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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 쓰임 받는 가정 (행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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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기독교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숫자가 많이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기독교가 이 사회와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너무나 작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그들의 숫자가 얼마되지 않았지만, 복음이 전해질 때에 온 동네가 소요가 나고 진동될 만큼 영향력이 컸습니다. 그들이 전한 복음이 결국 로마 황실을 점령했고, 세계가 기독교국가가 될 만큼 영향력이 켰습니다. 한국교회만 해도 초창기 복음이 들어왔을 때에 한 사회의 변혁을 주도했다고 할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끼친 것이 교회입니다.
그런데 오늘 천만인이 그리스도인이라는 한국 기독교가 우리 주변 조차도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고, 오히려 많은 부정과 부패 사건에 기독교인들이 연류되어 있음으로해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얼마나 어려움이 많은지 모릅니다. 여러분은 이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 원인은 헌신된 그리스도인들이 부족하다는데 있습니다. 오늘 등록되어 있는 교인수는 많지만, 신자는 적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신자는 그래도 많아도 참 예수의 제자가 희귀합니다. 내가 올 때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하신대로 오늘 진실하게 믿고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 뒤를 쫒을 각오로 신앙의 걸음을 걷는 제자가 귀합니다. 초대교회에 나타나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부부로서 쓰임을 받은 그 이름이 기록된 두 부부를 이 시간에 대조해 보려고 합니다.
행 5장에 나타나는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와 오늘 본문에 나타난 아굴라와 브리스가 부부입니다. 두 가정이 다 쓰임을 받았으나, 아나니아 가정은 하나님의 진노의 공의를 나타내는 데 쓰임을 받았고, 아굴라 가정은 하나님의 복음 사역에 귀하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부 제도를 내실 때에 목적은 돕는 배필이었습니다. 무엇을 돕는 배필이어야합니까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이 맡기신 사역을 감당하는 일에 서로 도와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는 서로가 돕기는 했으나, 저희들 욕심을 채우는 일에 서로 도와서 결국 서로 죽이고 망치는 결과를 맺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굴라와 브리스가 부부는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이 맡기신 사역에 서로 돕는 일을 해서 가장 복되고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의 신앙시작은 좋았습니다. 그들도 많은 성도들과 같이 자기 가진 것을 팔아서 구제하는 일에 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실은 이들의 중심이 온전하지는 못했습니다. (행4:36)에 보면,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 (번역하면 권위자) 라 하니 (행4:37)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나바라는 요셉이 그가 가진 밭을 팔아서 그 값을 사도들 앞에 두었습니다. 그것을 본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는 아마 마음에 저희들도 그렇게 해서 바나바라는 권위자라는 영광스런 칭호를 듣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남편 아나니아가 밭을 팔 때에 아내인 삽비라에게 의논하게 됩니다. (행5: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 아내 삽비라로 더불어 소유를 팔아 아나니아는 이 일을 하는데 그 아내 삽비라와 의논했고 한 마음이 되어서 소유를 다 팔았습니다. 얼마나 서로 협조적이며, 화목해 보입니까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였습니다. 그 마음에 시기하는 마음이 있어서 시작한 선행이기 때문에 결코 그 선이 온전한 것은 못되었습니다. (행5: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그 값을 얼마를 감추는데, 여기도 아내가 알더라고 했습니다. 남편과 아내가 도와서 범죄를 합니다. 손발이 척척 맞습니다. 이들은 처음부터 감추려고 한 것은 아닐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막상 땅을 팔고 돈을 쥐고 보니 인색한 마음, 아까운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이것을 다 드리고 나면 우리는 어떻게 먹고 사나 그러면서도 이들은 교회에서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사도들에게 얼마를 감추고 남은 돈을 보이면서 이것이 전부라고 했습니다. 만일에 그들이 땅을 팔았는데, 그 일부를 저희들이 가지고 왔습니다 했다면 문제가 되지 않을 뿐아니라, 하나님께서 받으실 그 연보가 귀한 것이 될 것입니다. (행5: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베드로가 한 말은 땅을 팔지 않고 그대로 두어도 상관없는 것이요, 판 후에도 네가 임의로 얼마를 쓰고 얼마를 드릴 수 있지 않느냐 문제는 왜 거짓말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들이 거짓말한 것은 바나바라는 요셉이 그 밭을 팔아 다 드린 것을 보고 시기했고, 그래서 저희들도 그렇게 했다는 사람들 앞에 선을 보이고, 자랑하는 마음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사도를 속였는데 그것이 바로 교회를 속인 것이요, 하나님이신 성령님을 속인 무서운 죄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로써 아나니아가 즉사하게 되고 이어서 들어온 삽비라도 거짓말을 하므로 즉사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교회에 일치를 깨는 성령님을 훼방하는 죄, 하나님을 속이는 죄가 교회를 쓰러드리고 말것이라는 것을 보이면서 하나님께서 이 사람들을 공의로 심판하시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는 이렇게 쓰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타난 헌신된 사람, 아굴라와 브리스가, 이들은 부부로서 참으로 헌신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신일교회가 이 아굴라와 브리스가 부부 같은 아름다운 부부들의 헌신이 많이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먼저 그들 부부는 함께서로가 서로에게 헌신하며, 하나님께 헌신한 아름다운 부부관계를 보여줍니다. 진정으로 함께 삶을 나누었던 부부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 아굴라와 부리스가 라는 부부의 이름이 항상 함께 등장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함께 이 헌신의 고난 길을 걸어갔던 부부입니다. 부부는 동반자라고 합니다. 성경도 부부의 조건 가운데 하나를 함께 동거해야한다고 했습니다. (벧전3:7)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본문 1절에 보면, (행18:1) 이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행18: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글라우디오 로마 황제는 남자들을 다 좇아냈지만, 여자들은 원하면 로마에 남도록 했습니다. 로마에 남는 여자들에게는 좋은 대우를 하도록 했습니다. 이는 유대 여자들을 노예로 혹은 노리개로 부려먹기 위한 간교한 정책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대 여자들은 이 특권을 거절하고 자기의 사랑하는 남편들과 함께 고통스럽지만, 새로운 삶을 개척하려고 로마를 떠났던 것입니다. 가정에 대한 유대여인들의 철저한 헌신의 정신을 우리가 배워야합니다. 우리들의 삶이 이전 같지 않고 어려운 때입니다. 이런 때에 우리 부부들은 결혼때에 한 언약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그 언약은 인간 한 남자와 여자의 언약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내신 부부제도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한 언약인줄 알고 지켜야합니다.
우리들의 삶이 어떻게 어렵더라도 부부는 함께 고난의 이 파도를 겪어 나가야할 동반자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서로 심각하게 불신하고 오늘 경제 때문에도 수많은 가정이 깨어지는 이러한 세대에 고난의 파도를 헤치면서 함께 삶을 걸어가는 이 아굴라와 브리스가 부부의 모습은 감동적입니다. 이들 부부는 적어도 네 번 이상을 주거지를 옮겨 다닙니다. 본도에서 로마로, 로마에서 고린도로, 고린도에서 에베소로, 에베소에서 다시 로마로 갔던 것입니다. 요즘 같이 포장이사를 하는 때에도 어려운데, 그 때는 그런 것도 없으니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저희 집사람은 장롱 같은 것은 하나도 갖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저희가 이사를 열 네 번 이상 했고, 저 없이 혼자서 짐 옮기는 일도 있었기 때문에 가구를 보면 탐이 나는 것이 아니라 지긋지긋하답니다. 너무나 많은 고생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 두 부부는 그냥 이사 다닌 것이 아니라 그 거주지를 옮기는 동안에 고난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함께하면서 더욱 가까워 졌습니다. 남편들의 어깨가 더 무겁고, 처지는 이 때에 아내들의 내조가 필요합니다. 부부는 좋을 때 함께하라고 맺은 것이 아닙니다. 돕는 배필입니다. 상대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에 좋은 위로와 격려의 말 한마디가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성경에 이들 부부의 이름은 6번이나 나타납니다.
그런데 부부 이름이 꼭 같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 중에 4번은 아내 브리스가의 이름이 먼저 나옵니다. 유대관습에는 꼭 남편의 이름을 먼저 기록합니다.
그런데 여자의 이름이 먼저 나오는 경우가 많은 것은 아내 브리스가가 더 헌신적이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아내의 활동 뒤에는 언제나 남편 브리스가의 이해와 도움이 함께 동반되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교회에 헌신하는 남편의 뒤를 당기는 아내는 없어야합니다. 아내의 뒤를 당기는 남편도 없을 줄 압니다. 둘 중에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께 충성할 시간이 있음을 감사하고, 쓰임 받는 것이 은혜인 것을 깨달아서 뒤에서 등을 미는 부부가 되어야합니다.
둘째로, 이들 부부는 말씀에 대한 헌신을 했습니다. 아굴라와 부리스가 부부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1년 6개월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공부했습니다. (11절)
그러므로 그들은 복음의 핵심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이들 부부는 아볼로라는 청년의 설교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 청년은 아주 논리 정연한 설교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설교는 유대교 적이지 그리스도에 대한 가르침이 없었습니다. 바로 이들은 장막제조업을 하는 비천한 직업인이었지만, 아볼로를 데려다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도를 자세히 알게 했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이 나중에 아볼로를 거둡나게 할 뿐 아니라, 위대한 설교자로 만들었습니다. (고전3:5-9) 우리들의 헌신 가운데에 중요한 헌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가르치는 일에 대한 시간헌신입니다. 부흥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습니다.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이 부흥이라고 할 때에 말씀을 아는 일에 여러분들은 얼마나 시간을 투자하십니까 또한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얼마나 시간을 내십니까 성경을 연구하는 데에 제일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제일 부족한 것이 시간입니다. 시간을 내지 않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배우는 일에 힘을 씁시다. 또한 가르치는 일에도 힘을 써야합니다. 이 아굴라 부부는 말씀에 헌신을 했습니다.
셋째로 이들은 복음 사역에 함께 헌신했습니다. 이들 부부는 로마에서 살고 있었다. 주후 49년 당시 황제인 글라우디오가 유대인 추방령을 내렸을 때 로마를 떠나 고린도에 왔다가 바울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이들 부부는 바울과 같은 일 즉 장막을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자연히 바울과 가까워지게 되었고 이때부터 바울의 신실한 동역자가 되었다. 본문 말씀을 보면, 바울이 고린도를 떠나 에베소에 가서 복음을 전할 때에도 이들 부부는 바울과 함께 했습니다. 이곳에서 그들은 바울의 사역에 발 맞추어 자신의 집을 교회로 내어놓았고, 후에 로마로 돌아가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들 부부는 항상 바울을 따라 다니면서 그의 사역을 도와주었다. (18:18,26) 훗날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들 부부를 소개하면서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나 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 (롬 16:4) 라고 말하였다. 바울 자기를 대신하여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하였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생각해 볼 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해서 한 사람의 목회자를 위하여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 이 헌신에 대하여 모든 교회가 감사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이들의 헌신이 복음을 전하는 바울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이 되었겠습니까 그들이 대단한 사람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끝까지 복음 전하는 사람에게 자신을 위해 기도하며 헌신하는 사람을 동역자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자신의 가족들의 건강과 행복과 평강만을 위해 오히려 이웃을 해하고 교회도 이용하려는 사람들도 적잖게 있는 때에 이 아굴라와 부리스가 부부의 헌신은 얼마나 많은 도전이 됩니까 우리들 가정 가운데, 부부 가운데 과연 누가 이런 부부가 있을까 참으로 복음을 위해 존재하며, 복음을 위해 손해보며, 모든 것을 내 놓을 각오와 사명을 가지고 있는 가정이 얼마나 있으며, 그런 부부가 얼마나 있는가 이것이 주님이 쓰시는 가정이요, 부부입니다. 이런 가정이 얼마나 있는가에 따라서 그 교회는 이 세대를 건지는 하나님의 귀한 역사에 쓰임을 받느냐, 못받느냐 하는 것이 결정됩니다. 아나니아 삽비라 부부도 있고, 아굴라와 브리스가 부부도 있습니다. 둘 다 쓰임을 받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한 부부는 하나님의 공의가 얼마나 두려운 것인가를 드러내는데 쓰임 받았고, 한 부부는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아나니아 부부는 자기들만의 사랑과 가정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여 하나님을 속이려다가 멸망에 이르렀고, 아굴라 부부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 자신들을 돌아보지 않고, 자신들의 목숨이라도 내어 놓을 각오로 살았기 때문에 온 교회가 감사하며 오늘 우리까지도 이들에게 감사하는 부부가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들의 서로 사랑함에 손해된 것이 있었겠습니까 이들이 그렇다고 가정을 소홀했겠습니까 우리들 가정이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우리들 부부가 서로 돕는다는 의미는 이런 것입니다. 이것이 가정을 내신 하나님의 뜻이요, 부부를 내신 하나님의 크신 뜻입니다. 함께 하나님의 일에 충성합시다. 그렇지 못하거든 한 쪽이 충성할 때에 박수를 치고 환영을 해야 상을 같이 받게 됩니다. 우리 부부 사이가 아나나이 삽비라 같은, 아합과 이세벨 같은 요소는 없습니까
그렇다면 빨리 회개해야합니다. 아굴라와 브리스가의 헌신은 너무나 귀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직업이 비천한 것이지만, 그들이 별로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었지만, 복음을 위해 생명을 내 놓는 헌신이 놀라운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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