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마7:7-12)
본문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스바에 불러 모아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회개운동을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이방권세가 해하지 못하도록 그와 그 백성들을 지켜 주었습니다(사무엘상 6:5-6, 13). 베드로를 중심한 열한 사도들과 일백이십명도 마가 다락방에서 아버지의 약속한 성령님을 받기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오순절이 이르매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았습니다(사도행전 1:4, 14, 2:1-4). 이와 같이 특별 기도주간에는 동일한 시간에,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기도제목을 가지고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십니다. “하나님이 그 성중에 거하시매 성이 요동치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시편 46:5)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마음과 가정과 제단에 계시면 절대로 요동함이 없습니다. 주님을 마음에 모시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사는 성도는 연약해서 넘어졌다가도 다시 일어납니다(잠언 24:16). 하나님은 새벽에 당신을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아브라함도 새벽에 모리아로 떠났습니다(창세기 22:3). 기도의 사람 야곱도 새벽에 이스라엘로 변화를 받았습니다(창세기 32:26). 하나님은 새벽에 애굽의 군대를 어지럽게 하셨습니다(출애굽기 14:24).
그러므로 이번 기회를 통해서 새벽을 깨우는 종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밀알 3351 기도운동을 일으킵시다. 설립 2주년을 넘기면서 제2도약의 단계로 나아갑시다. 주일3부예배와 30구역장과 500장정 출석과 1000밀알 가족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완전한 자립과 열린교회로 선교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 밀알의 제1차적인 목표입니다. 이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영적 인적 물질적인 자원에 부족함이 없도록 기도합시다. 그래서 사단권세 아래 묵힌 자들이 언제든지 와서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 열린교회가 되게 합시다. 이 일을 위하여 온 성도가 합심하여 기도합시다. 기도는 계산이나 이론이나 명상이나 독백이 아닙니다. 평소에는 대화로 통하지만 위기 상황에는 부르짖는 것입니다.
첫째:부르짖어 구하면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읽을말씀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7-8) 구하고 찾고 두드립시다. 이것은 입술로만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로 나타나는 전인적인 기도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주석가 랑게는 이렇게 말합니다.
1 구하는 것은 결핍된 부족한 상태를 말합니다. 모든 인생은 다 부족하고 모자라는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기도하여 하나님이 도우시는 은총을 받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았던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편 23:1)고 했습니다. 구하는 자는 부족함을 모르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2 찾는 것은 잃어버린 상태를 말합니다. 잃어버린 것은 찾아야 합니다. 찾는 것은 구하는 상태에서 행동이 더 첨가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하여 역사합니다.
그러므로 기도한 후에는 찾아 나서야 합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사람을 만나도록 기도하고 나가서 찾아야 합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찾으면 하나님은 반드시 만날 자를 만나도록 역사합니다.
3 두드리는 것은 잠겨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안에서 열어 줄 때까지 밖에서는 기다려야 합니다. 이때는 참고 기다리는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줄 알아야 합니다. 응답이 더디오는 것은 아직까지 하나님의 때가 이르지 아니함을 가르쳐 줍니다. . 부르짖으면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본문에 감추어진 더 깊은 의미는 이러합니다.
1 구하면 반드시 주십니다. 구하면 주시고, 찾으면 만나고, 두드리면 열린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환원해 보면 구하지 않으면 받지 못하고, 찾지 않으면 잃게 되고, 두드리지 않으면 막힌 상태로 살아야 한다는 의미도 됩니다.
그러므로 구해야 주십니다.
2 사명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구하는 것이요, 하나님이 하실 일은 응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구하는 사명을 다하지 않고, 응답에만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는 월권행위입니다. 구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알아서 응답하십니다.
3 구하되 지금하라는 것입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동사가 다 현재형입니다. 지금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내일로 미룰 수 없는 것입니다. 여리고에 가신 주님은 삭개오를 향해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누가복음 19:5, 9)라고 했습니다. 기독교는 오늘의 종교입니다. 복음은 지금 살아서 역사하는 능력입니다. 주님은 과거를 묻지 않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요한복음 8:11)고 했습니다. 오늘부터 새롭게 시작하십시오 지금 결단을 내립시다.
둘째:주시되 좋은 것으로 주십니다. 읽을말씀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9-11) 악한 부모라도 좋은 것을 주십니다. 우리는 다 아담의 피를 받은 죄 아래 있는 자들입니다. 우리속에 죄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악으로 들어납니다. 그래도 자식에게만은 좋은 것으로 주고자 하는 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1 떡 대신 돌을 주지 않습니다. 팔레스틴 해변가에는 떡과 같이 생긴 작고 둥근 석회암 같은 돌들이 많았습니다. 자식이 배가고파서 떡을 달라고 하는데 비록 가진 것이 없을지라도 무익한 돌을 주지 않습니다.
2 생선 대신에 뱀을 주지 않습니다. 자식이 고기가 먹고 싶어서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해로운 뱀을 주지 않습니다. 부모는 자식이 먹어서 해로운 것을 절대로 주지 않습니다.
3 알 대신에 전갈을 주지 않습니다(누가복음 11:12). 전갈은 쉬고 몸을 굽히고 있을 때는 꼭 계란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꼬리에 사람을 쏘는 독소가 있는 무서운 작은 동물입니다. 부모는 실수라도 그러한 것을 주지 않습니다. 자신이 먼저 만져 보기 때문입니다. 특히 한국의 부모는 더욱 그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더욱 좋은 것을 주십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태복음 7:11)고 했습니다. 마태는 “좋은 것”이라고 했으나 누가는 이를 “성령님”(누가복음 21:22)이라고 했습니다. 구원받은 성도에게 성령님보다 더 좋은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이 제일 처음 제자들을 만났을 때 “.성령님을 받으라”(누가복음 21:22)고 했습니다. 승천하시기 직전에도 “.아버지의 약속한 것을 기다리라”(사도행전 1:4)고 했습니다. “오직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사도행전 1:8)고 했습니다. 성령님의 사람이 세계를 정복합니다. 성령님충만을 받읍시다. 성령님받으면 입이 열립니다. 입이 열여야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오순절에 성령님이 임했을 때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먼저 입이 열여야 부르짖는 기도가 가능합니다. 부르짖는 기도는 성령님의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입이 열여야 찬양을 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할 때 가슴에서 울어나는 찬양을 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입이 열여야 전도를 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예수의 영이므로 담대하게 예수를 증거할 수 있습니다. 오순절에 성령님받은 사도들은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셋째:영적으로 성숙하면 섬기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읽을말씀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12)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 무엇인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태복음 22:37-40)고 했습니다. 율법에서 가장 큰 강령은 하나님 사랑이요, 이웃 사랑입니다. 하나님 사랑이 이웃 사랑에서 나타납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기준은 자기 자신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체휼한 만큼 남을 섬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죽음의 자리에까지 친히 가셨습니다(빌립보서 2:8). 주님은 섬기는 자로 오셨습니다. 율법과 선지자의 가르침은 곧 구약을 말합니다. 구약에서 가르치는 계시의 핵심은 오실 메시야 사건입니다. 구약에 계시된 메시야가 신약에 어떠한 모습으로 오셨는가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가복음 10:45) 주님은 섬기는 자로 가장 낮고 천한 구유에 오셨다가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가 되시며, 주린 영혼을 먹이시고, 헐벗은 자들을 입히시고, 병든 자들을 치료하시고, 최후에 갈보리 십자가에 대속의 죽음을 죽었습니다. 주님은 섬기는 자로서 일생을 살았습니다. 대접을 받기 이전에 대접을 하는 섬기는 자였습니다. 성숙한 자만이 섬깁니다. 간혹 구역예배를 드리려 가서 보면 장난감으로 싸우는 어린아이들을 많이 봅니다. 어릴수록 자기가 가진 것을 남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합니다. 더욱 어릴수록 손에 잡으면 입으로 가져갑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육체적으로 어릴 뿐만 아니라 정신적 영적으로 어린 자들은 섬기는 것을 모릅니다. 섬김이라는 단어는 성숙한 자만에게만 어울리는 고유한 용어입니다. 결실의 계절 가을을 맞이하여 들판에 나가보면 완전히 성숙한 벼알은 잎속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이 땅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무엇인가 남을 위하여 섬길줄 아는 인생입니다. 성숙한 사람일수록 봉사정신이 투철합니다. 큰 사람일수록 많은 사람을 섬깁니다. 주님은 온 인류를 섬겼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킵니다. 기도할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주님은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삶으로 본을 보여 주었습니다. 기도를 생활화했습니다.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서 기도했습니다(누가복음 22:39). 새벽 미명에 깨어 기도했습니다(마가복음 1:35). 간절히 부르짖는 기도도 했습니다(누가복음 22:44). 기도는 노동같이 하고 노동은 기도하는 심정으로 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새벽을 깨우는 종들이 됩시다. 하나님은 새벽에 도우십니다. 할렐루야! 아멘.
그러므로 이번 기회를 통해서 새벽을 깨우는 종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밀알 3351 기도운동을 일으킵시다. 설립 2주년을 넘기면서 제2도약의 단계로 나아갑시다. 주일3부예배와 30구역장과 500장정 출석과 1000밀알 가족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완전한 자립과 열린교회로 선교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 밀알의 제1차적인 목표입니다. 이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영적 인적 물질적인 자원에 부족함이 없도록 기도합시다. 그래서 사단권세 아래 묵힌 자들이 언제든지 와서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 열린교회가 되게 합시다. 이 일을 위하여 온 성도가 합심하여 기도합시다. 기도는 계산이나 이론이나 명상이나 독백이 아닙니다. 평소에는 대화로 통하지만 위기 상황에는 부르짖는 것입니다.
첫째:부르짖어 구하면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읽을말씀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7-8) 구하고 찾고 두드립시다. 이것은 입술로만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로 나타나는 전인적인 기도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주석가 랑게는 이렇게 말합니다.
1 구하는 것은 결핍된 부족한 상태를 말합니다. 모든 인생은 다 부족하고 모자라는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기도하여 하나님이 도우시는 은총을 받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았던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편 23:1)고 했습니다. 구하는 자는 부족함을 모르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2 찾는 것은 잃어버린 상태를 말합니다. 잃어버린 것은 찾아야 합니다. 찾는 것은 구하는 상태에서 행동이 더 첨가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하여 역사합니다.
그러므로 기도한 후에는 찾아 나서야 합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사람을 만나도록 기도하고 나가서 찾아야 합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찾으면 하나님은 반드시 만날 자를 만나도록 역사합니다.
3 두드리는 것은 잠겨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안에서 열어 줄 때까지 밖에서는 기다려야 합니다. 이때는 참고 기다리는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줄 알아야 합니다. 응답이 더디오는 것은 아직까지 하나님의 때가 이르지 아니함을 가르쳐 줍니다. . 부르짖으면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본문에 감추어진 더 깊은 의미는 이러합니다.
1 구하면 반드시 주십니다. 구하면 주시고, 찾으면 만나고, 두드리면 열린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환원해 보면 구하지 않으면 받지 못하고, 찾지 않으면 잃게 되고, 두드리지 않으면 막힌 상태로 살아야 한다는 의미도 됩니다.
그러므로 구해야 주십니다.
2 사명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구하는 것이요, 하나님이 하실 일은 응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구하는 사명을 다하지 않고, 응답에만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는 월권행위입니다. 구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알아서 응답하십니다.
3 구하되 지금하라는 것입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는 동사가 다 현재형입니다. 지금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내일로 미룰 수 없는 것입니다. 여리고에 가신 주님은 삭개오를 향해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누가복음 19:5, 9)라고 했습니다. 기독교는 오늘의 종교입니다. 복음은 지금 살아서 역사하는 능력입니다. 주님은 과거를 묻지 않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요한복음 8:11)고 했습니다. 오늘부터 새롭게 시작하십시오 지금 결단을 내립시다.
둘째:주시되 좋은 것으로 주십니다. 읽을말씀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9-11) 악한 부모라도 좋은 것을 주십니다. 우리는 다 아담의 피를 받은 죄 아래 있는 자들입니다. 우리속에 죄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악으로 들어납니다. 그래도 자식에게만은 좋은 것으로 주고자 하는 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1 떡 대신 돌을 주지 않습니다. 팔레스틴 해변가에는 떡과 같이 생긴 작고 둥근 석회암 같은 돌들이 많았습니다. 자식이 배가고파서 떡을 달라고 하는데 비록 가진 것이 없을지라도 무익한 돌을 주지 않습니다.
2 생선 대신에 뱀을 주지 않습니다. 자식이 고기가 먹고 싶어서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해로운 뱀을 주지 않습니다. 부모는 자식이 먹어서 해로운 것을 절대로 주지 않습니다.
3 알 대신에 전갈을 주지 않습니다(누가복음 11:12). 전갈은 쉬고 몸을 굽히고 있을 때는 꼭 계란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꼬리에 사람을 쏘는 독소가 있는 무서운 작은 동물입니다. 부모는 실수라도 그러한 것을 주지 않습니다. 자신이 먼저 만져 보기 때문입니다. 특히 한국의 부모는 더욱 그러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더욱 좋은 것을 주십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태복음 7:11)고 했습니다. 마태는 “좋은 것”이라고 했으나 누가는 이를 “성령님”(누가복음 21:22)이라고 했습니다. 구원받은 성도에게 성령님보다 더 좋은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이 제일 처음 제자들을 만났을 때 “.성령님을 받으라”(누가복음 21:22)고 했습니다. 승천하시기 직전에도 “.아버지의 약속한 것을 기다리라”(사도행전 1:4)고 했습니다. “오직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사도행전 1:8)고 했습니다. 성령님의 사람이 세계를 정복합니다. 성령님충만을 받읍시다. 성령님받으면 입이 열립니다. 입이 열여야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오순절에 성령님이 임했을 때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먼저 입이 열여야 부르짖는 기도가 가능합니다. 부르짖는 기도는 성령님의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입이 열여야 찬양을 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할 때 가슴에서 울어나는 찬양을 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입이 열여야 전도를 할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예수의 영이므로 담대하게 예수를 증거할 수 있습니다. 오순절에 성령님받은 사도들은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셋째:영적으로 성숙하면 섬기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읽을말씀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12)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 무엇인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태복음 22:37-40)고 했습니다. 율법에서 가장 큰 강령은 하나님 사랑이요, 이웃 사랑입니다. 하나님 사랑이 이웃 사랑에서 나타납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기준은 자기 자신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체휼한 만큼 남을 섬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죽음의 자리에까지 친히 가셨습니다(빌립보서 2:8). 주님은 섬기는 자로 오셨습니다. 율법과 선지자의 가르침은 곧 구약을 말합니다. 구약에서 가르치는 계시의 핵심은 오실 메시야 사건입니다. 구약에 계시된 메시야가 신약에 어떠한 모습으로 오셨는가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가복음 10:45) 주님은 섬기는 자로 가장 낮고 천한 구유에 오셨다가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가 되시며, 주린 영혼을 먹이시고, 헐벗은 자들을 입히시고, 병든 자들을 치료하시고, 최후에 갈보리 십자가에 대속의 죽음을 죽었습니다. 주님은 섬기는 자로서 일생을 살았습니다. 대접을 받기 이전에 대접을 하는 섬기는 자였습니다. 성숙한 자만이 섬깁니다. 간혹 구역예배를 드리려 가서 보면 장난감으로 싸우는 어린아이들을 많이 봅니다. 어릴수록 자기가 가진 것을 남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합니다. 더욱 어릴수록 손에 잡으면 입으로 가져갑니다. 이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육체적으로 어릴 뿐만 아니라 정신적 영적으로 어린 자들은 섬기는 것을 모릅니다. 섬김이라는 단어는 성숙한 자만에게만 어울리는 고유한 용어입니다. 결실의 계절 가을을 맞이하여 들판에 나가보면 완전히 성숙한 벼알은 잎속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이 땅위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무엇인가 남을 위하여 섬길줄 아는 인생입니다. 성숙한 사람일수록 봉사정신이 투철합니다. 큰 사람일수록 많은 사람을 섬깁니다. 주님은 온 인류를 섬겼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킵니다. 기도할 때 역사가 일어납니다. 주님은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삶으로 본을 보여 주었습니다. 기도를 생활화했습니다.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서 기도했습니다(누가복음 22:39). 새벽 미명에 깨어 기도했습니다(마가복음 1:35). 간절히 부르짖는 기도도 했습니다(누가복음 22:44). 기도는 노동같이 하고 노동은 기도하는 심정으로 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새벽을 깨우는 종들이 됩시다. 하나님은 새벽에 도우십니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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