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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은 지금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요13:1-20)

본문

주님의 사랑을 배웁시다. 하나님은 당신이 행복하기를 원하십니다. 행복은 모든 인류의 소망이며, 모든 종교가 추구하는 목적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 행복하지 못한 것처럼 모든 종교가 다 행복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보이는 세상적인 것에서 찾으려고 하는데 행복은 거기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행복은 생명의 종교만이 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신명기 33:29)라고 했습니다. 죄로부터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세상적으로 누리는 것은 순간적인 쾌락이지 참된 행복이 아닙니다. 주님은 지금도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이 주님을 닮기를 원하십니까 주님의 사랑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1 사랑이 최고의 기술입니다. 현대인이 지혜와 지식으로 만든 사회가 정보통신사회입니다. 그러나 지혜와 지식의 근원이 하나님입니다(이사야 11:2). 하나님은 지혜로 세상을 구원할 때 사랑의 방법을 사용하셨습니다.
2 사랑이 성공의 비결입니다(요한복음 16:33). 주님은 사랑으로 세상을 정복했습니다. 주님이 이룬 사랑의 마크가 십자가입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기 이전에 십자가는 추악한 죄수들이 지는 사형의 도구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십자가를 지신 이후에 십자가는 모든 사람의 흠모의 대상이요, 사랑의 마크로 바뀌었습니다.
3 사랑은 최고의 파우어입니다(고린도전서 13:13). 이 땅 위에 사랑의 힘보다 더 큰 힘은 없습니다. 세상에 그 어떠한 힘으로도 변화시킬 수 없는 힘이 사랑에서 나옵니다. 수전노 삭개오를 변화시킨 분이 사랑의 주님입니다. 일생동안 쾌락에 사로잡혀 살아온 수가성 여인을 변화시킨 분도 주님의 사랑입니다. 니고데모를 변화시킨 분도 사랑의 주님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어떠한 사랑인가 주님은 구원사역을 마무리 하면서 자신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당신을 향한 주님의 사랑이 어떠한지를 본문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변함없는 사랑입니다. 읽을말씀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1) 때는 주님의 마지막 유월절기입니다.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십자가를 하루 앞둔 목요일 저녁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최후의 만찬을 베풀고 이밤에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시려 갑니다. 이제 세상을 떠날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최후의 순간이요, 구원사역을 마무리하는 때입니다. 오늘이 이 세상의 마지막 날입니다. 내일이면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얼마나 심각한 때입니까 이때 주님이 하신 일이 무엇인가 자기의 사랑을 확인하는 일입니다. 세상에 있는 자기 백성들을 끝까지 사랑했습니다 여기 자기 백성이라면 누구인가
1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입니다(에베소서 1:5). 하나님의 계약 안에 있는 백성입니다. 주님은 그 백성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다 기억하면서 자기가 흘릴 피를 생각했습니다.
2 지금 자기를 대적하고 십자가에 못박을 자들입니다. 지금은 영적으로 무지하여서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으나 주님은 그 영혼들을 대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도 그들을 위하여 기도했습니다(누가복음 23:34).
3 후일에 회개하고 증인될 자들입니다. 주님의 십자가 앞에 두려워서 도망갔던 무리들이 부활후에 돌아와서 사도의 반열에 서게 되었고, 주님을 대적했던 무리들이 사도들의 복음을 듣고 회개하고 돌아와서 복음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끝까지 사랑하는 변함없는 사랑입니다.
둘째:발씻기는 사랑입니다. 읽을말씀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5) 유대인의 풍습은 이러합니다. 유대인들은 결례를 위해 대문간에 물 담는 항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발에 묻은 먼지를 씻기 위한 것입니다. 당시 주인의 발을 씻기는 것은 종이 하는 사역입니다. 예수님은 유월절을 먹이 위하여 모였는데 아무도 주님의 발을 씻기는 종의 봉사자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 자신이 친히 수건을 두러시고 종의 자리로 내려갔습니다.
1 주님은 자리에서 일어 낫습니다. 결단의 모습입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내려왔습니다. 모든 제자들이 서로 높아지기만을 원했고, 올라가려고만 했으나 주님은 친히 자리에서 내여 오셨습니다.
2 옷을 벗고 수건을 둘렸습니다. 신분의 변화입니다. 모든 사람이 권위와 권세의 옷을 입기를 윈하지만 섬기는 수건을 허리에 두르기를 원치 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섬기는 자로 오셨습니다.
3 발을 씻겨 주었습니다. 사역의 시작입니다. 발은 몸을 죄악으로 물어 나르는 도구입니다. 주님은 이 발을 어루만지면서 씻겨 주었습니다. 당신은 지금 어떠한 자를 섬기고 있으며, 누구의 발을 씻기고 있는가
셋째:용납하는 사랑입니다. 읽을말씀 “베드로가 가로되 내 발은 절대로 씻기지 못하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8) 이것은 베드로의 실수입니다. 베드로는 이전에 시몬입니다. 갈대와 같은 자입니다. 그러나 그가 변화를 받아 사도의 반열에 섬으로 베드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변화를 받았어도 종종 넘어졌습니다. 이것이 불완전한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우리를 주님은 너그럽게 용납해 주십니다.
1 사단의 앞잡이 노릇을 했던 베드로입니다. 그는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태복음 16:16)라고 고백하므로 주님이 지상교회를 세우는 은총을 입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정작 그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고난의 십자가 지고자 할 때 거부하여 이르기를 “.이런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마태복음 16:22)고 했습니다.
2 오늘도 베드로는 주님에게 발 씻음 받기를 거부했습니다. “.내발은 절대로 씻기지 못하리이다”(요한복음 13:8)고 했습니다. 남의 발을 씻겨 주지도 아니하고 씻김을 받기 원하면서 주님에게 씻김을 거부하는 겸손으로 포장된 교만의 정체입니다.
3 후에는 주님을 저주까지 합니다. 목자되신 주님이 죽임을 당할 때 양무리가 흩어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마태복음 26:33)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중에 주님을 부인하고 저주까지 했습니다(마태복음 26:7
4). 그러나 주님은 너그럽게 용납하셨습니다.
넷째:성화의 사랑입니다. 읽을말씀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10) 당신은 목욕했습니까 영적으로 목욕은 중생을 가르칩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목욕한 자입니다. 중생하는 목욕은 단회적으로 단번에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중생한 성도가 주님의 형상을 온전히 이루기까지는 계속적으로 성화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홍해는 건너면 됩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출애굽기 14:13)고 했습니다. 인간적 니고데모는 거듭나야 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한복음 3:3)고 했습니다. 그러나
1 회개는 날마다 해야 합니다(고린도전서 15:31). 바울은 날마다 죽는 연습을 했습니다. 자신을 처서 언약의 말씀에 복종시키는 삶이 필요합니다(고린도전서 9:27).
2 하나님이 구하시는 것은 상한 심령입니다(시편 51:17). 그래서 하나님은 바리새인의 기도보다 통회하는 세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였습니다(누가복음 18:13).
3 애통하는 삶이 복됩니다(마태복음 5:4). 애통 자체는 복이 아니나 그 후에 주님의 위로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섯째:본을 보이는 사랑입니다. 읽을말씀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15) 주님은 최상의 지도자입니다. 온 인류의 가장 좋은 모델입니다.
1 사랑의 모델입니다. 주님은 사랑의 십자가로 세상을 정복했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혈육의 사랑 스톨케 모델입니다. 주님은 사랑은 친구지간에 맺어지는 필레오의 모델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이성간의 연합된 에로스의 모델입니다. 그래서 이 사랑을 아가폐라고 합니다.
2 순종의 모델의 입니다. 주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성부 하나님과 동등된 분이지만 스스로 종의 형체를 입고 종의 모습으로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빌립보서 2:5-8).
3 기도의 모델입니다. 주님의 생애는 기도의 생애입니다. 주님은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기도로 하루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그의 제자들에게 기도를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었습니다(마태복음 6:9-15). 그리고 기도하는 모범을 친히 보여 주었습니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여섯째:복된 사랑입니다. 일을말씀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7) 주님은 당신이 복받기를 원하십니다.
1 세인들의 가치관은 이러합니다. 섬김을 받는 것이 큰자인줄로 착각합니다.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치 아니하니 .”(마가복음 10:42-44)고 했습니다.
2 알고도 행치 않는 자들입니다. 세인들은 알지 못하니 행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알면서도 행치 않는 자들이 있습니다. 바리새인들 같은 형식적인 종교인들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알면서도 행함이 없는 믿음은 사실 죽은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야고보서 2:21-22)고 했습니다.
3 알고 행하는 자는 복을 받습니다. 주님이 친히 이 땅 위에 오셔서 본을 보인 것은 우리로 하여금 행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율법으 주신 것은 우리로 행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는 삶에는 반드시 약속한 복을 받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최후의 사랑을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변함이 없는 사랑입니다. 발씻기는 섬기는 사랑입니다. 용서하고 너그럽게 용납하는 사랑입니다. 본을 보이는 사랑을 배웁시다. 행함으로 복을 베푸는 사랑입니다. “무엇보다도 열심히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베드로전서 4:8)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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