늘날 미국을 건설한 것입니다. 엘리야의 열심히 그러했습니다. 그는 불의와 타협할 줄 모르는 분입니다.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열왕기상 17:1)고 했습니다. 그는 불의한 아합의 정권을 향해 정면으로 항거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지도자나 백성이 다같이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가르쳤던 것입니다. 그 고난은 자신을 포함한 모든 민족이 당해야 하는 고난이었습니다. 그도 백성들과 같이 3년 6개월 동안 고난을 받았습니다. 어찌 보면 그는 아합으로부터 지명수배를 받으면서도피 생활을 했으니 갑절의 고통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쩣는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얼마나 신실한가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고백을 했습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11-13)고 했습니다.
둘째:뜻이 분명한 사람입니다. 그는 뜻이 분명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음과 같은 경우에 자신의 뜻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하나는 강한 권력 앞에서 굴복하여 항복하거나 아부하는 경우입니다. 다니엘은 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 앞에서도 뜻을 정하여 행동했습니다(다니엘 1:8). 그러나 다른 한 경우는 약자의 어려움에 동정하다가 뜻이 흔들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삼손은 언약한 여인 들릴라의 청을 거절하지 못해 나실인의 삶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사사기 16:15-17). 그러나 엘리야는 뜻이 분명한 사람입니다. 그는 포악한 악정 아합에게도 강할 뿐만 아니라 시돈 지역의 동정의 대상인 사르밧 과부에게도 냉정할 정도로 강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은 어떠한 상황이나 동정에 이끌려 굴절되어서도 안됩니다. 그가 한동안 그릿 시냇가에 피신해 있다가 시내가 마르자 사르밧 과부에게로 갔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간 것입니다. “저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곳에서 나뭇가지를 줍는지라 이에 불러 가로되 청컨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나로 마시게 하라, 저가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가 저를 불러 가로되 청컨대 네 손에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 오라, 저가 가로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무가지 두었을 주워 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엘리야가 이르되 두려워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열왕기상 17:10-13)고 했습니다. 엘리야의 말을 들으면 너무도 비정한 사람같이 보입니다. 이 가뭄에 물 한방울이 얼마나 귀한데 물을 가져와서 마시게 하며, 마지막 남은 한 움큼의 빵까지도 요구했던 것입니다. 그때 그 여인에게 있어서 물 한잔과 한 움큼의 빵은 곧 그 여인과 그 아들의 목숨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요구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이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분명한 믿음과 강한 확신이 서 있기 때문에 담대하게 말씀할 수 있었습니다.
셋째:영적 전투적인 사람입니다. 그는 성령님의 사람 곧 불의 사자입니다. 영적인 사람은 강합니다. 세상 그 어떠한 것으로도 제어 할 수 없는 힘이 영의 힘입니다. 갈멜산 대결은 영적인 전투입니다. 바알과 아세라가 연합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전투의 장입니다. 외적으로는 850:1이었으나 이것은 모세와 바로의 항전과 같으며, 골리앗과 다윗의 항전과 같습니다. 갈멜산 전투는 무엇을 계시해 주는가 우리는 여기에서 거짓된 이방 종교와 참된 생명의 종교가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열왕기상 18:20-4
6). 엘리야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여 준 것이 무엇인가
1 무너진 단을 수축하는 것입니다(열왕기상 18:30). 엘리야는 백성들이 허물은 여호와의 단을 세웠던 것입니다.
2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했습니다(32). 골리앗에게 도전한 다윗이 사울왕과 다른 점이 무엇인가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입니다(사무엘상 17:45).
3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36).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서 자신과 함께 하심을 믿었습니다.
4 거짓된 선지자들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40) 그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 850인을 기손 시내로 이끌고 가서 다 쳐 죽였습니다. 5 기도 응답을 믿었습니다(41). 거짓된 죄악을 청산하고 3년 6개월 동안 닫혔던 하늘 문을 열어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넷째:진솔한 사람입니다. 그는 진실하고 솔직한 사람입니다. 가식이나 꾸밈이 없었습니다. 사실 그가 로뎀 나무 아래에서 탄식한 것은 사명을 회피한 것으로 보이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후에 호렙산 굴에서 다시금 사명이 주어졌을 때 아주 교만한 것처럼 느껴지나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일을 걱정하여 솔직하게 털어놓은 진솔한 모습입니다. 그의 진솔한 고백들은 이러합니다.
1 왜 로뎀 나무 아래서 쉬게 되었는가 사실 그는 갈멜산 전투에서 승리하면 모든 것이 끝이 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합보다는 이세벨이 더 무서운 존재였습니다. 이세벨이 자신이 수입해 온 종교 지도자들이 다 죽었다는 말을 듣고 분노하여 엘리야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또 다시 망명길에 올랐습니다. 지난날 3년 6개월 동안 도피생활도 몸서리치는 날들인데 또 다시 그와 같은 생활이 되풀이되니 이제 도피생활을 스스로 포기했던 것입니다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열왕기상 19:4)고 했습니다. . 그때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어서 숯불에 구운 빵과 물을 주시면서 사명의 산 호렙까지 인도하여 영적인 재충전을 하게 한 것입니다.
2 이제 나 혼자 남았습니다.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히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열왕기상 19:14)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호렙산 굴에서 강한 바람과 지진과 불 가운데서도 역사하지 않고 세미하게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역사하는 칠천의 무리를 깨우쳐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기리니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열왕기상 19:18)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창조적인 일에 열심 합시다.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에베소서 1:8)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게 넘치는 지혜와 총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범죄 하면 지혜와 총명이 어두워지므로 뇌세포 활동이 정지됩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 거하면 지혜와 총명이 밝아져서 뇌세포 활동이 왕성해 집니다.
의학자들은 “사람의 뇌에는 150억개 이상의 세포가 있다”고 합니다.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뇌세포를 전부 활용하면 일주일에 100만개 이상의 아이디어를 끄집어 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담이 타락하기 전에 40만종 이상 되는 동물들의 이름을 지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엘리야 그는 구약의 청교도인입니다. 뜻이 분명했습니다. 영적 전투적인 사람입니다. 진솔한 사람입니다. 당신에게도 엘리야의 열심이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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