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의 물 (요4:7-14)
본문
여러분 혹시 목이 몹시 말라 본 적이 있습니까 월남전쟁 당시에 정글에서 작전 수행중 물이 없을 때 소변에 정화제를 넣어서 갈증을 해소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음식이 없는 고통보다 물이 없는 고통은 훨씬 더 심하다고 합니다. 몹시 목이 마를 때 한 컵의 시원한 물은 천금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육신적으로 목마를 때는 물을 마심으로 해소할 수 있다. 요사이는 여러 가지 청량음료도 있다. 그러나 여러분 영혼이 목마를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이때에도 물이 필요 합니다.
그런데 이물은 색다른 물 입니다. 그것은 바로 “생수”라고도 할 수 있고 “영생수”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영생수에 관해서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 오늘의 말씀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먼저 찾아 오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vv. 7-9).
먼저 오늘 본문을 보면 주님은 남쪽 유대 지방을 떠나셔서 북쪽 갈릴리 지방으로 가실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런 경우 유대인들은 지리적으로 그 중간에 있는 사마리아지역을 통과하지 않았습니다. 왕하 17:24-혼혈 정책의 산물 “앗수르 王이 바벨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과 스발와임에서 사람을 옮겨다가 이스라엘子孫을 代身하여 사마리아 여러 城邑에 두매 저희가 사마리아를 차지하여 그 여러城邑에 居하니라” 구약 이스라엘은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함 때에 와서 나라가 둘로 갈라섰습니다. 북쪽은 이스라엘이라 했고 수도는 사마리아였습니다. 남쪽은 유다라고 했고 수도는 예루살렘이라 했습니다. 북쪽 이스라엘은 주전 722년경에 앗수르로 포로로 잡혀가 돌아왔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사마리아 성에 앗수르 사람들을 이주시켜 당시 잡혀가지 않고 남아 있는 사마리아 사람들과 함께 살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북쪽 이스라엘은 원래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순수한 유대 혈통을 보존할 수 없었습니다. 혼혈족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남쪽 유다 사람들은 북쪽 이스라엘 사람들을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신약 시대 유대인들은 이런 이유 때문에 사마리아 사람들을 개, 돼지처럼 취급했습니다. 또한 반대로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인들을 적대시하였습니다. 이런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님께서 접근하자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9절)고 했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이유 때문에 당시 유대인들로부터 사마리아인들은 무시를 당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북쪽 지방으로 여행 할 때는 거리가 멀지만 요단강을 건너서 빙 돌아서 북쪽으로 왕래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일부러 한 여인을 만나기 위해서 사마리아를 지나시게 되었습니다. 영혼에 관한 관심을 나타내신 것 입니다. 그래서 수가성의 한 우물가에서 물 길러 온 한 여인을 만났습니다. 이 여인에게 “물 좀 달라” 하시면서 대화를 시작 하셨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대화가 아니었습니다. 영원과 연관된 대화였다. 이처럼 하나님은 항상 그렇게 먼저 찾아오십니다.
(예) 에덴 동산에서 범죄하여 숨은 아담과 하와에게 먼저 찾아 오셨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하갈과 결혼하여 이스마엘을 낳고난 후 13년 동안이나 침묵하고 있는 아브라함을 찾아 부르셨습니다. 낙심하여 로뎀나무 아래 있는 엘리야를 찾으셨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여 얼굴도 들지 못하고 있는 베드로를 주님은 갈릴리 바닷가에 찾아와 부르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이 바로 우리를 찾아와 부르신 것 입니다. 범죄한 다윗에게 하나님이 나단을 통해서 먼저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먼저 찾아오십니다. 우리는 원래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찾을 수도 없습니다. 범죄한 인간이 어떻게 하난님을 먼저 찾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먼저 계시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그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롬 5:8) “우리가 아직 罪人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爲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우리에게 對한 自己의 사랑을 確證하셨느니라”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 개개인에게도 그렇게 역사 하십니다. 하나님의 역사 방법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사람을 통해서 역사 하십니다. 전도와 한 과정을 통해서 믿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환경을 통해서 역사 하십니다.-사업의 문제로.-남편이 속 썩이기는 문제로-자식이 속 썩이는 문제로-육체의 질병의 문제로 하나님이 찾아오실 때에는 외면하면 안 됩니다. 주님이 대화하고자 하실 때 거절하면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을 통해서 주님께서 대화하실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혹은 목사님들, 혹은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들을 통하여 대화가 열릴수도 있을 것 입니다. 사마리아 여인같이 대화에 응해야 합니다. 그 길만이 내 영혼이 영원히 사는 길 입니다.
둘째. 주님은 우리에게 영영원히 죽지않는 생수를 주십니다.(vv. 10-14).
마시는 물을 중심으로 대화를 하셨습니다. 물에 관한 대화는 자연스럽게 다른 차원의 물로 연결 되었습니다. 그 물은 바로 생수 입니다. 우물 물은 마셔도 다시 목마릅니다. 그러나 생수는 안 그렇습니다. 그것은 영원히 솟아나는 물 입니다. 그녀는 인생의 갈증 문제를 해결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그 속에서 영생하는 샘물을 줄 수 있다” 하셨을 때, 그녀는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하였습니다. 사람들의 눈총을 받으며 물 길러 오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근본적인 문제는 물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네 남편을 불러오라” 하셨을 때, 이미 다섯 번을 이혼하고 여섯 번째 남편과 살고 있으면서도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하고 대답하는데서 알 수 있듯이 그녀는 해결하지 못하는 인생의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남편을 바꾼다고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이 목마름이 그녀 자신에게 있음을 아시고 바른 신앙을 통해 해결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물을 주지는 않으셨습니다. 인생의 갈급함은 물을 마심으로서가 아니라 바른 신앙에서 해결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우리가 어디서 예배해야 됩니까” 하고 묻다. 그녀의 관심이 자연스럽게 신앙 문제로 돌아가고 있음을 보십시오. 내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으면 인생의 제반 문제들은 하나씩 하나씩 풀리게 되는 것 입니다. 신앙은 배움이 아닙니다. 만남입니다. 유교의 문화권에 살아온 우리는 신앙을 배움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도 메시아에 대해 많이 배워 알고 있었으나 그 신앙적 지식이 갈증을 풀어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자 자연스럽게 모든 문제가 풀려지게 되었습니다. 문제의 해결은 그리스도와의 만남에서 이루어지고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 바른 신앙을 회복 합니다. 생수란 무엇 입니까 요 7:37-39
1 그것은 예수를 진정으로 믿을 때 받는 성령님을 의미 합니다.
2 구원 받으면 바로 그 순간 성령님이 내 속에 거 하십니다. 성령님은 내 심령을 항상 새롭게 하십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모두 목마른 상태에 있습니다.
1 자기가 인식하든 못하든 영적으로 모두 목마른 자들 입니다.
2 그래서 그들은 그 목마름을 채우기 위해서 갖가지 일을 합니다.-우상에 빠집니다.-사이비 종교에 빠집니다.-술에 빠집니다.-쾌락에 빠집니다.-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영혼의 갈증을 채워줄 수는 없습니다. 영혼의 갈증은 세상의 그 누구도 채울 수 없습니다. 영혼의 갈증은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을 만드신 하나님이 채우셔야 됩니다.
1 그래서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오셨습니다.
2 생수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3 목마른 사람의 내적 갈증을 영원히 해소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떠 하십니까
1 영적으로 심히 목마른 상태 입니까 견디기 힘들 정도로 갈급 합니까
2
그렇다면 생수를 마셔야 합니다.
3 주님만이 여러분의 갈증을 해소하실 수 있습니다.
4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큰 죄인임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그 결과는 무서운 심판임을 알아야 합니다.-예수께서 나의 죄 값을 다 치루어 놓으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그리고 그것을 마음으로 믿어야 합니다.-그리고 입술로 시인해야 합니다. 5 그러면 구원 받습니다. 그 순간 생수 되시는 성령님을 마음에 모시게 됩니다. 주님을 만나 생수를 마셔야 영원히 목마르지 않습니다. 그런 복을 누리기를 축원 합니다. 결론 우리 인생은 목마른 인생 입니다. 예수님 만이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그 분만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물은 색다른 물 입니다. 그것은 바로 “생수”라고도 할 수 있고 “영생수”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영생수에 관해서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 오늘의 말씀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먼저 찾아 오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vv. 7-9).
먼저 오늘 본문을 보면 주님은 남쪽 유대 지방을 떠나셔서 북쪽 갈릴리 지방으로 가실 계획을 갖고 계셨습니다. 그런 경우 유대인들은 지리적으로 그 중간에 있는 사마리아지역을 통과하지 않았습니다. 왕하 17:24-혼혈 정책의 산물 “앗수르 王이 바벨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과 스발와임에서 사람을 옮겨다가 이스라엘子孫을 代身하여 사마리아 여러 城邑에 두매 저희가 사마리아를 차지하여 그 여러城邑에 居하니라” 구약 이스라엘은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함 때에 와서 나라가 둘로 갈라섰습니다. 북쪽은 이스라엘이라 했고 수도는 사마리아였습니다. 남쪽은 유다라고 했고 수도는 예루살렘이라 했습니다. 북쪽 이스라엘은 주전 722년경에 앗수르로 포로로 잡혀가 돌아왔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사마리아 성에 앗수르 사람들을 이주시켜 당시 잡혀가지 않고 남아 있는 사마리아 사람들과 함께 살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북쪽 이스라엘은 원래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순수한 유대 혈통을 보존할 수 없었습니다. 혼혈족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남쪽 유다 사람들은 북쪽 이스라엘 사람들을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신약 시대 유대인들은 이런 이유 때문에 사마리아 사람들을 개, 돼지처럼 취급했습니다. 또한 반대로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인들을 적대시하였습니다. 이런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수님께서 접근하자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9절)고 했습니다. 이런 역사적인 이유 때문에 당시 유대인들로부터 사마리아인들은 무시를 당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북쪽 지방으로 여행 할 때는 거리가 멀지만 요단강을 건너서 빙 돌아서 북쪽으로 왕래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일부러 한 여인을 만나기 위해서 사마리아를 지나시게 되었습니다. 영혼에 관한 관심을 나타내신 것 입니다. 그래서 수가성의 한 우물가에서 물 길러 온 한 여인을 만났습니다. 이 여인에게 “물 좀 달라” 하시면서 대화를 시작 하셨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대화가 아니었습니다. 영원과 연관된 대화였다. 이처럼 하나님은 항상 그렇게 먼저 찾아오십니다.
(예) 에덴 동산에서 범죄하여 숨은 아담과 하와에게 먼저 찾아 오셨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하갈과 결혼하여 이스마엘을 낳고난 후 13년 동안이나 침묵하고 있는 아브라함을 찾아 부르셨습니다. 낙심하여 로뎀나무 아래 있는 엘리야를 찾으셨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여 얼굴도 들지 못하고 있는 베드로를 주님은 갈릴리 바닷가에 찾아와 부르셨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과 관심이 바로 우리를 찾아와 부르신 것 입니다. 범죄한 다윗에게 하나님이 나단을 통해서 먼저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먼저 찾아오십니다. 우리는 원래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찾을 수도 없습니다. 범죄한 인간이 어떻게 하난님을 먼저 찾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먼저 계시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그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롬 5:8) “우리가 아직 罪人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爲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우리에게 對한 自己의 사랑을 確證하셨느니라”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 개개인에게도 그렇게 역사 하십니다. 하나님의 역사 방법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사람을 통해서 역사 하십니다. 전도와 한 과정을 통해서 믿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환경을 통해서 역사 하십니다.-사업의 문제로.-남편이 속 썩이기는 문제로-자식이 속 썩이는 문제로-육체의 질병의 문제로 하나님이 찾아오실 때에는 외면하면 안 됩니다. 주님이 대화하고자 하실 때 거절하면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을 통해서 주님께서 대화하실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혹은 목사님들, 혹은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들을 통하여 대화가 열릴수도 있을 것 입니다. 사마리아 여인같이 대화에 응해야 합니다. 그 길만이 내 영혼이 영원히 사는 길 입니다.
둘째. 주님은 우리에게 영영원히 죽지않는 생수를 주십니다.(vv. 10-14).
마시는 물을 중심으로 대화를 하셨습니다. 물에 관한 대화는 자연스럽게 다른 차원의 물로 연결 되었습니다. 그 물은 바로 생수 입니다. 우물 물은 마셔도 다시 목마릅니다. 그러나 생수는 안 그렇습니다. 그것은 영원히 솟아나는 물 입니다. 그녀는 인생의 갈증 문제를 해결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그 속에서 영생하는 샘물을 줄 수 있다” 하셨을 때, 그녀는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하였습니다. 사람들의 눈총을 받으며 물 길러 오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그녀의 근본적인 문제는 물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이 “네 남편을 불러오라” 하셨을 때, 이미 다섯 번을 이혼하고 여섯 번째 남편과 살고 있으면서도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하고 대답하는데서 알 수 있듯이 그녀는 해결하지 못하는 인생의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남편을 바꾼다고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이 목마름이 그녀 자신에게 있음을 아시고 바른 신앙을 통해 해결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물을 주지는 않으셨습니다. 인생의 갈급함은 물을 마심으로서가 아니라 바른 신앙에서 해결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우리가 어디서 예배해야 됩니까” 하고 묻다. 그녀의 관심이 자연스럽게 신앙 문제로 돌아가고 있음을 보십시오. 내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으면 인생의 제반 문제들은 하나씩 하나씩 풀리게 되는 것 입니다. 신앙은 배움이 아닙니다. 만남입니다. 유교의 문화권에 살아온 우리는 신앙을 배움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도 메시아에 대해 많이 배워 알고 있었으나 그 신앙적 지식이 갈증을 풀어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자 자연스럽게 모든 문제가 풀려지게 되었습니다. 문제의 해결은 그리스도와의 만남에서 이루어지고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해 바른 신앙을 회복 합니다. 생수란 무엇 입니까 요 7:37-39
1 그것은 예수를 진정으로 믿을 때 받는 성령님을 의미 합니다.
2 구원 받으면 바로 그 순간 성령님이 내 속에 거 하십니다. 성령님은 내 심령을 항상 새롭게 하십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모두 목마른 상태에 있습니다.
1 자기가 인식하든 못하든 영적으로 모두 목마른 자들 입니다.
2 그래서 그들은 그 목마름을 채우기 위해서 갖가지 일을 합니다.-우상에 빠집니다.-사이비 종교에 빠집니다.-술에 빠집니다.-쾌락에 빠집니다.-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영혼의 갈증을 채워줄 수는 없습니다. 영혼의 갈증은 세상의 그 누구도 채울 수 없습니다. 영혼의 갈증은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습니다. 우리의 영혼을 만드신 하나님이 채우셔야 됩니다.
1 그래서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오셨습니다.
2 생수를 가지고 오셨습니다.
3 목마른 사람의 내적 갈증을 영원히 해소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어떠 하십니까
1 영적으로 심히 목마른 상태 입니까 견디기 힘들 정도로 갈급 합니까
2
그렇다면 생수를 마셔야 합니다.
3 주님만이 여러분의 갈증을 해소하실 수 있습니다.
4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큰 죄인임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그 결과는 무서운 심판임을 알아야 합니다.-예수께서 나의 죄 값을 다 치루어 놓으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그리고 그것을 마음으로 믿어야 합니다.-그리고 입술로 시인해야 합니다. 5 그러면 구원 받습니다. 그 순간 생수 되시는 성령님을 마음에 모시게 됩니다. 주님을 만나 생수를 마셔야 영원히 목마르지 않습니다. 그런 복을 누리기를 축원 합니다. 결론 우리 인생은 목마른 인생 입니다. 예수님 만이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그 분만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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