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막은 교회의 원형입니다 (레1:1)
본문
주님은 나의 성막입니다. 레위기는 어떤 책인가 저 자신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레위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나타난 현상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다른 것에 비하여 레위기에 관한 책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도 흔하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깨닫고 보면 레위기만큼 중요한 책이 없습니다. 구약의 기초가 율법서라고 하면 율법서의 중심이 레위기입니다. 레위기의 제사 예법은 곧 오늘날 예배의 원형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바로 드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레위기를 확실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금년도에는 레위기 속에 감추어진 보화를 깨는데 전력을 투구하고자 합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심정으로 성소를 찾고, 선포하는 말씀으로 은혜를 받고, 교제가 나오면 성경공부를 통해 영육간에 풍요로운 삶을 누리기를 축원합니다.
레위기란 이름은 어떻게 붙여졌는가 레위기란 말은 히브리말로 와이크라 라는 말인데 그리고 그가 부르시고 라는 말입니다. 히브리어 성경을 세계적으로 보급하기 위하여 70인 학자들로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번역된 책이 70인역입니다. 그때 이 책의 이름을 레위티콘(λευιτιχν)이라고 붙였는데 이는 레위인에 관한 것들 이라는 뜻입니다. 후에 라틴어로 번역된 벌게이트역(Latin Vulgate)에서는 레위티쿠스(Leviticus)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을 영어성경에서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한국어 개역성경은 영어 성경에서 번역하여 레위기 라고 명명했습니다. 레위기는 출애굽기의 연속입니다. 와이크라는 그리고 그가 부르시고 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라는 말은 접속사입니다. 출애굽기에서 회막이 완성되었습니다. 그 후부터 여호와 하나님이 회막에 임재해 계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신 것입니다(1).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회막에서 사역할 제사장들을 세우신 것입니다. 그때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들 중에서 레위지파가 뽑힘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70인역에서 레위인들의 관한 것들 이란 말은 정확한 번역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사역했던 회막은 어떠한 곳인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곳이다. 하나님은 회막에서 모세를 불렀습니다.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1)라고 했습니다. 회막이 없을 때는 하나님은 모세를 시내산으로 불러 올렸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오매 그들이 산기슭에 섰더니,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점 연기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나팔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출애굽기 19:17-19)고 했습니다. 그러나 회막을 짓고난 후에는 하나님이 회막에 임재하셔서 모세와 제사장들을 이곳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회막은 영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의사전달의 장소입니다. 구약의 회막은 신약 교회의 뿌리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교회의 주된 사역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사역입니다. 주님이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터 위에 자신의 교회를 세우셨습니다(에베소서 2:20). 그리고 그들에게 주신 주된 사명이 무엇인가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사도행전 6:4)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고 정확하게 선포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의 표지를 말할 때도 말씀의 참된 전파 를 가장 우선적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요한일서 4:1-3).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자랍니다(로마서 10:17). 그래야 세상을 이길 힘을 얻습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한일서 5:4)고 했습니다.
둘째:구원의 감격을 누리는 곳이다. 회막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회막은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구원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한 반면에 회막에 있는 성물 하나 하나도 예수 그리스도의 속성을 보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전체도 예수 그리스도이며, 부분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막의 모든 성물을 크게 일곱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이를 신약적으로 조명해 보면 이러합니다. 성막문입니다. “나는 양의 문이라”(요한복음 10:7)고 했습니다. 양들이 하루 동안에 초장에서 지친 몸을 우리 에 들어가서 안식을 누리기 위해서는 문을 통해서 들어가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는 죄악 세상에 지친 영혼들이 안식을 누리기 위하여 천국으로 나아가는 교회의 문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고 했습니다. 번제단입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브리서 9:12)고 했습니다. 회막 뜰에 있는 번제단은 놋으로 되어 있습니다. 성소에 있는 모든 것이 금으로 되었는데 성막 뜰에 있는 놋제단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갈보리 십자가에서 버림받은 주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물두멍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몸이 깨끗하니라”(요한복음 13:10)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거듭나서 중생함을 받았으나 아직은 육의 몸을 가진 연약성으로 인하여 범하는 죄에 대하여 수족을 씻는 회개는 날마다 계속되어야 합니다. 떡상입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요한복음 6:48)고 했습니다. 성소에 들어간 제사장은 떡상에 진열된 떡을 먹음으로 신령한 힘을 얻습니다. 우리가 생명의 떡 되신 주님의 말씀을 먹음으로 영혼에 새 힘을 얻습니다. 영혼이 강건해야 죄악과 마귀와 사단의 권세를 이길 수 있습니다. 촛대입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요한복음 1:9)고 했습니다. 성소에는 창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빛도 들어오지 않습니다. 들어올 수도 없고 들어와서도 안됩니다. 그래서 촛대에는 항상 불이 밝혀져 있습니다. 이 빛이 어두운 성소를 밝게 비춥니다. 우리의 심령속에 참빛 되신 주님이 비칠 때에 죄악과 어두움의 세력들이 물러갑니다. 참빛은 예수 한분 뿐입니다. 향단입니다.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요한계시록 8:3)고 했습니다. 제사장은 백성들을 향하여 기도의 향을 올려서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시고 백성들의 소원을 위해 간구하십니다. 시은소 보좌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히브리서 10:19-20)고 했습니다. 시은소는 보좌(mercy seat)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된 것입니다.
셋째:성도들의 삶의 중심이다. 회막은 성민의 센터입니다. 회막이 세워 졌을 때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막을 중심으로하여 헤쳐 모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은 각각 그 기와 그 종족의 기호 곁에 진을 치되 회막을 사면으로 대하여 치라”(민수기2:1-2)고 했습니다. 동편에는 유다진기(유다, 잇사갈, 스블론), 남편에는 르우벤 진기(르우벤, 시므온, 갓), 서편에는 에브라임 진기(에브라임, 므낫세, 베냐민), 북편에는 단 진기(단, 아셀, 납달리)입니다. 회막의 언약궤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열두지파가 각기 세지파씩 동서남북으로 진을 쳤습니다. 이것은 말씀 중심의 삶을 증거합니다. 성민은 언약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편 121:1-2)고 했습니다. 우리의 눈이 왜 산을 향하여 들어야 하는가 이 산은 시온산이요, 시온산에는 시온성 곧 예루살렘 성이 있으며, 이 성에 예루살렘 성전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에 포로로 잡혀갔을 때도 예루살렘 성전을 바라보고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다니엘 6:10). 언약을 중심해서 살면 어떠한 은혜를 받게 되는가
1 하나님의 보호를 받습니다. 회막이 완성될 때 구름기둥 불기둥이 회막을 덮었습니다. 영적 하나님의 동행인 외적인 증거입니다.
2 하나님의 인도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살아가면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헤매일 때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할 분은 언약의 말씀입니다.
3 어려운 장애물을 극복하게 하십니다. 언약궤 앞에는 요단도 갈라집니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나니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 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원한 기념이 되리라 하라”(여호수아 4:7)고 했습니다.
넷째:하나님과 백성들이 서로 만나는 곳이다. 회막은 친교의 장입니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출애굽기 25:22)고 했습니다. 왜 하나님이 회막에 임재해 계시는가 백성들의 고통에 동참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의 아픔을 들어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들과 사귐을 가지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은 피를 가지고 시은소 보좌로 나아가면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은 광야에서 고난 받고 있는 너희 백성들과 함께 하고 계심을 보여주는 산 계시입니다.
그러므로 회막은 하나님을 만나고 백성들을 만나는 교제의 장입니다. 교회는 교통의 장소입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사도행전 2:42)고 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 사도들의 가르침인 주의 종들이 선포하는 말씀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지체 상호간에 서로 교제하고 교통하는 친교의 역사을 일으켜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언제나 하는 사도신경 신앙고백에서도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것과”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회막은 교회의 원형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곳입니다. 구원의 감격을 누리는 곳입니다. 성도들의 삶의 중심입니다. 하나님과 백성들이 서로 만나는 교제의 장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편 84:10)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바로 드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레위기를 확실하게 깨달아야 합니다. 금년도에는 레위기 속에 감추어진 보화를 깨는데 전력을 투구하고자 합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심정으로 성소를 찾고, 선포하는 말씀으로 은혜를 받고, 교제가 나오면 성경공부를 통해 영육간에 풍요로운 삶을 누리기를 축원합니다.
레위기란 이름은 어떻게 붙여졌는가 레위기란 말은 히브리말로 와이크라 라는 말인데 그리고 그가 부르시고 라는 말입니다. 히브리어 성경을 세계적으로 보급하기 위하여 70인 학자들로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번역된 책이 70인역입니다. 그때 이 책의 이름을 레위티콘(λευιτιχν)이라고 붙였는데 이는 레위인에 관한 것들 이라는 뜻입니다. 후에 라틴어로 번역된 벌게이트역(Latin Vulgate)에서는 레위티쿠스(Leviticus)라고 불렀습니다. 이것을 영어성경에서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한국어 개역성경은 영어 성경에서 번역하여 레위기 라고 명명했습니다. 레위기는 출애굽기의 연속입니다. 와이크라는 그리고 그가 부르시고 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라는 말은 접속사입니다. 출애굽기에서 회막이 완성되었습니다. 그 후부터 여호와 하나님이 회막에 임재해 계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신 것입니다(1).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회막에서 사역할 제사장들을 세우신 것입니다. 그때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들 중에서 레위지파가 뽑힘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70인역에서 레위인들의 관한 것들 이란 말은 정확한 번역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사역했던 회막은 어떠한 곳인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곳이다. 하나님은 회막에서 모세를 불렀습니다.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일러 가라사대”(1)라고 했습니다. 회막이 없을 때는 하나님은 모세를 시내산으로 불러 올렸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맞으려고 백성을 거느리고 진에서 나오매 그들이 산기슭에 섰더니,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점 연기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나팔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출애굽기 19:17-19)고 했습니다. 그러나 회막을 짓고난 후에는 하나님이 회막에 임재하셔서 모세와 제사장들을 이곳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회막은 영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의사전달의 장소입니다. 구약의 회막은 신약 교회의 뿌리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교회의 주된 사역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사역입니다. 주님이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터 위에 자신의 교회를 세우셨습니다(에베소서 2:20). 그리고 그들에게 주신 주된 사명이 무엇인가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사도행전 6:4)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고 정확하게 선포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의 표지를 말할 때도 말씀의 참된 전파 를 가장 우선적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요한일서 4:1-3).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자랍니다(로마서 10:17). 그래야 세상을 이길 힘을 얻습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한일서 5:4)고 했습니다.
둘째:구원의 감격을 누리는 곳이다. 회막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회막은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구원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한 반면에 회막에 있는 성물 하나 하나도 예수 그리스도의 속성을 보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전체도 예수 그리스도이며, 부분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막의 모든 성물을 크게 일곱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이를 신약적으로 조명해 보면 이러합니다. 성막문입니다. “나는 양의 문이라”(요한복음 10:7)고 했습니다. 양들이 하루 동안에 초장에서 지친 몸을 우리 에 들어가서 안식을 누리기 위해서는 문을 통해서 들어가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는 죄악 세상에 지친 영혼들이 안식을 누리기 위하여 천국으로 나아가는 교회의 문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고 했습니다. 번제단입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히브리서 9:12)고 했습니다. 회막 뜰에 있는 번제단은 놋으로 되어 있습니다. 성소에 있는 모든 것이 금으로 되었는데 성막 뜰에 있는 놋제단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갈보리 십자가에서 버림받은 주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물두멍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몸이 깨끗하니라”(요한복음 13:10)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거듭나서 중생함을 받았으나 아직은 육의 몸을 가진 연약성으로 인하여 범하는 죄에 대하여 수족을 씻는 회개는 날마다 계속되어야 합니다. 떡상입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요한복음 6:48)고 했습니다. 성소에 들어간 제사장은 떡상에 진열된 떡을 먹음으로 신령한 힘을 얻습니다. 우리가 생명의 떡 되신 주님의 말씀을 먹음으로 영혼에 새 힘을 얻습니다. 영혼이 강건해야 죄악과 마귀와 사단의 권세를 이길 수 있습니다. 촛대입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요한복음 1:9)고 했습니다. 성소에는 창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빛도 들어오지 않습니다. 들어올 수도 없고 들어와서도 안됩니다. 그래서 촛대에는 항상 불이 밝혀져 있습니다. 이 빛이 어두운 성소를 밝게 비춥니다. 우리의 심령속에 참빛 되신 주님이 비칠 때에 죄악과 어두움의 세력들이 물러갑니다. 참빛은 예수 한분 뿐입니다. 향단입니다.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요한계시록 8:3)고 했습니다. 제사장은 백성들을 향하여 기도의 향을 올려서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시고 백성들의 소원을 위해 간구하십니다. 시은소 보좌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히브리서 10:19-20)고 했습니다. 시은소는 보좌(mercy seat)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된 것입니다.
셋째:성도들의 삶의 중심이다. 회막은 성민의 센터입니다. 회막이 세워 졌을 때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막을 중심으로하여 헤쳐 모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은 각각 그 기와 그 종족의 기호 곁에 진을 치되 회막을 사면으로 대하여 치라”(민수기2:1-2)고 했습니다. 동편에는 유다진기(유다, 잇사갈, 스블론), 남편에는 르우벤 진기(르우벤, 시므온, 갓), 서편에는 에브라임 진기(에브라임, 므낫세, 베냐민), 북편에는 단 진기(단, 아셀, 납달리)입니다. 회막의 언약궤을 중심으로 이스라엘 열두지파가 각기 세지파씩 동서남북으로 진을 쳤습니다. 이것은 말씀 중심의 삶을 증거합니다. 성민은 언약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편 121:1-2)고 했습니다. 우리의 눈이 왜 산을 향하여 들어야 하는가 이 산은 시온산이요, 시온산에는 시온성 곧 예루살렘 성이 있으며, 이 성에 예루살렘 성전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에 포로로 잡혀갔을 때도 예루살렘 성전을 바라보고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다니엘 6:10). 언약을 중심해서 살면 어떠한 은혜를 받게 되는가
1 하나님의 보호를 받습니다. 회막이 완성될 때 구름기둥 불기둥이 회막을 덮었습니다. 영적 하나님의 동행인 외적인 증거입니다.
2 하나님의 인도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살아가면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헤매일 때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할 분은 언약의 말씀입니다.
3 어려운 장애물을 극복하게 하십니다. 언약궤 앞에는 요단도 갈라집니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나니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 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원한 기념이 되리라 하라”(여호수아 4:7)고 했습니다.
넷째:하나님과 백성들이 서로 만나는 곳이다. 회막은 친교의 장입니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출애굽기 25:22)고 했습니다. 왜 하나님이 회막에 임재해 계시는가 백성들의 고통에 동참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의 아픔을 들어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들과 사귐을 가지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은 피를 가지고 시은소 보좌로 나아가면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은 광야에서 고난 받고 있는 너희 백성들과 함께 하고 계심을 보여주는 산 계시입니다.
그러므로 회막은 하나님을 만나고 백성들을 만나는 교제의 장입니다. 교회는 교통의 장소입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사도행전 2:42)고 했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 사도들의 가르침인 주의 종들이 선포하는 말씀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지체 상호간에 서로 교제하고 교통하는 친교의 역사을 일으켜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언제나 하는 사도신경 신앙고백에서도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것과”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회막은 교회의 원형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곳입니다. 구원의 감격을 누리는 곳입니다. 성도들의 삶의 중심입니다. 하나님과 백성들이 서로 만나는 교제의 장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편 84:10)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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