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데교회의 형편 (계3:1-13)
본문
사데 교회는 영적으로 죽은 교회의 모형입니다.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지만 실상은 죽은 교회였고,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없는 교회였습니다. 오늘날 교회들이 자칫하면 사데 교회와 같이 될 위험성이 많습니다. 특히 보수교단의 교회들에게는 이렇게 될 가능성이 더 많습니다. "하나님이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계3:1). 사데교회에 나타나신 주님은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일곱 영은 성령님을 의미합니다. 성령님은 일곱 가지 역사를 행하십니다. 일곱이라는 숫자는 하늘의 숫자 삼과 땅의 숫자 사를 합친 완전수입니다. 따라서 성령님을 일곱 영 이라고 하는것은 완전한 영, 충만한 영이라는 뜻입니다. 일곱 별을 가지신 분이라 함은 일곱 교회의 사자들을 의미합니다.
성령님을 가지시고, 그 손에 일곱 교회의 사자들을 가지신 예수님은 바로 심판자라는 것입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3:1). 사데교회는 크고, 경건의 모양도 있었지만 경건의 능력은 없는 영적으로 죽은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심판주로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외형적으로는 번성하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부패적 요소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칫하면 우리도 사대교회같이 될 위험성이 있는 것입니다. 사데교회는 사데 지역에 있는 교회로서 루디아의 수도였습니다. 사데 지역은 섬유 산업과 보석 산업으로 유명하고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유명했을 뿐 아니라 교회적으로도 명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라는 본문의 말씀에 비추어 보더라도 명성이 꽤 있었던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라고 책망 하셨습니다. 왜 사데교회가 이처럼 되었을까요 무엇보다 사데교회는 거듭나지 못했습니다. 교회는 거듭난 사람이 많아야 합니다.
또한 사데교회는 사해처럼 자기 것을 나누어줄 줄 모르는 교회였습니다. 갈릴리바다는 요단 강물이 흘러들어오기도 하지만 또한 그 바다에서 물이 빠져나기기도 합니다. 그래서 갈릴리바다에는 항상 맑은 물이 흐르고 있어 고기와 해초들이 잘 자랍니다. 그러나 사해바다는 물이 들어가기만 하고 나가지는 않습니다. 쉽게 말하면 사해바다는 하나님의부터 은혜를 받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줄 줄 모르는 바다이고, 갈릴리 바다는 받기도 하지만 부지런히 나누어주는 바다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신자들 가운데도 갈릴리바다와 같은 신자와 사해바다와 같은 신자가 있고, 교회에도 갈릴리 바다와 같은 교회와 같은 신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을 뿐만 아니라 남에게 부지런히 나누어주고 바칠 것은 부지런히 바칩니다. 갈릴리 바다와 같은 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을 뿐만 아니라 다른 교회에 나누어 주고 선교사를 보내고 구제활동을 폅니다. 그러나 사데교회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 교회는 사해바다와 같아서 하나님으로부터 풍성한 은혜를 받았는데도, 나누어줄 줄을 몰랐기 때문에 결국은 죽은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데교회는 아름다운 건물을 가진 교회였고 엄숙한 예배의식을 가진 교회였으나, 다른 영혼들의 구원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열심은 없었고, 형식만 남아 있었습니다. 예배 의식 속에서도 그 안에 살아 움직이는 성령님의 역사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데교회는 죽은 교회, 즉 영적으로 잠자고 있는 행함이 없는 교회였습니다.
영적으로 잠자는 교회의 특징은 기도와 찬양과 전도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계3:2)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믿음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또한 복음과 성령님의 역사를 굳게 잡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께서 오실 때에 책망을 면할 수 없습니다.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가가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른지 내가 알지 못하리라"(게3:3) 주님께서는 때로는 침묵하시면서 기다리십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한계가 있어 마침내 때가 될 때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심판하십니다.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계3:2). 사데교회는 또한 그 행위가 온전치 못하였습니다. 사람 보기에는 그들의 행위가 선하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그 모두가 외형적인 것이었습니다. 사데 교회는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처럼 외식하는 교회였던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겉모양이 아니고 마음이 어떠한가 하는 것입니다. 3절에는 이 교회가 사는 비결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시에 내가 임할른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계3:3).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자신들을 돌아보아 회개하는 것이 사데교회가 사는 비결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계3:4). 마치 소돔과 고모라성의 멸망될 당시에도 롯처럼 구원받은 사람이 있었듯이 세상이 아무리 썩었다 할지라도 예외적인 사람이 있는 법입니다.
사데 교회에도 옷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옷이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은 칭의의 옷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런 옷을 입은 자들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로서 기도 생활을 열심히 합니다. 합당한 자라고 인정받는 사람은 주님을 참으로 사랑하는 자입니다.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마10:37-39).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3:5,6). 본문에 의하면 이기는 자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흐리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천국에는 구원받은 백성의 이름을 적은 생명책과 그 행위를 적은 행위책이 있는데, 이 말씀은 생명책에 그 이름을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 시인한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마지막 심판의 날에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변호사가 되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성령님을 가지시고, 그 손에 일곱 교회의 사자들을 가지신 예수님은 바로 심판자라는 것입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3:1). 사데교회는 크고, 경건의 모양도 있었지만 경건의 능력은 없는 영적으로 죽은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심판주로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외형적으로는 번성하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부패적 요소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칫하면 우리도 사대교회같이 될 위험성이 있는 것입니다. 사데교회는 사데 지역에 있는 교회로서 루디아의 수도였습니다. 사데 지역은 섬유 산업과 보석 산업으로 유명하고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유명했을 뿐 아니라 교회적으로도 명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라는 본문의 말씀에 비추어 보더라도 명성이 꽤 있었던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죽은 자"라고 책망 하셨습니다. 왜 사데교회가 이처럼 되었을까요 무엇보다 사데교회는 거듭나지 못했습니다. 교회는 거듭난 사람이 많아야 합니다.
또한 사데교회는 사해처럼 자기 것을 나누어줄 줄 모르는 교회였습니다. 갈릴리바다는 요단 강물이 흘러들어오기도 하지만 또한 그 바다에서 물이 빠져나기기도 합니다. 그래서 갈릴리바다에는 항상 맑은 물이 흐르고 있어 고기와 해초들이 잘 자랍니다. 그러나 사해바다는 물이 들어가기만 하고 나가지는 않습니다. 쉽게 말하면 사해바다는 하나님의부터 은혜를 받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줄 줄 모르는 바다이고, 갈릴리 바다는 받기도 하지만 부지런히 나누어주는 바다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신자들 가운데도 갈릴리바다와 같은 신자와 사해바다와 같은 신자가 있고, 교회에도 갈릴리 바다와 같은 교회와 같은 신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을 뿐만 아니라 남에게 부지런히 나누어주고 바칠 것은 부지런히 바칩니다. 갈릴리 바다와 같은 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을 뿐만 아니라 다른 교회에 나누어 주고 선교사를 보내고 구제활동을 폅니다. 그러나 사데교회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 교회는 사해바다와 같아서 하나님으로부터 풍성한 은혜를 받았는데도, 나누어줄 줄을 몰랐기 때문에 결국은 죽은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데교회는 아름다운 건물을 가진 교회였고 엄숙한 예배의식을 가진 교회였으나, 다른 영혼들의 구원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열심은 없었고, 형식만 남아 있었습니다. 예배 의식 속에서도 그 안에 살아 움직이는 성령님의 역사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데교회는 죽은 교회, 즉 영적으로 잠자고 있는 행함이 없는 교회였습니다.
영적으로 잠자는 교회의 특징은 기도와 찬양과 전도를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계3:2)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믿음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또한 복음과 성령님의 역사를 굳게 잡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께서 오실 때에 책망을 면할 수 없습니다.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가가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른지 내가 알지 못하리라"(게3:3) 주님께서는 때로는 침묵하시면서 기다리십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한계가 있어 마침내 때가 될 때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심판하십니다.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계3:2). 사데교회는 또한 그 행위가 온전치 못하였습니다. 사람 보기에는 그들의 행위가 선하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그 모두가 외형적인 것이었습니다. 사데 교회는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처럼 외식하는 교회였던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겉모양이 아니고 마음이 어떠한가 하는 것입니다. 3절에는 이 교회가 사는 비결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시에 내가 임할른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계3:3).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자신들을 돌아보아 회개하는 것이 사데교회가 사는 비결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계3:4). 마치 소돔과 고모라성의 멸망될 당시에도 롯처럼 구원받은 사람이 있었듯이 세상이 아무리 썩었다 할지라도 예외적인 사람이 있는 법입니다.
사데 교회에도 옷을 더럽히지 않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옷이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은 칭의의 옷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런 옷을 입은 자들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로서 기도 생활을 열심히 합니다. 합당한 자라고 인정받는 사람은 주님을 참으로 사랑하는 자입니다.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마10:37-39).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3:5,6). 본문에 의하면 이기는 자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흐리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천국에는 구원받은 백성의 이름을 적은 생명책과 그 행위를 적은 행위책이 있는데, 이 말씀은 생명책에 그 이름을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 시인한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마지막 심판의 날에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변호사가 되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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