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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처녀 비유 (마25:1-13)

본문

‘천국’이라는 주제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구원과 삶에 있어서 핵심적인 주제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었다고 하는 것은 영원한 천국이 우리에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이미 임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구원을 완성하셨을 때에 천국은 우리에게 완성된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은 또한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서 들어갈 곳입니다.
그런데 또한 이 천국을 우리가 현재 이루어 간다고 하는 것은 영원한 장소 천국을 이루어 간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천국이 우리 심령 속에 이루어진 것인데 이 천국은 곧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곳입니다. 우리들이 예수님을 믿기 시작할 때부터 마귀들은 물러나게 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들의 삶 속에 세워지게 됩니다. 그러나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아직도 우리의 삶 속에 이 천국이 임하지 못한 곳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 들어가게 되었으나 그때부터 가나안과 싸워서 그 땅을 점령해야 하는 것 같이 이 어둠의 세력들을 이기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워야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의 비유 말씀에서 나타난 천국은 이런 의미의 천국 비유입니다. 날마다 우리 현실에서 이루어 나가는 구원을 천국이라고 비유하신 것입니다. 이 열 처녀 비유의 말씀은 우리가 마지막 날에 천국에 들어가느냐 못 가느냐에 대한 말씀이기보다는 오늘 현실 현실의 삶에서 결정되는 우리가 주님을 맞이하는 삶을 살아서 천국을 점령하는 자가 되는가, 아니면 실패하는 자가 되느냐하는 말씀입니다. 종말론에 대한 말씀의 가장 중요한 주제는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깨어서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이 열 처녀 비유의 말씀도 결론은 깨어서 준비하는 자가 신앙성공자라는 말씀입니다. 이 자가 천국을 얻을 것입니다. 천국은 침로하는 자의 것이라 했습니다. 오늘 이 비유의 말씀에는 그 신부가 신랑을 맞이하고 못 맞이하는 것이 단 한 번으로 나타나 있지만, 실은 우리들의 삶의 모든 현실은 그 결과가 계속해서 성공이냐 실패냐로 결정되고 있는 것입니다. 천국을 이 비유에서 어떻게 묘사하고 있습니까 (마 25:1)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마 25:2)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첫째로, 천국이란 신랑을 맞이하는 신부와 같습니다. 여기에 신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합니다. 남편이 누구냐에 따라서 그 아내의 위치가 결정됩니다. 아내가 좀 못나도 남편이 권력이 있으면 그 부인도 함께 대우를 받고 영광을 받는 것 아닙니까 물론 지금 우리들은 혹 아내 잘 만나서 팔자를 고친 사람들도 있지만, 여기 말씀하신 이스라엘의 사회 분위기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시집가려고 준비하는 신부와 같고, 신랑은 주님이신데, 이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이분은 천지 만물을 홀로 지으신 창조주시고, 부요하신 분이시고, 그 권력이 영원하고 무한한 분이십니다. 또 이분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우리를 위해서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런 신랑에게 시집가는 신부와 같은 심정으로 기뻐하고 감사하고 결혼하는 날 까지 가슴 설레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이런 것입니다.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이하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신부의 마음으로 기뻐하십시오. 주님 오시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자에게 임하는 천국입니다. 우리 집 사람은 내게 시집오는 날까지 울었다합니다. 얼마나 좋아서 울었겠습니까 부끄러워서 만나주지도 않는 신랑, 순종한다고 생활력도 없으면서 결혼하겠다고 승낙한 신랑, 이런 신랑이라면. 결혼 날짜를 기다리고 사모하고 그렇겠습니까 그러나 이제 저 때문에 진짜 신랑을 만나는 것 같습니다. 영원한 신랑, 이 신랑을 제가 소개합니다.
둘째로, 현실에서 우리가 신랑되신 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데는 등불을 준비해야한다고 말씀합니다. 천국은 준비한 자의 것입니다. 이 신부의 자격은 이상합니다. 오늘 신랑들은 신부의 자격을 얼굴이 이쁘다든지 학력이 있다든지 아니면 재치가 있든지 반찬을 잘하든지 가문이 좋다든지 하는 것을 보지만 실은 이것 보다 귀중한 것이 있습니다. 결혼 때에 흰 드레스를 입는 것은 신랑을 위해서 보존한 신부의 정조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있다고 해도 그 신부가 신부로서의 정조를 가지지 못했다면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오늘 타락한 세대에 이 말 까지도 시시한 것이 되었지만, 이 가치를 우리들은 알아야합니다. 본문에서 신부의 준비는 무엇입니까 단지 등불을 마련했는가 안했는가를 본다고 했습니다. 이 신부가 드는 등불은 오늘 영적인 의미로 어떤 것을 말합니까 어두운 밤을 밝힐 수 있는 빛을 드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신랑이 언제 옵니까 어두운 밤중에 옵니다. 빛이 없이는 신랑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고 했습니다. 이는 마지막 때에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 성령님의 충만함을 입어서 그리스도의 증인되는 삶을 사는 것, 곧 베드로 후서 3장에 말씀한대로 거룩한 행실과 경건하므로 주님의 날을 바라보고 사모하는 삶의 자세를 말합니다. 세속에 물들지 않고 세대를 본받지 않는 분별력으로 세상에 그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너희 빛을 세상에 비추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지나는 이 현실들은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들입니다. 문들과 같습니다. 이 기회를 잘 열고 들어가면 천국을 이루어 나갈 것이고, 이 기회들을 다 놓치면 문들이 꼭 닫히고 슬피 울고 이를 갊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에서 아직도 점령하지 못한 천국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 문들을 다 열어야합니다.
셋째로, 등보다는 기름이 문제입니다. (마 25:3)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마 25:4)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신랑을 맞이하려고 나간 처녀가 열입니다. 이들은 다 등은 가졌습니다. 또 기름을 가지기는 했지만 다섯은 충분히 가졌고, 다섯은 조금 밖에 없습니다. 이 열이란 숫자는 인간의 만수입니다. 이들은 다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땅위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신랑을 만나려고 나갔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다 등을 가졌습니다. 우리가 다 교회에 나와서 다 같이 신앙의 행위들을 한다는 것입니다. 주일도 지키고, 전도도 하고, 성경도 읽고, 연보도 합니다. 성가대도 하고 주일학교 교사도 합니다. 예배도 드리고 성만찬에 참예하기도 합니다. 목사도 있고, 장로, 집사도 있습니다. 이러한 조직과 형태들은 교회에 있고 그리스도인들은 이 속에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보면 주님의 관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 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등의 기름에 있습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어디에 있기 쉽습니까 등에 있기 쉽습니다. 다섯 처녀는 기름이 떨어져서 신랑이 올 때에 큰 낭패를 당했습니다. 이들도 처음부터 기름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조금 있는 기름은 초저녁에 잠깐 빛을 발했을 뿐이고, 정작 신랑이 왔을 때에 빛이 필요할 때에는 아무런 빛을 발하지 못하게 되고 그래서 당황하고 동동걸음으로 분주했지만 결국은 주님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마치 평소에 시험 준비하지 않고 시험 때에 당황하고 밤샘도 하지만 결국 시험에 떨어지는 어리석은 학생과 같습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들의 신앙의 외부의 행위가 결코 주님을 만나게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기름은 언제 준비합니까 낮에 합니다. 아직 빛이 있을 때에 준비하는 것입니다. 평소에 하는 것입니다. 기름은 무엇입니까 진리와 성령님의 감동하심을 따라 평소에 순종하여 만든 능력입니다. 실력입니다. 이는 환난의 때를 통과하게 하고 모든 현실에서 승리하게 합니다. 어떤 사람은 준비하지 않고 있다가 어려움을 갑자기 만나게 되고 다가온 어려움에 현재적인 영감을 가지고 당황하고 실패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미래적인 영감을 가진 사람은 항상 준비합니다. 평소에 기도하고 환난을 생각합니다. 젊을 때에 늙었을 때를 생각하고 준비합니다. 살았을 때에 죽음이 올 때를 준비합니다. 이런 사람은 어떤 어려움이 와도 당황함이 없습니다. 깨어서 준비하는 삶을 살게하는 것이 이 교훈의 목적입니다. 갑자기도적 같이 주님을 만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 교훈의 목적입니다. 문제는 신랑이 더디 오는 데 있습니다. 신랑이 언제 오겠다고 하면 되겠는데 그 날과 시는 모릅니다. 예수님이 더디오신다는 말씀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기다렸던 시간에 오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기대하고 기다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 인생들과 다릅니다. 열 처녀가 다 졸았습니다. 인생은 깜박 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있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졸고 있을 때에 신랑이 오신다는 소리가 납니다. 이 때에 준비했던 다섯 처녀는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이하려고 나갑니다. 그러나 미련한 다섯은 등은 가져 있지만, 기름을 준비하지 못해서 신랑을 맞이하지 못하고 그 때에 파는 자들에게 가서 사려고 했습니다.
넷째로 모든 것이 판단나는 때가 있습니다. 오늘에 숨기워져 있고, 멸시받던 자들이라도 모든 것이 드러나는 때가 있습니다. 이 때의 판단이 영원합니다. 오늘에 어떻게 환영과 인정을 받았다고 해도 마지막 때에 버림을 받으면 무슨 가치가 있습니까 이 말씀은 (마25:13)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하는 말씀으로 결론을 내립니다. 항상 깨어 있는 자, 준비하는 자만이 예비한 천국을 얻습니다. 영원한 천국을 오늘에 마련합니다. 한 현실 한 현실 아무 결과가 없습니까 의를 행해도 그 의에 대한 평가나 대우가 없고, 죄를 범해도 아무런 판단이 없어서 낙심됩니까 외식하는 자나, 중심을 다해서 주님을 사모하며 사는 자나 오늘에야 무슨 다른 점이 있습니까 그러나 그날과 그시는 알지 못합니다. 우리들이 이루어 나갈 구원을 마감할 시기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는 그 시간, 준비할 수 있는 시간 말입니다. 여러분 당장에 눈에 무엇이 안 보여도 미리 준비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 아닙니까 오늘 한 현실 한 현실은 천국을 이루어 나가는 시간들입니다. 얼마나 천국을 이루었습니까 얼마나 하나님 나라를 세웠습니까 진리의 말씀대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는 삶이 기름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을 밝히는 빛입니다. 오늘 아주 평범한 삶에서 평안함과 안정됨이 있을 때에 환난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계속하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이 피곤하고 권태롭습니까 아직 낮인데 벌써 졸고 계십니까 주님 만날 소망을 가진 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과연 그날을 사모하고 사십니까 그날을 어떻게 준비합니까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주의 날을 바라봅니다. 이 기름준비를 오늘 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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