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목자상 (요10:1-18)
본문
당신은 참으로 선한 목자입니다. 유비무환(有備無患)란 말이 있습니다. 사전에 준비하면 환난을 당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금주에 저희 교회가 성경학교와 수련회를 가집니다. 이 두 행사는 영육간에 너무나 큰 행사입니다.
그러므로 일선에서 수고하실 교사들은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리고 온 교회는 이 일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고 물심양면으로 후원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단의 시험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하여 은혜 중에 마칠 수 있습니다. 목회자의 권면은 이러합니다. 먼저 교우들에게 부탁합니다. 온 교회는 기도하여 영적으로 축제의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전 교인이 매일 하루 한 번씩 교회에 출입하여 교사와 학생들을 격려해야 합니다. 시간이 허락하시면 땀흘리는 교사들을 위하여 식당에서 봉사도 해 주시고, 여유가 있으면 간식비라도 드려서 격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가르치는 사역에 봉사할 교사들에게 부탁합니다. 각부에 책임을 맡으신 분은 진행을 잘 하시고, 가르치는 교사들은 어린 세대를 잘 파악하여 알차게 준비하여 지혜롭게 하시기 바랍니다. 비록 열악한 교육환경이지만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에 걸어 보는 기대입니다. 복음의 씨가 이들의 심령밭에 심겨지는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영적인 추억의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선한 목자입니다. 양이 가지는 몇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양은 약한 동물입니다. 적을 막을 방어 기능인 뿔이나 발톱이나 긴 다리가 없습니다. 양은 겁이 많은 동물입니다. 심지어 흐르는 물소리에도 놀라게 됩니다(시편 23:2). 양은 시력이 약합니다. 길을 가다가 한 눈을 팔게 되면 목자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러한 양들을 위하여 선한 목자 되신 주님은 자신의 목숨을 버리신 것입니다. 당신은 선한 목자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 목자를 잃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헤매는 양들이 많습니다. 당신은 그들에게 선한 목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선한 목자 되신 주님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본을 보여 주었습니다.
첫째:선한 목자는 양을 우리로 인도합니다. 읽을말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1-2, 7) 목자는 양우리의 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조상적부터 유목생활을 해왔습니다. 그들은 때로 양을 치려 나가면 오랜 기간동안 들에서 지냅니다(창세기 37:12-17). 그들은 초지를 따라서 양무리를 옮기면서 몇 개월씩 양을 칩니다. 그때 목자는 들판에 양의 우리를 만듭니다. 밤이 되면 양을 우리 안에 넣고는 목자가 출입문에 눕게 됩니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목자 자신이 문이 됩니다. 그래서 요한은 “나는 양의 문이라”
(7)고 하신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문을 통과하지 않는 자는 양을 훔쳐 가는 절도요, 빼앗아 가는 강도입니다. 이 사실을 주님은 구원사역에서 영적으로 우리에게 잘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에 들어가는 문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어떠한 자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고 했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사도행전 4:1·2)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 3:16)고 했습니다. 주님은 한알의 밀알로 오셔서 자신이 죽으심으로 수많은 구원의 열매를 맺으신 것입니다.
둘째:선한 목자는 양의 이름을 압니다. 읽을말씀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3) 목자는 양에게 이름을 지어 줍니다. 양이 아무리 많아도 목자는 다 압니다.
왜냐하면 목자는 양 하나 하나에게 이름을 지어 주기 때문입니다. 팔레스틴의 목자들은 양에게 이름을 지어 줄 때 착하고 순하게 자라도록 아름다운 꽃이나 식물의 이름을 따서 지어 줍니다. 목자는 우리에서 목장으로 양을 인도할 때 양 한 마리씩 이름을 불러서 인도하여 냅니다. 이것이 바로 양을 위한 목자의 사랑과 관심입니다. 양이 하루 중에서 가장 행복할 때가 바로 목자가 자기 이름을 불러 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실 때입니다. 그 양은 푸른 초장에서 배부르게 먹고 쉴 만한 물가에서 하루를 보냅니다. 이것이 양이 누릴 행복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당신을 부르고 계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28)고 합니다.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우러러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누가복음19:5)고 말씀하십니다. 죽은지 사흘이 되어 썩어 냄새나는 나사로를 향하여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요한복음 11:43)고 부르십니다. 주님이 죄인을 부르시는 것처럼 당신은 하나님이 당신에게 맡겨 준 영혼을 부르고 찾아야 합니다. 그 영혼의 이름을 불러 가면서 기도의 물을 주고, 세속의 잡초를 뽑아 주고, 환난의 바람을 막아 주는 지줏대가 되어야 합니다.
셋째:선한 목자는 양무리를 앞서갑니다. 일을말씀 “자기 양을 다 내어놓은 후에 앞서가며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4-5) 주님은 양무리들 앞서 가십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립보서 2:6-8)고 했습니다. 그는 그래서 잡히시기 직전에도 친히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것입니다(요한복음 13:5). 그래서 마태가 말하기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태복음 11:29)고 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교육은 모범교육입니다. 지도자의 유형을 세가지로 나누어 볼 때 하나는 매를 가지고 훈계하는 권위주의형 지도자입니다. 이들은 항상 뒤에서 훈계하고 명령합니다. 또 하나는 민주화시대의 지도자입니다. 이들은 권위주의를 청산하려다가 권위까지도 포기해 버립니다. 다수라고 해서 다 선하고 목소리가 높다고 해서 옳은 것은 아닙니다. 올바른 질서와 규범은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주님이 보여준 지도력은 섬기는 것입니다. 양무리 앞에 군림하는 권위주자도 아니고, 양무리와 함께 동화되어 권위와 규범도 잃어버린 것도 아니고, 양무리 앞서서 선한 본을 보이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섬기는 지도자였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가복음 10:45)고 했습니다.
넷째:선한 목자는 풍성한 꼴을 먹입니다. 읽을말씀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9-10) 선한목자는 풍성한 꼴을 먹입니다. 선한 목자는 부지런하여 양을 항상 배부르게 합니다. 우리에서는 준비된 꼴로 먹이시고, 초장에서 늘 푸르고 잔잔한 시냇가로 인도합니다. 양이 젖을 내지 못하고 털을 생산하지 못하는 것은 목자의 책임입니다. 그래서 잠언에 이르기를 “네 양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떼에 마음을 두라”(잠언 27:23)고 했습니다. 목자는 부지런해야 합니다. 부지런한 목자의 목장은 양무리가 기름지고 윤택합니다. 선한목자는 항상 깨어 있습니다. 목자는 양무리에게 풍성한 꼴을 준비함과 동시에 양무리를 지키는 파수군의 사명도 감당해야 합니다.
양을 초원에 방목해 두면 간혹 지나가는 상인들이 양을 도적질하기도 하고 우리안에 있는 양도 때론 훔쳐가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목자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는 목자는 도적으로부터 양의 생명을 지킬 뿐 아니라 죄로 인하여 죽어 갈 양의 생명을 보호할 메시야를 만나게 됩니다.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누가복음 2:8, 11)고 했습니다. 이 목자들은 양을 죄값으로 속죄의 제물이 되어가는 양의 생명을 지켜 주셨습니다. 다섯째: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립니다. 읽을말씀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15)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립니다. 선한 목자와 삯군목자와 차이점이 무엇인가 삯군목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일합니다. 그들은 품삯을 받을 목적으로 일합니다. 품보다 손해를 보는 일은 안합니다. 그러나 선한목자는 희생하는 사역입니다. 양의 목숨을 책임진 자입니다. 양과 생명을 같이 합니다. 주님은 양을 위하여 갈보리에서 자신의 몸을 바쳤습니다. 당신은 양무리를 위하여 목숨을 받칠 각오가 되어 있는가 다윗은 자신이 맡은 양무리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사자와 곰에게도 달려가서 그 입에서 양을 건져내었습니다(사무엘상 17:34-36). 바울은 자신이 받은 사명을 위하여 목숨을 걸었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사도행전 20:24)고 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사명자의 생명은 하나님이 지켜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 이 시대에 당신을 선한 목자로 세웠습니다. 선한 목자는 양무리를 천국으로 인도합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의 이름을 알고 그 이름을 부르며 기도합니다. 선한 목자는 항상 양무리들 앞서갑니다. 선한 목자는 항상 풍성한 꼴을 준비하여 먹이십니다. 선한 목자는 양무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립니다.
그러므로 일선에서 수고하실 교사들은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리고 온 교회는 이 일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고 물심양면으로 후원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단의 시험에도 능동적으로 대처하여 은혜 중에 마칠 수 있습니다. 목회자의 권면은 이러합니다. 먼저 교우들에게 부탁합니다. 온 교회는 기도하여 영적으로 축제의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전 교인이 매일 하루 한 번씩 교회에 출입하여 교사와 학생들을 격려해야 합니다. 시간이 허락하시면 땀흘리는 교사들을 위하여 식당에서 봉사도 해 주시고, 여유가 있으면 간식비라도 드려서 격려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가르치는 사역에 봉사할 교사들에게 부탁합니다. 각부에 책임을 맡으신 분은 진행을 잘 하시고, 가르치는 교사들은 어린 세대를 잘 파악하여 알차게 준비하여 지혜롭게 하시기 바랍니다. 비록 열악한 교육환경이지만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에 걸어 보는 기대입니다. 복음의 씨가 이들의 심령밭에 심겨지는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영적인 추억의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선한 목자입니다. 양이 가지는 몇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양은 약한 동물입니다. 적을 막을 방어 기능인 뿔이나 발톱이나 긴 다리가 없습니다. 양은 겁이 많은 동물입니다. 심지어 흐르는 물소리에도 놀라게 됩니다(시편 23:2). 양은 시력이 약합니다. 길을 가다가 한 눈을 팔게 되면 목자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러한 양들을 위하여 선한 목자 되신 주님은 자신의 목숨을 버리신 것입니다. 당신은 선한 목자로 세움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 목자를 잃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헤매는 양들이 많습니다. 당신은 그들에게 선한 목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선한 목자 되신 주님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본을 보여 주었습니다.
첫째:선한 목자는 양을 우리로 인도합니다. 읽을말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1-2, 7) 목자는 양우리의 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조상적부터 유목생활을 해왔습니다. 그들은 때로 양을 치려 나가면 오랜 기간동안 들에서 지냅니다(창세기 37:12-17). 그들은 초지를 따라서 양무리를 옮기면서 몇 개월씩 양을 칩니다. 그때 목자는 들판에 양의 우리를 만듭니다. 밤이 되면 양을 우리 안에 넣고는 목자가 출입문에 눕게 됩니다. 그러면 자동적으로 목자 자신이 문이 됩니다. 그래서 요한은 “나는 양의 문이라”
(7)고 하신 것입니다. 바로 그러한 문을 통과하지 않는 자는 양을 훔쳐 가는 절도요, 빼앗아 가는 강도입니다. 이 사실을 주님은 구원사역에서 영적으로 우리에게 잘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에 들어가는 문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어떠한 자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고 했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사도행전 4:1·2)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 3:16)고 했습니다. 주님은 한알의 밀알로 오셔서 자신이 죽으심으로 수많은 구원의 열매를 맺으신 것입니다.
둘째:선한 목자는 양의 이름을 압니다. 읽을말씀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3) 목자는 양에게 이름을 지어 줍니다. 양이 아무리 많아도 목자는 다 압니다.
왜냐하면 목자는 양 하나 하나에게 이름을 지어 주기 때문입니다. 팔레스틴의 목자들은 양에게 이름을 지어 줄 때 착하고 순하게 자라도록 아름다운 꽃이나 식물의 이름을 따서 지어 줍니다. 목자는 우리에서 목장으로 양을 인도할 때 양 한 마리씩 이름을 불러서 인도하여 냅니다. 이것이 바로 양을 위한 목자의 사랑과 관심입니다. 양이 하루 중에서 가장 행복할 때가 바로 목자가 자기 이름을 불러 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실 때입니다. 그 양은 푸른 초장에서 배부르게 먹고 쉴 만한 물가에서 하루를 보냅니다. 이것이 양이 누릴 행복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당신을 부르고 계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28)고 합니다.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우러러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누가복음19:5)고 말씀하십니다. 죽은지 사흘이 되어 썩어 냄새나는 나사로를 향하여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요한복음 11:43)고 부르십니다. 주님이 죄인을 부르시는 것처럼 당신은 하나님이 당신에게 맡겨 준 영혼을 부르고 찾아야 합니다. 그 영혼의 이름을 불러 가면서 기도의 물을 주고, 세속의 잡초를 뽑아 주고, 환난의 바람을 막아 주는 지줏대가 되어야 합니다.
셋째:선한 목자는 양무리를 앞서갑니다. 일을말씀 “자기 양을 다 내어놓은 후에 앞서가며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4-5) 주님은 양무리들 앞서 가십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립보서 2:6-8)고 했습니다. 그는 그래서 잡히시기 직전에도 친히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신 것입니다(요한복음 13:5). 그래서 마태가 말하기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매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태복음 11:29)고 했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교육은 모범교육입니다. 지도자의 유형을 세가지로 나누어 볼 때 하나는 매를 가지고 훈계하는 권위주의형 지도자입니다. 이들은 항상 뒤에서 훈계하고 명령합니다. 또 하나는 민주화시대의 지도자입니다. 이들은 권위주의를 청산하려다가 권위까지도 포기해 버립니다. 다수라고 해서 다 선하고 목소리가 높다고 해서 옳은 것은 아닙니다. 올바른 질서와 규범은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주님이 보여준 지도력은 섬기는 것입니다. 양무리 앞에 군림하는 권위주자도 아니고, 양무리와 함께 동화되어 권위와 규범도 잃어버린 것도 아니고, 양무리 앞서서 선한 본을 보이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섬기는 지도자였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가복음 10:45)고 했습니다.
넷째:선한 목자는 풍성한 꼴을 먹입니다. 읽을말씀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9-10) 선한목자는 풍성한 꼴을 먹입니다. 선한 목자는 부지런하여 양을 항상 배부르게 합니다. 우리에서는 준비된 꼴로 먹이시고, 초장에서 늘 푸르고 잔잔한 시냇가로 인도합니다. 양이 젖을 내지 못하고 털을 생산하지 못하는 것은 목자의 책임입니다. 그래서 잠언에 이르기를 “네 양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떼에 마음을 두라”(잠언 27:23)고 했습니다. 목자는 부지런해야 합니다. 부지런한 목자의 목장은 양무리가 기름지고 윤택합니다. 선한목자는 항상 깨어 있습니다. 목자는 양무리에게 풍성한 꼴을 준비함과 동시에 양무리를 지키는 파수군의 사명도 감당해야 합니다.
양을 초원에 방목해 두면 간혹 지나가는 상인들이 양을 도적질하기도 하고 우리안에 있는 양도 때론 훔쳐가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목자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는 목자는 도적으로부터 양의 생명을 지킬 뿐 아니라 죄로 인하여 죽어 갈 양의 생명을 보호할 메시야를 만나게 됩니다. “그 지경에 목자들이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더니,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누가복음 2:8, 11)고 했습니다. 이 목자들은 양을 죄값으로 속죄의 제물이 되어가는 양의 생명을 지켜 주셨습니다. 다섯째: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립니다. 읽을말씀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15)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립니다. 선한 목자와 삯군목자와 차이점이 무엇인가 삯군목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일합니다. 그들은 품삯을 받을 목적으로 일합니다. 품보다 손해를 보는 일은 안합니다. 그러나 선한목자는 희생하는 사역입니다. 양의 목숨을 책임진 자입니다. 양과 생명을 같이 합니다. 주님은 양을 위하여 갈보리에서 자신의 몸을 바쳤습니다. 당신은 양무리를 위하여 목숨을 받칠 각오가 되어 있는가 다윗은 자신이 맡은 양무리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사자와 곰에게도 달려가서 그 입에서 양을 건져내었습니다(사무엘상 17:34-36). 바울은 자신이 받은 사명을 위하여 목숨을 걸었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사도행전 20:24)고 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사명자의 생명은 하나님이 지켜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 이 시대에 당신을 선한 목자로 세웠습니다. 선한 목자는 양무리를 천국으로 인도합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의 이름을 알고 그 이름을 부르며 기도합니다. 선한 목자는 항상 양무리들 앞서갑니다. 선한 목자는 항상 풍성한 꼴을 준비하여 먹이십니다. 선한 목자는 양무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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