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지금 당신을 찾고 계십니다 (마11:28)
본문
하나님이 당신을 불렀습니다. 오늘은 밀알의강단 100호를 맞이하는 주일입니다. 1995년 9월 28일에 1호가 발행되어 지금까지 100호가 나왔습니다. 매주 1호씩 발행하여 전도지용으로 사용해 왔습니다. 간혹 주중(주일저녁, 수요저녁)에 선포된 메시지 중에서 발행되지 못한 것이 얼마가 있습니다. 저가 아무리 부지런히 사역해도 2000호를 넘기지 못하고 이 강단을 후임자에게 물러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한 생각을 해 보니 인생이 서글퍼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모세는 “우리에게 우리의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편 90:12)라고 했으며, 바울은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님의 충만을 받으라”(에베소서 5:16-18)고 했습니다.
톨스토이의 작품중 인생론에 관한 이러한 글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무서운 맹수의 추격을 피하기 위하여 혼신의 힘을 다하여 도망치다가 마침내 낭떠러지 절벽을 만났습니다. 너무나 다급한 나머지 그 절벽에서 뛰어 내렸습니다. 한참을 떨어져 내려가는데 칡넝쿨 같은 줄에 걸렸습니다. 얼마 후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위에는 들소가 으렁렁거리고 있으며, 절벽 아래에는 무서운 독사가 혀을 날름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사적으로 그 칡넝쿨을 잡고 있는데 바위틈에서 희고 까만 들쥐가 나와서 그 뿌리를 교대로 깔아 먹고 있습니다. 불안과 초조와 공포 속에 사로잡혀 있는데 그 앞에 무엇인가 간헐적으로 한 방울씩 떨어지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위 벌집에서 꿀이 녹아서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그가 혀를 내어서 그 꿀을 받아먹으면서 순간의 즐거움을 통하여 그 고통을 잊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인간의 실존인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성경을 통해서 인류를 향하여 하나님이 부르시는 간절한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시대 시대마다 하나님은 자신이 세우신 종들을 부르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영적인 귀가 열여야 합니다. 이것이 그 시대를 향한 복음의 소리입니다. 이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하고 이 소리가 나타나는 현장의 역사를 보는 눈이 열여야 복된 인생입니다. 오늘은 주님이 당신을 부르시는 음성을 듣는 축복의 성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첫째:불순종해서도 좋습니다. 읽을말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 하여 숨었나이다”(창세기3:9-10) 하나님은 아담을 불렀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언약을 파괴하고 피하여 숨어 있을 때 하나님은 그를 찾아 왔습니다. 그때가 언제인가 “날이 서늘할 때”(창세기 3:8)입니다.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도 아니고, 한낮의 해가 내리쬐는 정오도 아니고, 어두움이 깔린 깊은 밤도 아니고 서늘할 때 찾아 오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여기에는 아담아 네가 불순종해서도 좋다 이리 오너라 내가 너를 용서한다는 무언의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 하나님은 지금 당신을 부르고 계십니다. 네 사랑하는 자녀들아 네가 지금 어디에 있느냐 하고 찾으십니다. 더 이상 피하지 맙시다. 더 이상 숨지 맙시다. 더 이상 무엇으로 가리우지 맙시다. 범죄한 그대로 나가면 됩니다. 못난 그대로가 좋습니다.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찬송가 349장)하고 나아 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떠나면 안됩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멀리하면 불행해 집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도록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창세기 1:26-28). 그래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편 73:28)고 했습니다.
둘째:우상 숭배해서도 좋습니다. 읽을말씀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창세기12:1-3)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불렀습니다. 갈대아 지역 우르는 우상의 도시입니다. 그아비 데라는 우상 장사였습니다. 그는 우상 숭배자의 아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반열에 세우기 위하여 그 도성을 떠나서 지시할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게 했습니다. 우상의 도성인 본토를 떠나고, 인간중심의 삶인 친척을 떠나고, 안일주의를 청산하기 위해서 아비집을 떠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시할 언약의 땅으로 나아가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지정한 장소를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매일 매일 지시하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나아갔습니다. 신앙생활이란 매일 매일 하늘 양식 만나로 살아가는 것입니다(출애굽기 16:4). 하나님은 지금 당신을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세속의 도성에서 세속적인 가치관으로 사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바울은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빌립보서 3:20)라고 했습니다. 당신이 무엇으로 세속적인 삶을 이길 수 있는가 사도 요한은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한복음 5:4)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쓰임 받은 사람들은 다 믿음의 사람들입니다(히브리서 11장).
셋째:늙어도 좋습니다. 읽을말씀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애굽기3:4-5) 하나님은 모세를 불렀습니다. 그는 광야 서편의 인생이었습니다. 그가 애굽 바로의 왕궁에 있었던 사십대에는 혈기방장한 야심찬 인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미디안 광야에서 사십년간 남의 양치는 목자로 있으면서 소망이 없는 늙은이가 되었습니다. 그는 마치 광야 서편으로 기울어져 가는 인생과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가시 떨기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환상 앞에 그의 눈이 열여서 그는 출애굽의 사명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전의 신발을 벗어 던지고 지난날의 모든 잘못을 돌이켜 회개하고 능력의 지팡을 손에 잡고 사명의 현장으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당신을 사명자로 부르십니다. 더 이상 이드로의 양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이제 세속의 신발을 벗어 던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더 이상 세속적인 지팡이에 자기 몸을 의탁하지 않게 하십니다. 그 지팡이도 집어던지라고 합니다. 이제 다시 잡은 지팡이는 이전의 지팡이와 다른 능력의 지팡입니다. 그리고 이전에 민족에게 품은 문둥병보다 더 더러운 적개심도 깨끗이 청산했습니다. 그가 사명을 감당할 때 하나님이 그 생명을 붙들어 주셨던 것입니다(신명기 34:7).
넷째:낙심해서도 좋습니다. 읽을말씀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 천사가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주 사십야를 행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열왕기상 19:5-8) 하나님은 엘리야와 함께 했습니다. 그는 죽기를 기도했습니다. 삼년 육개월의 기근과 갈멜산의 능력 앞에서도 아합의 기세는 꺾이지 않고 오히려 이세벨의 마음은 더욱 강팍해져 갔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더 이상 항거할 수 없어서 광야로 도피하여 죽기를 결심했습니다. 그때 천사가 나타나서 구운 떡과 한병 물을 주셔서 먹고 마시게 하신 후에 사십일을 걸어서 호렙산에 이르게 했습니다.
그는 호렙산 굴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깨닫았던 것입니다. 바람과 지진과 불 가운데서도 계시지 않던 하나님이 세미한 음성으로 그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세벨 같은 무리 중에서도 칠천의 무리를 감추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깨닫게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당신 곁에 천사를 보내십니다. 사명자도 지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명을 이루시기까지 하나님의 손길이 항상 같이합니다. 당신이 지쳐 있을 때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셔서 당신을 도우십니다. 그리고 당신이 깨닫지 못했던 비밀한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세미한 역사입니다. 당신이 지금까지 감당한 것은 보이지 않은 그분의 손길이었습니다. 다섯째:죄짐을 져서도 좋습니다. 읽을말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마태복음11:28) 모든 인생은 다 죄 아래 있습니다. 인생이 지고 있는 모든 짐은 다 죄짐입니다. 이 죄악의 짐은 우리에게 염려 근심과 걱정과 고통을 주며, 최후에는 죽음을 안겨 줍니다(로마서 6:23). 이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생은 다 죄 아래 있습니다(로마서 3:10). 이러한 죄짐을 우리 주님이 지고 갔습니다(요한복음 1:29). 그는 단번에 우리를 위하여 속죄의 제물이 되어서 우리를 속량해 주었습니다(히브리서 9:12). 주님은 당신을 구원하려 오셨습니다. 당신도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요한복음 1:12). 주님은 이제 당신의 마음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요한계시록 3:20).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한일서 5:12) 예수는 당신의 영원한 생명입니다. 주님을 소유한 인생은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영원한 천국을 상속받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 당신을 부르고 계십니다. 불순종했어도 좋습니다. 우상 숭배했어도 좋습니다. 늙어서도 좋습니다. 낙심해서도 좋습니다. 죄짐을 져서도 좋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이사야 1:18)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님의 충만을 받으라”(에베소서 5:16-18)고 했습니다.
톨스토이의 작품중 인생론에 관한 이러한 글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무서운 맹수의 추격을 피하기 위하여 혼신의 힘을 다하여 도망치다가 마침내 낭떠러지 절벽을 만났습니다. 너무나 다급한 나머지 그 절벽에서 뛰어 내렸습니다. 한참을 떨어져 내려가는데 칡넝쿨 같은 줄에 걸렸습니다. 얼마 후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위에는 들소가 으렁렁거리고 있으며, 절벽 아래에는 무서운 독사가 혀을 날름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사적으로 그 칡넝쿨을 잡고 있는데 바위틈에서 희고 까만 들쥐가 나와서 그 뿌리를 교대로 깔아 먹고 있습니다. 불안과 초조와 공포 속에 사로잡혀 있는데 그 앞에 무엇인가 간헐적으로 한 방울씩 떨어지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바로 위 벌집에서 꿀이 녹아서 흘러내리고 있었습니다. 그가 혀를 내어서 그 꿀을 받아먹으면서 순간의 즐거움을 통하여 그 고통을 잊고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인간의 실존인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성경을 통해서 인류를 향하여 하나님이 부르시는 간절한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시대 시대마다 하나님은 자신이 세우신 종들을 부르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영적인 귀가 열여야 합니다. 이것이 그 시대를 향한 복음의 소리입니다. 이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하고 이 소리가 나타나는 현장의 역사를 보는 눈이 열여야 복된 인생입니다. 오늘은 주님이 당신을 부르시는 음성을 듣는 축복의 성회가 될 줄로 믿습니다.
첫째:불순종해서도 좋습니다. 읽을말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 하여 숨었나이다”(창세기3:9-10) 하나님은 아담을 불렀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언약을 파괴하고 피하여 숨어 있을 때 하나님은 그를 찾아 왔습니다. 그때가 언제인가 “날이 서늘할 때”(창세기 3:8)입니다.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도 아니고, 한낮의 해가 내리쬐는 정오도 아니고, 어두움이 깔린 깊은 밤도 아니고 서늘할 때 찾아 오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여기에는 아담아 네가 불순종해서도 좋다 이리 오너라 내가 너를 용서한다는 무언의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 하나님은 지금 당신을 부르고 계십니다. 네 사랑하는 자녀들아 네가 지금 어디에 있느냐 하고 찾으십니다. 더 이상 피하지 맙시다. 더 이상 숨지 맙시다. 더 이상 무엇으로 가리우지 맙시다. 범죄한 그대로 나가면 됩니다. 못난 그대로가 좋습니다.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 (찬송가 349장)하고 나아 오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떠나면 안됩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멀리하면 불행해 집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도록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창세기 1:26-28). 그래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편 73:28)고 했습니다.
둘째:우상 숭배해서도 좋습니다. 읽을말씀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창세기12:1-3)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불렀습니다. 갈대아 지역 우르는 우상의 도시입니다. 그아비 데라는 우상 장사였습니다. 그는 우상 숭배자의 아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반열에 세우기 위하여 그 도성을 떠나서 지시할 약속의 땅으로 나아가게 했습니다. 우상의 도성인 본토를 떠나고, 인간중심의 삶인 친척을 떠나고, 안일주의를 청산하기 위해서 아비집을 떠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시할 언약의 땅으로 나아가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지정한 장소를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매일 매일 지시하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나아갔습니다. 신앙생활이란 매일 매일 하늘 양식 만나로 살아가는 것입니다(출애굽기 16:4). 하나님은 지금 당신을 부르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세속의 도성에서 세속적인 가치관으로 사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바울은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빌립보서 3:20)라고 했습니다. 당신이 무엇으로 세속적인 삶을 이길 수 있는가 사도 요한은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한복음 5:4)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쓰임 받은 사람들은 다 믿음의 사람들입니다(히브리서 11장).
셋째:늙어도 좋습니다. 읽을말씀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애굽기3:4-5) 하나님은 모세를 불렀습니다. 그는 광야 서편의 인생이었습니다. 그가 애굽 바로의 왕궁에 있었던 사십대에는 혈기방장한 야심찬 인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미디안 광야에서 사십년간 남의 양치는 목자로 있으면서 소망이 없는 늙은이가 되었습니다. 그는 마치 광야 서편으로 기울어져 가는 인생과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가시 떨기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환상 앞에 그의 눈이 열여서 그는 출애굽의 사명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전의 신발을 벗어 던지고 지난날의 모든 잘못을 돌이켜 회개하고 능력의 지팡을 손에 잡고 사명의 현장으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당신을 사명자로 부르십니다. 더 이상 이드로의 양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이제 세속의 신발을 벗어 던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더 이상 세속적인 지팡이에 자기 몸을 의탁하지 않게 하십니다. 그 지팡이도 집어던지라고 합니다. 이제 다시 잡은 지팡이는 이전의 지팡이와 다른 능력의 지팡입니다. 그리고 이전에 민족에게 품은 문둥병보다 더 더러운 적개심도 깨끗이 청산했습니다. 그가 사명을 감당할 때 하나님이 그 생명을 붙들어 주셨던 것입니다(신명기 34:7).
넷째:낙심해서도 좋습니다. 읽을말씀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 천사가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주 사십야를 행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열왕기상 19:5-8) 하나님은 엘리야와 함께 했습니다. 그는 죽기를 기도했습니다. 삼년 육개월의 기근과 갈멜산의 능력 앞에서도 아합의 기세는 꺾이지 않고 오히려 이세벨의 마음은 더욱 강팍해져 갔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더 이상 항거할 수 없어서 광야로 도피하여 죽기를 결심했습니다. 그때 천사가 나타나서 구운 떡과 한병 물을 주셔서 먹고 마시게 하신 후에 사십일을 걸어서 호렙산에 이르게 했습니다.
그는 호렙산 굴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깨닫았던 것입니다. 바람과 지진과 불 가운데서도 계시지 않던 하나님이 세미한 음성으로 그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세벨 같은 무리 중에서도 칠천의 무리를 감추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깨닫게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당신 곁에 천사를 보내십니다. 사명자도 지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명을 이루시기까지 하나님의 손길이 항상 같이합니다. 당신이 지쳐 있을 때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셔서 당신을 도우십니다. 그리고 당신이 깨닫지 못했던 비밀한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세미한 역사입니다. 당신이 지금까지 감당한 것은 보이지 않은 그분의 손길이었습니다. 다섯째:죄짐을 져서도 좋습니다. 읽을말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리라”(마태복음11:28) 모든 인생은 다 죄 아래 있습니다. 인생이 지고 있는 모든 짐은 다 죄짐입니다. 이 죄악의 짐은 우리에게 염려 근심과 걱정과 고통을 주며, 최후에는 죽음을 안겨 줍니다(로마서 6:23). 이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생은 다 죄 아래 있습니다(로마서 3:10). 이러한 죄짐을 우리 주님이 지고 갔습니다(요한복음 1:29). 그는 단번에 우리를 위하여 속죄의 제물이 되어서 우리를 속량해 주었습니다(히브리서 9:12). 주님은 당신을 구원하려 오셨습니다. 당신도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요한복음 1:12). 주님은 이제 당신의 마음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요한계시록 3:20).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한일서 5:12) 예수는 당신의 영원한 생명입니다. 주님을 소유한 인생은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영원한 천국을 상속받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 당신을 부르고 계십니다. 불순종했어도 좋습니다. 우상 숭배했어도 좋습니다. 늙어서도 좋습니다. 낙심해서도 좋습니다. 죄짐을 져서도 좋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이사야 1:18)고 했습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