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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훈련 (막6:7-13)

본문

영혼을 떠겁게 사랑합시다. 개미에게 교훈을 받읍시다. 저는 어려서 산과 들에 소를 먹이려 나가서 쉬는 동안에 개미들을 자주 보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개미들이 분주하게 왕래 하는데 어떤 개미들은 집 주변을 빙빙 돌고만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후에 안 일이지만 개미들이 하루 일과를 위하여 집을 나설 때에 왕개미에게 서약을 하고 나갑니다. 그 서약은 돌아올 때에 반드시 양식을 물고 들어오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식을 얻지 못한 개미들이 주변을 빙빙 돌면서 먹이를 찾고 있습니다.
당신도 주의 전에 들어올 때 한 영혼을 인도하여 오시기 바랍니다. 제자는 훈련으로 됩니다. 제자(disciple)란 말과 훈련(discipline)이란 말은 같은 동의어입니다. 훈련받지 않은 자는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제자는 훈련으로 됩니다. 요즈음 교회마다 제자 훈련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제자들을 불러서 훈련시킨 것과는 차이가 많습니다. 주님은 앉아서 학습을 시킨 것이 아니라 현장에 데리고 다니면서 직접 보고 행하게 하셨습니다. 제자 훈련은 학문적으로 가르치는 지식 전달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배우는 인격적인 전수였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은 후일에 다 능력 있는 전도자가 다 되었습니다. 당신도 능력 있는 전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소명 의식을 가지고 사명을 받아야 합니다. 읽을 말씀 “열두 제자를 부르사 둘씩 둘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시고”(7) 부르심을 받아야 합니다. 목사가 되기 위하여 신학 대학원에 입학할 때 노회에서 면접을 합니다. 이때 소명을 받았는지 묻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목사로 부르셨다”는 강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크게 쓰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나를 밀알교회로 부르셨다는 확실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에서 중한 직분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어떤 회사에 근무하고자 할 때 그 회사를 책임진 사장에게 부르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곳에서 근무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다 이러한 소명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이러한 소명을 받았습니다.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사도행전 9:3-4)고 했습니다. 사명의 현장으로 가야 합니다. 주님은 먼저 불러서 믿음이 생긴 후에 사역의 현장에서 일하도록 보내신 것입니다. 당신이 전도인의 사명을 가지고 현장으로 나갈 때 잃어버린 영혼들을 먼저 찾아 세워 주어야 합니다. 바울의 전도 여행은 바로 이러했습니다(마태복음 10:5-6, 사도행전 1:8). 가서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져 받았으니 거져 주어라”(마태복음 10:8)고 했습니다. 병든 자를 고치면서 그 고통에 동참하고, 영적으로 죽은 자에게 소망을 주고, 부정한 문둥병자를 깨끗하게 해며, 사단에게 눌린 자들은 자유를 주어야 합니다. 권능을 받아야 합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사단의 권세를 묶는 데는 주님의 이름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현장에 나가서 변론하기를 좋아해서는 안됩니다. 모세가 바로 앞에 나아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킨 사건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민을 자유케 하는 길은 예수 피밖에 없습니다(찬송가 184장). 이는 성령님의 능력으로만이 가능합니다. “오직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사도행전 1:8)고 했습니다.
둘째:목숨을 걸고 일해야 합니다. 읽을말씀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주머니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것도 가지지 말며, 신만 신고 두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마가복음 6:8-9) 이 말씀의 참된 뜻이 무엇인가 마태는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군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마태복음 10:9-10)고 했습니다. 이 말씀이 서로 불일치 하는 것 같으나 깊이 묵상해 보면 다 같은 말씀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먼저 이 말씀의 원리적인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구약시대 성전에 수종 드는 레위지파 족속들은 양식을 위하여 씨를 뿌리고 농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른 지파보다 더 풍성함을 누렸습니다. 신약에 복음 전도자들도 마찬가지로 마찬가지였습니다. 주님은 한 번도 자기를 따르는 자들을 주리게 버려두신 적이 없었습니다.
벳세다 사건은 좋은 실물 교훈입니다. 영적인 복음을 전하면 육적인 빵은 하나님이 예비하십니다. 전적으로 신뢰하는 청지기가 됩시다. 만약 주머니나 전대에 돈이 있으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안을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은과 금이 없을 때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증거 했던 것입니다(사도행전 3:6). 성전에 봉사하는 제사장들은 성전에서 봉사하는 일 외에 다른 일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만약에 다른 옷이 필요했다면 제사장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당신은 예수의 피 묻은 세마포 외에 입을 옷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손에 쥔 지팡이나 발에 신은 신 외에 다른 무엇이 필요 없습니다. 그 어떠한 옷으로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오늘 당신에게 주신 사명의 현장에서 신실하면 하나님은 당신의 길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셋째:현장을 잘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읽을말씀 “또 가라사대 어디서든지 뉘 집에 들어가거든 그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10-11) 시장 조사(marketing research)을 합시다. 공장에서 물품을 생산하는 분이 판매 전략을 세우지 않고 물건을 만들어서 성공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전도자는 그 지역의 영적인 상태를 모르고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울같이 먼저 그 지역의 사람들과 동질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고린도전서 9:19)고 했습니다. 감정이입(感情移入)이 될 때 비로소 말에 설득력을 얻게 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평강을 빕시다.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마태복음 10:12-13)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된 인간은 모든 영역에서 평화를 잃어버렸습니다. 주님은 이러한 인간에게 참된 평화를 주기 위해서 오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만나는 자들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평화를 베풀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모든 영역에서 참평화를 회복해야 합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누가복음 2:14)고 했습니다.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증거합시다. 유대인들은 여행을 하고 돌아올 때 이방의 지역에서 묻은 먼지를 떨어버리는 결례가 있었습니다. 본문에서 이 비유를 사용하신 것은 그 영혼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표시입니다. “가령 내가 악인에게 이르기를 악인아 너는 정녕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네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 길에서 떠나게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 그러나 너는 악인에게 경고하여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라고 하되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지 아니하면 그는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전하리라”(에스겔 33:8-9)고 했습니다.
넷째:사람을 세워 주는 긍정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읽을말씀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인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12-13) 복음은 사람을 세워 줍니다. 예수를 만나면 인생이 변합니다. 갈대 인생 시몬을 반석 같은 베드로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교회를 진멸하고 주님을 대적했던 사울이 주님의 신실한 전도자가 되어 교회를 세우는 바울로 변화된 것입니다. 주님을 만난 인생은 다 새롭게 변화를 받았습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 잡힌 여인이 변화를 받았습니다. 세리장 삭개오가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수가성의 여인이 변화를 받았습니다. 당신은 세우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당신을 만나고 나면 그 사람이 세워져야 합니다. 잃어버린 용기를 되찾고 삶의 의욕을 가지고 인생을 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잘 하는 사람에게 접근하여 허물어지게 해서는 안됩니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영에 지배를 받고 살게 되어 있습니다. 이 땅 위에 사는 자들을 두 가지 영의 지배 아래 있습니다. 예수의 영인 성령님에 지배를 받고 사는 자와 사단의 영인 추하고 더러운 악령에 지배를 받고 사는 자가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지배를 받아 성령님 충만함으로 시와 찬미로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에베소서 5:15-21). 그렇지 못할 때 사단의 지배 아래서 멸망의 길을 가게 됩니다(마가복음 5:1-5). 교회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영적인 귀신들린 자를 온전케 하는 일입니다. 이 일은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입니다. 그러나 소홀히 해서는 안되는 영역이 있습니다. 병든 자에게 기름을 바르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이것이 하나의 의료행위였습니다. 교회가 의료 행위를 죄악시해서는 안됩니다. 기름이 현대적인 의미로는 지혜와 지식이며, 봉사와 헌신과 구제의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영적인 사역과 물질적인 사역을 동시적으로 행해야 합니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야고보서 5:14)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전도는 주님의 최후부탁입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태복음 28:18-20),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마가복음 16:15), “오직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사도행전 1:8)고 했습니다. 능력 있는 전도자는 소명 의식을 가지고 사명을 받아야 합니다. 목숨을 걸고 일해야 합니다. 현장을 잘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사람을 세워주는 긍정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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