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중풍 병자 (막2:1-12)
본문
영적인 중풍 병자를 주께로 인도합시다. 좋은 친구가 됩시다. 저는 자라 오면서 제 주위의 사람들 중에서 지금보다 훨씬 더 잘 할 수 있는 사람인데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패가망신한 자들의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반면에 좋은 친구를 사귀어서 자기의 역량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삶을 사는 자들도 많이 보고 있습니다. 여러분 중에 친구의 덕분에 예수를 믿은 자들이 있다면 그분은 당신에게 최상의 친구입니다. 이러한 친구는 혈육의 형제보다도 더 귀합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사랑이 없나니”(요한복음 15:13)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당신을 친구로 삼으시고, 당신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버리신 것입니다. 당신을 그의 친구로 삼으신 것입니다. 친구의 믿음으로도 치료함을 받습니다. 주님이 행하신 치유 사역을 보면 몇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1 주님 자신이 병자를 긍휼이 여기신 경우입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 38년된 병자는 주님이 직접 찾아 가셔서 고쳐 주었습니다.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요한복음 5:6)고 했습니다.
2 병자 자신의 믿음입니다. 거지 소경 바디메오는 자신의 믿음으로 치유하심을 받았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마가복음 10:52)고 했습니다.
3 타인의 믿음을 보시고 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주님은 가버나움에 사는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하인의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으니라”(마태복음 8:13)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와같은 케이스입니다. 중풍 병자를 주께로 인도합시다.
본문에 3가지 유형의 사람이 나옵니다.
1 몸이 부자유한 중풍병자입니다. 일생 동안 남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본인에게도 불행하지만 많은 자들에게 누를 끼치는 삶입니다. 이 본문을 통해서 깨달아야 할 것은 나의 영적인 상태는 어떠한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2 복음을 방해하는 서기관입니다. 율법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복음을 가로막는 자입니다. 남에게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누를 끼치는 사람입니다. 복음을 가로막는 사단의 앞잡이 노릇입니다.
3 중풍병자의 친구들입니다. 친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자들입니다. 중풍병자를 예수께로 인도하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한 것입니다. 당신도 영혼을 구원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창세기 19:29)고 했습니다. “나사로 까닭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요한복음 12:11)고 했습니다. 당신은 주변에 영적으로 중풍병든 자를 주께로 인도해야 합니다.
첫째:주님이 가버나움에 오셨습니다. 읽을말씀 “수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신 소문이 들린지라”
(1) 주님이 가버나움에 오셨습니다. 가버나움이란 갈릴리 해변 북쪽에 위치한 동네입니다. 일명 예수님의 제2고향이라고 할 정도로 주님이 자주 출입한 곳입니다(마태복음 4:13). 그러면 오늘날의 가버나움은 어디인가 창원은 오늘의 가버나움입니다. 가버나움에 주님이 오신 것이 영광인 것처럼 창원 도성에 밀알제단이 세워진 것이 하나님의 크신 은총입니다. 이 제단에 주님이 와 계십니다. 왜 주님이 오셨는가 주님이 오신 목적이 무엇인가 오셔서 하신 일이 무엇인가 마태는 주님을 지상사역을 크게 세가지로 요약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마태복음 4:23)라고 했습니다.
1 회당에서 주로 가르쳤습니다. 율법을 바로 깨닫지 못하여 바른 길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2 광야에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광야와 빈들에서 방황하는 무리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주린 자들을 먹여 주었습니다.
3 병든자를 고쳤주었습니다. 육체적으로 고통받는 각종 질병을 치료해 주었습니다. 중풍 병자를 주께로 인도해야 합니다. 중풍 병자는 수족을 제대로 쓰지 못합니다. 혼자서 아무일도 할 수 없습니다. 누가 잡아 주어야 서고, 걷도록 부축해 주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주변에 영적으로 중풍병이 든 자들이 많습니다. 앞서 믿는 우리가 전화를 걸고, 찾아가서 인도하지 않으면 절대로 교회 나올 수 없는 자들이 많습니다. 기도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입이 있어도 찬양을 하지 못하며, 말씀의 의미를 깨닫지 못합니다. 이러한 자들에게 믿음이 자라도록 양육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둘째:장애물을 통과합시다. 읽을말씀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에라도 용신할 수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저희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2) 장애물을 통과해야 합니다. 모든 일에는 다 장애물이 있습니다. 학생이 공부하는데도 장애물이 있습니다. 오락장이나 불건전한 유흥가는 학생의 진로를 가로막는 장애물입니다. 이것을 극복해야 입시 관문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산을 오르는 산악인들에게도 수 많은 장애물이 있습니다. 이것을 극복하고 오를 때에 정상을 정복하게 됩니다. 영적인 세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이 주님을 만나는데는 마귀와 사단의 권세가 교모한 방법으로 방해를 합니다. 주일 성수를 방해하게 합니다.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합니다. 바른 봉사를 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러한 장애물을 극복하고 나갈 때 믿음이 자랍니다. 삭개오의 믿음을 배워야 합니다(누가복음 19:1-10). 여리고에 주님이 오셨습니다. 키 작은 삭개오가 주님을 만나려 갔습니다. 그러나 그 앞에 수 많은 키 큰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키 큰 무리들은 삭개오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입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이번에는 꼭 주님을 만나기로 결심했습니다. 방법을 연구하던 차에 앞으로 달려가서 뽕나무로 올라갔습니다. 이것은 보통의 결단이 아닙니다. 자신의 위신 체면 신분을 다 포기한 것입니다. 뽕나무에서 오른 그는 주님을 바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삭개오의 집에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주님을 자신의 마음속에 영접했던 것입니다. 삭개오에게 하늘문이 열리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장애물은 축복의 기회입니다. 중풍 병자를 데려온 친구들은 수 많은 사람으로 용신할 틈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붕으로 올라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주님을 목전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장애물은 주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 은총의 기회입니다. 찬송가 503장(고요한 바다로) 2절에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라고 합니다. 파도가 엄습해 와도 그 파도를 타면 오히려 더 쉽게 항해할 수 있습니다.
셋째:지붕을 뚫어야 합니다. 읽을말씀 “사람들이 한 중풍 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무리를 인하여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 병자의 상을 달아 내리 우니”(3-4) 지붕을 뚫어야 역사가 일어납니다. 지붕을 뚫지 않고는 중풍 병자를 예수께로 인도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중풍 병자를 위해 그들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행위입니다.
1 소유권 침해 행위입니다. 건물주가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내면 요구대로 지불해 주어야 합니다. 영혼 구원을 위해서 물질적인 헌신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2 집회 방해죄입니다. 용신할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모여 집회를 하는데 이를 방해하는 행위가 됩니다.
3 안식일 범죄 행위입니다. 안식일에 노동을 했을 뿐 아니라 유대교의 배신자인 이단자 앞에 나아간 행위입니다. 그러나 구령에 대한 열정이 이러한 장애물을 극복한 것입니다. 합심할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1 마음 통일입니다. 네 사람의 마음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중풍 병자를 네 사람이 매고 왔습니다. 그들의 지혜가 하나로 모아졌습니다.
2 사역 통일입니다. 각기 맡은 일을 했을 것입니다. 지붕을 오르는데 필요한 사다리며, 지붕을 뚫은데 필요한 도구며, 중풍 병자를 달아내리우는데 필요한 줄이며, 모든 것을 분담해서 준비했습니다.
3 행동 통일입니다. 병자를 달아 내릴 때 행동이 하나같이 민첩했습니다. 호흡까지 통일되었습니다. 만약에 한 사람이라도 실수하면 큰 불상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다시말해서 그들은 이 중풍병자를 예수께로 인도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총동원했습니다.
넷째:세인의 안목에 얽매이지 맙시다. 읽을말씀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의논하기를,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참람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6-7) 구습에 얽매이지 맙시다.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수많은 관습이 있었습니다. 248가지의 계율이 있었으며, 365가지의 금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적인 제도에 얽매인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만약 안식일을 어기면 돌에 맞아 죽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이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이루신 메시야이심을 믿었습니다. 그에게만 가면 중풍 병자가 나으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장매물을 뚫고 나아갔던 것입니다. 새로운 것에 항상 도전하며 삽시다. 율법주의자들은 모세의 법으로 항상 금하실 것을 찾았으나 주님은 의와 선을 행할 것을 가르쳤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저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마태복음 12:11-13)고 했습니다. 복음은 소금으로서 썩음을 방지하는 방부제임과 동시에 새로운 맛을 창조하는 조미료입니다. 더 나아가서 어두움과 싸워서 흑암 권세를 몰아내는 빛입니다. 중풍 병자를 주님께로 인도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적인 중풍 병자를 주께로 인도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가버나움에 오신 주님에게로 인도해야 합니다. 장애물을 통과해야 합니다. 지붕을 뚫고 중풍병자를 달아 내려야 합니다. 낡은 구습에 얽매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우리 주변에 오늘도 당신의 믿음을 통해서 고침을 받아야 할 중풍 병자가 많이 있습니다.
1 주님 자신이 병자를 긍휼이 여기신 경우입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 38년된 병자는 주님이 직접 찾아 가셔서 고쳐 주었습니다.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요한복음 5:6)고 했습니다.
2 병자 자신의 믿음입니다. 거지 소경 바디메오는 자신의 믿음으로 치유하심을 받았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마가복음 10:52)고 했습니다.
3 타인의 믿음을 보시고 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주님은 가버나움에 사는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하인의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으니라”(마태복음 8:13)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와같은 케이스입니다. 중풍 병자를 주께로 인도합시다.
본문에 3가지 유형의 사람이 나옵니다.
1 몸이 부자유한 중풍병자입니다. 일생 동안 남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본인에게도 불행하지만 많은 자들에게 누를 끼치는 삶입니다. 이 본문을 통해서 깨달아야 할 것은 나의 영적인 상태는 어떠한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2 복음을 방해하는 서기관입니다. 율법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복음을 가로막는 자입니다. 남에게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누를 끼치는 사람입니다. 복음을 가로막는 사단의 앞잡이 노릇입니다.
3 중풍병자의 친구들입니다. 친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자들입니다. 중풍병자를 예수께로 인도하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한 것입니다. 당신도 영혼을 구원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창세기 19:29)고 했습니다. “나사로 까닭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요한복음 12:11)고 했습니다. 당신은 주변에 영적으로 중풍병든 자를 주께로 인도해야 합니다.
첫째:주님이 가버나움에 오셨습니다. 읽을말씀 “수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신 소문이 들린지라”
(1) 주님이 가버나움에 오셨습니다. 가버나움이란 갈릴리 해변 북쪽에 위치한 동네입니다. 일명 예수님의 제2고향이라고 할 정도로 주님이 자주 출입한 곳입니다(마태복음 4:13). 그러면 오늘날의 가버나움은 어디인가 창원은 오늘의 가버나움입니다. 가버나움에 주님이 오신 것이 영광인 것처럼 창원 도성에 밀알제단이 세워진 것이 하나님의 크신 은총입니다. 이 제단에 주님이 와 계십니다. 왜 주님이 오셨는가 주님이 오신 목적이 무엇인가 오셔서 하신 일이 무엇인가 마태는 주님을 지상사역을 크게 세가지로 요약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마태복음 4:23)라고 했습니다.
1 회당에서 주로 가르쳤습니다. 율법을 바로 깨닫지 못하여 바른 길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2 광야에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광야와 빈들에서 방황하는 무리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주린 자들을 먹여 주었습니다.
3 병든자를 고쳤주었습니다. 육체적으로 고통받는 각종 질병을 치료해 주었습니다. 중풍 병자를 주께로 인도해야 합니다. 중풍 병자는 수족을 제대로 쓰지 못합니다. 혼자서 아무일도 할 수 없습니다. 누가 잡아 주어야 서고, 걷도록 부축해 주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주변에 영적으로 중풍병이 든 자들이 많습니다. 앞서 믿는 우리가 전화를 걸고, 찾아가서 인도하지 않으면 절대로 교회 나올 수 없는 자들이 많습니다. 기도가 무엇인지를 모르고, 입이 있어도 찬양을 하지 못하며, 말씀의 의미를 깨닫지 못합니다. 이러한 자들에게 믿음이 자라도록 양육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둘째:장애물을 통과합시다. 읽을말씀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에라도 용신할 수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저희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
(2) 장애물을 통과해야 합니다. 모든 일에는 다 장애물이 있습니다. 학생이 공부하는데도 장애물이 있습니다. 오락장이나 불건전한 유흥가는 학생의 진로를 가로막는 장애물입니다. 이것을 극복해야 입시 관문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산을 오르는 산악인들에게도 수 많은 장애물이 있습니다. 이것을 극복하고 오를 때에 정상을 정복하게 됩니다. 영적인 세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이 주님을 만나는데는 마귀와 사단의 권세가 교모한 방법으로 방해를 합니다. 주일 성수를 방해하게 합니다. 말씀을 듣지 못하게 합니다. 바른 봉사를 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러한 장애물을 극복하고 나갈 때 믿음이 자랍니다. 삭개오의 믿음을 배워야 합니다(누가복음 19:1-10). 여리고에 주님이 오셨습니다. 키 작은 삭개오가 주님을 만나려 갔습니다. 그러나 그 앞에 수 많은 키 큰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키 큰 무리들은 삭개오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입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이번에는 꼭 주님을 만나기로 결심했습니다. 방법을 연구하던 차에 앞으로 달려가서 뽕나무로 올라갔습니다. 이것은 보통의 결단이 아닙니다. 자신의 위신 체면 신분을 다 포기한 것입니다. 뽕나무에서 오른 그는 주님을 바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삭개오의 집에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삭개오는 주님을 자신의 마음속에 영접했던 것입니다. 삭개오에게 하늘문이 열리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장애물은 축복의 기회입니다. 중풍 병자를 데려온 친구들은 수 많은 사람으로 용신할 틈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붕으로 올라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주님을 목전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장애물은 주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는 은총의 기회입니다. 찬송가 503장(고요한 바다로) 2절에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라고 합니다. 파도가 엄습해 와도 그 파도를 타면 오히려 더 쉽게 항해할 수 있습니다.
셋째:지붕을 뚫어야 합니다. 읽을말씀 “사람들이 한 중풍 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무리를 인하여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 병자의 상을 달아 내리 우니”(3-4) 지붕을 뚫어야 역사가 일어납니다. 지붕을 뚫지 않고는 중풍 병자를 예수께로 인도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중풍 병자를 위해 그들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행위입니다.
1 소유권 침해 행위입니다. 건물주가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내면 요구대로 지불해 주어야 합니다. 영혼 구원을 위해서 물질적인 헌신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2 집회 방해죄입니다. 용신할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모여 집회를 하는데 이를 방해하는 행위가 됩니다.
3 안식일 범죄 행위입니다. 안식일에 노동을 했을 뿐 아니라 유대교의 배신자인 이단자 앞에 나아간 행위입니다. 그러나 구령에 대한 열정이 이러한 장애물을 극복한 것입니다. 합심할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1 마음 통일입니다. 네 사람의 마음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중풍 병자를 네 사람이 매고 왔습니다. 그들의 지혜가 하나로 모아졌습니다.
2 사역 통일입니다. 각기 맡은 일을 했을 것입니다. 지붕을 오르는데 필요한 사다리며, 지붕을 뚫은데 필요한 도구며, 중풍 병자를 달아내리우는데 필요한 줄이며, 모든 것을 분담해서 준비했습니다.
3 행동 통일입니다. 병자를 달아 내릴 때 행동이 하나같이 민첩했습니다. 호흡까지 통일되었습니다. 만약에 한 사람이라도 실수하면 큰 불상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다시말해서 그들은 이 중풍병자를 예수께로 인도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총동원했습니다.
넷째:세인의 안목에 얽매이지 맙시다. 읽을말씀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의논하기를,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참람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6-7) 구습에 얽매이지 맙시다.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수많은 관습이 있었습니다. 248가지의 계율이 있었으며, 365가지의 금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적인 제도에 얽매인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아무 일도 할 수 없었습니다. 만약 안식일을 어기면 돌에 맞아 죽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이 율법과 선지자의 글을 이루신 메시야이심을 믿었습니다. 그에게만 가면 중풍 병자가 나으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장매물을 뚫고 나아갔던 것입니다. 새로운 것에 항상 도전하며 삽시다. 율법주의자들은 모세의 법으로 항상 금하실 것을 찾았으나 주님은 의와 선을 행할 것을 가르쳤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저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마태복음 12:11-13)고 했습니다. 복음은 소금으로서 썩음을 방지하는 방부제임과 동시에 새로운 맛을 창조하는 조미료입니다. 더 나아가서 어두움과 싸워서 흑암 권세를 몰아내는 빛입니다. 중풍 병자를 주님께로 인도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적인 중풍 병자를 주께로 인도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가버나움에 오신 주님에게로 인도해야 합니다. 장애물을 통과해야 합니다. 지붕을 뚫고 중풍병자를 달아 내려야 합니다. 낡은 구습에 얽매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우리 주변에 오늘도 당신의 믿음을 통해서 고침을 받아야 할 중풍 병자가 많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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