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야 퇴수회 (왕상19:1-18)
본문
쉬는 것도 일하는 것입니다. 쉬는 것도 일하는 것입니다. 서울 남산 기슭에 있는 미8군 수양관 입구에 “하나님께로 가까이 가는 곳 퇴수회관”(Religious retreat center, A place to draw to near to God)이란 간판이 붙어 있습니다. 퇴수(退修)라는 말의 의미는 일선에 근무하는 병사들이 잠시 후방으로 나와서 휴식을 가지면서 근무 의욕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잠시 쉬는 수양을 말합니다. 이보 전진을 위해서 일시적으로 일보 후퇴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경제위기는 새로운 도약을 위한 쉼과 준비의 기회인 줄로 압니다. 엘리야의 퇴수회를 봅시다. 우리는 본문에서 열심이 특심한 엘리야가 엘리야답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열왕기상 19:4)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의 배후에는 철저한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하심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영육간에 지쳐서 쓰러져 있는 엘리야에게 떡과 물을 먹여서 호렙산 굴 퇴수회관에 서 잠시 쉬면서 영적으로 재충전하여 새롭게 사명을 감당하게 하신 것입니다.
첫째:로뎀나무 그늘은 영적인 충전소입니다. 읽을말씀 “로뎀나무 아래 누어 자더니 천사가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5-7) 로뎀 나무 아래서 쉬게 하십니다. 본문 5절 말씀에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라고 했습니다.
로뎀나무는 싸리나무의 일종입니다. 관목이기는 하나 사막을 여행하는 자들에게는 유일한 피난처요 안식처입니다. 아합의 포악한 정치에 지친 엘리야를 이세벨을 통해서 조금 쉬게 하신 것입니다. 사명의 현장에서 하루 길을 물러나서 로뎀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천사가 어루 만져 주셨습니다. 본문 5절 말씀에 “…천사가 어루만지며.”라고 했습니다. 천사가 오셔서 지쳐서 쓰러져 있는 엘리야의 얼굴을 어루만져 주신 것입니다. 그 순간 그는 영혼에 안식을 되찾게 된 것입니다. 저는 어릴 때에 깊은 밤이나 혹은 새벽녘이면 저의 조모님이 어루만지며 기도하는 소리를 듣고 자랐습니다. 그 소리가 지금도 제 귀에 쟁쟁하게 울리고 있습니다. 숯불에 구운 떡과 물을 먹여 주었습니다. 깊이 잠던 엘리야를 흔들어 깨워서는 “일어나서 먹으라”(5)고 하십니다. 깨어보니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병 물이 있었습니다. 이 떡과 물이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이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한복음 6:35)고 했습니다. 주일마다 먹는 밀알의강단 은 숯불에 구운 떡이요 병에 든 물입니다. 이것을 먹어야 험악한 광야를 걸어갈 수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28)고 했습니다. 먹고 마시고는 다시 누웠습니다. 천사가 다시 깨웠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7)고 했습니다. 한 번 먹은 말씀으로 광야를 이기지 못합니다. 출생은 순간적 단회적인 사건이나 양육은 생명이 있는 한 계속적입니다. 구원은 단회적으로 일시에 받으나 영혼의 양육은 계속적인 공급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둘째:하나님은 사명자를 호렙으로 인도하십니다. 읽을말씀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주 사십야를 행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8) 호렙산은 사명의 산입니다. 호렙산은 모세가 출애굽의 사명을 받은 산입니다.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출애굽기 3:1)라고 했습니다. 호렙은 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특별히 구별해 놓았던 산입니다. 모세는 여기에서 가시떨기 환상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출애굽을 위한 환상이요 계시인 것입니다. 호렙산은 계약의 산입니다. 바로 이 산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이 산으로 왔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출애굽기 3:12)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산에서 모세를 통해서 돌판 계시 십계명을 주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너는 이같이 야곱 족속에게 이르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라”(출애굽기 19:3)고 했습니다. 호렙산은 퇴수의 산입니다. 엘리야는 난생 처음으로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그 길은 자신의 지각이나 판단이나 힘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며 가고 있습니다.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주 사십야를 행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8)고 했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편 119:105)고 했습니다. 그가 가서 머물게 된 곳이 바로 하나님의 산 호렙인 것입니다. 그는 굴속에서 쉼을 통해 힘을 얻고 새로운 용기를 얻게 된 것입니다.
셋째:충전이 끝나면 사명의 현장으로 가야합니다. 읽을말씀 “엘리야가 그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유하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히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의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9-12) 일어나 굴에서 나옵시다. 호렙산 굴은 엘리야가 거할 영원한 처소가 아닙니다. 잠깐 쉬는 피난처 일 뿐입니다. 피로를 풀고 영혼의 소생함을 입은 후에는 다시 굴에서 나와야 합니다.
굴에는 빛이 없으니 어둡습니다. 어두운 가운데 오래 있으면 답답합니다. 굴에는 변화도 없고 자극도 없고 도전도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굴에 시체를 둡니다. 두려움과 공포와 죽음이 있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굴에서 오래 머물러 있으면 안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불렀습니다. “엘리야가 그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유하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9)고 했습니다. 그를 불러 내어서 하나님 앞에 세웠습니다. 세미한 음성을 들읍시다. 굴에서 나온 엘리야는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갑자기 바위가 날아갈 정도의 강풍이 불었습니다. 조금 있다가 땅이 갈라지는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그 후에 큰 불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다가 조금 후에 고요하고 조용한 가운데 세미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하나님은 바람과 지진과 불 같은 아합과 이세벨의 폭정같이 역사하기 보다는 조용한 가운데서 보이지 않게 섭리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세미한 음성으로 엘리야의 마음속에 찾아와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엘리야의 착각입니다.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히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14)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은 자기 혼자 뿐인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열심으로 사명을 감당하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하늘의 우로가 자기 기도로서 그쳐진 줄로 알았습니다. 갈멜산의 불이 자기의 열심이 이 루어진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후에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보니 보니 그것은 모두 착각인 것입니다.
넷째:하나님의 역사는 중단되지 않습니다. 읽을말씀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인을 남기리니다 무릎을 바알에게 끓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14, 18) 하나님의 역사는 절대로 중단되지 않습니다. 세상에 그 어떠한 자도 하나님의 역사를 항거할 자가 없습니다. 지상에 보이는 엘리야가 힘을 잃으니 하나님의 역사가 소멸되는 것 같이 보이나 결단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지하에 칠천의 무리들을 숨겨 두신 것입니다. “.밤나무 상수리 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이사야 6:13)고 했습니다. 이들은 바알에 무릎을 꿇지 않은 자들입니다. 그러한 폭정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바알에 무릎 꿇지 않은 무리들을 남겨 두신 것입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라,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다니엘 3:16-18)고 했습니다. 바알에게 입 맞추지 않은 자들입니다. 바알의 말에 동의하거나 믿지 않을 뿐 아니라 그의 말을 거부한 자들입니다. 부활신앙을 통해 오순절을 통과한 사도들 같은 무리들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사도행전 4:19-20)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엘리야에게 미친 위기는 영적 충전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1 로뎀나무는 영적인 재충전소입니다.
2 하나님은 사명자를 호렙산으로 인도하십니다.
3 충전이 끝나면 사명의 현장으로 가야합니다.
4 하나님의 역사는 중단 되지 않습니다. 성민을 홍해로 인도할 때는 그들이 알 수 없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습니다.
첫째:로뎀나무 그늘은 영적인 충전소입니다. 읽을말씀 “로뎀나무 아래 누어 자더니 천사가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5-7) 로뎀 나무 아래서 쉬게 하십니다. 본문 5절 말씀에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라고 했습니다.
로뎀나무는 싸리나무의 일종입니다. 관목이기는 하나 사막을 여행하는 자들에게는 유일한 피난처요 안식처입니다. 아합의 포악한 정치에 지친 엘리야를 이세벨을 통해서 조금 쉬게 하신 것입니다. 사명의 현장에서 하루 길을 물러나서 로뎀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천사가 어루 만져 주셨습니다. 본문 5절 말씀에 “…천사가 어루만지며.”라고 했습니다. 천사가 오셔서 지쳐서 쓰러져 있는 엘리야의 얼굴을 어루만져 주신 것입니다. 그 순간 그는 영혼에 안식을 되찾게 된 것입니다. 저는 어릴 때에 깊은 밤이나 혹은 새벽녘이면 저의 조모님이 어루만지며 기도하는 소리를 듣고 자랐습니다. 그 소리가 지금도 제 귀에 쟁쟁하게 울리고 있습니다. 숯불에 구운 떡과 물을 먹여 주었습니다. 깊이 잠던 엘리야를 흔들어 깨워서는 “일어나서 먹으라”(5)고 하십니다. 깨어보니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병 물이 있었습니다. 이 떡과 물이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이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한복음 6:35)고 했습니다. 주일마다 먹는 밀알의강단 은 숯불에 구운 떡이요 병에 든 물입니다. 이것을 먹어야 험악한 광야를 걸어갈 수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28)고 했습니다. 먹고 마시고는 다시 누웠습니다. 천사가 다시 깨웠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7)고 했습니다. 한 번 먹은 말씀으로 광야를 이기지 못합니다. 출생은 순간적 단회적인 사건이나 양육은 생명이 있는 한 계속적입니다. 구원은 단회적으로 일시에 받으나 영혼의 양육은 계속적인 공급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둘째:하나님은 사명자를 호렙으로 인도하십니다. 읽을말씀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주 사십야를 행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8) 호렙산은 사명의 산입니다. 호렙산은 모세가 출애굽의 사명을 받은 산입니다.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출애굽기 3:1)라고 했습니다. 호렙은 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특별히 구별해 놓았던 산입니다. 모세는 여기에서 가시떨기 환상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출애굽을 위한 환상이요 계시인 것입니다. 호렙산은 계약의 산입니다. 바로 이 산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이 산으로 왔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출애굽기 3:12)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산에서 모세를 통해서 돌판 계시 십계명을 주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너는 이같이 야곱 족속에게 이르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라”(출애굽기 19:3)고 했습니다. 호렙산은 퇴수의 산입니다. 엘리야는 난생 처음으로 가는 길입니다.
그런데 그 길은 자신의 지각이나 판단이나 힘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성령님의 인도를 받으며 가고 있습니다.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주 사십야를 행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8)고 했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편 119:105)고 했습니다. 그가 가서 머물게 된 곳이 바로 하나님의 산 호렙인 것입니다. 그는 굴속에서 쉼을 통해 힘을 얻고 새로운 용기를 얻게 된 것입니다.
셋째:충전이 끝나면 사명의 현장으로 가야합니다. 읽을말씀 “엘리야가 그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유하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히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가서 여호와의 앞에서 산에 섰으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의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9-12) 일어나 굴에서 나옵시다. 호렙산 굴은 엘리야가 거할 영원한 처소가 아닙니다. 잠깐 쉬는 피난처 일 뿐입니다. 피로를 풀고 영혼의 소생함을 입은 후에는 다시 굴에서 나와야 합니다.
굴에는 빛이 없으니 어둡습니다. 어두운 가운데 오래 있으면 답답합니다. 굴에는 변화도 없고 자극도 없고 도전도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굴에 시체를 둡니다. 두려움과 공포와 죽음이 있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굴에서 오래 머물러 있으면 안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를 불렀습니다. “엘리야가 그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유하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저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9)고 했습니다. 그를 불러 내어서 하나님 앞에 세웠습니다. 세미한 음성을 들읍시다. 굴에서 나온 엘리야는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갑자기 바위가 날아갈 정도의 강풍이 불었습니다. 조금 있다가 땅이 갈라지는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그 후에 큰 불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다가 조금 후에 고요하고 조용한 가운데 세미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하나님은 바람과 지진과 불 같은 아합과 이세벨의 폭정같이 역사하기 보다는 조용한 가운데서 보이지 않게 섭리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세미한 음성으로 엘리야의 마음속에 찾아와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엘리야의 착각입니다.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히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14)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은 자기 혼자 뿐인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열심으로 사명을 감당하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하늘의 우로가 자기 기도로서 그쳐진 줄로 알았습니다. 갈멜산의 불이 자기의 열심이 이 루어진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후에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보니 보니 그것은 모두 착각인 것입니다.
넷째:하나님의 역사는 중단되지 않습니다. 읽을말씀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인을 남기리니다 무릎을 바알에게 끓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14, 18) 하나님의 역사는 절대로 중단되지 않습니다. 세상에 그 어떠한 자도 하나님의 역사를 항거할 자가 없습니다. 지상에 보이는 엘리야가 힘을 잃으니 하나님의 역사가 소멸되는 것 같이 보이나 결단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지하에 칠천의 무리들을 숨겨 두신 것입니다. “.밤나무 상수리 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이사야 6:13)고 했습니다. 이들은 바알에 무릎을 꿇지 않은 자들입니다. 그러한 폭정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바알에 무릎 꿇지 않은 무리들을 남겨 두신 것입니다.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라,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다니엘 3:16-18)고 했습니다. 바알에게 입 맞추지 않은 자들입니다. 바알의 말에 동의하거나 믿지 않을 뿐 아니라 그의 말을 거부한 자들입니다. 부활신앙을 통해 오순절을 통과한 사도들 같은 무리들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사도행전 4:19-20)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엘리야에게 미친 위기는 영적 충전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1 로뎀나무는 영적인 재충전소입니다.
2 하나님은 사명자를 호렙산으로 인도하십니다.
3 충전이 끝나면 사명의 현장으로 가야합니다.
4 하나님의 역사는 중단 되지 않습니다. 성민을 홍해로 인도할 때는 그들이 알 수 없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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