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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힘을 얻으리니 (사40:27-31)

본문

독수리 같이 삽시다. 성공적인 삶을 삽시다. 어떤 사람이 현인을 찾아갔습니다. 그는 인생을 후회없이 성공적으로 사는 삶의 비결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그때 현인은 그에게 말하기를 인생에게 중요한 세 가지가 있어야 합니다.
첫째, 독수리의 눈입니다. 이것은 정확한 직관력입니다. 독수리는 높은 창공을 날면서도 땅에 기어다니는 먹이를 찾을 정도로 사물을 정확하게 직시하는 예리한 눈을 가졌습니다.
둘째, 예리한 검입니다. 이것은 과감한 결단력을 말합니다. 지도자의 덕목 중에 가장 중요한 자질 중에 하나가 결단력입니다.
셋째, 뜨거운 가슴입니다. 이것은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말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힘은 사랑의 힘입니다. 사랑만이 사람의 강퍅한 심령을 변화시킵니다. 오늘 본문은 당신에게 성공적인 삶을 사는 영적인 비밀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면 새힘을 주십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힘을 얻으리니 …”(31)라고 했습니다. 여기 앙망(仰望-wait)이란 말은 우러를 앙(仰), 바랄 망(望)인데 우러러 바라보고 기다리는 것 을 말합니다. 땅위에 인생들은 자신보다 조금 나은 자만 보면 우러러봅니다. 더 나아가서 어리석게 숭배하고 경외합니다. 이 세상에서 인간이 참으로 우러러볼 대상은 창조주 하나님뿐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우러러보면 새힘을 얻습니다. 자연적인 인간으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칼빈은 전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한 인간 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물과 성령님으로 거듭나야 한다(요한복음 3:3)고 했습니다. 거듭난 종들은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능력을 받아 새힘을 얻어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독수리 같이 삽시다.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31)라고 했습니다. 독수리는 어떤 새인가 독수리의 기상은 어떠한가 독수리는 올라가는 새입니다. 높이 고지를 정복하는 승리자의 삶을 사는 새입니다. 독수리는 멀리 보는 새입니다. 먼 안목과 넓은 시야를 가지고 삽니다.
그러므로 좁은 소견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독수리의 날개는 지치지 않는 날개입니다. 이 날개는 훈련된 날개이므로 피곤하거나 곤비치 않는 날개입니다. 언제나 싱싱한 삶을 삽니다.
첫째:새힘을 얻으면 원망과 탄식이 살라집니다. 읽을말씀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27-28) 닭장속에 독수리가 되지 맙시다. 인디언의 전설에 이러한 애기가 있습니다. 어느 한 소년이 산에 가서 독수리 알을 하나 주어다가 닭장 속에 두었습니다. 닭이 계란과 함께 품었다가 알을 깠습니다. 이 독수리는 유달리 몸집이 커서 병아리들과 다른 자신을 보고 비관하기 시작합니다. 왜 나는 날개가 클까 왜 나는 부리가 사나울까 왜 나는 발톱이 날카로울까 고민한 나머지 털과 깃을 다 뽑아 버렸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맹수와 같은 무서운 새가 공중을 비행하며 순찰하자 모든 새들이 다 숨어 버립니다. 바로 그 새가 자기와 너무도 닮았던 어미 독수리였습니다. 그러나 이젠 자기에게는 부리도 망가졌고, 털도 뽑혔고, 발톱도 다 빠져 버린 고아와 같은 존재가 되어 버렸습니다. 성민의 탄식을 들어봅시다. 성민 이스라엘과 유다는 앗수르와 바벨론이라는 닭장 속에 갇혀 버렸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믿는 하나님을 앗수르와 바벨론의 바알이나 아세라보다 못한 것인 줄로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계약의 날개를 다 뽑아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우상 앞에 엎드려 절하는 어리석은 인생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본문의 탄식입니다. 사단이 가장 잘 사용하는 무기가 원망과 불평입니다. 성민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 40년 광야생활에서 마귀가 즐겨 사용한 무기가 원망과 불평이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면 하늘문이 열리지만 원망하고 불평하면 가는 곳마다 길이 막힙니다. 인생의 참된 행복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인생의 불행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는가 하나님을 떠나면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하나님 품으로 돌아가기 전에는 참된 행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아 가 행복의 근원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위하여 새로운 한 집을 새워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지상교회입니다. 천국이 후일에 우리가 가서 거할 본점이라면 지상교회는 잃어버린 본점을 되찾는 지점입니다. 이곳에서 그리스도의 피로서 새롭게 지음을 받은 새피조물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고린도후서 5:17). 이제 당신이 그 하나님만 의지할 때 모든 원망과 불평에서 자유합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한복음 16:33)고 했습니다.
둘째:새힘을 얻으면 피곤함이 물러갑니다. 읽을말씀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29-30) 현대인의 공통어가 무엇인가 피곤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살기가 힘이 든다는 말입니다. 사실은 요즈음이 옛날보다 모든 면에서 부요한 시대입니다.
그런데 살기는 전보다 더 힘이 듭니다. 교통수단도 전보다 훨씬 더 발달되었으나 이상하게도 전보다 더 바쁩니다. 주택도 전보다 훨씬 더 좋아졌으나 잠을 이루지 못하는 자들이 더 많습니다. 전보다 훨씬 더 많이 배웠으나 심령의 상태는 더욱더 강퍅해져 갑니다. 그래서 전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살게 됩니다. 인간의 한계상황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에 당신이 집뜰에 대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고 매일 하루 한 번씩 뛰어 넘는다고 합시다. 그러면 후일에 10미터가 넘게 자라는 대나무도 넘을 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매일 매일 넘는 대나무를 어느날엔가 넘지 못하는 한계상황에 이를 때가 옵니다.
본문은 우리에게 그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30)라고 했습니다. 본문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서로 어울리지 않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소년이 잘 넘어지고 자빠집니다. 그리고 장정이 잘 피곤하고 곤비합니다.
그런데 지칠 줄 모르는 소년이라도 피곤하고 곤비하여 지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넘어지지 않는 장정이라도 넘어지고 자빠질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다 한계상황 앞에 무능력한 존재임을 가르쳐 줍니다. 그러나 새힘을 받으면 한계상황을 극복하게 됩니다. 성령님은 당신에게 새힘을 주십니다. “오직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되리라 ”(사도행전 1:8)고 했습니다. 당신이 성령님으로 충만하면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납니다. 오순절에 마가 다락방에 모인 무리들이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았을 때 전에 없었던 새힘을 받았습니다. 베드로에게 새힘이 나타났습니다.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 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힘을 얻고”(사도행전 3:6-7)고 했습니다. 성전 미문에 구걸하는 앉은뱅이는 성령님의 사람 베드로를 통하여 새힘을 얻었습니다. 그는 그 힘으로 뛰어 서서 걸으며 성전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오순절에 성령님받은 사도들과 무리들은 지칠줄 모르는 새힘을 받았습니다.
셋째:새힘을 얻으면 독수리 같이 올라갑니다. 읽을말씀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31) 여호와를 앙망합시다. 인생이 사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창세기 1:3)라고 했습니다. 빛되신 하나님을 등지면 당신의 모든 영역에 어두운 그림자가 덮이게 됩니다. 이러한 인생에게 참빛을 주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요한복음 1:9)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각 사람에게 구원의 빛을 비추고 있습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로마서 13:12)라고 성령님은 어두움의 일을 청산하라고 우리를 강권합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작은 빛이 되어서 세상에 비취기를 원하십니다(마태복은 5:14). 독수리 같이 올라갑시다.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31)라고 했습니다. 독수리는 올라가는 새입니다. 정복자요, 쟁취자요, 승리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영적으로 독수리의 날개를 가져야 합니다. 예배생활에 올라갑시다.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요한복음 2:13)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성전을 청결하게 했습니다. 세속적인 것을 엎으시고 참된 성결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기도생활에 올라갑시다. “제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가새”(사도행전 3:1)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오순절에 성령님받아서 기도하려 올라가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경건생활에 올라갑시다.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켜 가로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민수기 13:30)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입술을 하나님을 원망치 않고 믿음으로 나가면 승리자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새힘을 얻어야 하나님을 기뻐시게 합니다. 옛 사람 자연인으로서는 하나님을 기뻐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어 여호와를 바라보고 새힘을 얻어야 합니다. 갈대아 우르의 아브람으로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언약의 사람 아브라함으로는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사기꾼 야곱으로서는 에서의 군대를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이스라엘로는 성민을 세우는 그루터기가 되었습니다. 사울의 율법적인 행함으로서는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했으나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받은 바울로서는 가는곳마다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복음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밀알은 언제나 싱싱합니다. 책을 읽을 때도 힘을 주는 책이 있는가 하면 있는 힘마져 빼어 버리는 책이 있습니다. 사람도 만날수록 좋고 힘이 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만날수록 절망을 안겨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영적인 세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을 괴롭히고 멸망으로 인도하는 더럽고 악한 영이 있는가 하면 사모하고 바라볼수록 새힘을 얻는 신이 있습니다. 당신이 여호와를 앙망하면 새힘을 얻게 됩니다. 옛 사람인 자연인으로서는 세상을 이기지 못합니다. 새롭게 거듭나는 새사람이어야 세상과 죄악과 마귀권세를 이깁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면 새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31)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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