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대적하지 맙시다 (창11:1-9)
본문
바벨탑을 쌓지 맙시다. 어리석은 인생이 되지 맙시다. 이 땅 위에서 가장 어리석은 인생이 누구인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생입니다. 다윗은 시편에서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 즉,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시편 14:1-3)고 했습니다. 니므롯 운동을 하지 맙시다. 니므롯은 함이 낳은 구스의 아들로서 노아의 4대손 입니다. “구스가 또 니므롯(Nimrod)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군이 되었으므로”(창세기 10:8-9)라고 했습니다. 영걸이란 히브리어로 깁보르인데 좋은 의미로는 영웅이란 뜻이며, 나쁜 의미로는 압제자란 뜻입니다. 그는 레센이란 큰 성을 건축했습니다(창세기 10:10-12).
그런데 그는 도덕적으로 존경을 받는 지도자가 아니라 무력으로 제국을 건설한 폭군이었습니다. 그는 사람을 짐승과 같이 잡아죽이는 폭군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특별한 사냥군이라고 불렀습니다. 그가 쌓은 바벨탑의 넓이가 122미터이며, 높이가 46.7미터인 계단식으로 된 7층 탑입니다. 바깥쪽에는 벽돌에 역청이 발라져 있습니다.
오늘날의 기술로는 별것이 아니지만 그 당시 건축법으로는 대단한 것입니다. 그는 이 탑을 쌓아서 하나님의 언약을 대신하고자 했으니 전능하신 하나님이 보시기에 참으로 어리석고 우매한 짓이었습니다. 바벨탑을 쌓지 맙시다. 니므롯이 쌓은 바벨탑은 결국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 지구상에 하나님을 대적했던 개인과 국가가 살아 남은 적이 없습니다. 애굽의 바로들이 다 멸망했습니다. 바벨론에 역대 왕들이 다 패망했습니다. 헬라의 지성인들도 다 죽었습니다. 로마의 철권 통치도 다 무너졌습니다. 바벨탑은 무너지고 맙니다. 이제 당신은 어떻게 살 것인가
첫째: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선용합시다. 읽을말씀 “온 땅에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1-2) 구음이 하나이니 참으로 큰복입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의 최대의 과제가 무엇인가 언어를 정복하는 것입니다. 각 국가마다 수많은 방언들이 있습니다. 국제화 시대에 가장 큰 걸림돌이 무엇인가 언어의 장벽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정복자의 언어가 곳 세계 공통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어를 정복하는 민족이 세계를 정복하게 됩니다. 사람은 먹는 음식에 따라서 치아와 구강이 형성됩니다. 치아의 형성에 따라 방언이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구음이 하나라는 말은 먹는 음식이 같다는 말입니다. 한 솥에서 밥을 먹는 식생활이 같다는 말은 생활양식이 같다는 말입니다. 생활양식이 같다는 말은 동일 문화권이라는 말입니다. 온 땅이 문화가 하나로 통일되어 있으니 얼마나 편리합니까 문화가 같다는 말은 사상이 하나로 통일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마음을 교류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축복을 받은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바벨탑을 쌓았으니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그들은 시날에 거했습니다. 니므롯이 바벨탑을 쌓은 곳은 시날 평지입니다. 고고학자들은 그곳을 아르메니아 북동 지역이라고 합니다. 사실 그곳은 노아 방주가 머물렀던 아라라산 평원입니다(창세기 8:4). 그곳은 하나님의 심판이 물러가고 새땅이 도래한 곳이니 축복의 성지입니다. 방주가 머물렀던 곳이니 구약시대에 지상 최초의 교회가 머물렀던 곳입니다.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창세기8:20)라고 했습니다. 그곳은 훗일에 기념 성소가 세워질 아름다운 곳입니다.
그런데 니므롯이 그 무리들과 함께 하나님을 대적하는 바벨탑을 쌓았으니 하나님을 분노케 하신 것입니다. 시날의 평지는 기름진 낙원이었습니다. 시날이란 두강이란 뜻인데 유브라데와 디그리스강을 의미합니다. 어찌보면 네 근원이 흘렀던 옛 에덴을 복원해 주었던 것입니다(창세기 2:10-14). 그 지역을 오늘날 메소보다미아 평원인 바벨론 지역이라고 말합니다. 그곳은 지하자원이 풍부하여 역청이 많은 곳입니다. 그들은 이러한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 부족함을 모르고 살 수 있는 은총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부요함을 가지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바벨탑을 쌓고 말았습니다. 아담이 범한 과오를 다시 반복하게 된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하나님께 받은 은총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주의 오른 장중에 쓰임받을 선한 도구가 될 것인가 아니면 왼편에 버림받을 악한 도구가 될 것인가 바울은 권면하기를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고린도전서 10:31-33)고 했습니다.
둘째:하나님을 대적하지 맙시다. 읽을말씀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은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3-5) 언약을 불신하지 맙시다. 서로 말하되 자 한 것은 하나님을 배제한 인간만의 결속입니다. 하나님 자리에 니므롯이 앉힌 것입니다. 하나님의 맺은 계약의 자리에 니므롯의 아이디어인 계획이 자리를 잡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의 단을 세워야 할 곳에 바벨탑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자고 했으니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도전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전과 같은 홍수 심판을 하지 않을 것을 위하여 무지개 언약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언약을 불신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물로 심판해도 그 물이 넘치지 못할 높은 탑을 세우자는 것입니다. 실용주의인 인간 문화 운동입니다. 돌 대신에 벽돌로, 진흙 대신에 역청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문화 활동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복입니다. 그러나 그 문화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속 주의로 나아가는 것은 죄악입니다. 인간은 문화 활동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의 문화관은 세속 문화를 복음의 도구로 바꾸는 문화의 변혁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니므롯은 문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돌로서 제단을 쌓아야 할 곳에 벽돌로 인간 문화제인 탑을 쌓는 것은 하나님의 계약을 파괴하는 운동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세대가 믿음보다는 보이는 물질을 의지하고, 영적으로 부르짖어 기도하기보다는 이성적으로 사고하기를 좋아하고, 땀흘려 수고하는 봉사보다는 물질을 대신하는 안일주의가 자리를 잡게 된 것입니다. 공명주의 운동입니다. 우리 이름을 내고 한 것은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모독입니다. 하나님의 이름 대신에 니므롯의 이름을 넣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주님의 이름에 우리의 이름을 넣는 니므롯 같은 무리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인간이 부를 이름은 한 이름밖에 없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게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너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사도행전 4:12)고 했습니다. 집합주의 운동입니다. 흩어짐을 면하자 라고 한 것은 창조명령과 구원명련을 거역한 인간 중심운동입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노아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세기 1:28, 9:1)고 했습니다. 노아는 아담이 잃어버린 사명을 되찾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연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시날에 모여서 탑을 쌓는 것이 아니라 땅끝까지 나아가는 흩어지는 말씀운동입니다.
셋째:하나님의 주권에 순복합시다. 읽을말씀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고로 그들이 성쌓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어셨더라”(6-9) 하나님의 주권에 순복합시다. 하나님은 당신의 행위를 보시고 계십니다. 인생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그 인생을 섭리하시고 후일에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니므롯 운동을 보시고 계셨습니다. 벨사살 왕궁의 촛대 맞은편 분벽에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다니엘 5:25)이라고 쓰신 것처럼 하나님은 니므롯을 세어 보고 달아보아서 부족하여 찢어서 흩어신 것입니다. 왜 바벨탑이 무너졌는가 하나님은 구음을 혼란케 하셨습니다. 이 땅 위에서 가장 무서운 채찍이 언어의 혼란입니다. 언어가 혼란하면 바벨탑이 되고 맙니다. 언어가 혼란해지자 물을 달라는데 돌을 던지며, 줄을 잡으라는데 놓게 되고, 대를 세우라고 했는데 뽑게 되는 대혼란이 일어남으로 결국 바벨탑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가정에도 언어가 혼란하면 감정이 폭발하여 사랑이 깨어짐으로 가정이 깨어집니다. 사회에 언어가 혼란되면 폭력이 난무하고 질서가 깨뜨려집니다. 나라에 언어가 혼란되면 여야의 거치른 성명전으로 정국이 긴장되고 질서가 깨뜨러집니다. 이제 잃어버린 언어를 되찾읍시다. 시날 땅에서 니므롯이 잃어버린 언어를 회복합시다. 잃어버린 축복을 되찾는 길은 하나님의 주권에 순복하는 삶입니다. 사도들은 주님의 지상 명령을 이루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님을 사모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가 다락방에서 시날에서 잃어버린 구음을 되찾게 되었던 것입니다(사도행전 2:4). 니므롯과 그 무리들은 언약에 불신하여 시날에서 바벨탑을 세우다가 언어가 혼란케 되었으나 베드로와 일백이십명 문도들은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혼란된 언어를 방언으로 통일시킨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땅에서 가장 불행한 인간은 하나님 떠난 인간입니다. 하나님 없는 물질은 어리석은 부자의 곡간입니다(누가복음 12:13-21). 하나님 없이 배운 기술은 어리석은 건축자가 세운 모래 위의 집과 같습니다(마태복음 7:26-27). 하나님 없는 학문은 생명력을 상실한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횟칠한 무덤과 같습니다(마태복음 23:13-36). 우리 모두 바벨탑을 쌓지 맙시다.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선용합시다. 하나님을 대적하지 맙시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순복합시다.
그런데 그는 도덕적으로 존경을 받는 지도자가 아니라 무력으로 제국을 건설한 폭군이었습니다. 그는 사람을 짐승과 같이 잡아죽이는 폭군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특별한 사냥군이라고 불렀습니다. 그가 쌓은 바벨탑의 넓이가 122미터이며, 높이가 46.7미터인 계단식으로 된 7층 탑입니다. 바깥쪽에는 벽돌에 역청이 발라져 있습니다.
오늘날의 기술로는 별것이 아니지만 그 당시 건축법으로는 대단한 것입니다. 그는 이 탑을 쌓아서 하나님의 언약을 대신하고자 했으니 전능하신 하나님이 보시기에 참으로 어리석고 우매한 짓이었습니다. 바벨탑을 쌓지 맙시다. 니므롯이 쌓은 바벨탑은 결국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 지구상에 하나님을 대적했던 개인과 국가가 살아 남은 적이 없습니다. 애굽의 바로들이 다 멸망했습니다. 바벨론에 역대 왕들이 다 패망했습니다. 헬라의 지성인들도 다 죽었습니다. 로마의 철권 통치도 다 무너졌습니다. 바벨탑은 무너지고 맙니다. 이제 당신은 어떻게 살 것인가
첫째: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선용합시다. 읽을말씀 “온 땅에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더라,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1-2) 구음이 하나이니 참으로 큰복입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의 최대의 과제가 무엇인가 언어를 정복하는 것입니다. 각 국가마다 수많은 방언들이 있습니다. 국제화 시대에 가장 큰 걸림돌이 무엇인가 언어의 장벽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정복자의 언어가 곳 세계 공통어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어를 정복하는 민족이 세계를 정복하게 됩니다. 사람은 먹는 음식에 따라서 치아와 구강이 형성됩니다. 치아의 형성에 따라 방언이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구음이 하나라는 말은 먹는 음식이 같다는 말입니다. 한 솥에서 밥을 먹는 식생활이 같다는 말은 생활양식이 같다는 말입니다. 생활양식이 같다는 말은 동일 문화권이라는 말입니다. 온 땅이 문화가 하나로 통일되어 있으니 얼마나 편리합니까 문화가 같다는 말은 사상이 하나로 통일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마음을 교류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축복을 받은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바벨탑을 쌓았으니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그들은 시날에 거했습니다. 니므롯이 바벨탑을 쌓은 곳은 시날 평지입니다. 고고학자들은 그곳을 아르메니아 북동 지역이라고 합니다. 사실 그곳은 노아 방주가 머물렀던 아라라산 평원입니다(창세기 8:4). 그곳은 하나님의 심판이 물러가고 새땅이 도래한 곳이니 축복의 성지입니다. 방주가 머물렀던 곳이니 구약시대에 지상 최초의 교회가 머물렀던 곳입니다.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창세기8:20)라고 했습니다. 그곳은 훗일에 기념 성소가 세워질 아름다운 곳입니다.
그런데 니므롯이 그 무리들과 함께 하나님을 대적하는 바벨탑을 쌓았으니 하나님을 분노케 하신 것입니다. 시날의 평지는 기름진 낙원이었습니다. 시날이란 두강이란 뜻인데 유브라데와 디그리스강을 의미합니다. 어찌보면 네 근원이 흘렀던 옛 에덴을 복원해 주었던 것입니다(창세기 2:10-14). 그 지역을 오늘날 메소보다미아 평원인 바벨론 지역이라고 말합니다. 그곳은 지하자원이 풍부하여 역청이 많은 곳입니다. 그들은 이러한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 부족함을 모르고 살 수 있는 은총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부요함을 가지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바벨탑을 쌓고 말았습니다. 아담이 범한 과오를 다시 반복하게 된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하나님께 받은 은총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주의 오른 장중에 쓰임받을 선한 도구가 될 것인가 아니면 왼편에 버림받을 악한 도구가 될 것인가 바울은 권면하기를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고린도전서 10:31-33)고 했습니다.
둘째:하나님을 대적하지 맙시다. 읽을말씀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은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3-5) 언약을 불신하지 맙시다. 서로 말하되 자 한 것은 하나님을 배제한 인간만의 결속입니다. 하나님 자리에 니므롯이 앉힌 것입니다. 하나님의 맺은 계약의 자리에 니므롯의 아이디어인 계획이 자리를 잡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의 단을 세워야 할 곳에 바벨탑을 세우게 된 것입니다.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자고 했으니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도전 행위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전과 같은 홍수 심판을 하지 않을 것을 위하여 무지개 언약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언약을 불신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물로 심판해도 그 물이 넘치지 못할 높은 탑을 세우자는 것입니다. 실용주의인 인간 문화 운동입니다. 돌 대신에 벽돌로, 진흙 대신에 역청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문화 활동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복입니다. 그러나 그 문화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속 주의로 나아가는 것은 죄악입니다. 인간은 문화 활동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의 문화관은 세속 문화를 복음의 도구로 바꾸는 문화의 변혁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니므롯은 문화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돌로서 제단을 쌓아야 할 곳에 벽돌로 인간 문화제인 탑을 쌓는 것은 하나님의 계약을 파괴하는 운동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세대가 믿음보다는 보이는 물질을 의지하고, 영적으로 부르짖어 기도하기보다는 이성적으로 사고하기를 좋아하고, 땀흘려 수고하는 봉사보다는 물질을 대신하는 안일주의가 자리를 잡게 된 것입니다. 공명주의 운동입니다. 우리 이름을 내고 한 것은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모독입니다. 하나님의 이름 대신에 니므롯의 이름을 넣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주님의 이름에 우리의 이름을 넣는 니므롯 같은 무리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인간이 부를 이름은 한 이름밖에 없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게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너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사도행전 4:12)고 했습니다. 집합주의 운동입니다. 흩어짐을 면하자 라고 한 것은 창조명령과 구원명련을 거역한 인간 중심운동입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노아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세기 1:28, 9:1)고 했습니다. 노아는 아담이 잃어버린 사명을 되찾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연을 정복하기 위해서는 시날에 모여서 탑을 쌓는 것이 아니라 땅끝까지 나아가는 흩어지는 말씀운동입니다.
셋째:하나님의 주권에 순복합시다. 읽을말씀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고로 그들이 성쌓기를 그쳤더라,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어셨더라”(6-9) 하나님의 주권에 순복합시다. 하나님은 당신의 행위를 보시고 계십니다. 인생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그 인생을 섭리하시고 후일에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니므롯 운동을 보시고 계셨습니다. 벨사살 왕궁의 촛대 맞은편 분벽에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다니엘 5:25)이라고 쓰신 것처럼 하나님은 니므롯을 세어 보고 달아보아서 부족하여 찢어서 흩어신 것입니다. 왜 바벨탑이 무너졌는가 하나님은 구음을 혼란케 하셨습니다. 이 땅 위에서 가장 무서운 채찍이 언어의 혼란입니다. 언어가 혼란하면 바벨탑이 되고 맙니다. 언어가 혼란해지자 물을 달라는데 돌을 던지며, 줄을 잡으라는데 놓게 되고, 대를 세우라고 했는데 뽑게 되는 대혼란이 일어남으로 결국 바벨탑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가정에도 언어가 혼란하면 감정이 폭발하여 사랑이 깨어짐으로 가정이 깨어집니다. 사회에 언어가 혼란되면 폭력이 난무하고 질서가 깨뜨려집니다. 나라에 언어가 혼란되면 여야의 거치른 성명전으로 정국이 긴장되고 질서가 깨뜨러집니다. 이제 잃어버린 언어를 되찾읍시다. 시날 땅에서 니므롯이 잃어버린 언어를 회복합시다. 잃어버린 축복을 되찾는 길은 하나님의 주권에 순복하는 삶입니다. 사도들은 주님의 지상 명령을 이루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님을 사모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마가 다락방에서 시날에서 잃어버린 구음을 되찾게 되었던 것입니다(사도행전 2:4). 니므롯과 그 무리들은 언약에 불신하여 시날에서 바벨탑을 세우다가 언어가 혼란케 되었으나 베드로와 일백이십명 문도들은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혼란된 언어를 방언으로 통일시킨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땅에서 가장 불행한 인간은 하나님 떠난 인간입니다. 하나님 없는 물질은 어리석은 부자의 곡간입니다(누가복음 12:13-21). 하나님 없이 배운 기술은 어리석은 건축자가 세운 모래 위의 집과 같습니다(마태복음 7:26-27). 하나님 없는 학문은 생명력을 상실한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횟칠한 무덤과 같습니다(마태복음 23:13-36). 우리 모두 바벨탑을 쌓지 맙시다.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선용합시다. 하나님을 대적하지 맙시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에 순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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