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최후명령을 이룹시다. (마28:18-20)
본문
주님은 당신과 함께 하십니다. 한주간 동안도 승리하게 하신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 한주간은 너무도 기쁘고 감격스러운 즐거움을 주셨습니다. 4가족이 등록하여 10명의 성도와 2명의 전도대상자를 주셨습니다. 계속해서 기도하고 전도하여 복음을 전하니 하나님이 생명들을 저들의 손에 붙여 주신 것입니다. 저가 신학대학에 공부할 시절입니다. 저의 동역자 중에 홀 어머니 밑에서 신학을 공부했던 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홀로 계시는 어머님도 건강이 좋지를 못하여 임종을 목전에 둔 상태였습니다. 하나 밖에 없는 외아들을 신학교에 보내어 놓고 언제 하나님이 부르실지 모르는지라 미리 유서를 써서 장농속에 간직해 두신 것입니다. 어느날 아들이 장농속에서 봉투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꺼내어 보니 유서였습니다. 불시에 닥칠 죽음을 대비하여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몇해가 지났습니다. 어느날 아들은 오래전에 발견했던 유서가 든 봉투를 다시 보게 된 것입니다. 꼭 같은 말인데 몇차례나 지우고 다시 쓴 흔적을 볼 수 있었습니다. 거기서 아들은 어머니의 가슴에 새겨진 뜻을 알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주님이 지상사역의 최후에 우리에게 부탁하신 말씀입니다. 선교는 주님의 지상 최후의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우리의 최초 최대의 관심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솝의 청개구리 우화를 잘 압니다. 세상에 불효한 자식이라도 부모의 유언만은 지킵니다. 하물며 구원받은 성도가 주님의 최후부탁을 잊어서 되겠습니까
첫째:당신은 하늘과 땅의 권세를 받았습니다.(18절) 읽을말씀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18)
1. 잃어버린 권세 우리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의 계약을 파괴함으로 에덴에서 버림을 받은 실낙원의 인생으로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송두리째 잃어버렸습니다(창세기 3:23). 만물을 다스리고 지배하고 정복할 인간이 만물에게 삼킴을 당하는 존재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이전의 아름다운 자연에 가시와 엉겅퀴가 돋아나게 되었으며 남자의 이마에는 땀이 흐르는 수고와 여인은 해산의 고통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저주받은 인생이 되었습니다.(창세기3:15-19) 허물과 죄로 죽은 인생 위에는 사단권세가 지배하여 계속해서 하나님의 계약에 불순종하게 하는 것입니다(에베소서 2:1-2).
2. 다시 찾은 권세 이러한 인생에게 잃어버린 하늘과 땅의 권세를 회복하게 하신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바로 주님이십니다(요한복음 1:29). 주님은 갈보리에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와 사망 권세 아래서 멸망으로 달려가는 인생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이 친히 음부의 권세 아래로 가셔서 우리를 건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주님을 영접하므로 인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잃어버린 권세도 회복하신 것입니다(요한복음 1:12).
3. 성도의 무기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항상 성령님이 우리 속에서 내주하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흘린 보혈의 피는 사망권세를 완전히 깨뜨리시고 우리에게 새생명을 주신 것입니다(고린도전서 15:55-57). 그래서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린도전서 1:18)고 하셨습니다. “십자가의 도”만이 세상과 죄악과 사단의 권세를 정복할 유일의 무기입니다.
둘째:
그러므로 가서 제자를 삼아야 합니다. 읽을말씀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1. 가라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현장으로 나아가면 하나님은 하늘의 권능과 권세로 땅의 모든 사단권세를 묶으십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영혼을 살리는 복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에베소서 6:15)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집에서 밖으로 나갈 때 신을 신고 나갑니다. 성도가 세상에 나아갈 때는 꼭 신어야 할 신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복음의 신입니다. 성도의 존재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당신은 오늘 하루를 살면서 학교에 혹은 회사에 혹은 공장에 복음의 신을 신고 갔습니까 복음의 신이 없는 인생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세월을 허송하지 말라고 했습니다(에베소서 5:15-21).
2. 모든 족속에게 복음의 대상은 모든 족속입니다. 복음은 어느 개인이나 어느 집단이나 어느 민족에게 국한된 소유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복음은 우주적이며 세계적이며 국제적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온 천하 만민에게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고 했습니다. 가기 전에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가 무엇인가 선교지의 문화에 하나되는 동화작용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들고 가면서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을 구원코자 함이니”(고린도전서 9:22)라고 했습니다. 영혼을 건지고 생명을 구하는 일보다 더 소중한 가치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인류 최초의 선교사는 주님 자신입니다. 주님은 하늘나라에서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삼위일체 이름으로 파견 받은 인류구원의 선교사입니다. 주님은 사람의 모습으로 가장 비천하고 낮은 곳에 오셔서 섬기는 자로 일하시다가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것입니다(빌립보서 2:5-11).
3. 제자를 삼아 세례를 주라 우리가 전도에 실패하는 원인이 무엇입니까 대부분의 경우에 예수의 제자를 삼지 않고 자기의 제자를 삼으려고 하니 실패합니다. 우리 자신은 참으로 연약합니다. 환경과 문제와 시험 앞에 실족하여 넘어지기를 잘합니다(마태복음16:22-23). 그러니 나를 보고 따르는 연약한 자가 자연히 실족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개개인의 영혼이 주님을 만나도록 생명을 주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야 합니다(갈라디아서 3:24). 그래서 교회는 이 일을 위하여 새생명을 탄생시키는 세례운동이 날마다 일어나야 합니다. 교회가 해야 할 일 중에 가장 크고 아름다운 일이 바로 구원받은 영혼에게 세례를 베푸는 일입니다. 이 운동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확장되고 사단의 권세가 결박됩니다.
셋째:주님은 당신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읽을말씀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20)
1.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치라 아담이 계약에 실패한 것은 더하고 감함으로서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세기 2:17)고 했는데 하와는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창세기 3:3)고 더하고 감했습니다. 그때 사단은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세기 3:4)하고 불신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계약하신 분부한 말씀을 잘 지켜야 합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은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마태복음 25:16)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기억할 것은 “그것으로”라는 말씀입니다. 주인이 맡긴 그것입니다. 그것 가지고 장사해야지 다른 것을 더하거나 있는 것을 감해서는 안됩니다. 받은 그것으로 해야 합니다.
2. 가르쳐서 지키게 하라 가르치는 목적은 지켜 행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규례는 우리에게 올무가 되게 함이 아니라 지켜 행할 때 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신명기 28:1-14).
그러므로 주님의 약속을 붙잡으면 그곳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비밀하신 복이 숨겨져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복을음 전할 때 주님의 가르침을 받지 않는 세속주의 무리가 많았습니다. 곧 헤롯당파나 친로마주의자들이었습니다. 어떤 무리들은 가르치기는 잘하나 지키지 않는 외식하는 종교인들 곧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르침을 받으면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눈물을 흘리면서 탄식하는 세리와 창기들과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친구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약속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지키려 노력할 때 주님은 우리 중에 오셔서 함께 하십니다.
3. 내가 세상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인류의 최고의 상담가 치유자 능력자는 우리 주님이십니다. 곤고한 인생에게 가장 큰 위로는 함께 있어 주는 것입니다. 사실 나와 함께 죽음의 현장인 사망의 음침 골짜기까지 동행할 친구가 있다면 그 인생은 절대로 외롭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땅 위에는 그러한 친구가 없습니다. 설령 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도 함께 동참할 수 없는 곳이 죽음의 현장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세상 끝날인 죽음 건너편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의 약속은 영원토록 변함없는 진리입니다(히브리서 13:8).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갈바를 알지 못하고 가는 아브라함을 하나님은 한번도 그 곁을 떠나보지 않았습니다(히브리서 11:8). 애굽으로 팔려가는 요셉과 항상 함께 하셨습니다(창세기 39:2, 21).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잡혀가는 다니엘과 그 세친구들에게 항상 함께 했습니다(다니엘 1:17, 3:25, 6:22). 주님은 사명을 따라 복음을 들고 가는 바울과 항 상 동행했던 것입니다(사도행전 28:5). 그 주님은 오늘 당신과 항상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사람이 꿈을 꾸었습니다. 광야를 헤쳐간 두 사람의 발자국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자신과 주님이 동행한 발자국이었습니다.
그런데 위기를 당할 때마다 한사람의 발자국밖에 없었습니다. 그때마다 그는 불평하고 원망하고 대적하여 이르기를 “주님 내가 고통을 당할 때는 당신은 어디에 계셨나이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주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당신이 고통 당할 때는 내가 당신을 업었노라”고 했습니다. 고난을 헤쳐 가는 발자국은 나의 발자국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업고 가는 주님의 발자국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세상 끝날 까지 항상 당신과 함께 하십니다. 이 한 주간도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홀로 계시는 어머님도 건강이 좋지를 못하여 임종을 목전에 둔 상태였습니다. 하나 밖에 없는 외아들을 신학교에 보내어 놓고 언제 하나님이 부르실지 모르는지라 미리 유서를 써서 장농속에 간직해 두신 것입니다. 어느날 아들이 장농속에서 봉투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꺼내어 보니 유서였습니다. 불시에 닥칠 죽음을 대비하여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몇해가 지났습니다. 어느날 아들은 오래전에 발견했던 유서가 든 봉투를 다시 보게 된 것입니다. 꼭 같은 말인데 몇차례나 지우고 다시 쓴 흔적을 볼 수 있었습니다. 거기서 아들은 어머니의 가슴에 새겨진 뜻을 알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주님이 지상사역의 최후에 우리에게 부탁하신 말씀입니다. 선교는 주님의 지상 최후의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우리의 최초 최대의 관심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솝의 청개구리 우화를 잘 압니다. 세상에 불효한 자식이라도 부모의 유언만은 지킵니다. 하물며 구원받은 성도가 주님의 최후부탁을 잊어서 되겠습니까
첫째:당신은 하늘과 땅의 권세를 받았습니다.(18절) 읽을말씀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18)
1. 잃어버린 권세 우리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의 계약을 파괴함으로 에덴에서 버림을 받은 실낙원의 인생으로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송두리째 잃어버렸습니다(창세기 3:23). 만물을 다스리고 지배하고 정복할 인간이 만물에게 삼킴을 당하는 존재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이전의 아름다운 자연에 가시와 엉겅퀴가 돋아나게 되었으며 남자의 이마에는 땀이 흐르는 수고와 여인은 해산의 고통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저주받은 인생이 되었습니다.(창세기3:15-19) 허물과 죄로 죽은 인생 위에는 사단권세가 지배하여 계속해서 하나님의 계약에 불순종하게 하는 것입니다(에베소서 2:1-2).
2. 다시 찾은 권세 이러한 인생에게 잃어버린 하늘과 땅의 권세를 회복하게 하신 분이 계십니다. 그분이 바로 주님이십니다(요한복음 1:29). 주님은 갈보리에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와 사망 권세 아래서 멸망으로 달려가는 인생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이 친히 음부의 권세 아래로 가셔서 우리를 건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 주님을 영접하므로 인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잃어버린 권세도 회복하신 것입니다(요한복음 1:12).
3. 성도의 무기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항상 성령님이 우리 속에서 내주하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흘린 보혈의 피는 사망권세를 완전히 깨뜨리시고 우리에게 새생명을 주신 것입니다(고린도전서 15:55-57). 그래서 사도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린도전서 1:18)고 하셨습니다. “십자가의 도”만이 세상과 죄악과 사단의 권세를 정복할 유일의 무기입니다.
둘째:
그러므로 가서 제자를 삼아야 합니다. 읽을말씀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1. 가라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현장으로 나아가면 하나님은 하늘의 권능과 권세로 땅의 모든 사단권세를 묶으십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영혼을 살리는 복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에베소서 6:15)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집에서 밖으로 나갈 때 신을 신고 나갑니다. 성도가 세상에 나아갈 때는 꼭 신어야 할 신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복음의 신입니다. 성도의 존재 목적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당신은 오늘 하루를 살면서 학교에 혹은 회사에 혹은 공장에 복음의 신을 신고 갔습니까 복음의 신이 없는 인생의 삶은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세월을 허송하지 말라고 했습니다(에베소서 5:15-21).
2. 모든 족속에게 복음의 대상은 모든 족속입니다. 복음은 어느 개인이나 어느 집단이나 어느 민족에게 국한된 소유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복음은 우주적이며 세계적이며 국제적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온 천하 만민에게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고 했습니다. 가기 전에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의 자세가 무엇인가 선교지의 문화에 하나되는 동화작용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들고 가면서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을 구원코자 함이니”(고린도전서 9:22)라고 했습니다. 영혼을 건지고 생명을 구하는 일보다 더 소중한 가치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인류 최초의 선교사는 주님 자신입니다. 주님은 하늘나라에서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삼위일체 이름으로 파견 받은 인류구원의 선교사입니다. 주님은 사람의 모습으로 가장 비천하고 낮은 곳에 오셔서 섬기는 자로 일하시다가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것입니다(빌립보서 2:5-11).
3. 제자를 삼아 세례를 주라 우리가 전도에 실패하는 원인이 무엇입니까 대부분의 경우에 예수의 제자를 삼지 않고 자기의 제자를 삼으려고 하니 실패합니다. 우리 자신은 참으로 연약합니다. 환경과 문제와 시험 앞에 실족하여 넘어지기를 잘합니다(마태복음16:22-23). 그러니 나를 보고 따르는 연약한 자가 자연히 실족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개개인의 영혼이 주님을 만나도록 생명을 주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야 합니다(갈라디아서 3:24). 그래서 교회는 이 일을 위하여 새생명을 탄생시키는 세례운동이 날마다 일어나야 합니다. 교회가 해야 할 일 중에 가장 크고 아름다운 일이 바로 구원받은 영혼에게 세례를 베푸는 일입니다. 이 운동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확장되고 사단의 권세가 결박됩니다.
셋째:주님은 당신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읽을말씀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20)
1.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치라 아담이 계약에 실패한 것은 더하고 감함으로서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세기 2:17)고 했는데 하와는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창세기 3:3)고 더하고 감했습니다. 그때 사단은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세기 3:4)하고 불신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계약하신 분부한 말씀을 잘 지켜야 합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은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마태복음 25:16)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기억할 것은 “그것으로”라는 말씀입니다. 주인이 맡긴 그것입니다. 그것 가지고 장사해야지 다른 것을 더하거나 있는 것을 감해서는 안됩니다. 받은 그것으로 해야 합니다.
2. 가르쳐서 지키게 하라 가르치는 목적은 지켜 행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규례는 우리에게 올무가 되게 함이 아니라 지켜 행할 때 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신명기 28:1-14).
그러므로 주님의 약속을 붙잡으면 그곳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비밀하신 복이 숨겨져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복을음 전할 때 주님의 가르침을 받지 않는 세속주의 무리가 많았습니다. 곧 헤롯당파나 친로마주의자들이었습니다. 어떤 무리들은 가르치기는 잘하나 지키지 않는 외식하는 종교인들 곧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르침을 받으면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눈물을 흘리면서 탄식하는 세리와 창기들과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친구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약속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지키려 노력할 때 주님은 우리 중에 오셔서 함께 하십니다.
3. 내가 세상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인류의 최고의 상담가 치유자 능력자는 우리 주님이십니다. 곤고한 인생에게 가장 큰 위로는 함께 있어 주는 것입니다. 사실 나와 함께 죽음의 현장인 사망의 음침 골짜기까지 동행할 친구가 있다면 그 인생은 절대로 외롭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땅 위에는 그러한 친구가 없습니다. 설령 가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도 함께 동참할 수 없는 곳이 죽음의 현장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세상 끝날인 죽음 건너편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주님의 약속은 영원토록 변함없는 진리입니다(히브리서 13:8).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갈바를 알지 못하고 가는 아브라함을 하나님은 한번도 그 곁을 떠나보지 않았습니다(히브리서 11:8). 애굽으로 팔려가는 요셉과 항상 함께 하셨습니다(창세기 39:2, 21).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잡혀가는 다니엘과 그 세친구들에게 항상 함께 했습니다(다니엘 1:17, 3:25, 6:22). 주님은 사명을 따라 복음을 들고 가는 바울과 항 상 동행했던 것입니다(사도행전 28:5). 그 주님은 오늘 당신과 항상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사람이 꿈을 꾸었습니다. 광야를 헤쳐간 두 사람의 발자국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자신과 주님이 동행한 발자국이었습니다.
그런데 위기를 당할 때마다 한사람의 발자국밖에 없었습니다. 그때마다 그는 불평하고 원망하고 대적하여 이르기를 “주님 내가 고통을 당할 때는 당신은 어디에 계셨나이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주님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당신이 고통 당할 때는 내가 당신을 업었노라”고 했습니다. 고난을 헤쳐 가는 발자국은 나의 발자국이 아니라 주님이 나를 업고 가는 주님의 발자국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세상 끝날 까지 항상 당신과 함께 하십니다. 이 한 주간도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