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세례 나의 세례 (마3:13-17)
본문
세례운동을 일으킵시다. 세례가 무엇인가세례란 교회가 집행하는 성례중 하나로서 그리스도인이 도니다는 표시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란
1 중생의 외적인 표입니다(베드로전서 3:21). 예수의 부활과 같이 예수 안에서 새롭게 거듭나는 것입니다.
2 물로 죄를 씻는 의미입니다(에베소서 5:26). 육체의 더러운 것이 아니라 심령의 죄를 씻는 영적 성결을 가르칩니다.
3 인을 치는 소유행위를 말합니다(고린도후서 1:22, 에베소서 1:13, 4:30). 세례를 받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확신을 얻게 됩니다. 세례운동은 주님이 가장 기뻐하십니다. 주님은 공생애를 위하여 세가지 사역을 행하셨습니다.
첫째,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고, 둘째,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고, 셋째, 열두 제자를 선택했습니다. 세례는 주님의 공생애에 있어서 가장 먼저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처럼 당신도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김에 있어서 가장 우선적으로 행해야 할 일이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외적인 증거가 있어야 교회가 당신에게 사명을 맡기는 것입니다. 주님이 왜 인간에게 세례를 받았는가 주님은 죄가 없는 독생자 예수입니다.
그런데 어찌 인간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는가 여기에 예수님의 세례에 대한 비밀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친히 세례를 받음으로서 구약의 피흘리는 할례를 그치게 했습니다. 그가 지신 갈보리 십자가는 세례의 결실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는 할례의 기초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이 세례는 훗일에 십자가라는 열매를 결실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세례에는 감추어진 비밀한 계시가 많습니다. 오늘은 본문을 통해서 그 계시를 펼쳐서 보여 주고자 합니다.
첫째:세례를 통해 예수님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읽을말씀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로서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신대,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13-14) 왜 세례요한이 말렸는가 세례를 받아야 할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어라고 하니 말렸습니다. 여기에 주님의 정체가 나타납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태복음 11:29)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행한 구원사역의 알파와 오메가는 전부 겸손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주님은 구원사역을 겸손으로 이루었습니다.
1 구유에 오셨습니다.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누가복음 2:7)고 했습니다. 주님은 인류 역사상 가장 천한 몸으로 오셨습니다. 짐승같이 천한 몸으로 구원사역을 시작했습니다.
2 제자들의 발을 씻겼습니다.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요한복음 13:4)고 했습니다. 발 씻음을 받아야 할 자가 친히 발을 씻기면서 섬기는 삶의 모범을 보여 주었습니다.
3 십자가로 마쳤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가복은 10:45)고 했습니다. 십자가에 죽음으로 구원사역을 완선했습니다. 십자가는 겸손의 극치입니다. 겸손한 자가 아니고는 사명의 십자가를 질 수 없습니다. 겸서한 자에게 은혜가 임합니다. 바울은 말씀하시기를 “그는 근본 하나니므이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라므이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나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비 립보서 2:6-8)고 했습니다. 인가느이 타락이 교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겸손한 자에게 하나니므이 은혜가 넘칩니다(야고보서 4:6, 10).
둘째:세례를 통해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셨습니다. 읽을말씀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데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15) 하나님의 공의를 이룹시다. 신학적으로 하나니므이 보편적인 속성에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 중에 대표적인 것 하나를 소개하면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독생자 예수를 통해서 십자가로 나타났는데 그것이 바로 아가폐입니다. 이 사랑은 철저한 하나님의 공의에 근거한 사랑임을 알아야 합니다. 공의가 수반되지 않는 사랑은 합법적이거나 계약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주님은 하나니므이 공의를 완전히 이루었습니다.
1 세례는 죄를 씨는 행위입니다. “이듵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한복음 1:29)고 햇습니다. 주님은 죄없는 독생자인데 우리의 죄짐을 지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2 세례는 십자가에서 죽는 죽으므이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로마서 6:4)고 했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 못박음과 같이 우리의 죄를 물에서 장사지냈습니다.
3 세례는 부활로서 구원의 표입니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흐ㅟ를 구언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베드로전서 3;21)고 햇습니다. 세례를 통해서 옛 자아가 죽고 새 자아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중생이 이루어졌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범죄한 인생은 죽어야 합니다. “선악을 알게 한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죽으리라 하시니라”(창세기 2:17)고 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이 계약을 파괴하고 말았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로마서 6:23). 죄 값으로 죽어야 할 인생을 위하여 주님이 십자가에 죽을 죽음을 예표로서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베드로전서 3:21). 이루서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신 것입니다.
셋째:세례를 통해 성령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읽을말씀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님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16) 성령님의 역사는 다양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성령님의 역사는 지극히 제한적입니다. 생명의 근원되심을 가르치기 위하여 바람같은 성령님으로 나타납니다(창세기 2:7). 죄를 소멸하는 능력을 가르치기 위하여 불같은 성령님으로 나타납니다(히브리서 12:29). 죄인의 심령을 소생시킴을 가르치기 위하여 생수같은 성령님으로 나타납니다(요한복음 7:38). 성도를 보호하고 위로하고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을 가르치기 위하여 보혜사 성령님으로 나타납니다(요한복음 14:26-27). 본문에서는 비둘기 같은 성령님으로 나타남은 무엇의 미의인가 성령님이 비둘기 같이 임했습니다.
1 평화의 상징입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누가복음 2:14)고 했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심은 평화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2 순결의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로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태복음 10:16)고 했습니다. 주님은 칠십인 전도단을 파견하면서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했습니다. 악한 세상에 복음을 지혜롭게 전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성도가 지킬 순결을 잃어서는 안됩니다.
3 소망의 상징입니다. “저녁때에 비둘기가 돌아왔는데 그 입에 새 감람 잎사귀가 있는지라 이에 노아가 땅에 물이 감한 줄을 알았으며”(창세기 8:11)라고 했습니다. 비둘기는 감람 새 잎사귀를 물고 와서 홍수에 지친 노아에게 소망을 주었습니다. 비둘기 같은 성령님의 역사를 일으킵시다. 유남 전때 우리나라에서 일차 이차로 명호부대와 백마부대를 파견하여 호랑이 같이 흰말같이 잘 싸웠으나 많은 용사들이 전사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용맹스럽게 싸우더라도 목숨을 잃지않고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비둘기 부대를 파견했습니다. 우리도 비둘기 같은 성령님의 역사로 회개하여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갑시다.
넷째:세례를 통해 하나님을 기뻐시게 하셨습니다. 읽을말씀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17) 하나님을 기뻐시게 합시다. 이것이 사람의 제일가는 목적입니다. 개혁주의 교회의 표준인 교리문서 중에 대소요리문답이 있습니다. 그 일문에서 사람이 제일가는 목적을 물었고, 그 대답이 하나님을 기뻐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니므이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린도전서 10:31)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는가 주님은 잃어버린 세리와 죄인들을 향하여 다음과 같은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1 잃은 양을 찾읍시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누가복음 15:7)고 했습니다. 잃어버린 한 양을 위하여 아흔 아홉을 들에 두고 찾아 나셨습니다.
2 잃은 드라크마를 찾읍시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누가복음 15:10)고 했습니다. 한 드라크마를 찾기 위해서 온 집에 불을 밝히고 비를 가지고 쓸며 밤잠을 자지 않고 찾습니다.
3 잃은 아들을 찾읍시다.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갸ㅏ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 하더라”(누가복음 15:24)고 햇습니다. 탕자가 집을 떠나는 순간 그는 죽은 아들입니다. 저주받은 돼지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돌아오매 아버지는 그를 맞이하여 목욕을 시켜서 새 옷을 갈아 입히고 반지를 끼워 다시 아들의 반열에 세웠습니다. 당신은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지상명령으로 주신 최후부탁을 당신의 최대 관심사로 삼아야 합니다. 이것이 훗일에 받을 최고의 상급입니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라으이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데살로니가전서 2:19-20)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는가 자신의 겸손하심을 계시하신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신 사건입니다. 비둘기 같은 성령님의 역사로 평화를 주기 위한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천국 시민을 얻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란
1 중생의 외적인 표입니다(베드로전서 3:21). 예수의 부활과 같이 예수 안에서 새롭게 거듭나는 것입니다.
2 물로 죄를 씻는 의미입니다(에베소서 5:26). 육체의 더러운 것이 아니라 심령의 죄를 씻는 영적 성결을 가르칩니다.
3 인을 치는 소유행위를 말합니다(고린도후서 1:22, 에베소서 1:13, 4:30). 세례를 받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확신을 얻게 됩니다. 세례운동은 주님이 가장 기뻐하십니다. 주님은 공생애를 위하여 세가지 사역을 행하셨습니다.
첫째,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고, 둘째,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고, 셋째, 열두 제자를 선택했습니다. 세례는 주님의 공생애에 있어서 가장 먼저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처럼 당신도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김에 있어서 가장 우선적으로 행해야 할 일이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외적인 증거가 있어야 교회가 당신에게 사명을 맡기는 것입니다. 주님이 왜 인간에게 세례를 받았는가 주님은 죄가 없는 독생자 예수입니다.
그런데 어찌 인간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는가 여기에 예수님의 세례에 대한 비밀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친히 세례를 받음으로서 구약의 피흘리는 할례를 그치게 했습니다. 그가 지신 갈보리 십자가는 세례의 결실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는 할례의 기초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이 세례는 훗일에 십자가라는 열매를 결실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세례에는 감추어진 비밀한 계시가 많습니다. 오늘은 본문을 통해서 그 계시를 펼쳐서 보여 주고자 합니다.
첫째:세례를 통해 예수님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읽을말씀 “이 때에 예수께서 갈릴로서 요단강에 이르러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 하신대, 요한이 말려 가로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13-14) 왜 세례요한이 말렸는가 세례를 받아야 할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어라고 하니 말렸습니다. 여기에 주님의 정체가 나타납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태복음 11:29)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행한 구원사역의 알파와 오메가는 전부 겸손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주님은 구원사역을 겸손으로 이루었습니다.
1 구유에 오셨습니다.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누가복음 2:7)고 했습니다. 주님은 인류 역사상 가장 천한 몸으로 오셨습니다. 짐승같이 천한 몸으로 구원사역을 시작했습니다.
2 제자들의 발을 씻겼습니다.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요한복음 13:4)고 했습니다. 발 씻음을 받아야 할 자가 친히 발을 씻기면서 섬기는 삶의 모범을 보여 주었습니다.
3 십자가로 마쳤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가복은 10:45)고 했습니다. 십자가에 죽음으로 구원사역을 완선했습니다. 십자가는 겸손의 극치입니다. 겸손한 자가 아니고는 사명의 십자가를 질 수 없습니다. 겸서한 자에게 은혜가 임합니다. 바울은 말씀하시기를 “그는 근본 하나니므이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라므이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나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비 립보서 2:6-8)고 했습니다. 인가느이 타락이 교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겸손한 자에게 하나니므이 은혜가 넘칩니다(야고보서 4:6, 10).
둘째:세례를 통해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셨습니다. 읽을말씀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데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15) 하나님의 공의를 이룹시다. 신학적으로 하나니므이 보편적인 속성에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 중에 대표적인 것 하나를 소개하면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독생자 예수를 통해서 십자가로 나타났는데 그것이 바로 아가폐입니다. 이 사랑은 철저한 하나님의 공의에 근거한 사랑임을 알아야 합니다. 공의가 수반되지 않는 사랑은 합법적이거나 계약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주님은 하나니므이 공의를 완전히 이루었습니다.
1 세례는 죄를 씨는 행위입니다. “이듵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한복음 1:29)고 햇습니다. 주님은 죄없는 독생자인데 우리의 죄짐을 지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2 세례는 십자가에서 죽는 죽으므이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로마서 6:4)고 했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 못박음과 같이 우리의 죄를 물에서 장사지냈습니다.
3 세례는 부활로서 구원의 표입니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흐ㅟ를 구언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베드로전서 3;21)고 햇습니다. 세례를 통해서 옛 자아가 죽고 새 자아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중생이 이루어졌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범죄한 인생은 죽어야 합니다. “선악을 알게 한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죽으리라 하시니라”(창세기 2:17)고 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이 계약을 파괴하고 말았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로마서 6:23). 죄 값으로 죽어야 할 인생을 위하여 주님이 십자가에 죽을 죽음을 예표로서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베드로전서 3:21). 이루서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신 것입니다.
셋째:세례를 통해 성령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읽을말씀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님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16) 성령님의 역사는 다양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성령님의 역사는 지극히 제한적입니다. 생명의 근원되심을 가르치기 위하여 바람같은 성령님으로 나타납니다(창세기 2:7). 죄를 소멸하는 능력을 가르치기 위하여 불같은 성령님으로 나타납니다(히브리서 12:29). 죄인의 심령을 소생시킴을 가르치기 위하여 생수같은 성령님으로 나타납니다(요한복음 7:38). 성도를 보호하고 위로하고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을 가르치기 위하여 보혜사 성령님으로 나타납니다(요한복음 14:26-27). 본문에서는 비둘기 같은 성령님으로 나타남은 무엇의 미의인가 성령님이 비둘기 같이 임했습니다.
1 평화의 상징입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누가복음 2:14)고 했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심은 평화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2 순결의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로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태복음 10:16)고 했습니다. 주님은 칠십인 전도단을 파견하면서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했습니다. 악한 세상에 복음을 지혜롭게 전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성도가 지킬 순결을 잃어서는 안됩니다.
3 소망의 상징입니다. “저녁때에 비둘기가 돌아왔는데 그 입에 새 감람 잎사귀가 있는지라 이에 노아가 땅에 물이 감한 줄을 알았으며”(창세기 8:11)라고 했습니다. 비둘기는 감람 새 잎사귀를 물고 와서 홍수에 지친 노아에게 소망을 주었습니다. 비둘기 같은 성령님의 역사를 일으킵시다. 유남 전때 우리나라에서 일차 이차로 명호부대와 백마부대를 파견하여 호랑이 같이 흰말같이 잘 싸웠으나 많은 용사들이 전사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용맹스럽게 싸우더라도 목숨을 잃지않고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비둘기 부대를 파견했습니다. 우리도 비둘기 같은 성령님의 역사로 회개하여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갑시다.
넷째:세례를 통해 하나님을 기뻐시게 하셨습니다. 읽을말씀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17) 하나님을 기뻐시게 합시다. 이것이 사람의 제일가는 목적입니다. 개혁주의 교회의 표준인 교리문서 중에 대소요리문답이 있습니다. 그 일문에서 사람이 제일가는 목적을 물었고, 그 대답이 하나님을 기뻐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니므이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린도전서 10:31)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는가 주님은 잃어버린 세리와 죄인들을 향하여 다음과 같은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1 잃은 양을 찾읍시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누가복음 15:7)고 했습니다. 잃어버린 한 양을 위하여 아흔 아홉을 들에 두고 찾아 나셨습니다.
2 잃은 드라크마를 찾읍시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누가복음 15:10)고 했습니다. 한 드라크마를 찾기 위해서 온 집에 불을 밝히고 비를 가지고 쓸며 밤잠을 자지 않고 찾습니다.
3 잃은 아들을 찾읍시다.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갸ㅏ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 하더라”(누가복음 15:24)고 햇습니다. 탕자가 집을 떠나는 순간 그는 죽은 아들입니다. 저주받은 돼지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돌아오매 아버지는 그를 맞이하여 목욕을 시켜서 새 옷을 갈아 입히고 반지를 끼워 다시 아들의 반열에 세웠습니다. 당신은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지상명령으로 주신 최후부탁을 당신의 최대 관심사로 삼아야 합니다. 이것이 훗일에 받을 최고의 상급입니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라으이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데살로니가전서 2:19-20)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예수님이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는가 자신의 겸손하심을 계시하신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신 사건입니다. 비둘기 같은 성령님의 역사로 평화를 주기 위한 사건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천국 시민을 얻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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