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당신을 사명자로 세웠습니다 (엡4:11-12)
본문
당신은 밀알교회 사명자입니다. 새해를 아름답게 맞이합시다. 12월은 한해를 마감하는 달입니다. 반면에 새해를 준비하고 계획하는 달이기도 합니다. 마무리를 잘 하는 사람이 시작도 잘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새해에 일하실 신실한 일군을 뽑아 사명을 맡깁니다. 저는 주님의 목장을 맡은 지혜로운 청지기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기도로 새해를 계획해 봅니다. “하나님이여! 제게 제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들은 받아들 수 있는 평온함을 주시고,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그리고 이 둘을 잘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God grant me the serenity to accept the I can,t change, the courage to change the things I can and wisdom to know difference) 이는 어는 신학자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명자로 세웠습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에베소서 4:11-12)고 했습니다. 본문에 중요한 단어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핵심적인 것을 요약해서 정리하면 그가… 주셨으니 .하심이라 것입니다. 사명자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먼저 그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가 누구신가 그분은 독생자 예수님입니다. 친히 교회를 세우신 분입니다. 당신을 죄와 사망권세에서 구원하신 분입니다. 다음으로 주셨으니 라는 말입니다. 그가 당신에게 무엇을 주셨는가 사명을 주셨습니다. 당신은 그분에게 사명을 받았습니다. 모든 인간은 그 앞에 사명적인 존재입니다. 마지막으로 하심이라는 말입니다. 사명자가 할 일이 무엇인가 무엇을 하도록 사명을 주셨는가 이를 알지 못하고 사는 인생은 세월을 허송하는 자입니다. 주님은 금년에 당신에게 사명을 주었습니다. 당신은 사명을 잘 감당하는 충성된 일군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사명을 주신 분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 .”(11)라고 했습니다. 그가 누구신가 본문 앞서 여러 곳에서 그가 누구인지를 잘 밝혀 주고 있습니다. 10절에서 “내리셨던 그가 .”라고 했으며, 8절에서 “.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라고 했으며, 7절에서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라고 했습니다. 그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가 지상에서 세운 것이 무엇인가 교회입니다. 주님이 세운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지상교회에 세울 교회가 어떤 것인가를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마태복음 16:16-19). 교회는 바른 신앙고백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태복음 16:16)고 했습니다.
1 예수님은 당신의 주님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구주입니다. 당신은 예수님을 당신의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2 예수님은 당신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을 당신의 그리스도로 모셔야 합니다. 주님은 사단권세를 정복하신 만왕의 왕되신 그리스도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뜻을 전하여 주신 대선지자되신 그리스도입니다. 주님은 영원한 생명을 주신 대제사장되신 그리스도입니다.
3 예수님은 하나님 아들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당신의 구주입니다. 신성으로는 하나님이시요, 인성으로는 아들되심으로 도성인신(incanation) 독생자입니다. 교회는 반석 되신 주님의 교회입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마태복음 16:18)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갈대 시몬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고, 반석되신 주님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로마 카톨릭은 교회가 인간 베드로 위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이렇게 잘못된 교회론이 잘못된 구원론을 만듦으로 기독교의 본질을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주님은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힘주어 말씀하신 것입니다. 교회는 음부의 권세를 이깁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태복음 16:18)고 했습니다. 교회안에도 언제나 마귀의 세력이 있습니다. 사단은 항상 베드로와 같은 자 속에 들어와서 넘어지게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교회이기 때문에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합니다. 세상에 그 어떠한 권세라도 주님의 교회를 이길 자가 없습니다.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그를 무덤에 가두고 큰돌로 막아 빌라도가 인봉하여 백부장으로 지키게 하였으나 부활의 권능은 그 어떠한 세력으로도 항거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교회는 천국 열쇠를 가졌습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태복음 16:19)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천국 열쇠를 교회에 주었습니다. 교회밖에 구원이 있을 수 없으며, 교회를 통하지 않고 천국에 이를 자가 없습니다. 당신은 무엇으로 이 천국 열쇠를 열고 닫을 수 있는가 합심해서 드리는 기도입니다(마태복음 18:18). 당신은 주님의 교회로 부름받은 기도하는 제사장입니다. 기도는 매인 것을 푸는 천국열쇠입니다.
둘째:주신 사명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전하는 자로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11)라고 했습니다. 그가 자신의 몸을 바쳐서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를 통해서 무엇을 주셨는가 직분인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 사명으로 자신이 세운 교회를 땅끝까지 세우게 하신 것입니다. 사도를 세웠습니다. 사도(πστολο)란 사신 대사라는 말로서 대리자, 대언자, 증언자란 말입니다.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목격한 자로서 이 사실을 세상에 알리는 주님으로부터 파견을 받은 복음의 대사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자신의 교회를 이들의 터위에 세우도록 그 권세를 위임해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교회를 개척하는 종들은 사도적인 반열에 참여한 자들입니다. 선지자로 세웠습니다. 이들은 구약의 선지자나 예언자는 아니라 신약의 예언자입니다. 이들은 사도의 수에는 들지는 않았으나 사도와 함께 복음에 수종들었던 자들입니다(사도행전 13:1). 주님은 이들을 통해서 복음을 기록하게도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지자적 사명에 대하여 오해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선지자는 장래 일을 말하는 무속인들의 점치는 것과 같이 생각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선지자직은 그렇지 않습니다. 선지자를 일명 선견자(foreteller, forthteller)라고 합니다. 앞서 보고 말하는 자입니다. 오늘날도 사도적 사명에 수종드는 개척자와 함께 양무리에 앞장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자들은 선지자적 반열에 참여한 자들입니다. 복음전하는 자로 세웠습니다. 사도들을 통하여 받은 복음을 가정과 이웃에 전하는 자들입니다. 초대교회에는 이러한 자들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이름없이 빛도 없이 헌신한 종들입니다(사도행전 16:15, 3
4). 이들의 헌신적인 봉사를 통해서 사도들이 처처에 주님의 교회를 세우게 된 것입니다. 목사와 교사를 세웠습니다. 지역의 교회를 맡아 섬기는 양무리의 목들입니다 (디모데전서 1:12). 오늘날 설교시대에 모든 사명자들은 목사와 교사의 사명을 받은 자들입니다. 목사는 선포자로서 교사는 가르치는 자로서 복음 전도자입니다. 칼빈은 “목사는 하나님의 입이다”라고 했습니다. 설교자의 입은 생명을 전달하는 도구입니다. 어떤 분이 존스타트는 “왜 당신의 설교에 유우머가 없는가” 라고 묻자 그는 대답하기를 “이것이 나의 생애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데 어찌 강단에서 유우머를 사용하겠는가”라고 대답했습니다. 지상교회는 이렇게 발전해 왔습니다. 초대교회 지상에 교회를 세우는 원형입니다. 마치 건축업자가 집을 세울 때 골조공사로 먼저 뼈대와 같은 기본골격을 세우고난 다음에 내장공사를 시작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초대교회는 교회의 원형을 세우는 건축물의 골조공사와 같습니다. 그러나 내장공사는 그 시대의 언어와 문화에 따라서 다양한 모양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틀을 벗어나는 것은 언약을 파괴하는 이단행위입니다. 우리는 변천하는 시대에 따라서 교회의 내면을 얼마든지 아름답게 가꾸고 단장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시대에 적합한 모습으로 디자인해야 세상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셋째:받은 사명으로 해야 할 일을 알아야 합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12)고 했습니다. 여기 하심이라는 말씀은 사명을 받은 자가 무엇을 해야할 것인지를 가르쳐 줍니다. 성도를 온전케 하는 일입니다. 주님을 닮아 그리스도 안에서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회복하는 것입니다. 불완전하고 미성숙한 자아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완성되는 것이 온전에 이르는 것입니다(고린도후서 5:17). 여기 온전이란 말은 의학용어로는 뿌려져 어긋난 뼈를 바로 맞춘다는 말입니다. 어긋난 뼈를 아프다고 뿌려진 그대로 두면 순간에는 고통이 없으나 그 사람은 일평생 장애자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순간의 고통을 감수하고라도 어긋난 것을 바로 잡아 주면 일생을 온전한 사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 말이 어부들에게 사용될 때는 구멍난 그물을 깁는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어리석고 게으른 자라도 구멍난 그물을 그대로 바다에 던지는 어부는 없습니다. 피곤하고 힘이 들어도 구멍난 것은 깊어서 던져야 합니다. 그래야 고기가 그물 안에 갇힙니다. 봉사의 일을 하게 합니다. 하나님과 수직적인 신앙고백이 성도간의 수평적인 섬김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봉사입니다. 봉사를 모르고 직분을 맡으면 섬김이 아니라 권위가 나오게 됩니다. 봉사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은혜를 모르고 행하면 봉사가 되지 않고 수고의 대가를 요구하게 됩니다. 거기에는 기쁨과 만족과 감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대우와 인정을 받지 못하면 스스로 포기하게 됩니다. 대가 없이 자원하여 하는 것이 기쁨입니다. 칭찬이 없어도 서원함이 없습니다. 사명자가 할 일은 봉사와 충성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충성된 자를 일군으로 세워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입니다. 사명자는 주의 몸을 세우는 자입니다. 몸에는 다양한 지체들이 있습니다. 서로 다른 기능을 가진 다양한 지체들의 조화속에서 전체인 몸의 건강이 유지됩니다. 지체의 한 부분에 고장이 나도 온 몸이 고통을 받게 됩니다. 지체 한 부분의 즐거움은 온 몸의 기쁨입니다. 지체는 유기적으로 교통하면서 사명을 감당하게 됩니다. 당신은 몸의 교회의 지체입니다. 각인이 자기의 사명을 감당할 때 교회에 평강이 넘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리빙스턴 목사가 성전을 건축하면서 세 석공에게 이러한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은 지금 왜 이 일을 하고 있소”라고 하자 한 사람은 “돈을 벌어서 가족과 함께 먹고살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당신과 맺은 계약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마지막 한 사람은 “부족하지만 목사님과 더불어 주님의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당신은 지금 먹고살기 위해서 일하십니까 아니면 사귐을 통해 만난 어쩔 수 없는 계약 때문인가 그렇지 않으면 맡은 일을 사명으로 알고 기쁨으로 감당하는 감격적인 삶인가 .
하나님은 당신을 사명자로 세웠습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에베소서 4:11-12)고 했습니다. 본문에 중요한 단어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핵심적인 것을 요약해서 정리하면 그가… 주셨으니 .하심이라 것입니다. 사명자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먼저 그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가 누구신가 그분은 독생자 예수님입니다. 친히 교회를 세우신 분입니다. 당신을 죄와 사망권세에서 구원하신 분입니다. 다음으로 주셨으니 라는 말입니다. 그가 당신에게 무엇을 주셨는가 사명을 주셨습니다. 당신은 그분에게 사명을 받았습니다. 모든 인간은 그 앞에 사명적인 존재입니다. 마지막으로 하심이라는 말입니다. 사명자가 할 일이 무엇인가 무엇을 하도록 사명을 주셨는가 이를 알지 못하고 사는 인생은 세월을 허송하는 자입니다. 주님은 금년에 당신에게 사명을 주었습니다. 당신은 사명을 잘 감당하는 충성된 일군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사명을 주신 분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 .”(11)라고 했습니다. 그가 누구신가 본문 앞서 여러 곳에서 그가 누구인지를 잘 밝혀 주고 있습니다. 10절에서 “내리셨던 그가 .”라고 했으며, 8절에서 “.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라고 했으며, 7절에서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라고 했습니다. 그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가 지상에서 세운 것이 무엇인가 교회입니다. 주님이 세운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지상교회에 세울 교회가 어떤 것인가를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마태복음 16:16-19). 교회는 바른 신앙고백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태복음 16:16)고 했습니다.
1 예수님은 당신의 주님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구주입니다. 당신은 예수님을 당신의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야 합니다.
2 예수님은 당신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을 당신의 그리스도로 모셔야 합니다. 주님은 사단권세를 정복하신 만왕의 왕되신 그리스도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뜻을 전하여 주신 대선지자되신 그리스도입니다. 주님은 영원한 생명을 주신 대제사장되신 그리스도입니다.
3 예수님은 하나님 아들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당신의 구주입니다. 신성으로는 하나님이시요, 인성으로는 아들되심으로 도성인신(incanation) 독생자입니다. 교회는 반석 되신 주님의 교회입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마태복음 16:18)라고 했습니다. 교회는 갈대 시몬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고, 반석되신 주님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로마 카톨릭은 교회가 인간 베드로 위에 세워졌다고 합니다. 이렇게 잘못된 교회론이 잘못된 구원론을 만듦으로 기독교의 본질을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주님은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힘주어 말씀하신 것입니다. 교회는 음부의 권세를 이깁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태복음 16:18)고 했습니다. 교회안에도 언제나 마귀의 세력이 있습니다. 사단은 항상 베드로와 같은 자 속에 들어와서 넘어지게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교회이기 때문에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합니다. 세상에 그 어떠한 권세라도 주님의 교회를 이길 자가 없습니다.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그를 무덤에 가두고 큰돌로 막아 빌라도가 인봉하여 백부장으로 지키게 하였으나 부활의 권능은 그 어떠한 세력으로도 항거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교회는 천국 열쇠를 가졌습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태복음 16:19)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천국 열쇠를 교회에 주었습니다. 교회밖에 구원이 있을 수 없으며, 교회를 통하지 않고 천국에 이를 자가 없습니다. 당신은 무엇으로 이 천국 열쇠를 열고 닫을 수 있는가 합심해서 드리는 기도입니다(마태복음 18:18). 당신은 주님의 교회로 부름받은 기도하는 제사장입니다. 기도는 매인 것을 푸는 천국열쇠입니다.
둘째:주신 사명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전하는 자로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11)라고 했습니다. 그가 자신의 몸을 바쳐서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를 통해서 무엇을 주셨는가 직분인 사명을 주셨습니다. 이 사명으로 자신이 세운 교회를 땅끝까지 세우게 하신 것입니다. 사도를 세웠습니다. 사도(πστολο)란 사신 대사라는 말로서 대리자, 대언자, 증언자란 말입니다.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목격한 자로서 이 사실을 세상에 알리는 주님으로부터 파견을 받은 복음의 대사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자신의 교회를 이들의 터위에 세우도록 그 권세를 위임해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교회를 개척하는 종들은 사도적인 반열에 참여한 자들입니다. 선지자로 세웠습니다. 이들은 구약의 선지자나 예언자는 아니라 신약의 예언자입니다. 이들은 사도의 수에는 들지는 않았으나 사도와 함께 복음에 수종들었던 자들입니다(사도행전 13:1). 주님은 이들을 통해서 복음을 기록하게도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지자적 사명에 대하여 오해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선지자는 장래 일을 말하는 무속인들의 점치는 것과 같이 생각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선지자직은 그렇지 않습니다. 선지자를 일명 선견자(foreteller, forthteller)라고 합니다. 앞서 보고 말하는 자입니다. 오늘날도 사도적 사명에 수종드는 개척자와 함께 양무리에 앞장서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자들은 선지자적 반열에 참여한 자들입니다. 복음전하는 자로 세웠습니다. 사도들을 통하여 받은 복음을 가정과 이웃에 전하는 자들입니다. 초대교회에는 이러한 자들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이름없이 빛도 없이 헌신한 종들입니다(사도행전 16:15, 3
4). 이들의 헌신적인 봉사를 통해서 사도들이 처처에 주님의 교회를 세우게 된 것입니다. 목사와 교사를 세웠습니다. 지역의 교회를 맡아 섬기는 양무리의 목들입니다 (디모데전서 1:12). 오늘날 설교시대에 모든 사명자들은 목사와 교사의 사명을 받은 자들입니다. 목사는 선포자로서 교사는 가르치는 자로서 복음 전도자입니다. 칼빈은 “목사는 하나님의 입이다”라고 했습니다. 설교자의 입은 생명을 전달하는 도구입니다. 어떤 분이 존스타트는 “왜 당신의 설교에 유우머가 없는가” 라고 묻자 그는 대답하기를 “이것이 나의 생애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데 어찌 강단에서 유우머를 사용하겠는가”라고 대답했습니다. 지상교회는 이렇게 발전해 왔습니다. 초대교회 지상에 교회를 세우는 원형입니다. 마치 건축업자가 집을 세울 때 골조공사로 먼저 뼈대와 같은 기본골격을 세우고난 다음에 내장공사를 시작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초대교회는 교회의 원형을 세우는 건축물의 골조공사와 같습니다. 그러나 내장공사는 그 시대의 언어와 문화에 따라서 다양한 모양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틀을 벗어나는 것은 언약을 파괴하는 이단행위입니다. 우리는 변천하는 시대에 따라서 교회의 내면을 얼마든지 아름답게 가꾸고 단장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시대에 적합한 모습으로 디자인해야 세상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셋째:받은 사명으로 해야 할 일을 알아야 합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12)고 했습니다. 여기 하심이라는 말씀은 사명을 받은 자가 무엇을 해야할 것인지를 가르쳐 줍니다. 성도를 온전케 하는 일입니다. 주님을 닮아 그리스도 안에서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회복하는 것입니다. 불완전하고 미성숙한 자아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완성되는 것이 온전에 이르는 것입니다(고린도후서 5:17). 여기 온전이란 말은 의학용어로는 뿌려져 어긋난 뼈를 바로 맞춘다는 말입니다. 어긋난 뼈를 아프다고 뿌려진 그대로 두면 순간에는 고통이 없으나 그 사람은 일평생 장애자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순간의 고통을 감수하고라도 어긋난 것을 바로 잡아 주면 일생을 온전한 사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 말이 어부들에게 사용될 때는 구멍난 그물을 깁는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어리석고 게으른 자라도 구멍난 그물을 그대로 바다에 던지는 어부는 없습니다. 피곤하고 힘이 들어도 구멍난 것은 깊어서 던져야 합니다. 그래야 고기가 그물 안에 갇힙니다. 봉사의 일을 하게 합니다. 하나님과 수직적인 신앙고백이 성도간의 수평적인 섬김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봉사입니다. 봉사를 모르고 직분을 맡으면 섬김이 아니라 권위가 나오게 됩니다. 봉사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은혜를 모르고 행하면 봉사가 되지 않고 수고의 대가를 요구하게 됩니다. 거기에는 기쁨과 만족과 감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대우와 인정을 받지 못하면 스스로 포기하게 됩니다. 대가 없이 자원하여 하는 것이 기쁨입니다. 칭찬이 없어도 서원함이 없습니다. 사명자가 할 일은 봉사와 충성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충성된 자를 일군으로 세워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입니다. 사명자는 주의 몸을 세우는 자입니다. 몸에는 다양한 지체들이 있습니다. 서로 다른 기능을 가진 다양한 지체들의 조화속에서 전체인 몸의 건강이 유지됩니다. 지체의 한 부분에 고장이 나도 온 몸이 고통을 받게 됩니다. 지체 한 부분의 즐거움은 온 몸의 기쁨입니다. 지체는 유기적으로 교통하면서 사명을 감당하게 됩니다. 당신은 몸의 교회의 지체입니다. 각인이 자기의 사명을 감당할 때 교회에 평강이 넘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리빙스턴 목사가 성전을 건축하면서 세 석공에게 이러한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은 지금 왜 이 일을 하고 있소”라고 하자 한 사람은 “돈을 벌어서 가족과 함께 먹고살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당신과 맺은 계약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마지막 한 사람은 “부족하지만 목사님과 더불어 주님의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당신은 지금 먹고살기 위해서 일하십니까 아니면 사귐을 통해 만난 어쩔 수 없는 계약 때문인가 그렇지 않으면 맡은 일을 사명으로 알고 기쁨으로 감당하는 감격적인 삶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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