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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원하시는 삶은 무엇인가? (빌1:8)

본문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킵니다. 인생에게 있어서 만남이라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좋은 배우자를 만나고, 좋은 동역자를 만나고, 좋은 이웃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구세주 예수를 만나는 것입니다. 당신이 주어진 생을 마치고 여호와 하나님이 부르실 때 예수를 믿지 못했다면 당신은 참으로 불행한 인생이며,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예수를 만나야 하나님의 나라 본향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요한복음 1:12, 12:21, 14:6, 사도행전 4:12). 당신이 예수를 만나서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해야 할 고백이 있습니다. 예수는 사단권세를 이기신 나의 왕이시요, 내게 하나님 나라를 가르쳐 주신 선지자시요, 나의 죄를 대속해 주신 제사장이심을 믿는 것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예수를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 당신이 원하신다면 주님은 자신을 대신하여 세우신 사명자들을 통하여 자신을 계시해 주십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상고하기 전에 사도행전 16장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바울이 제2차 전도여행 때 소 아시아 루스더라에서 충성된 제자 디모데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그를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디모데전서 1:2, 디모데후서1:2) 하나님은 사명자가 복음을 들고 나가면 반드시 충성된 일군들을 붙여 주십니다. 저와 여러분의 만남은 이러한 만남이 되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디모데와 함께 아시아 사역을 위하여 중요한 선교계획을 세웠던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님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사도행전 16:6) 하셨습니다. 그래서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그곳에서 환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비로소 그는 하나님의 비밀한 계획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령님은 복음을 아시아에만 묶어 두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시아 사역보다 더 우선적이고 긴급한 마게도냐 사역이 있음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의 사역에 제동을 걸었던 것입니다.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사도행전 16:9)는 긴급한 전보가 바울의 전문보다 앞서 상달된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모든 계획을 포기하고 성령님의 인도를 받기로 작정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바울은 마게도냐 지역으로 가게 되었고 이것이 세계선교의 전진기지가 된 것입니다. 그가 마게도냐 지역에 가서 처음으로 사역하여 세운 교회가 빌립보교회 였습니다. 본문은 빌립보 교회에 드린 옥중서신입니다.
첫째:주님은 자신의 심장을 가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사건을 통해서 우리 인생을 변화시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출우르 사건을 통하여 믿음의 기초를 놓게 하셨으며, 모세는 출애굽 사건을 통해서 율법의 기초를 놓게 했으며, 바울은 다메섹 사건을 통하여 사도의 반열에 세워주신 것입니다. 그는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났을 때 영적으로 심장이식 수술을 받았던 것입니다(사도행전 9:1-22). 이전에 유대교적 율법의 심장이 산산히 부서지고 복음인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이식되어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던 것입니다(고린도후서 5:17). 새 사람이 된 그는 즉시로 회당에 나아가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 했던 것입니다(사도행전 9:20). 그래서 그는 복음사역에 수종들 때마다 예수님의 심장을 가지고 사역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심장이 이식된 바울은 이전의 율법적인 것을 다 토설해 버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말씀하기를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기실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마암은 것이니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빌립보서 3:7-9)고 했습니다. 복음으로 이식된 예수의 심장은 이전의 베냐민 지파로 자랑했던 육적인 혈통과 가말리엘에게서 배운 세속적인 학문과 바리새인에게서 얻은 의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 예수 안에서 얻은 고상한 지식이었습니다. 사람의 위대(偉大)함이 지식이나 재물이나 명예나 권세에 있지 않습니다. 마음이 넓은 도량(度量)을 가져야 합니다. 롯을 품고 사는 아브라함의 여유나, 형들의 죄를 허물치 않는 요셉의 진실이나, 사울의 대적을 원수로 갚지 않는 다윗의 정직함이 실로 위대함입니다. 예수님은 갈보리에서 온 인류의 죄를 가슴에 품었습니다. 바울은 바로 이러한 마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유대인에게는 유대인같이, 율법 아래 있는 자에게는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율법 없는 자에게는 율법 없는 자 같이, 약한 자에게는 약한 자 같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예수의 심장을 소유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고린도전서 9:19-23). 바울이 고린도교회를 향해 권면하실 때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고린도후서 6:13)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마음을 넓혀 예수의 심장을 가집시다.
둘째:주님은 자신의 양무리를 돌아보기를 원하십니다. 이 땅 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역이 무엇일까 하나님이 내게 맡겨준 목장에서 영혼을 돌아보는 일입니다. 이 보다 더 크고 귀하고 아름다운 일은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말씀하시기를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시편 16:6)고 했습니다. 주님은 나의 재능과 지식과 은사를 너무도 잘 아셔서 내 건강과 지식과 재물과 은사와 믿음의 한계를 아시고 너무도 정확하게 말씀의 줄로 재어서 주었던 것입니다(마태복음 25:15)
그러므로 맡은 자의 구할 것은 충성입니다(고린도전서 4:1-2). 양에게 있어서 목자는 절대적입니다.
그러므로 목자가 양에게 관심을 두지 않으면 양은 언제나 유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선한 목자로서 항상 양무리에게 관심을 가지고 양무리 앞서 길을 인도합니다(요한복음 10:4). 다윗은 어린 소시절에 아비의 양무리를 치면서 이리와 사자 앞에서도 도망가지 않은 참 목자였습니다(사무엘상 17:34). 그 신실함은 이스라엘의 양들이 블레셋에서 온 골리앗이란 이리 앞에 인질로 잡혀 있을 때 그는 담대히 나아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한 것입니다(사무엘상 17:47).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예 야곱의 열두 지파를 다스리는 이스라엘의 자손을 치리하는 목장의 왕권을 맡겨 주신 것입니다(사무엘하 5:4). 우리도 내가 맡은 구역에서 적은 사역에 신실하면 하나님은 천하도 맡겨 주실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특별히 쓰기 위하여 구별하여 세운 그릇입니다(사도행전9:15) 그래서 가는 곳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웠던 것입니다. 그가 사명의 현장을 떠날 때마다 그들을 위한 기도 수첩을 만들어 머리속에서 항상 생각했으며, 기도할 때마다 항상 간구했으며, 언제나 영적으로 교통했던 것입니다(빌립보서 1:3-5). 오늘날 목자들은 양무리에 대하여 이러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솔로몬은 그의 잠언에서 말하기를 “네 양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떼에 마음을 두라”(잠언 27:23)고 했습니다.
셋째:주님은 우리가 자기의 증인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교단의 신학이념이 라틴어로 코오람 데오(CORAM DEO)입니다. 코오람은 앞에서(before)란 말이고, 데오는 하나님(God)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신전의식(神前義識)의 목회자를 양성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살아간 신실한 자 였습니다. 형들에게 팔림을 당할 때나, 보디발의 집에서나, 옥중에서나, 총리의 자리에 오를 때나 하나님 앞에서 신실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다고 했습니다.(창세기 39:8, 2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고통과 괴로움이 와도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면 고통 가운데서도 형통함을 주실 뿐 아니라 후일에 반드시 넘치는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다니엘과 믿음의 세 친구는 이방에 포로로 잡혀가면서 자신들에게 어떠한 어려움이 와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방의 왕들이 베푸는 진미와 포도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기로 했으며(다니엘 1:8), 이방 우상의 신전에 절하지 않기로 했으며(다니엘 3:18),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루에 세번씩 기도하기로 작정했습니다(다니엘 6:10). 그리할 때 하나님은 풀과 물만 먹었어도 고기를 먹는 자보다 윤택하고 기름지게 했으며(다니엘 1:15), 풀무불 가운데서도 머리털 하나라도 상하지 않게 했으며(다니엘 3:25), 사자굴에 던짐을 받았으나 하늘의 사자들이 땅위의 사자들의 입을 봉해 주셨던 것입니다(다니엘6:22) 우리가 하나님 앞에 뜻을 정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늘 군대를 동원해 주십니다. 땅 위에서도 귀중한 보배는 숨겨져 있는 법입니다. 진실은 오래 오래 묻혀 있을 수록 밝히 빛나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불의한 변론이나 증언이나 모략 앞에 변명이나 변호할 필요가 없습니다. 신실한 성도는 하나님을 자기의 증인으로 삼고 삽니다.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수 많은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한번도 자신을 위하여 변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빌립보서 1:8) 이것이 그의 전부였습니다. 인간의 많은 변론은 스스로 거짓됨을 증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증인으로 삼는 자는 말이 없는 법입니다. 입술로 증언하기보다는 몸으로 행동으로 삶으로 보여주는 신실한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킵니다.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이 기도가 밀알의 가족들에게 주신 유일한 무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간기도 제목을 가지시고 한주간을 지내면서 정시(저녁10시)에 혹은 적절한 시간에 하루에 한번씩 기도합시다.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부르짖은 이 기도가 인류 역사와 세계 문명을 바꾸는 놀라운 기적을 일어킨 것입니다. 기도는 시간과 공간과 환경을 초월해서 역사 하십니다. 우리 모두 예수의 심장을 가지고 주님이 내게 맡기신 양무리를 살피면서 하나님을 나의 증인으로 삼고 이 한 주간도 승리하는 삶을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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