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방법 (합1:1-11)
본문
우리들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여러가지 문제와 고민에 부딪칩니다.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아무 어려움이나,시련을 겪지 않는다고 약속한 적은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을 괴롭히는 원수는 지금도 곳곳에서 활약을 하고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우리가 가진 믿음을 빼앗으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실로 악한 세력들은 우리의 믿음을 무너뜨리는 일이라면 어떤 일도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당면된 이 여러가지 시험될 만한 문제들,어려움,시련,원수 마귀의 역사,믿음을 떨어지게하는 사단의 장난. 지존파라는 폭력배들,비디오,만화책,영화 보고 연습해서 패꺼리들이 사람이기를 거부하고,짐승같이 날 뛰면서 마구 사람을 잡아 죽이고, 택시기사라는 어떤 사람은 자기 아버지에게 불만을 가진 것을 인해서 아무 상관 없는 부녀자를 납치하여 폭행하고,죽이는 강포의 시대, 공중전화 오래 쓴다고 나무라는 어른을 찔러 죽이는 세상, 군 장교들이 수류탄을 들고 탈영하여 국민들을 불안에 떨게 만들고, 세무공무원은 백억 이상을 세금 도적질하고, 페스트 전염이 세계를 떨게 만들고, 북한에는 김일성 죽은 후, 핵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세계 곳곳마다 기근,지진,전쟁의 어려움으로 .낙태로 죽어가는 아이가 한국에만 일년에 120만명. 오늘의 아이엠에프의 경제적인 어려움,우리의 삶이 절벽벼랑 끝에 달려 있는 것 같이 하루 하루가 힘겨운데, 들리는 소문은 인도네시아는 우리와 같은 경제위기를 이기지 못해서 대량실업과 기아사태로, 정치위기가 일어나고, 지금 폭동으로 많은 사람이 생명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분열, 자리 다툼, 교단 문제, 재산 문제, 이단과 사이비 등 등. 진정, 정신이 온전하고는 못사는 세상. 우리들도 신앙의 세계에 살면서도 근심 거리가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째서 이런가 이것이 역사에 대한 관점 문제입니다. 기독교 역사관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과연 오늘에도 역사하시는가 하나님이 계신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만 하는가 어째서 이런 강포자,악인들이 대낮에 활개치고,오히려 그들이 형통한가 이 모든 문제에 대하여 우리는 그렇게 고민하지만,사실은 성경은 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 조차도 때때로 이런 문제로 고민하고 의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모르고,성경을 오해한 까닭입니다. 성경을 오직 자기 개인의 구원을 위한 교과서로만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의 회복만을 주제로 삼는 책은 아닙니다.분명히 성경은 온 세상의 상태와 운명에 대해서도 말씀합니다. 나의 개인 구원은 사실 이 세상 전체의 일 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사랑하시어 구원하시려는 큰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는대로 이 세계를 봐야 합니다. 먼저,이전에 일어난 일이나,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 가운데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들지 아니한 일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하박국서에는 하박국 선지자 한 사람의 고민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도 우리와 시대는 다르지만 꼭 같은 고민을 합니다. 하나님은 이 선지자의 고민을 통해서 우리들의 고민과 의문을 해결해 주려고 합니다. 이 선지자는 그 때 일어나는 여러가지 모순된 일들에 대해서 몹시 고민했습니다.그 이스라엘은 타락한 상태에 빠져있습니다. 그 때의 상황이나,지금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떠났고,하나님을 잊었습니다. 하나님의 종들도 타락하고,백성들도 타락했습니다.그들은 우상들에게 자기 몸을 바쳤고,다른 무가치한 것을 따라서 좇아 다녔습니다. 음란과 폭력과 겁탈과 싸움이 곳곳에 일어났습니다. 갈데 까지 다 갔습니다. 강포와 간악과 패역과 도적질과 음행과 싸움,분쟁이 끝이 없습니다.이런 것을 애통히 여긴 하박국 선지자가 하나님께 기도를 합니다. “여호와여,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를 인하여 외쳐도 주께서 구원치 아니하시나이다. 어찌하여 나로 간악을 보게 하시며,패역을 목도하게 하시나이까 대저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공의가 굽게 행함이니이다.” 라고 외쳤습니다. 오늘의 상황과 다릅니까 여전히 같습니다. 그 때도 정치를 맡은 권력자들이 잘못 행하고, 죄와 부도덕과 악이 난무했습니다. 사회는 병들었고,폭력이 가득했습니다. 인간 타락사를 보면, 종교적 타락이 일어나고,그 다음에는 도덕적 타락,그리고 정치적 타락이 일어납니다. 사실 이 모든 세상의 문제들은 교회의 타락이요, 교회의 타락은 세운 지도자들과 성도들의 타락입니다.
이것이 하박국 선지자의 고민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하시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이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일을 허용하셨는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왜 진멸을 하지 않고 보고만 계십니까 그러니 하나님의 율법은 지켜도 그만,안 지켜도 그만이고,하나님의 공의도 시행되지 못하고,굽어졌으니, 더욱 악이 이기는 세대가 되지 않습니까 그 악한 사람들을 벌해서 죽이시든지 하지 않으니, 누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합니까
그런데 하박국 선지자가 간절히 기도했으나,하나님은 전혀 응답하지 않았습니다.그래서 그는 더욱 더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아니하시니 언제까지입니까”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 주시지 않는다고 불평하자,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응답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또 그 응답은 그가 원하고 기다렸던 것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좋다! 나도 네 기도를 듣고 있었다.이제 내가 하려하던 것을 네게 말해 주겠다.내가 갈대아인을 일으켜 이스라엘을 치려고 한다.”하신 것입니다. 선지자는 더 놀랐습니다. 갈대아 인,바벨론은 사실 이스라엘 보다 더 악하고,패역한 민족인데 어째서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이방민족을 들어서 이스라엘을 벌하려고 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역사의 문제로 갈피를 잡기가 어렵습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외침은 절실했지만, 그는 하나님의 방법을 알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 인생과는 다른 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대해 다시 묻습니다. 이것은 사실 많은 믿는 사람들이 부딪히는 실제 문제입니다.
첫째로,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이유입니다. 분명히 공의의 하나님께서 진노를 발해야 하는 때인데도 이상하게 침묵하시는 것으로 보일 때에 선지자는 이해하지 못합니다.이런 나쁜 상황들이 벌어졌을 때에,다들 말합니다. “하나님은 뭐 하시나.하나님이 계시는가” “왜 하나님께서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허용하셨을까” “사회적으로 엄청난 불안을 끌고 오는 이런 일들이 왜 일어나는가” “교회 내부에는 왜 이런 어려움이 있도록 허용하시는가” “이단,사이비,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는데 왜 하나님께서는 잠잠하시는가” “왜 신앙심 깊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렇게 아침마다 부르짖고,외치는데도 하나님께서는 아무 응답도 없고,더 상황은 악해져 가는가” 우리들도 그렇습니다.우리들은 많이 기도합니다.진심을 다해 기도 드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들이 교회의 타락과 실상을 보고 탄식했고,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 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외칩니다.“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입니까”침묵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여러가지 문제를 하나님께 기도했으나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을 뿐 아니라,더 나쁜 상황이 될 때에 우리는 안타깝게 생각하고 낙심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실망하고 세상으로 돌아 가버리기 까지 합니다. “하나님은 과연 살아계시는가 계신다면 오늘에 역사하시는가 성경에나 계셨고, 지난 때에는 계셨지만, 오늘같은 과학시대에는 역사하심이 없지 않는가” 여러분, 왜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을까요 거룩하신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이런 모습이 되도록 까지 허용하신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이것이 첫째 고민,의심입니다.
두번째
가 예상치 못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놀란 것은,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대하여 응답이 없다가도 때때로 전혀 예기치 못했던 응답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는 우리 기도를 안 들어 주실 때 보다 더 이상하게 생각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매로 치신 다음에는 크게 부흥시켜 주리라고 선지자는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갈대아 사람을 일으키겠다”하십니다. 이 점이 선지자는 이해가 안됩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자신의 영적인 믿음 생활이 더 나아지도록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생활에 복을 소나기처럼 부어 주실 것으로 기대를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사단에게 빠지도록 하셔서 온갖 시험과 유혹을 받도록 하십니다. 이것이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신앙생활을 잘 해 보려고 작정하고 나면 그래도 하나님께서 이제 부터은 은혜와 복을 주시겠지 기대하는데, 오히려 더 큰 어려움이 오게 됩니다. 우리들은 기도에 이런 저런 응답이 왔으면 하고 기대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방법까지 자신의 기대대로 해 주기를 원합니다.이루어지는 때도,그 양도,방법도 우리 지식,생각대로 되어야 그것이 하나님의 응답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상치 못한 정 반대의 길로도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교회가 영적으로 타락하게 하신 것도,핍박을 당하게도 하신 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이상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도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씀드려서,우리가 차를 몰고 가면서 사고 안 나기를 기도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기도대로라면, 우리가 원하는 대로라면, 사고가 안나고 무사히 어떤 곳 까지 가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 기도를 안 드린 것도 아닌데,하나님께서는 어떤 때는 사고를 일으키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믿습니까 하나님의 응답의 방법입니다.이것을 믿어야 합니다.그러나 이 모든 것이 우리를 아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유익되도록 하신다는 것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방법과 우리의 방법이 왜 다를 때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영원을 보십니다.그러나 우리는 당면한 문제만을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체를 보십니다.그러나 우리는 나 자신만을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이면까지 보십니다.그러나 우리는 보이는 것만 보고 평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다 아십니다.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다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진정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법을 모릅니다. 어떻게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지 조차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능의 능력으로 우리의 모든 것을 채울 수 있습니다.그러나 우리는 겨우 한정된 능력만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우리의 방법과는 다른 방법을 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을 수가 있습니까 사람도 능력 있는 사람과 무능한 사람의 생각이 얼마나 다릅니까 능한 사람,지혜 있는 사람의 생각을 어떻게 둔한 사람이 따라가며,이해하며,평가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눈 앞에 종이 한 장만 가려도 앞을 보지 못하는 육신의 눈으로,입과 코만 10분만 막아도 숨을 못 쉬고 죽을 유한한 생명을 가지고, 한 치 앞도,일 분 후의 일도 내다 볼 수 없는 좁은 우리 지식으로,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죽어갈 때에 따라 죽지도 못하는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의 지식을,지혜를,사랑을,능력을,역사를 평가한다고 해서 오해도 하고,낙망도,불평도 낙심도 회의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와는 다릅니다. (사55:8-9)“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하셨고, 어떤 길은 사람이 자기 보기에는 옳은 길 같으나 하나님 보시기에는 사망의 길이라고 잠 14:12절에 말씀하셨습니다.
셋째는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를 가르치시기 위해서 어떤 도구도 사용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의문을 가집니다.공의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를 징계하시는데 하필이면 이스라엘보다 더 지독한 죄를 짓고 있었던 바벨론을 이용합니까 어째서 남한교회의 죄를 징계하시기 위해서 남한 보다 더 악한 이북을 이용하십니까 오늘 물질 주의로 하나님을 떠난 우리를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는 것은 우리들이 인정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들 보다 더 물질주의인 아엠에프라는 기관을 통해서 우리를 치십니까 그들은 갈대아인들 같이 잔혹하고, 인정없는 자들입니다. 그들의 말대로 했다가는 우리가 다 망하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들의 요구는 몰인정하고, 급하게 우리를 몰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연단하시고,우리를 깨끗케 하실지라도 공의가 없는 그들을 이용하시는 것이 우리에게는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을 도구로 이용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공의의 하나님이신데. 하나님께서는 도구로써, 어떤 것도 이용하십니다. 공산주의도 이용합니다. 교회를 배척하고 핍박하는 세력들 까지도 도구로 이용하시는 사람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어떤 것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한 도구로 사용합니다. 강대국도,문화도,과학도,뺑소니 운전사도,강도 조차도,병도,이용하십니다.이것을 이용해서 우리 구원 위한 도구로 사용합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몇 가지를 잡아야 합니다.
성경적인 역사관은 이렇습니다.
1)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만 지배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땅에 있는 모든 나라를 다 지배합니다.하나님은 역사의 주인입니다.지금도 그렇습니다.택하신 백성들만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세계를 움직이시고 다스리는 분은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왕이십니다.주인이십니다.찬양을 돌립시다.영광을 존귀와 권세를 왕이신 하나님께 돌립시다. 하나님은 하늘 보좌에 계시면서,우주 만물을 주관하십니다.역사를 시작하신 분도,지금 다스리시는 분도,이 역사를 끝 내실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2)역사는 하나님의 계획대로 움직입니다. 이 세상에 우연은 없습니다. 우발적인 사실은 없습니다. 역사는 처음 부터 정해진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서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인 구원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 모든 것이 지음을 받았고,일어날 시점에 틀림없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 구원이 하나님의 계획의 중심이며,목적입니다.
3) 역사는 하나님의 나라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를 푸는 열쇠는 하나님 나라입니다.구약성경에 나타난 다른 나라 이야기는 그것이 이스라엘과의 관계에서만 뜻이 있습니다.현대사도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입니다.하나님께서는 이를 위해서 모든 것을 지으시고,세계를 진행해 나오고 있습니다. 구원의 역사를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에 대해서 당황하면 안됩니다.구원 중심의 세계관을 가져야 합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폭력이 일어납니다. 이 사회가 어지럽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봐야 합니까 이것도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것인데,왜 그럴까 나와는 상관이 없는가 이들도 하나님께서 도구로 사용하시는 사람이구나. 나를 고치게 하시려는데,나에게 무엇이 변화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하나님은 내가 원하지 않는 사건을 왜 허용하시는가 그러나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의심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방법과 우리의 방법은 다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가 드리는 기도를 기도만 하면 바로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이시라면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 아니고,인정이 없는 분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 없이 나약한 기독교인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다행히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이기심을 깨뜨리시고,또 우리의 생활에 일어나서는 안될 일들은 아무리 구해도 들어주지 않으심으로 응답을 늦추시는 것으로 응답합니다. 언젠가 말씀드렸죠 신호등에는 파란 불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요.빨간 불에는 지나가서는 안됩니다.노란 불에는 잠시 멈추라는 것입니다.화살 표시등은 우리를 다른 길로 빠지도록 가리킵니다.하나님의 응답은 네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침묵도 응답입니다.기다려야 할 때는 기다려야 합니다.그러나 끝까지 인내해야 합니다.어떤 때는 우리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도 인도 합니다.사고도,병도,망하게도 하십니다.그러나 그 모든 것이 우리에게 유익한 것임을 알 때에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으로 깨닫고,하나님께 참으로 감사하는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우리는 모든 사건을 대할 때에 하나님의 위대하고 영원하며,영광스러운 목적,그 기쁘신 뜻에 맞추어 판단해야 합니다. 자신에게 좋은가,아닌가 하는 것으로 평가하는 것은 여전히 이기심입니다.당장에만 일시적으로 보고,육신적인 것만 보고,보이는 것만 보고 판단하면 안됩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사는 삶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처리하시도록 다 맡기는 것입니다.
어떤 자동차 정비 회사직원이 차를 몰고 가다가 자동차가 고장이 났습니다.길에다 차를 세워 놓고 열심히 고쳤으나,도무지 안 됩니다.그 때,어떤 할아버지 한분이 가까이 왔습니다.“자네,안되면 내가 고쳐 줄까 ” 청년은 기가 막혔습니다.“나는 자동차 회사 정비직원으로 일급 기사입니다.내가 해도 안되는 것을 할아버지가 어떻게.” 그 때에 할아버지가 지팡이로 엔진 부분을 두들겼습니다.“자,시동 걸어 봐” 차가 움직입니다.청년이 무안할 수 밖에. 그 할아버지 말씀이 “나는 이 자동차를 직접 설계하고 만든 포드라는 사람이야” 청년이 얼마나 무안했겠습니까 우리가 그렇습니다.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앞에 무엇 할 수 있다고 교만을 떠는지.자랑을 하는지.하나님께서 하시도록 맡깁시다.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시고, 내가 나를 위한 것 보다 더 잘 나를 아시고, 내 필요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 맡깁시다. 하나님의 방법이 이해가 안 되어도 기다려야 합니다.때를 기다리면 됩니다. 내 방법,수단 꾀로는 실패 뿐입니다.암만해도 안됩니다.과거에 된 것이 있다고하면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찾아보십시요.
우리에게 당면된 이 여러가지 시험될 만한 문제들,어려움,시련,원수 마귀의 역사,믿음을 떨어지게하는 사단의 장난. 지존파라는 폭력배들,비디오,만화책,영화 보고 연습해서 패꺼리들이 사람이기를 거부하고,짐승같이 날 뛰면서 마구 사람을 잡아 죽이고, 택시기사라는 어떤 사람은 자기 아버지에게 불만을 가진 것을 인해서 아무 상관 없는 부녀자를 납치하여 폭행하고,죽이는 강포의 시대, 공중전화 오래 쓴다고 나무라는 어른을 찔러 죽이는 세상, 군 장교들이 수류탄을 들고 탈영하여 국민들을 불안에 떨게 만들고, 세무공무원은 백억 이상을 세금 도적질하고, 페스트 전염이 세계를 떨게 만들고, 북한에는 김일성 죽은 후, 핵을 가지고 장난을 치고. 세계 곳곳마다 기근,지진,전쟁의 어려움으로 .낙태로 죽어가는 아이가 한국에만 일년에 120만명. 오늘의 아이엠에프의 경제적인 어려움,우리의 삶이 절벽벼랑 끝에 달려 있는 것 같이 하루 하루가 힘겨운데, 들리는 소문은 인도네시아는 우리와 같은 경제위기를 이기지 못해서 대량실업과 기아사태로, 정치위기가 일어나고, 지금 폭동으로 많은 사람이 생명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분열, 자리 다툼, 교단 문제, 재산 문제, 이단과 사이비 등 등. 진정, 정신이 온전하고는 못사는 세상. 우리들도 신앙의 세계에 살면서도 근심 거리가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어째서 이런가 이것이 역사에 대한 관점 문제입니다. 기독교 역사관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과연 오늘에도 역사하시는가 하나님이 계신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나야만 하는가 어째서 이런 강포자,악인들이 대낮에 활개치고,오히려 그들이 형통한가 이 모든 문제에 대하여 우리는 그렇게 고민하지만,사실은 성경은 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 조차도 때때로 이런 문제로 고민하고 의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잘 모르고,성경을 오해한 까닭입니다. 성경을 오직 자기 개인의 구원을 위한 교과서로만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의 회복만을 주제로 삼는 책은 아닙니다.분명히 성경은 온 세상의 상태와 운명에 대해서도 말씀합니다. 나의 개인 구원은 사실 이 세상 전체의 일 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사랑하시어 구원하시려는 큰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는대로 이 세계를 봐야 합니다. 먼저,이전에 일어난 일이나,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 가운데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들지 아니한 일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하박국서에는 하박국 선지자 한 사람의 고민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도 우리와 시대는 다르지만 꼭 같은 고민을 합니다. 하나님은 이 선지자의 고민을 통해서 우리들의 고민과 의문을 해결해 주려고 합니다. 이 선지자는 그 때 일어나는 여러가지 모순된 일들에 대해서 몹시 고민했습니다.그 이스라엘은 타락한 상태에 빠져있습니다. 그 때의 상황이나,지금이나 다를 바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떠났고,하나님을 잊었습니다. 하나님의 종들도 타락하고,백성들도 타락했습니다.그들은 우상들에게 자기 몸을 바쳤고,다른 무가치한 것을 따라서 좇아 다녔습니다. 음란과 폭력과 겁탈과 싸움이 곳곳에 일어났습니다. 갈데 까지 다 갔습니다. 강포와 간악과 패역과 도적질과 음행과 싸움,분쟁이 끝이 없습니다.이런 것을 애통히 여긴 하박국 선지자가 하나님께 기도를 합니다. “여호와여,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를 인하여 외쳐도 주께서 구원치 아니하시나이다. 어찌하여 나로 간악을 보게 하시며,패역을 목도하게 하시나이까 대저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공의가 굽게 행함이니이다.” 라고 외쳤습니다. 오늘의 상황과 다릅니까 여전히 같습니다. 그 때도 정치를 맡은 권력자들이 잘못 행하고, 죄와 부도덕과 악이 난무했습니다. 사회는 병들었고,폭력이 가득했습니다. 인간 타락사를 보면, 종교적 타락이 일어나고,그 다음에는 도덕적 타락,그리고 정치적 타락이 일어납니다. 사실 이 모든 세상의 문제들은 교회의 타락이요, 교회의 타락은 세운 지도자들과 성도들의 타락입니다.
이것이 하박국 선지자의 고민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하시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이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일을 허용하셨는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왜 진멸을 하지 않고 보고만 계십니까 그러니 하나님의 율법은 지켜도 그만,안 지켜도 그만이고,하나님의 공의도 시행되지 못하고,굽어졌으니, 더욱 악이 이기는 세대가 되지 않습니까 그 악한 사람들을 벌해서 죽이시든지 하지 않으니, 누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합니까
그런데 하박국 선지자가 간절히 기도했으나,하나님은 전혀 응답하지 않았습니다.그래서 그는 더욱 더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아니하시니 언제까지입니까”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 주시지 않는다고 불평하자,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응답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또 그 응답은 그가 원하고 기다렸던 것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좋다! 나도 네 기도를 듣고 있었다.이제 내가 하려하던 것을 네게 말해 주겠다.내가 갈대아인을 일으켜 이스라엘을 치려고 한다.”하신 것입니다. 선지자는 더 놀랐습니다. 갈대아 인,바벨론은 사실 이스라엘 보다 더 악하고,패역한 민족인데 어째서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이방민족을 들어서 이스라엘을 벌하려고 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역사의 문제로 갈피를 잡기가 어렵습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외침은 절실했지만, 그는 하나님의 방법을 알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 인생과는 다른 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대해 다시 묻습니다. 이것은 사실 많은 믿는 사람들이 부딪히는 실제 문제입니다.
첫째로,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이유입니다. 분명히 공의의 하나님께서 진노를 발해야 하는 때인데도 이상하게 침묵하시는 것으로 보일 때에 선지자는 이해하지 못합니다.이런 나쁜 상황들이 벌어졌을 때에,다들 말합니다. “하나님은 뭐 하시나.하나님이 계시는가” “왜 하나님께서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허용하셨을까” “사회적으로 엄청난 불안을 끌고 오는 이런 일들이 왜 일어나는가” “교회 내부에는 왜 이런 어려움이 있도록 허용하시는가” “이단,사이비,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는데 왜 하나님께서는 잠잠하시는가” “왜 신앙심 깊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렇게 아침마다 부르짖고,외치는데도 하나님께서는 아무 응답도 없고,더 상황은 악해져 가는가” 우리들도 그렇습니다.우리들은 많이 기도합니다.진심을 다해 기도 드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들이 교회의 타락과 실상을 보고 탄식했고,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 나는 것 같지 않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외칩니다.“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입니까”침묵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여러가지 문제를 하나님께 기도했으나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을 뿐 아니라,더 나쁜 상황이 될 때에 우리는 안타깝게 생각하고 낙심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실망하고 세상으로 돌아 가버리기 까지 합니다. “하나님은 과연 살아계시는가 계신다면 오늘에 역사하시는가 성경에나 계셨고, 지난 때에는 계셨지만, 오늘같은 과학시대에는 역사하심이 없지 않는가” 여러분, 왜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을까요 거룩하신 하나님, 공의의 하나님께서 우리들이 이런 모습이 되도록 까지 허용하신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이것이 첫째 고민,의심입니다.
두번째
가 예상치 못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놀란 것은,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대하여 응답이 없다가도 때때로 전혀 예기치 못했던 응답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는 우리 기도를 안 들어 주실 때 보다 더 이상하게 생각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매로 치신 다음에는 크게 부흥시켜 주리라고 선지자는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갈대아 사람을 일으키겠다”하십니다. 이 점이 선지자는 이해가 안됩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자신의 영적인 믿음 생활이 더 나아지도록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생활에 복을 소나기처럼 부어 주실 것으로 기대를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사단에게 빠지도록 하셔서 온갖 시험과 유혹을 받도록 하십니다. 이것이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신앙생활을 잘 해 보려고 작정하고 나면 그래도 하나님께서 이제 부터은 은혜와 복을 주시겠지 기대하는데, 오히려 더 큰 어려움이 오게 됩니다. 우리들은 기도에 이런 저런 응답이 왔으면 하고 기대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방법까지 자신의 기대대로 해 주기를 원합니다.이루어지는 때도,그 양도,방법도 우리 지식,생각대로 되어야 그것이 하나님의 응답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상치 못한 정 반대의 길로도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교회가 영적으로 타락하게 하신 것도,핍박을 당하게도 하신 것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이상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도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씀드려서,우리가 차를 몰고 가면서 사고 안 나기를 기도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기도대로라면, 우리가 원하는 대로라면, 사고가 안나고 무사히 어떤 곳 까지 가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 기도를 안 드린 것도 아닌데,하나님께서는 어떤 때는 사고를 일으키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믿습니까 하나님의 응답의 방법입니다.이것을 믿어야 합니다.그러나 이 모든 것이 우리를 아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유익되도록 하신다는 것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쓰시는 방법과 우리의 방법이 왜 다를 때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영원을 보십니다.그러나 우리는 당면한 문제만을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체를 보십니다.그러나 우리는 나 자신만을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이면까지 보십니다.그러나 우리는 보이는 것만 보고 평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다 아십니다.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다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진정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법을 모릅니다. 어떻게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지 조차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능의 능력으로 우리의 모든 것을 채울 수 있습니다.그러나 우리는 겨우 한정된 능력만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우리의 방법과는 다른 방법을 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을 수가 있습니까 사람도 능력 있는 사람과 무능한 사람의 생각이 얼마나 다릅니까 능한 사람,지혜 있는 사람의 생각을 어떻게 둔한 사람이 따라가며,이해하며,평가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눈 앞에 종이 한 장만 가려도 앞을 보지 못하는 육신의 눈으로,입과 코만 10분만 막아도 숨을 못 쉬고 죽을 유한한 생명을 가지고, 한 치 앞도,일 분 후의 일도 내다 볼 수 없는 좁은 우리 지식으로,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죽어갈 때에 따라 죽지도 못하는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의 지식을,지혜를,사랑을,능력을,역사를 평가한다고 해서 오해도 하고,낙망도,불평도 낙심도 회의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와는 다릅니다. (사55:8-9)“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하셨고, 어떤 길은 사람이 자기 보기에는 옳은 길 같으나 하나님 보시기에는 사망의 길이라고 잠 14:12절에 말씀하셨습니다.
셋째는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를 가르치시기 위해서 어떤 도구도 사용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의문을 가집니다.공의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를 징계하시는데 하필이면 이스라엘보다 더 지독한 죄를 짓고 있었던 바벨론을 이용합니까 어째서 남한교회의 죄를 징계하시기 위해서 남한 보다 더 악한 이북을 이용하십니까 오늘 물질 주의로 하나님을 떠난 우리를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는 것은 우리들이 인정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들 보다 더 물질주의인 아엠에프라는 기관을 통해서 우리를 치십니까 그들은 갈대아인들 같이 잔혹하고, 인정없는 자들입니다. 그들의 말대로 했다가는 우리가 다 망하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들의 요구는 몰인정하고, 급하게 우리를 몰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연단하시고,우리를 깨끗케 하실지라도 공의가 없는 그들을 이용하시는 것이 우리에게는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을 도구로 이용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공의의 하나님이신데. 하나님께서는 도구로써, 어떤 것도 이용하십니다. 공산주의도 이용합니다. 교회를 배척하고 핍박하는 세력들 까지도 도구로 이용하시는 사람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어떤 것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한 도구로 사용합니다. 강대국도,문화도,과학도,뺑소니 운전사도,강도 조차도,병도,이용하십니다.이것을 이용해서 우리 구원 위한 도구로 사용합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몇 가지를 잡아야 합니다.
성경적인 역사관은 이렇습니다.
1)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만 지배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땅에 있는 모든 나라를 다 지배합니다.하나님은 역사의 주인입니다.지금도 그렇습니다.택하신 백성들만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세계를 움직이시고 다스리는 분은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왕이십니다.주인이십니다.찬양을 돌립시다.영광을 존귀와 권세를 왕이신 하나님께 돌립시다. 하나님은 하늘 보좌에 계시면서,우주 만물을 주관하십니다.역사를 시작하신 분도,지금 다스리시는 분도,이 역사를 끝 내실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2)역사는 하나님의 계획대로 움직입니다. 이 세상에 우연은 없습니다. 우발적인 사실은 없습니다. 역사는 처음 부터 정해진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서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인 구원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 모든 것이 지음을 받았고,일어날 시점에 틀림없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 구원이 하나님의 계획의 중심이며,목적입니다.
3) 역사는 하나님의 나라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세계를 푸는 열쇠는 하나님 나라입니다.구약성경에 나타난 다른 나라 이야기는 그것이 이스라엘과의 관계에서만 뜻이 있습니다.현대사도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 나라입니다.하나님께서는 이를 위해서 모든 것을 지으시고,세계를 진행해 나오고 있습니다. 구원의 역사를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에 대해서 당황하면 안됩니다.구원 중심의 세계관을 가져야 합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폭력이 일어납니다. 이 사회가 어지럽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봐야 합니까 이것도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것인데,왜 그럴까 나와는 상관이 없는가 이들도 하나님께서 도구로 사용하시는 사람이구나. 나를 고치게 하시려는데,나에게 무엇이 변화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하나님은 내가 원하지 않는 사건을 왜 허용하시는가 그러나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의심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방법과 우리의 방법은 다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가 드리는 기도를 기도만 하면 바로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이시라면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 아니고,인정이 없는 분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 없이 나약한 기독교인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다행히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이기심을 깨뜨리시고,또 우리의 생활에 일어나서는 안될 일들은 아무리 구해도 들어주지 않으심으로 응답을 늦추시는 것으로 응답합니다. 언젠가 말씀드렸죠 신호등에는 파란 불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요.빨간 불에는 지나가서는 안됩니다.노란 불에는 잠시 멈추라는 것입니다.화살 표시등은 우리를 다른 길로 빠지도록 가리킵니다.하나님의 응답은 네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침묵도 응답입니다.기다려야 할 때는 기다려야 합니다.그러나 끝까지 인내해야 합니다.어떤 때는 우리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도 인도 합니다.사고도,병도,망하게도 하십니다.그러나 그 모든 것이 우리에게 유익한 것임을 알 때에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으로 깨닫고,하나님께 참으로 감사하는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우리는 모든 사건을 대할 때에 하나님의 위대하고 영원하며,영광스러운 목적,그 기쁘신 뜻에 맞추어 판단해야 합니다. 자신에게 좋은가,아닌가 하는 것으로 평가하는 것은 여전히 이기심입니다.당장에만 일시적으로 보고,육신적인 것만 보고,보이는 것만 보고 판단하면 안됩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사는 삶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처리하시도록 다 맡기는 것입니다.
어떤 자동차 정비 회사직원이 차를 몰고 가다가 자동차가 고장이 났습니다.길에다 차를 세워 놓고 열심히 고쳤으나,도무지 안 됩니다.그 때,어떤 할아버지 한분이 가까이 왔습니다.“자네,안되면 내가 고쳐 줄까 ” 청년은 기가 막혔습니다.“나는 자동차 회사 정비직원으로 일급 기사입니다.내가 해도 안되는 것을 할아버지가 어떻게.” 그 때에 할아버지가 지팡이로 엔진 부분을 두들겼습니다.“자,시동 걸어 봐” 차가 움직입니다.청년이 무안할 수 밖에. 그 할아버지 말씀이 “나는 이 자동차를 직접 설계하고 만든 포드라는 사람이야” 청년이 얼마나 무안했겠습니까 우리가 그렇습니다.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앞에 무엇 할 수 있다고 교만을 떠는지.자랑을 하는지.하나님께서 하시도록 맡깁시다.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시고, 내가 나를 위한 것 보다 더 잘 나를 아시고, 내 필요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 맡깁시다. 하나님의 방법이 이해가 안 되어도 기다려야 합니다.때를 기다리면 됩니다. 내 방법,수단 꾀로는 실패 뿐입니다.암만해도 안됩니다.과거에 된 것이 있다고하면 그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찾아보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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