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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신앙은 새 역사를 일으킵니다 (마28:1-10)

본문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십니다. 얼마전에 존경하는 선배 목사님과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런 저런 목회 여담을 나누는 중에 충격적인 애기를 들었습니다. 오래전에 목회자들을 위한 세미나가 있었습니다. 그때 참석한 사람중에 한국교계에 널리 이름이 알려진 비교적 큰 교회에서 성공적인 사역을 하고 은퇴하신 원로 목사 한분이 와 계셨습니다. 오랫동안 쌓은 경륜과 인생 경험을 듣고자 하여 저녁 시간에 숙소를 찾아 갔습니다. 이런 저런 애기를 하는 중에 설교문제가 나왔습니다. 설교는 목회자에게 주신 특권과 축복인 동시에 많은 부담이 되는 고충중에 하나입니다.
설교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절기설교입니다.
그런데 그분 말에 의하면 “절기설교 중에서도 가장 하기 힘든 설교가 부활절 설교”라고 합니다. 그분의 애기가 이러합니다. “나는 부활을 믿지 않습니다”라고 합니다. 놀란 선배 목사가 충격을 받고 되물었습니다. “그러면 설교를 어떻게 합니까”하고 물으니 “설교할 때는 예수가 부활했다”고 합니다. “
왜냐하면 지금까지 교회력에 의하여 그렇게 전해 내려오기 때문입니다”라고 합니다. . 저는 그 애기를 듣는 순간 그 분은 이 땅 위에서 가장 불쌍한 존재입니다. 그는 진실로 하나님의 종이 아니고 삯군 목자였습니다. 기독교의 신학과 신앙과 믿음은 부활신앙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를 만나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받은 것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 .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고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 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고린도전서 15:3-4, 8, 14-15)라고 했습니다. 예수의 부활은 성경이 증거하는 확실한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부활신앙은 기독교만이 가지는 특권입니다. 다른어떤 세속종교에서 부활이라는 사건을 증거하는 곳이 없습니다. 부활신앙은 기독교의 생명이요 꽃입니다. 복음전파의 핵심은 부활입니다. 부활신앙은 모든 요소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힘의 원동력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이기 때문에 십자가를 질 수 있었고, 십자가를 지는 대속의 죽음은 독생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독생자는 동정녀 몸에서 난 죄 없는 분입니다. 나아가서 부활하신 분이기 때문에 하늘로 승천할 수 있었고, 하늘 보좌에 계신 주님을 믿기 때문에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천국을 바라봅게 됩니다. 주님은 후일에 재림의 주로 오실 것입니다. 당신이 부활신앙을 믿고 나아갈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첫째:막힌 돌이 굴러 갑니다. 읽을말씀 “안식일이 다하여 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러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주님이 부활하신 날 새벽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주님의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여인들에게 가장 놀랍고 충격적인 것은 무덤문을 막고 있던 큰 돌이 굴러져 있었습니다. 이것이 주님이 부활한 현장에 처음으로 받은 충격적인 사건입니다. 그러면 과연 그 돌은 어떠한 돌인가 1 큰 돌이 굴러졌습니다. 그 돌은 장정 수십인이 동원되어야 움직일 수 있는 돌입니다. 그래서 여인들이 염려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돌이 굴러졌습니다. 큰 지진이 일어났고 주님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그 돌을 굴러내고 그 돌 위에 앉아 계셨습니다. 이것이 부활신앙의 위력입니다. 부활신앙의 생명은 세상의 어떠한 무거운 장벽도 굴러냅니다. 이것이 생명의 역사입니다.
2 그 돌 위에는 빌라도의 인봉이 찍혀 있습니다(마태복음 27:6
6). 빌라도는 유대의 총독으로서 로마 가이사 황제의 충신입니다(요한복음 19:12). 그 인봉에는 가이사 황제 권력의 힘이 위임된 것입니다. 세상의 그 어떠한 자도 항거할 수 없는 권세입니다. 그러나 부활신앙은 빌라도의 인봉을 휴지조작 찢듯이 찢어버린 것입니다. 부활신앙을 소유하면 세상권력도 항거하지 못합니다. 3 파수군을 무력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주님이 묻혔던 무덤 주변에는 철동같이 무장한 군인들이 삼엄한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습니다.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빌라도와 모의하여 군대를 파견하여 그 무덤을 사흘간 지키게 했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천군 천사들이 파수군을 무력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생명은 가두지 못합니다. 찬송가 15장 3절에 “거기 못 가두네 예수 내 구주”라고 했습니다. 죽은 자들이 산자를 지키지 못하며, 피조물 인생이 생명의 창조주 부활의 주님을 가둘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르기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한복음 16:33)고 했습니다. 주님은 갈보리에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세상을 완전히 정복했습니다. 십자가에서 율법을 다 이루었습니다. 율법의 권능으로 가져다 주는 사망권세를 이기었습니다. 마귀와 사단 권세를 완전히 정복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면 나를 가로막는 흑암권세의 돌을 굴러갑니다.
둘째:두려움이 평안으로 바뀝니다. 읽을말씀 “수직하던 자들이 저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오노라”(4-5) 부활신앙은 당신의 마음에 어두운 그림자를 몰아내십니다. 세상의 염려 근심 걱정 불안 초조 두려움을 기쁨과 평강이 넘치는 삶으로 바꾸십니다. 주님이 부활하신 현장에는 명암이 교체되는 희비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현장은 이러했습니다.
1 수직하던 자들은 죽은자 같이 되었습니다. 파수군의 배후에는 빌라도의 권세가 있었고, 대제사장이 그들을 후원하고 있으며, 바리새인들도 그들의 지지세력이었습니다. 이들은 살기가 등등하여 무덤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흘되던 날 놀라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하늘로서 천군 천사들이 내려왔습니다. 큰 지진을 일으켜 무장한 파수군을 무장해제를 시켜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소유한 무력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천군 천사들이 돌을 굴러 내고는 만왕의 왕되신 주님이 부활하여 나오실 때 속수무책이었으며 무서워 벌벌 떨며 마치 죽은 자들과 같이 되었습니다.
2 그러나 무덤을 찾은 여인들은 큰 기쁨을 얻었습니다. 여인들은 주일 새벽 미명에 무덤으로 갈 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위해서 갔으나 육신의 연약성과 환경적인 장벽을 뛰어 넘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는 무덤문을 가로막고 있는 큰돌을 염려했습니다.
그런데 와서 보니 이미 그 돌은 굴러져 있었습니다. 그 돌 위에 천사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하늘군대가 이미 정복한 것입니다. 무덤을 지키는 병사들은 초죽음이 되어 있고, 하늘의 천군 천사들이 오히려 무덤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천사들은 여인들에게 부활의 소식을 전했습니다. 여인들은 무서움과 공포가 변하여 큰 기쁨이 되었으며, 제자들에게 달려가서 주님의 부활을 증거했습니다.
이 땅 위에는 두가지 인생이 있습니다. 횟칠한 무덤의 아름다움을 보고 즐기는 인생들이 있습니다. 겉은 아름다우나 속에는 썩어 냄새나는 송장이 있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인생들은 횟칠한 무덤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부활신앙을 소유한 자들은 빈 무덤을 자랑합니다.
그러므로 무덤이 초라하다고 해서 기가죽어나 무덤이 웅장하다고 해서 권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덤을 지키는 무리들이 많다고 해서 겁을 낼 필요도 없습니다. 무덤에 인봉이 쳐져 있다고 해서 과시할 것도 못됩니다.
그러므로 무덤을 보고 울고 웃는 인생은 참으로 어리석은 인생입니다. 우리는 무덤 건너편을 보고 살줄 알아야 합니다. 무덤의 문을 여는 종교가 참종교입니다. 세상에 그 어떠한 자들도 무덤 앞에서 무릎을 다 꿇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은 무덤문을 열었습니다. 당신이 부활의 주님을 모셔들이면 당신의 심령의 어두운 그림자가 물러갑니다.
셋째:잃어버린 사명을 되찾습니다. 읽을말씀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7, 10) 부활하신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왜 주님이 갈릴로 가셨는가 주님이 사도로 부르신 제자들의 대부분이 갈릴리 출신입니다. 주님을 잃어버린 제자들이 낙심하여 세속의 현장으로 나아간 삶의 현주소입니다. 그곳에서 부활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갈릴리로 갔습니다.
1 갈릴리는 사역의 중심지입니다. 갈릴리 해변을 다니면서 제자를 부르시고, 갈리리 바다를 잔잔케 하시며, 갈리리 해변에서 천국복음을 전파하셨던 곳입니다. 자신의 부활사실을 확인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복음전파는 당신의 삶의 현장이 가장 우선순위입니다. 갈릴리는 대부분의 제자들의 고향입니다.
2 갈릴리는 실패의 현장입니다. 주님을 잃어버린 제자들은 삶의 의욕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를 중심한 몇몇 제자들은 갈리리 바다로 다시 갔습니다. 이전에 녹슬은 그물과 배를 가지고 다시 고기 잡으려 그물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그 밤에 한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요한복음 21:3). 주님과 사명을 등지고 나아가는 현장에 고기가 있을 리가 없습니다. 고기를 그물에 집어 넣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흩어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3 갈릴리는 사명을 되찾은 곳입니다. 그 곳에서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실패의 현장에 주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밤새도록 지친 무리들에게 주님은 구운 떡과 고기를 주시면서 먹여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주님은 사명을 재인식시켜주었습니다(요한복음 21:15-17). 부활신앙을 소유한 그들은 놀랍게 변했습니다. 이제사명을 되찾았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하여 기도했습니다(사도행전 1:4, 14) 그들은 오순절에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았습니다(사도행전 2:4). 성령님의 사람이 된 그들은 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걸었습니다(사도행전 4:19-2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신앙은 새 역사를 일으킵니다.
1 부활의 주님은 막힌 돌을 굴러 냅니다. 당신의 앞길을 가로막는 어두움의 주관자들을 빛되신 주님은 천군 천사를 동원하여 막힌 돌을 굴러 냅니다.
2 부활의 주님은 심령에 평안을 주십니다. 당신의 심령에 어두운 그림자는 당신의 삶을 어둡게 합니다. 그러나 부활의 주님은 평강과 기쁨으로 삶의 감격을 주십니다. 3 부활의 주님은 사명을 되찾게 하십니다. 당신이 사명을 등지고 세속으로 나아가는 삶의 현장은 지치고 주린 모습이나 부활의 주님이 오시면 새로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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