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격적인 예배를 드립시다 (레1:1-17)
본문
예배의 감격을 누립시다. 예배는 축제의 장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저의 고민과 숙제입니다. 예배를 집례하는 인도자로서 언제나 부족함을 느끼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배는 죄와 사망권세 아래 눌려 있는 인생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수를 마심으로 영적 생기를 회복하여 기쁨이 넘치는 축제의 장을 만드는 것입니다. 찬송가 313장 후렴에서 “죄악 벗은 우리 영혼이 기뻐 뛰며 주를 보겠네…”라는 감격이 넘치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예배의 감격에 빠져야 합니다. 우리에게 감격을 빼앗아 가는 사단의 권세를 묶고, 여호와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을 누립시다. 레위기는 예배를 가르치는 책입니다. 창세기는 천지창조와 인간의 범죄로 타락한 세상을 보여 줍니다. 출애굽기는 타락한 인간이 유월절 어린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애굽과 바로의 권세에서 구원함을 받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레위기는 이제 구원받은 백성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곧 예배를 가르쳐 주십니다. 그래서 레위기를 제사 곧 예배의 책 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회막을 세우게 하시고 그 회막에서 수종들 레위인들을 구별하여 제사장으로 세웠습니다. 제사장은 짐승의 피를 가지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시은소 보좌로 나아가지만 이제 우리는 주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갑니다(히브리서 10:19). 번제에는 예배의 원리가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른 예배를 드리려고 하면 번제를 바로 이해해야 합니다. 특히 제사와 제물을 통해서 보여주신 구원계시를 알아야 합니다. 빨래를 짜면 물이 나옵니다. 그처럼 구약을 쥐어짜면 짐승을 통해 속죄의 피가 나옵니다. 마찬가지로 신약을 쥐어짜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가 흐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피의 책입니다.
왜냐하면 피 없이는 죄를 속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브리서 9:22)고 했습니다.
첫째/ 제물:예수 그리스도 예배의 기초는 제물입니다. 제물이라고 할 때 우리는 흔히 오해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헌금을 제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그러한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부분에 대하여는 제물의 종류를 구별해서 드림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오늘 여기에서 가르치는 말씀은 번제로서의 제물입니다. 이 제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칩니다. 제사에 제물 없이 제사를 드릴 수 없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없이 예배를 드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약의 제물로서 합당한 것은 어떤 것인가 생축이어야 합니다(2) 제물은 반드시 살아 있는 것이라야 합니다. 죽은 것은 제물이 될 수 없습니다. 생명이 없는 것은 제물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생명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한복음 11:25)했습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한일서 5:12)고 했습니다. 세속 종교들은 다 죽은 것입니다(에베소서 2:1). 흠이 없는 것이어야 합니다(3) 유월절 어린양은 흠 없는 것입니다(출애굽기 12:5)
흠 없는 것은 죄 없는 중보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이 땅 위에 흠없는 중보자가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 외에 흠 없는 중보자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몸에서 난(마태복음 1:16) 흠없는 독생자입니다(요한복음 3:16).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성령님으로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마태복음 1:18). 그래서 죄인의 구주가 될 수 있었습니다(마태복음 1:21). 수컷이라야 합니다(3). 수컷은 씨를 가진 대표성을 말합니다. 수컷은 암컷의 머리입니다.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니라”(고린도전서 11:3)고 했습니다. 그래서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린도전서 14:34-35)고 했습니다. 아담의 범죄가 타락한 인간의 대표라면 부활하신 주님은 의의 첫 열매입니다(로마서 5:17-19, 고린도전서 15:20). 유월절 양은 “흠없고 일년된 수컷”(출애굽기 12:5)이라고 했습니다. 왜 하필이면 일년된 것이라야 하는가 제물로 사용할 짐승으로는 일년된 것이 최상의 것입니다. 그처럼 주님도 최상의 33세 청년기에 대속의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가복음 10:45)고 했습니다. 안수를 받은 것이라야 합니다(4). 제물로 사용할 것은 반드시 안수 받은 것이라야 합니다. 안수에는 몇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헌신과 봉사를 다짐할 때 안수합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받쳐진 나실인이 될 때 그러합니다(민수기 6:3-6). 사명이 주어질 때입니다. 왕, 선지자, 제사장을 세울 때와 같이 임직을 받을 때 안수를 합니다. 이때 은사가 불같이 임합니다(디모데후서 1:6). 죄를 전가할 때 제물에 안수할 때는 죄인과 제물이 일치합니다. 제물에게 안수할 때는 모든 죄를 짐승에게 전가합니다. 주님은 세상 죄를 짊어지셨습니다(요한복음 1:29).
둘째/ 죽음:그리스도인의 삶 다음으로 제물을 죽이는 것입니다. 이는 십자가에서 죽은 속죄의 죽음입니다. 이는 곧 오늘날 성도들의 삶입니다. 성도가 빛과 소금으로서 사는 것처럼 제물를 드릴 때 몇 가지 주의할 사항이 있습니다. 번제로 드릴 짐승은 어떻게 잡아야 하는가 겉으로 흠없는 정도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속에 있는 불결한 것까지 정결함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은 안과 밖 모든 부분 구석 구석을 보아도 흠이 없어야 합니다. 제물을 결박해야 합니다(5). 짐승을 바로 잡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결박을 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드릴 때 먼저 아들을 결박했습니다(창세기 22:9). 우리가 하나님 앞에 번제물이 되려고 하면 먼저 언약의 줄에 결박을 받아야 합니다. 내 혈기와 감정과 생각이 묶어져야 합니다. 위신과 체면과 이성이 언약의 줄에 결박되어야 합니다. 가죽이 벗김을 당해야 합니다(6). 가죽을 벗기면 나타나는 현상은 피흘림입니다. 피흘림은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죄의 결과가 죽음이라는 사실을 보여 보여줍니다. 잡고서는 피를 회막 문 앞 단 사면에 뿌려야 합니다. 짐승의 피가 유효한 기간은 일년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영원합니다(히브리서 10:12). 세마포 옷은 피뿌림을 받은 옷입니다. 성경은 가죽옷으로 시작하여 세마포 옷으로 끝납니다(창세기 3:21, 요한계시록 19:8, 13-14). 이것은 겉 사람의 위선과 가식을 벗기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벗김을 당했습니다. 각을 뜨야 합니다(6). 다리와 정강이를 자릅니다. 세상으로 달려가는 정욕적인 발을 자릅니다. 이는 말씀을 거역하면서 가는 발람선지의 발입니다(민수기 22:12), 사명을 피하여 가는 요나의 발입니다(요나 1:3),
세상으로 달려가는 발을 잘라야 합니다. 정강이는 범죄했던 우리의 행실입니다. 악인의 꾀에 빠져서 죄인의 길로 행하여 오만한 자리에 앉아서 무릎 꿇었던 것을 잘라 버려야 합니다. 머리를 잘라야 합니다(8). 머리를 자름은 인간적이고 이성적인 생각을 잘라버려야 합니다. 언약을 불신하고 불순종하게 만드는 세상적인 생각을 잘라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뿔을 뽑아야 합니다. 남을 해롭게 하는 것을 뽑아 버려야 합니다. 돈의 뿔, 지식의 뿔, 권세의 뿔을 다 뽑아야 합니다. 내장을 물로 씻어야 합니다(9). 내장에는 온갖 더러운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이것을 물로 씻어내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온갖 더러운 것을 다 씻어야 합니다. 혈기, 감정, 불평, 시기, 질투을 씻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잘 씻어지지를 않습니다. 내장은 주로 무엇을 가지고 씻는가 내장을 씻으려면 오래 동안에 물에 불어나게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한 두 번에 씻겨지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자주 씻어야 합니다. 무엇으로 씻어야 하는가 소금물로 씻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죄악의 더러운 것은 한 두 번 기도에 씻기지 않습니다. 언약의 소금물로 계속해서 씻어야 합니다. 그래야 죄악의 냄새가 사라집니다.
셋째/ 응답:상달되는 제사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가 어떠한가 하나님이 받으신 것을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9, 13, 17)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기쁘게 열납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수많은 예배를 드리지만 그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으신 다면 허공만 치고 돌아가는 것이 되고 맙니다. 이러한 예배에는 감격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입니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음성들 듣고 나아가서 하나님을 만나고 기이한 환상을 보고 사명을 발견한 것처럼 오늘도 우리에게 그러한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피의 제사를 향내나게 받으십니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서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를 거부하고 아벨의 제사는 열납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히브리서 기자는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히브리서 11:4)고 했습니다.
아벨의 제사는 피의 제사입니다. 피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히브리서 9:22). 흠없고 정결한 것을 받으십니다. 제물로 합당한 것은 흠없는 것이라야 합니다. 그러나 외적으로만 흠이 없는 것이라도 내적으로 정결함을 받아 깨끗이 씻김을 받아야 합니다. 가이사랴에 백부장 고넬료가 경건한 삶을 살았습니다.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사도행전 10:4)고 했습니다. 고넬료는 내면적인 경건한 기도와 외적으로 들어난 의로운 삶이 일치했습니다. 이러한 경건한 삶이 하나님께 상달이 된 것입니다. 온전히 태워 드려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향기로운 제사가 되는가 번제는 전부를 태워서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도 남김 없이 전부를 태워 드리는 것입니다. 감추거나 숨겨 두어서는 안됩니다. 아간이 언약을 무시하고 외투 한벌과 은과 금덩이 얼마를 숨겨 두었다가 아이성에게 패배했습니다(여호수아 7:21).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그 돈의 일부를 감추어 두었다가 저주의 죽음을 죽었습니다(사도행전 5:3). 향기로운 번제물이 되려면 전부를 태워 드려야 합니다. 감추어진 것이 있으면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칼빈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성도는 교회를 어머니라고 부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교회에 와서 예배 드림이 어머니의 품속에서 누리는 평안을 맛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번제물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주님을 위해서 거룩한 제사로 번제를 드립시다. 바울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로마서 12;1)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회막을 세우게 하시고 그 회막에서 수종들 레위인들을 구별하여 제사장으로 세웠습니다. 제사장은 짐승의 피를 가지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시은소 보좌로 나아가지만 이제 우리는 주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갑니다(히브리서 10:19). 번제에는 예배의 원리가 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른 예배를 드리려고 하면 번제를 바로 이해해야 합니다. 특히 제사와 제물을 통해서 보여주신 구원계시를 알아야 합니다. 빨래를 짜면 물이 나옵니다. 그처럼 구약을 쥐어짜면 짐승을 통해 속죄의 피가 나옵니다. 마찬가지로 신약을 쥐어짜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가 흐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피의 책입니다.
왜냐하면 피 없이는 죄를 속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히브리서 9:22)고 했습니다.
첫째/ 제물:예수 그리스도 예배의 기초는 제물입니다. 제물이라고 할 때 우리는 흔히 오해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늘날 우리가 드리는 헌금을 제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그러한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부분에 대하여는 제물의 종류를 구별해서 드림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오늘 여기에서 가르치는 말씀은 번제로서의 제물입니다. 이 제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칩니다. 제사에 제물 없이 제사를 드릴 수 없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없이 예배를 드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약의 제물로서 합당한 것은 어떤 것인가 생축이어야 합니다(2) 제물은 반드시 살아 있는 것이라야 합니다. 죽은 것은 제물이 될 수 없습니다. 생명이 없는 것은 제물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생명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한복음 11:25)했습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한일서 5:12)고 했습니다. 세속 종교들은 다 죽은 것입니다(에베소서 2:1). 흠이 없는 것이어야 합니다(3) 유월절 어린양은 흠 없는 것입니다(출애굽기 12:5)
흠 없는 것은 죄 없는 중보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이 땅 위에 흠없는 중보자가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 외에 흠 없는 중보자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의 몸에서 난(마태복음 1:16) 흠없는 독생자입니다(요한복음 3:16).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성령님으로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마태복음 1:18). 그래서 죄인의 구주가 될 수 있었습니다(마태복음 1:21). 수컷이라야 합니다(3). 수컷은 씨를 가진 대표성을 말합니다. 수컷은 암컷의 머리입니다.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니라”(고린도전서 11:3)고 했습니다. 그래서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린도전서 14:34-35)고 했습니다. 아담의 범죄가 타락한 인간의 대표라면 부활하신 주님은 의의 첫 열매입니다(로마서 5:17-19, 고린도전서 15:20). 유월절 양은 “흠없고 일년된 수컷”(출애굽기 12:5)이라고 했습니다. 왜 하필이면 일년된 것이라야 하는가 제물로 사용할 짐승으로는 일년된 것이 최상의 것입니다. 그처럼 주님도 최상의 33세 청년기에 대속의 제물이 되신 것입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가복음 10:45)고 했습니다. 안수를 받은 것이라야 합니다(4). 제물로 사용할 것은 반드시 안수 받은 것이라야 합니다. 안수에는 몇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헌신과 봉사를 다짐할 때 안수합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받쳐진 나실인이 될 때 그러합니다(민수기 6:3-6). 사명이 주어질 때입니다. 왕, 선지자, 제사장을 세울 때와 같이 임직을 받을 때 안수를 합니다. 이때 은사가 불같이 임합니다(디모데후서 1:6). 죄를 전가할 때 제물에 안수할 때는 죄인과 제물이 일치합니다. 제물에게 안수할 때는 모든 죄를 짐승에게 전가합니다. 주님은 세상 죄를 짊어지셨습니다(요한복음 1:29).
둘째/ 죽음:그리스도인의 삶 다음으로 제물을 죽이는 것입니다. 이는 십자가에서 죽은 속죄의 죽음입니다. 이는 곧 오늘날 성도들의 삶입니다. 성도가 빛과 소금으로서 사는 것처럼 제물를 드릴 때 몇 가지 주의할 사항이 있습니다. 번제로 드릴 짐승은 어떻게 잡아야 하는가 겉으로 흠없는 정도로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속에 있는 불결한 것까지 정결함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은 안과 밖 모든 부분 구석 구석을 보아도 흠이 없어야 합니다. 제물을 결박해야 합니다(5). 짐승을 바로 잡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결박을 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드릴 때 먼저 아들을 결박했습니다(창세기 22:9). 우리가 하나님 앞에 번제물이 되려고 하면 먼저 언약의 줄에 결박을 받아야 합니다. 내 혈기와 감정과 생각이 묶어져야 합니다. 위신과 체면과 이성이 언약의 줄에 결박되어야 합니다. 가죽이 벗김을 당해야 합니다(6). 가죽을 벗기면 나타나는 현상은 피흘림입니다. 피흘림은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죄의 결과가 죽음이라는 사실을 보여 보여줍니다. 잡고서는 피를 회막 문 앞 단 사면에 뿌려야 합니다. 짐승의 피가 유효한 기간은 일년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영원합니다(히브리서 10:12). 세마포 옷은 피뿌림을 받은 옷입니다. 성경은 가죽옷으로 시작하여 세마포 옷으로 끝납니다(창세기 3:21, 요한계시록 19:8, 13-14). 이것은 겉 사람의 위선과 가식을 벗기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벗김을 당했습니다. 각을 뜨야 합니다(6). 다리와 정강이를 자릅니다. 세상으로 달려가는 정욕적인 발을 자릅니다. 이는 말씀을 거역하면서 가는 발람선지의 발입니다(민수기 22:12), 사명을 피하여 가는 요나의 발입니다(요나 1:3),
세상으로 달려가는 발을 잘라야 합니다. 정강이는 범죄했던 우리의 행실입니다. 악인의 꾀에 빠져서 죄인의 길로 행하여 오만한 자리에 앉아서 무릎 꿇었던 것을 잘라 버려야 합니다. 머리를 잘라야 합니다(8). 머리를 자름은 인간적이고 이성적인 생각을 잘라버려야 합니다. 언약을 불신하고 불순종하게 만드는 세상적인 생각을 잘라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뿔을 뽑아야 합니다. 남을 해롭게 하는 것을 뽑아 버려야 합니다. 돈의 뿔, 지식의 뿔, 권세의 뿔을 다 뽑아야 합니다. 내장을 물로 씻어야 합니다(9). 내장에는 온갖 더러운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이것을 물로 씻어내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온갖 더러운 것을 다 씻어야 합니다. 혈기, 감정, 불평, 시기, 질투을 씻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잘 씻어지지를 않습니다. 내장은 주로 무엇을 가지고 씻는가 내장을 씻으려면 오래 동안에 물에 불어나게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한 두 번에 씻겨지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자주 씻어야 합니다. 무엇으로 씻어야 하는가 소금물로 씻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는 죄악의 더러운 것은 한 두 번 기도에 씻기지 않습니다. 언약의 소금물로 계속해서 씻어야 합니다. 그래야 죄악의 냄새가 사라집니다.
셋째/ 응답:상달되는 제사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사가 어떠한가 하나님이 받으신 것을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9, 13, 17)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기쁘게 열납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수많은 예배를 드리지만 그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으신 다면 허공만 치고 돌아가는 것이 되고 맙니다. 이러한 예배에는 감격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의 얼굴을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입니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음성들 듣고 나아가서 하나님을 만나고 기이한 환상을 보고 사명을 발견한 것처럼 오늘도 우리에게 그러한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피의 제사를 향내나게 받으십니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서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를 거부하고 아벨의 제사는 열납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히브리서 기자는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히브리서 11:4)고 했습니다.
아벨의 제사는 피의 제사입니다. 피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히브리서 9:22). 흠없고 정결한 것을 받으십니다. 제물로 합당한 것은 흠없는 것이라야 합니다. 그러나 외적으로만 흠이 없는 것이라도 내적으로 정결함을 받아 깨끗이 씻김을 받아야 합니다. 가이사랴에 백부장 고넬료가 경건한 삶을 살았습니다.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사도행전 10:4)고 했습니다. 고넬료는 내면적인 경건한 기도와 외적으로 들어난 의로운 삶이 일치했습니다. 이러한 경건한 삶이 하나님께 상달이 된 것입니다. 온전히 태워 드려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향기로운 제사가 되는가 번제는 전부를 태워서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도 남김 없이 전부를 태워 드리는 것입니다. 감추거나 숨겨 두어서는 안됩니다. 아간이 언약을 무시하고 외투 한벌과 은과 금덩이 얼마를 숨겨 두었다가 아이성에게 패배했습니다(여호수아 7:21).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그 돈의 일부를 감추어 두었다가 저주의 죽음을 죽었습니다(사도행전 5:3). 향기로운 번제물이 되려면 전부를 태워 드려야 합니다. 감추어진 것이 있으면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칼빈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성도는 교회를 어머니라고 부를 수 있다”고 했습니다. 교회에 와서 예배 드림이 어머니의 품속에서 누리는 평안을 맛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번제물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주님을 위해서 거룩한 제사로 번제를 드립시다. 바울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로마서 12;1)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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