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최고의 선물이 무엇인가? (엡2:8-9)
본문
당신은 지상최고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선물을 받기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땅위에 진정한 선물이 없다는 것이 불행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주고 받는 선물의 대부분이 상거래적인 뇌물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선물을 받은 기쁨보다는 보답해야 할 무거운 부담이 앞서는 것입니다.
예) 로라스케이트 선물은 주는 자의 신분에 따라서 그 가치가 달라집니다. 사실은 내용물의 가치를 떠나서 누구에게 받았느냐가 더 큰 관심사입니다. 주는 자의 신분에 따라서 그 선물의 가치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은 지금 당신에게 독생자를 선물로 주셨습니다(요한복음 3:16).
선물은 받은 자의 인식에 따라서 그 가치가 달라집니다. 아무리 귀한 것을 받아도 그 가치를 모르는 자에게는 무용한 것입니다. 아름다움을 즐길줄 아는 가치관이 없는 돼지에게는 값진 진주보다는 한끼에 족하는 먹이통에 들어 있는 멸치 부스러기가 훨씬 귀하게 보이는 것입니다(마태복음 7:6). 신령한 영적인 세계의 안목이 없는 인생은 이 세상의 향락에 도취되어 영원한 것을 놓쳐 버리고 맙니다. 선물은 주고 받는 상황에 따라서 그 가치가 달라집니다. 똑 같은 선물이지만 시간에 따라서 그 가치가 달라집니다. 피흘리는 전투에 냉수 한 그릇은생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또한 선물은 장소에 따라서 그 가치가 달라집니다. 만약 열대지방에 값비산 온풍기를 선물했다면 아무런 고마움을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한 대지방에 에어컨을 선물한 것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떠한 상황에 선물을 주셨는가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로마서 5:6),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원수되었을 때”(로마서 5:10) 독생자를 선물로 주셨던 것입니다. 이는 측량할 수 없는 큰 사랑입니다. 오늘 드릴 말씀은 은혜나 믿음이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독생자 예수를 주신 것은 은혜요, 그를 그리스도를 받음이 믿음이요, 그가 지신 십자가로 죄사함 받은 것이 구원입니다. 그러면 지상 최고의 선물이 무엇입니까
첫째:은혜의 선물입니다. 은혜란 그저 받은 것입니다. 만약에 후일에 받을 것을 계산하고 주신 것이라면 그것은 은혜가 아니고 투자입니다. 그것은 선물이 아니라 뇌물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받은 은혜는 거져 무조건적으로 받은 것입니다. 우리로서는 도무지 값을 능력이 없습니다. 이러한 은혜에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일반적인 은혜입니다. 일반적인 은혜는 신자나 불신자를 무론하고 누구에게나 주신 것입니다. 이 은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은 누구나 다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를 자연은총이라고 부릅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이 은총을 다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연속에서 사업을하여 돈을 벌어서 부자도 될 수 있고, 하나님이 주신 이성을 통하여 공부를 많이 해서 지식인도 될 수 있고, 정치를하여 높은 보좌에 올라 권세를 얻을 수도 잇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금세에 주어진 생명이 있는 동안에만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나의 생명이 다하는 날에는 이 모든 것을 내버려두고 가야 합니다. 그 나라를 소유하기 위해서는 다른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당신은 그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 은혜가 무슨 은혜입니까 특별하신 은혜입니다. 특별하신 특수은혜는 특별한 자만이 받은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주권적인 사건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 위에 자신이 선택한 백성들을 위하여 사람중에 특별하신 사람 독생자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에게는 이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를 보편적인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도덕이나 윤리나 자선을 베푸는 선생이나 위인의 한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인류에게 구원의 열매를 맺게 하실 한알의 밀알로 오셨으며, 그 이름을 믿음으로 세상권세를 이기시며, 하나님 나라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심을 믿습니다. 그분은 내 인생의 주인으로 믿으며, 나의 왕, 나의 선지자, 나의 제사장으로 믿으며, 하나님의 아들일뿐 아니라 친히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세상의 이론이나 사상이나 논리로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것이며, 특별하신 하나니므이 은혜를 받은 자 만이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가이샤라 빌립보에서 베드로가 고백한 신앙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로 된 것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에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태복음 16:16-17)고 했습니다.
둘째:믿음의 선물입니다. 믿음이란 크게 두가지 조건에서 이루어집니다. 그 하나는 창조질서이요, 또 하나는 주권적인 계약입니다. 믿음은 우리의 삶과 생활의 기초요, 뿌리입니다. 우리의 내면세계에 믿음이 파괴되면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일반적인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두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자연적인 일상적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질서 속에서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믿음입니다. 창조질서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동의하고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여름이 지나갔는데 가을이 오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누구에게나 다 주어진 자연적인 믿음입니다.
2 이성적인 문화적 믿음입니다. 인간은 하나니므이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피조물에게 없는 이성적인 지각이 있습니다. 이 지각으로 본능에 얽매이지 않고 문화적인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더운 날씨에는 시원한 바람을 일으키는 에어컨을 만들고 추운 겨울에는 난방장치를하여 살게 된 것입니다. 이 믿음은 인간의 이성적 지각에 따라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은 우리의 내면세계의 영혼에 대하여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의 영혼을 위하여 특별하신 믿음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특별하신 믿음입니다.
1 예수를 구주로 믿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느 인간이 죄인임을 알고 다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나 죄로 인하여 그 길이 막혀 멸망의 길로 달려가는 인생에게 에수가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대 속의 죽음을 죽은 예수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므로 죄사함을 받아 사단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자유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는 자들을 말합니다.
2 믿음으로 역사를 일으키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구원받은 것으로 만족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순간 순간 어려운 역경을 당할 때도 믿음으로 역사를 일으키며, 사단의 권세를 결박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성령님을 충만히 받아서 이 구원의 도를 세상에 나가서 담대히 증거하기를 원하십니다. 앞서간 믿음의 선진들은 다 역사하는 믿음을 가졌던 것입니다(히브리서 11:1-2). 이들은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었고, 맡길 수 없는 것을 맡겼고,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랬던 것입니다.
셋째:구원의 선물입니다. 구원이란 내 스스로 도무지 나올 수 없는 상황에서 건짐을 받은 것을 말합니다. 내 스스로 나올 수 있는데 남이 와서 이끌어 주신 것은 구원이 아니라 도움이요, 협조요, 협력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주신 구원은 협조나 협력이나 도움이 아니라 전적인 은혜로 베풀어 주신 온전한 구원입니다. 기독교의 구원이란 전인적인 구원을 말합니다. 이를 가리켜 사도요한은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한삼서 1:2)고 했습니다. 영혼구원입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되는 고등한 가치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영혼을 가졌다는 것입니다(창세기 1;26-28). 영혼이 하나님의 품을 떠나면 모든 것을 상실한 것입니다. 이 영혼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항상 하나님과 교통속에서 살아야 합니다(전도서 12:13). 그래서 인간은 언제나 신을 찾도록 인간의 내면에 영혼을 사모하는 종교적 심성을 넣어 두신 것입니다(전도서 3:11).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영혼이 잘되는 복을 받아야 합니다. 범사에 형통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성도들은 항상 성령님의 인도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보헤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님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한복음 14:16, 26)고 했습니다. 예수의 영인 성령님은 성도를 돕는 보혜사가 되어 환경을 초월하여 우리에게 형통함을 주시는 것입니다. 당신은 요셉의 형통함을 배워야 합니다. 육신의 강건함입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이 땅 위에 사는 삶은 누리는 삶입니다. 천국에 누릴 영광을 이 땅 위에서도 누리는 것입니다. 부잣집 대문간에 있었던 나사로는 질병가운데서도 심적으로는 부자보다 더 강건한 삶을 누렸던 것입니다(누가복음 16:22). 예수 이름으로 유대인들에게 돌 세례를 받은 스데반은 성령님이 충만하여 고통중에서도 천국의 기쁨을 누렸던 것입니다(사도행전 7:5
5). 비록 당신이 질병 중에 있더라도 예수 안에서 치료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는 우리의 모든 질병을 짊어지신 분입니다(이사야 53:4-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당신에게 가장 귀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 외아들 독생자를 당신을 위하여 주셨습니다. 그를 구주로 영접하므로 은혜를 받고 믿음을 얻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삶으로 이 축복을 증거하는 증인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문제는 이 땅위에 진정한 선물이 없다는 것이 불행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주고 받는 선물의 대부분이 상거래적인 뇌물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선물을 받은 기쁨보다는 보답해야 할 무거운 부담이 앞서는 것입니다.
예) 로라스케이트 선물은 주는 자의 신분에 따라서 그 가치가 달라집니다. 사실은 내용물의 가치를 떠나서 누구에게 받았느냐가 더 큰 관심사입니다. 주는 자의 신분에 따라서 그 선물의 가치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은 지금 당신에게 독생자를 선물로 주셨습니다(요한복음 3:16).
선물은 받은 자의 인식에 따라서 그 가치가 달라집니다. 아무리 귀한 것을 받아도 그 가치를 모르는 자에게는 무용한 것입니다. 아름다움을 즐길줄 아는 가치관이 없는 돼지에게는 값진 진주보다는 한끼에 족하는 먹이통에 들어 있는 멸치 부스러기가 훨씬 귀하게 보이는 것입니다(마태복음 7:6). 신령한 영적인 세계의 안목이 없는 인생은 이 세상의 향락에 도취되어 영원한 것을 놓쳐 버리고 맙니다. 선물은 주고 받는 상황에 따라서 그 가치가 달라집니다. 똑 같은 선물이지만 시간에 따라서 그 가치가 달라집니다. 피흘리는 전투에 냉수 한 그릇은생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또한 선물은 장소에 따라서 그 가치가 달라집니다. 만약 열대지방에 값비산 온풍기를 선물했다면 아무런 고마움을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한 대지방에 에어컨을 선물한 것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떠한 상황에 선물을 주셨는가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로마서 5:6),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원수되었을 때”(로마서 5:10) 독생자를 선물로 주셨던 것입니다. 이는 측량할 수 없는 큰 사랑입니다. 오늘 드릴 말씀은 은혜나 믿음이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독생자 예수를 주신 것은 은혜요, 그를 그리스도를 받음이 믿음이요, 그가 지신 십자가로 죄사함 받은 것이 구원입니다. 그러면 지상 최고의 선물이 무엇입니까
첫째:은혜의 선물입니다. 은혜란 그저 받은 것입니다. 만약에 후일에 받을 것을 계산하고 주신 것이라면 그것은 은혜가 아니고 투자입니다. 그것은 선물이 아니라 뇌물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받은 은혜는 거져 무조건적으로 받은 것입니다. 우리로서는 도무지 값을 능력이 없습니다. 이러한 은혜에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일반적인 은혜입니다. 일반적인 은혜는 신자나 불신자를 무론하고 누구에게나 주신 것입니다. 이 은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은 누구나 다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를 자연은총이라고 부릅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이 은총을 다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연속에서 사업을하여 돈을 벌어서 부자도 될 수 있고, 하나님이 주신 이성을 통하여 공부를 많이 해서 지식인도 될 수 있고, 정치를하여 높은 보좌에 올라 권세를 얻을 수도 잇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금세에 주어진 생명이 있는 동안에만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나의 생명이 다하는 날에는 이 모든 것을 내버려두고 가야 합니다. 그 나라를 소유하기 위해서는 다른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당신은 그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 은혜가 무슨 은혜입니까 특별하신 은혜입니다. 특별하신 특수은혜는 특별한 자만이 받은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주권적인 사건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 위에 자신이 선택한 백성들을 위하여 사람중에 특별하신 사람 독생자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가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에게는 이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를 보편적인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도덕이나 윤리나 자선을 베푸는 선생이나 위인의 한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인류에게 구원의 열매를 맺게 하실 한알의 밀알로 오셨으며, 그 이름을 믿음으로 세상권세를 이기시며, 하나님 나라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심을 믿습니다. 그분은 내 인생의 주인으로 믿으며, 나의 왕, 나의 선지자, 나의 제사장으로 믿으며, 하나님의 아들일뿐 아니라 친히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세상의 이론이나 사상이나 논리로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것이며, 특별하신 하나니므이 은혜를 받은 자 만이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가이샤라 빌립보에서 베드로가 고백한 신앙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로 된 것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에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태복음 16:16-17)고 했습니다.
둘째:믿음의 선물입니다. 믿음이란 크게 두가지 조건에서 이루어집니다. 그 하나는 창조질서이요, 또 하나는 주권적인 계약입니다. 믿음은 우리의 삶과 생활의 기초요, 뿌리입니다. 우리의 내면세계에 믿음이 파괴되면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일반적인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두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자연적인 일상적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질서 속에서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믿음입니다. 창조질서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동의하고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여름이 지나갔는데 가을이 오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누구에게나 다 주어진 자연적인 믿음입니다.
2 이성적인 문화적 믿음입니다. 인간은 하나니므이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다른 피조물에게 없는 이성적인 지각이 있습니다. 이 지각으로 본능에 얽매이지 않고 문화적인 사명을 감당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더운 날씨에는 시원한 바람을 일으키는 에어컨을 만들고 추운 겨울에는 난방장치를하여 살게 된 것입니다. 이 믿음은 인간의 이성적 지각에 따라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은 우리의 내면세계의 영혼에 대하여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의 영혼을 위하여 특별하신 믿음을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특별하신 믿음입니다.
1 예수를 구주로 믿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느 인간이 죄인임을 알고 다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나 죄로 인하여 그 길이 막혀 멸망의 길로 달려가는 인생에게 에수가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대 속의 죽음을 죽은 예수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므로 죄사함을 받아 사단과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자유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는 자들을 말합니다.
2 믿음으로 역사를 일으키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구원받은 것으로 만족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순간 순간 어려운 역경을 당할 때도 믿음으로 역사를 일으키며, 사단의 권세를 결박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성령님을 충만히 받아서 이 구원의 도를 세상에 나가서 담대히 증거하기를 원하십니다. 앞서간 믿음의 선진들은 다 역사하는 믿음을 가졌던 것입니다(히브리서 11:1-2). 이들은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었고, 맡길 수 없는 것을 맡겼고,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랬던 것입니다.
셋째:구원의 선물입니다. 구원이란 내 스스로 도무지 나올 수 없는 상황에서 건짐을 받은 것을 말합니다. 내 스스로 나올 수 있는데 남이 와서 이끌어 주신 것은 구원이 아니라 도움이요, 협조요, 협력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주신 구원은 협조나 협력이나 도움이 아니라 전적인 은혜로 베풀어 주신 온전한 구원입니다. 기독교의 구원이란 전인적인 구원을 말합니다. 이를 가리켜 사도요한은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한삼서 1:2)고 했습니다. 영혼구원입니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 되는 고등한 가치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영혼을 가졌다는 것입니다(창세기 1;26-28). 영혼이 하나님의 품을 떠나면 모든 것을 상실한 것입니다. 이 영혼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항상 하나님과 교통속에서 살아야 합니다(전도서 12:13). 그래서 인간은 언제나 신을 찾도록 인간의 내면에 영혼을 사모하는 종교적 심성을 넣어 두신 것입니다(전도서 3:11).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영혼이 잘되는 복을 받아야 합니다. 범사에 형통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성도들은 항상 성령님의 인도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보헤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님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한복음 14:16, 26)고 했습니다. 예수의 영인 성령님은 성도를 돕는 보혜사가 되어 환경을 초월하여 우리에게 형통함을 주시는 것입니다. 당신은 요셉의 형통함을 배워야 합니다. 육신의 강건함입니다. 구원받은 성도가 이 땅 위에 사는 삶은 누리는 삶입니다. 천국에 누릴 영광을 이 땅 위에서도 누리는 것입니다. 부잣집 대문간에 있었던 나사로는 질병가운데서도 심적으로는 부자보다 더 강건한 삶을 누렸던 것입니다(누가복음 16:22). 예수 이름으로 유대인들에게 돌 세례를 받은 스데반은 성령님이 충만하여 고통중에서도 천국의 기쁨을 누렸던 것입니다(사도행전 7:5
5). 비록 당신이 질병 중에 있더라도 예수 안에서 치료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는 우리의 모든 질병을 짊어지신 분입니다(이사야 53:4-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당신에게 가장 귀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 외아들 독생자를 당신을 위하여 주셨습니다. 그를 구주로 영접하므로 은혜를 받고 믿음을 얻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삶으로 이 축복을 증거하는 증인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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