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님으로 충만한 스데반 같은 집사가 됩시다 (행7:54-60)
본문
좋은 집사가 됩시다. 집사가 무엇인가 집사란 말은 헬라어 디아코노스(δακονο)에서 온 말인데 이 말은 신약성경에서 약 30회 정도 나오는데 주로 일군(minister)이나 종(servant)이란 말로 번역하였습니다. 집사란 말로는 5회정도 나옵니다. 영어의 디아콘(deacon)이란 말은 헬라어 디아코노스(δακονο)에서 나왔습니다. 이 말은 본래 “먼지를 통해서”라는 말인데 먼지를 일으킨다는 개념에서 주인을 섬기고 시중들기 위해서 서두르는 것을 암시합니다.
한문어로 집사(執事)란 잡을집(執), 일사(事)로 “일을 잡은 자”란 말입니다. 일자리를 잃은 자를 실업자라고 합니다. 요즈음 같은 불황속에 일을 잡았다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전에서 봉사할 수 있는 일을 잡은 집사가 되었다는 것은 지상최고의 축복입니다. 좋은 집사가 됩시다. 초대교회는 사도들에 의하여 처음으로 일곱 집사를 선택했습니다. 그중에 스데반은 모든 면에서 앞서가는 집사였습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님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는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님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사도행전 6:3-6)고 했습니다. 스데반은 성령님과 지혜와 믿음이 충만한 사람입니다. 그는 모세의 법과 선지의 글에도 능한 지혜자였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사건에서부터 다윗에 이러기까지 구원역사를 확실하게 알고 있었고 그것을 담대하게 증거하는 믿음의 담력을 가진 복음의 증인이었습니다. 스데반은 같은 집사가 됩시다. 스데반은 기독교를 세계화한 최초의 인물입니다. 복음이 유대의 국경을 벗어나지 못했을 때 하나님은 환란의 바람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 바람을 따라 스데반의 순교의 불씨가 수리아 안디옥까지 번져서 그곳에 주님의 교회가 세워졌습니다(사도행전 11:19). 안디옥교회는 세계선교를 위한 복음의 전초기지였습니다(사도행전 13:2-3). 스데반은 어떻게 해서 이 불씨를 일으켰는가 그는 자기를 향하여 이를 갈며 돌을 던지는 무리들 앞에서 다음과 같이 순교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첫째:하늘을 주목합시다. 스데반은 하늘을 주목했습니다. “스데반이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55)라고 했습니다. 그는 지금 자기에게 돌을 던지는 자를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그가 그를 향해 이을 갈고 있는 자들을 주목하고 있었다면 그는 그들을 위하여 기도할 수 없을 것입니다. 돌을 던지는 무리 앞에서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볼 때 그리스도의 영성을 회복하게 됩니다. 인생이 무엇을 주목하고 사는냐에 따라서 인생의 삶이 달라집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주목하고 사는가
1 아브라함의 안목을 가지고 삽시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창세기 13:14-15)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 가나안 곧 헤브론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롯은 죄악의 도성인 소돔과 고모라가 있는 요단들을 바라보았습니다. 후일에 그는 모든 것을 다 잃었습니다.
2 요셉의 안목을 가집시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창세기 45:7)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수평적으로 일어나는 자신의 사건을 풀어갈 때 수직적인 하나님 앞에서 그 문제의 해답을 찾았습니다. 형들의 손에서 팔려 보디발의 집으로 올때도 그러했고, 나아가서 보디발의 아내를 통해 감옥에 갈 때도 그러했으며, 바로의 치리자가 되어 총리가 되었을 때도 그러했습니다. 그는 모든 사건 앞에서 하나님 앞에 선 자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3 베드로의 안목을 가집시다.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사도행전 3:4)고 했습니다. 성령님을 충만히 받은 베드로는 성전 미문에 앉은 앉은뱅이를 보는 안목이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젠 그에게 필요한 것이 은과 금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둘째: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봅시다. 스데반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55)라고 했습니다. 스데반은 영광의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는 영광의 하나님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설교의 서두에 영광의 하나님이 나옵니다. “스데반이 가로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사도행전 7:2)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조상으로부터 살아온 본토와 친척과 아비집을 떠나서 낮설은 타향으로 갈 수 있었던 것은 영광의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까
1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바라봅시다. 유대에 웃시야왕이 죽던 때 입니다. 그때 이사야는 성전에서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하며 천사들이 날면서 거룩한 찬송을 할 때 그 영광이 충만했습니다(이사야 6:1-3).
2 하나님이 거하시는 천국의 영광을 바라봅시다. 사도요한은 주의 날에 밧모섬에서 천국을 보았습니다(요한계시록 1:9-10).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요한계시록 21:1)고 했습니다. 천국은 형언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곳입니다.
3 이제 당신은 그에게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린도전서 10:31)고 했습니다. 이것이 인생의 본분입니다(전도서 12:13). 이것이 인생의 존재목적입니다. 목적을 상실한 것은 존재가치를 잃어버리고 맙니다. 바울은 하나님께 영광돌리지 않고, 감사할 줄 모르는 인생을 허망하고 미련하고 어둡고 우준한 인생(로마서 1:21-23)이라고 합니다.
셋째:하나님 우편에 서신 주님을 봅시다. 스데반은 하나님 우편에 서신 주님을 보았습니다.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56)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항상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십니다(히브리서 12:2).
그런데 스데반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순간에 놀라운 한 사건을 발견했습니다. 천국에 대 계엄령이 선포된 것입니다. 주님이 보좌 우편에서 일어서셨습니다. 그러니 천국에 있는 모든 천군 천사들이 일어섰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앞서간 믿음의 선진들도 다 일어섰을 것입니다. 알고보니 이날은 스데반 집사의 천국에 입국하는 날입니다. 왜 주님이 일어났을까
1 스데반을 격려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차범근 감독이 이끈 국가 대표선수들이 월드컵 본선을 위하여 외국 선수들과 경기할 때 우리나라 선수가 꼴인을 시켰을 때 저는 누워 있다가도 뻘떡 일어났습니다. 그때 경기장의 관중들을 보니 한국응원단들은 다 일어섰던 것을 보았습니다. 주님은 사단권세와 싸워 이기는 스데반을 격려하기 위하여 보좌에서 일어나 격려의 박수를 보내었던 것입니다.
2 스데반의 입국을 환영하기 위해서입니다. 당신은 집에 귀한 손님이 들어오면 어떻게 맞이합니까 일어서서 맞이합니다. 마찬가지로 스데반이 순교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천국에 들어올 때 주님은 보좌에서 일어서서 스데반을 기쁘게 영접했습니다.
3 스데반에게 상급을 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장한 선수에게 상을 베풀 때에는 아무리 높은 자리에 계신 분이라도 일어서서 그 노고를 치하하고 상을 베푸십니다. 그처럼 스데반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씌워 주기 위해서 주님이 일어서신 것입니다.
넷째:자신과 원수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스데반은 자신과 원수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59-60)고 했습니다. 스데반은 원수가 돌로 칠 때 그들을 보지 않고 하늘을 주목하여 보았습니다. 여기서 스데반의 영성이 회복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원수를 위하여 기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원수를 위해서 기도합시다.
1 모세는 목이 곧은 자기 백성을 위하여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출애굽기 32:32)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계약을 맺으려 간 사이에 아론과 짝하여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그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모세는 분노해서 언약의 돌판을 깨뜨렸으나 돌이켜 회개하고 자신이 버림을 받더라도 목이 곧은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2 바울은 원수에게 선을 베풀라고 했습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로마서 12:19-20)고 했습니다. 당신에게는 원수를 정확히 갚을 의가 없습니다. 그래서 원수 갚는 것을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대신 정확하게 갚아 주십니다. 이 땅위에 선도 악으로 갚는 불의한 자들이 있는가 하면 악은 악으로 선은 선으로 갚는 자연인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선으로 악을 갚는 이기는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3 주님은 갈보리에서 이 기도를 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누가복음 23:34)고 했습니다. 스데반의 기도는 주님의 기도와 너무 닮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주님의 영성을 닮은 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스데반 같은 집사가 됩시다.
1 하늘을 주목하여 봅시다. 환경을 보고 상황에 얽매이면 주님의 일을 놓치고 맙니다.
2 하나님의 영광을 봅시다. 하나님은 너무도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분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계신 천국도 영광스러운 곳입니다. 당신은 그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3 하나님 보좌 우편에 서신 주님을 봅시다. 주님은 오늘도 당신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승리한 당신이 천국에 들어갈 때 일어서서 맞이할 것이며, 생명의 면류관을 주실 것입니다.
4 자신의 영혼과 원수를 위해서 기도합시다. 영혼이 잘되는 것은 당신의 삶에 최우선순입니다. 원수는 하나님의 장중에 맡기고 위해서 기도합시다.
한문어로 집사(執事)란 잡을집(執), 일사(事)로 “일을 잡은 자”란 말입니다. 일자리를 잃은 자를 실업자라고 합니다. 요즈음 같은 불황속에 일을 잡았다는 것은 얼마나 귀한 일인지 모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전에서 봉사할 수 있는 일을 잡은 집사가 되었다는 것은 지상최고의 축복입니다. 좋은 집사가 됩시다. 초대교회는 사도들에 의하여 처음으로 일곱 집사를 선택했습니다. 그중에 스데반은 모든 면에서 앞서가는 집사였습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님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는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님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사도행전 6:3-6)고 했습니다. 스데반은 성령님과 지혜와 믿음이 충만한 사람입니다. 그는 모세의 법과 선지의 글에도 능한 지혜자였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사건에서부터 다윗에 이러기까지 구원역사를 확실하게 알고 있었고 그것을 담대하게 증거하는 믿음의 담력을 가진 복음의 증인이었습니다. 스데반은 같은 집사가 됩시다. 스데반은 기독교를 세계화한 최초의 인물입니다. 복음이 유대의 국경을 벗어나지 못했을 때 하나님은 환란의 바람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 바람을 따라 스데반의 순교의 불씨가 수리아 안디옥까지 번져서 그곳에 주님의 교회가 세워졌습니다(사도행전 11:19). 안디옥교회는 세계선교를 위한 복음의 전초기지였습니다(사도행전 13:2-3). 스데반은 어떻게 해서 이 불씨를 일으켰는가 그는 자기를 향하여 이를 갈며 돌을 던지는 무리들 앞에서 다음과 같이 순교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첫째:하늘을 주목합시다. 스데반은 하늘을 주목했습니다. “스데반이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55)라고 했습니다. 그는 지금 자기에게 돌을 던지는 자를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그가 그를 향해 이을 갈고 있는 자들을 주목하고 있었다면 그는 그들을 위하여 기도할 수 없을 것입니다. 돌을 던지는 무리 앞에서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볼 때 그리스도의 영성을 회복하게 됩니다. 인생이 무엇을 주목하고 사는냐에 따라서 인생의 삶이 달라집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주목하고 사는가
1 아브라함의 안목을 가지고 삽시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창세기 13:14-15)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 가나안 곧 헤브론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롯은 죄악의 도성인 소돔과 고모라가 있는 요단들을 바라보았습니다. 후일에 그는 모든 것을 다 잃었습니다.
2 요셉의 안목을 가집시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창세기 45:7)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수평적으로 일어나는 자신의 사건을 풀어갈 때 수직적인 하나님 앞에서 그 문제의 해답을 찾았습니다. 형들의 손에서 팔려 보디발의 집으로 올때도 그러했고, 나아가서 보디발의 아내를 통해 감옥에 갈 때도 그러했으며, 바로의 치리자가 되어 총리가 되었을 때도 그러했습니다. 그는 모든 사건 앞에서 하나님 앞에 선 자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3 베드로의 안목을 가집시다. “베드로가 요한으로 더불어 주목하여 가로되 우리를 보라”(사도행전 3:4)고 했습니다. 성령님을 충만히 받은 베드로는 성전 미문에 앉은 앉은뱅이를 보는 안목이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젠 그에게 필요한 것이 은과 금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둘째: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봅시다. 스데반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55)라고 했습니다. 스데반은 영광의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는 영광의 하나님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설교의 서두에 영광의 하나님이 나옵니다. “스데반이 가로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사도행전 7:2)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조상으로부터 살아온 본토와 친척과 아비집을 떠나서 낮설은 타향으로 갈 수 있었던 것은 영광의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까
1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바라봅시다. 유대에 웃시야왕이 죽던 때 입니다. 그때 이사야는 성전에서 기도하다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하며 천사들이 날면서 거룩한 찬송을 할 때 그 영광이 충만했습니다(이사야 6:1-3).
2 하나님이 거하시는 천국의 영광을 바라봅시다. 사도요한은 주의 날에 밧모섬에서 천국을 보았습니다(요한계시록 1:9-10).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요한계시록 21:1)고 했습니다. 천국은 형언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곳입니다.
3 이제 당신은 그에게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린도전서 10:31)고 했습니다. 이것이 인생의 본분입니다(전도서 12:13). 이것이 인생의 존재목적입니다. 목적을 상실한 것은 존재가치를 잃어버리고 맙니다. 바울은 하나님께 영광돌리지 않고, 감사할 줄 모르는 인생을 허망하고 미련하고 어둡고 우준한 인생(로마서 1:21-23)이라고 합니다.
셋째:하나님 우편에 서신 주님을 봅시다. 스데반은 하나님 우편에 서신 주님을 보았습니다.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56)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항상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십니다(히브리서 12:2).
그런데 스데반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순간에 놀라운 한 사건을 발견했습니다. 천국에 대 계엄령이 선포된 것입니다. 주님이 보좌 우편에서 일어서셨습니다. 그러니 천국에 있는 모든 천군 천사들이 일어섰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앞서간 믿음의 선진들도 다 일어섰을 것입니다. 알고보니 이날은 스데반 집사의 천국에 입국하는 날입니다. 왜 주님이 일어났을까
1 스데반을 격려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차범근 감독이 이끈 국가 대표선수들이 월드컵 본선을 위하여 외국 선수들과 경기할 때 우리나라 선수가 꼴인을 시켰을 때 저는 누워 있다가도 뻘떡 일어났습니다. 그때 경기장의 관중들을 보니 한국응원단들은 다 일어섰던 것을 보았습니다. 주님은 사단권세와 싸워 이기는 스데반을 격려하기 위하여 보좌에서 일어나 격려의 박수를 보내었던 것입니다.
2 스데반의 입국을 환영하기 위해서입니다. 당신은 집에 귀한 손님이 들어오면 어떻게 맞이합니까 일어서서 맞이합니다. 마찬가지로 스데반이 순교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천국에 들어올 때 주님은 보좌에서 일어서서 스데반을 기쁘게 영접했습니다.
3 스데반에게 상급을 주시기 위해서 입니다. 장한 선수에게 상을 베풀 때에는 아무리 높은 자리에 계신 분이라도 일어서서 그 노고를 치하하고 상을 베푸십니다. 그처럼 스데반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씌워 주기 위해서 주님이 일어서신 것입니다.
넷째:자신과 원수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스데반은 자신과 원수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59-60)고 했습니다. 스데반은 원수가 돌로 칠 때 그들을 보지 않고 하늘을 주목하여 보았습니다. 여기서 스데반의 영성이 회복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원수를 위하여 기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원수를 위해서 기도합시다.
1 모세는 목이 곧은 자기 백성을 위하여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출애굽기 32:32)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계약을 맺으려 간 사이에 아론과 짝하여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그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모세는 분노해서 언약의 돌판을 깨뜨렸으나 돌이켜 회개하고 자신이 버림을 받더라도 목이 곧은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2 바울은 원수에게 선을 베풀라고 했습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로마서 12:19-20)고 했습니다. 당신에게는 원수를 정확히 갚을 의가 없습니다. 그래서 원수 갚는 것을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대신 정확하게 갚아 주십니다. 이 땅위에 선도 악으로 갚는 불의한 자들이 있는가 하면 악은 악으로 선은 선으로 갚는 자연인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선으로 악을 갚는 이기는 승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3 주님은 갈보리에서 이 기도를 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누가복음 23:34)고 했습니다. 스데반의 기도는 주님의 기도와 너무 닮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주님의 영성을 닮은 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스데반 같은 집사가 됩시다.
1 하늘을 주목하여 봅시다. 환경을 보고 상황에 얽매이면 주님의 일을 놓치고 맙니다.
2 하나님의 영광을 봅시다. 하나님은 너무도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분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계신 천국도 영광스러운 곳입니다. 당신은 그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3 하나님 보좌 우편에 서신 주님을 봅시다. 주님은 오늘도 당신을 격려하고 있습니다. 승리한 당신이 천국에 들어갈 때 일어서서 맞이할 것이며, 생명의 면류관을 주실 것입니다.
4 자신의 영혼과 원수를 위해서 기도합시다. 영혼이 잘되는 것은 당신의 삶에 최우선순입니다. 원수는 하나님의 장중에 맡기고 위해서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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