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낚는 어부 (마13:47-50)
본문
사람낚는 어부가 됩시다. 마귀들의 총회가 모였습니다. 주제는 교회 파괴와 인간 멸망 입니다. 먼저 머리가 좋은 마귀가 일어나서 말하기를 우리가 세상에 내려가서 “하나님이 없다”고 증거합시다 그러면 교회가 문을 닫을 것이다 고 했으나 별 호응을 얻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계시는 증거가 너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재치가 있고 깨가 많은 마귀가 일어나서 말하기를 우리 모두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다”고 주장합시다 하자 많은 무리가 동의했으나 이것도 부결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이름을 부를 때 마귀가 벌벌 떨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엔 힘이 장사인 마귀가 일어서더니 저들이 성령님의 힘으로 일을 하는 것 갔는데 “성령님의 역사는 초대교회때 끝이 났다”고 합시다 하자 모두들 환영하는 것 같으나 결국 채택이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성령님의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어리숙한 마귀가 일어서더니 우리가 세상에 가서 “하나님도 있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성령님은 보혜사”라고 증거합시다. 그러나 한가지 강조할 것은 “지금은 구원의 때가 아니다”
그러므로 오늘 믿지 않아도 된다 고 합시다. 이 때 모든 마귀들이 일제히 일어서서 박수를 치면서 바로 이것이다 하고 만장일치로 채택을 하였습니다.
지금이 바로 전도할 때입니다. 세상에 아무리 급하고 중한 일이 있어도 복음전하는 일보다 급하고 중한 일은 없습니다. 톨스토이는 그의 민화집에서 말하기를 인생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지금이요,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하는 일이요,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다 고 했습니다. 바울은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린도후서 6: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디모데후서 4:2)고 했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됩시다. 주님은 구원사역을 위해서 제자훈련을 시작했습니다. 주님은 제자를 세우실 때 삶의 현장에서 찾았습니다. 갈릴리 바다를 거닐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주의 깊게 관찰해 보았습니다. “갈리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고 저희는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르 좇으니라,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그 부친 세베대와 한가지로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마태복음 4:18-22)고 했습니다. 기독교는 복음을 가지고 사람의 영혼을 낚는 구원의 종교입니다. 우리 모두 구령운동에 불타는 전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첫째:전도의 현장인 바닷가로 갑시다. 먼저 바닷가로 갑시다. 바닷가는 어부들의 삶의 터전입니다. 어부는 바다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어부는 바다를 좋아해야 합니다. 바다는 어부들의 희로애락인 삶의 터전인 동시에 축복의 노다지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했습니다. 어부가 고기를 잡기 위하여 바닷가로 나가야 하는 것처럼 성도는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세상으로 나가야 합니다. 기독교는 복음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가는 종교입니다.
1 하나님은 에덴의 바닷가로 가셨습니다. 거기서 아담을 찾았습니다. “.네가(아담아) 어디 있느냐”(창세기 3:9)하고 불렀습니다. 그의 손에는 피묻은 가죽옷이 쥐어져 있었습니다(창세기 3:21).
2 예수님도 세상이라는 바닷가로 오셨습니다.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요한복음 1:9)고 했습니다. 주님은 하늘 보좌를 버리고 세상이라는 바닷가로 오셨습니다. 3 이제 당신도 바닷가로 가야 합니다. 성도가 세상을 등지고 살아서는 안됩니다. 세상속에 들어가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너희는 세상에 소금이니., 너희는 세상에 빛이라. ”(마태복음 5:13-14)고 했습니다. 우리의 가정이나 이웃이나 직장은 구원의 복음을 전해야 할 영적인 바다입니다. 바다에는 각종 물고기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태복음 28:19),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마가복음 16:15)고 했습니다. 복음은 다양하게 선포되어야 하고 교회는 다양한 무리들이 모여야 합니다. 1 남녀노소가 모여 한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마가 다락방은 참으로 지상교회를 세워 가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입니다(사도행전 1:14).
2 빈부와 귀천의 차별이 없어야 합니다.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필요를 따라 나누어 가졌습니다(사도행전 2:44-4
5). 3 지위고하를 무론하고 사도의 가르침 아래 한 상에서 떡을 떼었습니다(사도행전 2:42). 바다에서는 풍랑을 조심해야 합니다. 바다에는 언제든지 풍랑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마태복음 8:24)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복음 전파에는 반드시 사단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단의 권세를 결박하기 위해서 항상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종말로 너희가 주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에베소서 6:10-11)고 했습니다.
둘째:말씀의 그물을 내립시다. 그물은 고기잡는 도구입니다. 이 땅 위에 수많은 인생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다양한 그물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갑니다.
1기업인들은 돈의 그물을 가지고 사람을 모습니다. 돈은 인생에게 진정한 행복을 주지 못합니다.
2 정치인은 권세의 그물로 사람을 모습니다. 그러나 권력은 영원한 것이 못됩니다. 3 학자들은 지식의 그물로 사람을 모습니다. 그러나 지식도 폐할 날이 옵니다. 타락한 인생이 개발한 것은 다 부분적인 것입니다(고린도전서 13:8-10).
4 중생한 성도는 복음으로 사람을 낚습니다. 사람의 영혼을 낚을 수 있는 그물은 복음밖에 없습니다. 죄와 사망 권세 아래 있는 자들을 낚기 위해서는 예수복음, 예수생명, 예수 십자가 밖에 없습니다. 구원역사에 나타난 그물은 이러합니다. 외적인 그물의 형태는 조금씩 달라 보이나 그 본질은 동일합니다. 1 노아 시대는 방주가 그물이었습니다. 잣나무에 역청을 바른 방주는 죄악의 홍수에서 구원을 주시는 예수 십자가였습니다.
2 출애굽시대에는 유월절 어린양이 그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는 길은 유월절 어린양밖에 없었습니다. 3 가나안 시대에는 성전의 제사였습니다. 놋제단에 올려진 제물이 백성들의 죄를 속하는 오실 메시야의 표상이었습니다.
4 신약시대에는 예수 십자가가 그물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주님께 부름받은 사람을 낚는 어부 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린도전서 1:18)고 했습니다. 십자가의 도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절대 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물을 내릴 때 주의할 사실은 이러합니다.
1 찢어진 곳을 깁어야 합니다. 당신의 마음에 미움이 싹트면 복음의 그물이 찢어집니다.
그러므로 시기와 질투로 찢어진 그물을 사랑의 바늘로 깁어야 합니다. 교회는 은혜가 풍성한 가운데 화평중에서 부흥하고 성장합니다. 찢어진 그물은 고기를 가둘 수 없습니다.
2 녹슬고 삭은 그물을 교체해야 합니다. 여주인의 장중을 벗어난 드라크마는 처마 밑에서 녹슬게 됩니다. 당신의 달란트가 주님의 장중에서 벗어나면 녹슬게 됩니다. 녹슨 그물은 삭아서 떨어짐으로 고기를 가둘 수 없습니다.
3 더러운 오물을 털어 버려야 합니다. 그물은 항상 깨끗이 씻어서 보관해야 합니다. 교회와 세상의 울타리가 허물어져 버리면 성도가 맛 잃은 소금이 되고 맙니다. 교회의 생명은 거룩과 성결입니다.
셋째:끌어 올려 좋은 것은 그릇에 담읍시다. 그물을 올릴 때 타이밍을 맞춥시다. 그물에 든 고기도 놓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전도한 양무리를 주의 전으로 인도하는데는 많은 주의를 해야 합니다.
1교회는 이러한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적절한 메시지를 준비합시다. 구도자들이 드릴 수 있는 예배부서가 있으면 더욱 좋습니다. 밀알 제단에는 주일 Ⅱ.부예배와 수요 I부예배가 비교적 적당합니다. 성도의 아름다운 만남인 영적인 교통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이것은 구역과 전도회에서 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헌신할 수 있는 사역의 장이 열여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적절한 영적 프로그램을 많이 개발해야 합니다.
2 인도자는 양육을 책임져야 합니다. 모판에서 이식한 묘목을 가꾸는 심정으로 돌보아야 합니다. 물을 주어 잔뿌리가 빨리 내리게 합니다. 그리고 잡초를 뽑아 주어야 합니다. 지줏대를 세워 넘어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적절히 영양을 공급해 주어서 빨리 자라게 하여야 합니다. 좋은 고기는 사명자로 키웁시다. 초신자가 양육을 받아서 소명을 깨닫을 때 그는 사명자로서 쓰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이사야 43:1)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깨닫음이 왔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사역에 헌신할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최후는 어떠할 것인가 그물을 끌어올림은 최후심판입니다. 그물이 뭍으로 올라오는 순간 고기의 운명은 끝이 납니다.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버리느니라”(48)고 했습니다. 버릴 것이 있고 담을 것이 있습니다. 좋은 고기는 선택받은 천국의 백성들이요, 못된 것은 버림받은 멸망의 자식들입니다.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태복음 13:49-50)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의 입성자들 중에서 아간을 골라내었습니다(여호수아 7:25-26). 주님은 초대교회에서 성령님을 속인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저주했습니다(사도행전 5:3, 9). 주님은 열두 무리 중에서 가롯 유다를 골라내었습니다(마태복음 27:5). 이 비유의 핵심은 주님의 최후 심판입니다. 당신도 복음에 충성된 전도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이 바로 전도할 때입니다. 현장인 바닷가로 갑시다. 온 천하 만민은 우리가 전해야 할 복음의 대상입니다. 말씀의 그물을 내립시다. 십자가의 도는 우리가 내려야 할 그물입니다. 끌어 올려 좋은 것은 그릇에 담읍시다. 좋은 고기는 천국의 주인입니다. 당신은 최후가 아름답기를 축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계시는 증거가 너무도 많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재치가 있고 깨가 많은 마귀가 일어나서 말하기를 우리 모두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다”고 주장합시다 하자 많은 무리가 동의했으나 이것도 부결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이름을 부를 때 마귀가 벌벌 떨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엔 힘이 장사인 마귀가 일어서더니 저들이 성령님의 힘으로 일을 하는 것 갔는데 “성령님의 역사는 초대교회때 끝이 났다”고 합시다 하자 모두들 환영하는 것 같으나 결국 채택이 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성령님의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어리숙한 마귀가 일어서더니 우리가 세상에 가서 “하나님도 있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성령님은 보혜사”라고 증거합시다. 그러나 한가지 강조할 것은 “지금은 구원의 때가 아니다”
그러므로 오늘 믿지 않아도 된다 고 합시다. 이 때 모든 마귀들이 일제히 일어서서 박수를 치면서 바로 이것이다 하고 만장일치로 채택을 하였습니다.
지금이 바로 전도할 때입니다. 세상에 아무리 급하고 중한 일이 있어도 복음전하는 일보다 급하고 중한 일은 없습니다. 톨스토이는 그의 민화집에서 말하기를 인생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지금이요, 가장 중요한 일은 지금 하는 일이요, 가장 중요한 사람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다 고 했습니다. 바울은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린도후서 6:2),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디모데후서 4:2)고 했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됩시다. 주님은 구원사역을 위해서 제자훈련을 시작했습니다. 주님은 제자를 세우실 때 삶의 현장에서 찾았습니다. 갈릴리 바다를 거닐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주의 깊게 관찰해 보았습니다. “갈리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고 저희는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르 좇으니라,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그 부친 세베대와 한가지로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마태복음 4:18-22)고 했습니다. 기독교는 복음을 가지고 사람의 영혼을 낚는 구원의 종교입니다. 우리 모두 구령운동에 불타는 전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첫째:전도의 현장인 바닷가로 갑시다. 먼저 바닷가로 갑시다. 바닷가는 어부들의 삶의 터전입니다. 어부는 바다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어부는 바다를 좋아해야 합니다. 바다는 어부들의 희로애락인 삶의 터전인 동시에 축복의 노다지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했습니다. 어부가 고기를 잡기 위하여 바닷가로 나가야 하는 것처럼 성도는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세상으로 나가야 합니다. 기독교는 복음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가는 종교입니다.
1 하나님은 에덴의 바닷가로 가셨습니다. 거기서 아담을 찾았습니다. “.네가(아담아) 어디 있느냐”(창세기 3:9)하고 불렀습니다. 그의 손에는 피묻은 가죽옷이 쥐어져 있었습니다(창세기 3:21).
2 예수님도 세상이라는 바닷가로 오셨습니다.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요한복음 1:9)고 했습니다. 주님은 하늘 보좌를 버리고 세상이라는 바닷가로 오셨습니다. 3 이제 당신도 바닷가로 가야 합니다. 성도가 세상을 등지고 살아서는 안됩니다. 세상속에 들어가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너희는 세상에 소금이니., 너희는 세상에 빛이라. ”(마태복음 5:13-14)고 했습니다. 우리의 가정이나 이웃이나 직장은 구원의 복음을 전해야 할 영적인 바다입니다. 바다에는 각종 물고기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태복음 28:19),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마가복음 16:15)고 했습니다. 복음은 다양하게 선포되어야 하고 교회는 다양한 무리들이 모여야 합니다. 1 남녀노소가 모여 한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마가 다락방은 참으로 지상교회를 세워 가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입니다(사도행전 1:14).
2 빈부와 귀천의 차별이 없어야 합니다.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필요를 따라 나누어 가졌습니다(사도행전 2:44-4
5). 3 지위고하를 무론하고 사도의 가르침 아래 한 상에서 떡을 떼었습니다(사도행전 2:42). 바다에서는 풍랑을 조심해야 합니다. 바다에는 언제든지 풍랑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부딪혀 배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마태복음 8:24)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복음 전파에는 반드시 사단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단의 권세를 결박하기 위해서 항상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종말로 너희가 주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에베소서 6:10-11)고 했습니다.
둘째:말씀의 그물을 내립시다. 그물은 고기잡는 도구입니다. 이 땅 위에 수많은 인생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다양한 그물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갑니다.
1기업인들은 돈의 그물을 가지고 사람을 모습니다. 돈은 인생에게 진정한 행복을 주지 못합니다.
2 정치인은 권세의 그물로 사람을 모습니다. 그러나 권력은 영원한 것이 못됩니다. 3 학자들은 지식의 그물로 사람을 모습니다. 그러나 지식도 폐할 날이 옵니다. 타락한 인생이 개발한 것은 다 부분적인 것입니다(고린도전서 13:8-10).
4 중생한 성도는 복음으로 사람을 낚습니다. 사람의 영혼을 낚을 수 있는 그물은 복음밖에 없습니다. 죄와 사망 권세 아래 있는 자들을 낚기 위해서는 예수복음, 예수생명, 예수 십자가 밖에 없습니다. 구원역사에 나타난 그물은 이러합니다. 외적인 그물의 형태는 조금씩 달라 보이나 그 본질은 동일합니다. 1 노아 시대는 방주가 그물이었습니다. 잣나무에 역청을 바른 방주는 죄악의 홍수에서 구원을 주시는 예수 십자가였습니다.
2 출애굽시대에는 유월절 어린양이 그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는 길은 유월절 어린양밖에 없었습니다. 3 가나안 시대에는 성전의 제사였습니다. 놋제단에 올려진 제물이 백성들의 죄를 속하는 오실 메시야의 표상이었습니다.
4 신약시대에는 예수 십자가가 그물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주님께 부름받은 사람을 낚는 어부 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린도전서 1:18)고 했습니다. 십자가의 도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절대 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물을 내릴 때 주의할 사실은 이러합니다.
1 찢어진 곳을 깁어야 합니다. 당신의 마음에 미움이 싹트면 복음의 그물이 찢어집니다.
그러므로 시기와 질투로 찢어진 그물을 사랑의 바늘로 깁어야 합니다. 교회는 은혜가 풍성한 가운데 화평중에서 부흥하고 성장합니다. 찢어진 그물은 고기를 가둘 수 없습니다.
2 녹슬고 삭은 그물을 교체해야 합니다. 여주인의 장중을 벗어난 드라크마는 처마 밑에서 녹슬게 됩니다. 당신의 달란트가 주님의 장중에서 벗어나면 녹슬게 됩니다. 녹슨 그물은 삭아서 떨어짐으로 고기를 가둘 수 없습니다.
3 더러운 오물을 털어 버려야 합니다. 그물은 항상 깨끗이 씻어서 보관해야 합니다. 교회와 세상의 울타리가 허물어져 버리면 성도가 맛 잃은 소금이 되고 맙니다. 교회의 생명은 거룩과 성결입니다.
셋째:끌어 올려 좋은 것은 그릇에 담읍시다. 그물을 올릴 때 타이밍을 맞춥시다. 그물에 든 고기도 놓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전도한 양무리를 주의 전으로 인도하는데는 많은 주의를 해야 합니다.
1교회는 이러한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적절한 메시지를 준비합시다. 구도자들이 드릴 수 있는 예배부서가 있으면 더욱 좋습니다. 밀알 제단에는 주일 Ⅱ.부예배와 수요 I부예배가 비교적 적당합니다. 성도의 아름다운 만남인 영적인 교통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이것은 구역과 전도회에서 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헌신할 수 있는 사역의 장이 열여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적절한 영적 프로그램을 많이 개발해야 합니다.
2 인도자는 양육을 책임져야 합니다. 모판에서 이식한 묘목을 가꾸는 심정으로 돌보아야 합니다. 물을 주어 잔뿌리가 빨리 내리게 합니다. 그리고 잡초를 뽑아 주어야 합니다. 지줏대를 세워 넘어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적절히 영양을 공급해 주어서 빨리 자라게 하여야 합니다. 좋은 고기는 사명자로 키웁시다. 초신자가 양육을 받아서 소명을 깨닫을 때 그는 사명자로서 쓰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이사야 43:1)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깨닫음이 왔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사역에 헌신할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최후는 어떠할 것인가 그물을 끌어올림은 최후심판입니다. 그물이 뭍으로 올라오는 순간 고기의 운명은 끝이 납니다.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버리느니라”(48)고 했습니다. 버릴 것이 있고 담을 것이 있습니다. 좋은 고기는 선택받은 천국의 백성들이요, 못된 것은 버림받은 멸망의 자식들입니다.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태복음 13:49-50)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의 입성자들 중에서 아간을 골라내었습니다(여호수아 7:25-26). 주님은 초대교회에서 성령님을 속인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저주했습니다(사도행전 5:3, 9). 주님은 열두 무리 중에서 가롯 유다를 골라내었습니다(마태복음 27:5). 이 비유의 핵심은 주님의 최후 심판입니다. 당신도 복음에 충성된 전도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이 바로 전도할 때입니다. 현장인 바닷가로 갑시다. 온 천하 만민은 우리가 전해야 할 복음의 대상입니다. 말씀의 그물을 내립시다. 십자가의 도는 우리가 내려야 할 그물입니다. 끌어 올려 좋은 것은 그릇에 담읍시다. 좋은 고기는 천국의 주인입니다. 당신은 최후가 아름답기를 축원합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