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고를 무시하지 말라 (히3:12-4:1)
본문
1912년 4월 10일 타이타닉(Titanic) 호의 침몰 사건과, 1941년 12월 7일 353대의 일본전투기들이 진주만을 공격하여 미국함대를 쑥밭으로 만들었던 사건은 영원히 잊지 못할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1950년 6월25일에 일어났던 사건역시도 우리 민족에게는 영원히 잊지 못할 사건입니다. 문제는 이 모든 사건의 배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전에 이러한 사건들을 막을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수 차례의 경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경고를 무시하고 등한히 여겼다는 것입니다. 경고를 무시하고 등한히 여긴 결과는 엄청난 피해와 대가를 치루게 하였습니다. 영국이 자랑하던 최고의 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의 선장은 "여호와 하나님도 이 타이타닉호 만은 침몰시킬 수 없다"고 호언했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장비가 튼튼하였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비극으로 끝난 것입니다.
왜 그 배가 침몰하였는가 대답은 간단합니다. 경고를 무시하고 항해를 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배가 가는 항로에 엄청난 어름 덩어리가 떠내려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무전을 수없이 받았지만 모든 경고를 무시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진주만의 기습은 아침 7시50분에 행해졌는데 7시에 레이다실에서 레이다 망에 잡히는 검은 점들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점점 그 숫자가 많이 나타나서 레이더 스크린을 까맣게 채우는 것을 보았지만 그날은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레이다 병의 보고를 받는 당직 장교는 대수롭지 않게 캘리포니아에서 뜬 미국비행기라고 생각하면서 보고를 묵살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뿐입니까 우리 나라의 고급장교들, 정치가들, 38전역에서 이상한 조짐이 보인다고 수 차례의 보고가 있었지만 모두가 다 무시하였다가 당한 것이 6.25라고 합니다. 중요한 사실은 모두가 다 경고를 보내었지만 경고를 무시함으로 엄청난 대가를 치루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것은 우리몸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이 뻐근하고 갑자기 추워지고 입맛이 없다면 이것은 분명히 이상이 있다는 징조이고 경고입니다. 이 경고를 무시하면 결국은 병원신세를 면할 길이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영적인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유대인들은 구약의 약속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불순종함으로 멸망당하고 말았다는 것을 7-11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국 오늘날 우리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면 멸망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강팍해서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인해 저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지를 못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마음이 강팍케됨을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할수 있다는 사실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잘하시던 분이 믿음에서 파산하는 경우를 보면 하루아침에 갑자기 믿음에서 떠나는 경우는 대부분 없습니다.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자세히 살펴보면 신앙이 침몰하기 전에 분명히 징조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징조를 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잘 대처하지를 못한결과가 믿음에서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저는 여러분들과 함께 히브리서를 통해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도움을 주는 몆가지 경고를 발견하면서 우리가 이 경고에 잘 대처할수 있기를 바랍니다. 경고라는 것은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을 내다보면서 미리 신호를 보내는 것을 말합니다. 결국 우리의 신앙이 위기를 맞지 않을려면 말씀이 우리에게 보내는 경고를 잘 받아서 대책을 세워야 할 줄로 믿습니다.
1. 히2:3절에서의 경고입니다.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이 큰 구원을 등한히 하면 주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게 된다는 경고입니다. 여기 '등한히 한다'는 말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말입니다. 관심을 별로 가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 큰 구원을 마음에 두지 않고 등한히 하는 것은 타락의 시작이고, 엄청난 죄가 됩니다. 이 죄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무시하는 죄가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무시하는 죄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그 엄청난 고통과 멸시와 수치를 당하신 주님의 공로를 우리가 무시하고 소홀히 하고 가볍게 생각하는 것은 엄청난 죄입니다. 여기 구원을 등한히 여긴다는 말은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을 두고 하신 말씀은 아닙니다. 이 경고는 우리 믿는 사람들을 향해서 하시는 경고입니다. 아마 우리 믿는 사람들이 가장 범하기 쉬운 잘못이 여기에 있기 때문에 우리를 향하여 경고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주일이 되서 교회에 나오는 것이 어떻습니까 부지런히 힘쓰고 주의하지 아니하면 형식적으로 교회에 나오고, 예배도 형식적으로 드리기 쉽습니다. 구원에 대한 감격도 감사도 없이 그저 교회에 나옵니다. 예배는 감격과 기쁨으로 그리고 감사로 드려져야 합니다. 예배는 축제입니다.
그런데 교회 나오면 그저 빨리끝날 시간만 생각합니다. 아니면 예배당에 나와서 앉기만 하면 졸리기 시작합니다. 옆에 있는 분이 옆구리를 찌러면 그 순간 눈을 잠깐 뜨는 것 같은데 금방 또 눈을 감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물론 너무 피곤해서 그럴수도 있습니다. 열심히 뛰고 움직이며 일하다가 의자에 앉으면 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습관적으로 마냥 앉기만 하면 주무시는 분들이 있다면 그런분은 조금은 문제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관심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관심이 있으면 웬만해서는 졸지 아니합니다.
시장에서 장사하시는 분이 물건을 파는데 좀 피곤하다고 해서 손님이 와서 물건을 사려고 이 것 저 것 고르는데 건들건들 졸고 있겠습니까 값이 얼마냐고 묻는 데 의자에 앉아서 자고 있겠습니까 수술하는 의사가 칼을 들고서 혹은 주사기를 들고서 졸면서 수술하고 주사를 놓겠습니까 환자가 와서 진찰하는데 의사 선생님이 피곤하다고 청진기를 끼고 잠을 잘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관심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피흘려 우리를 구원해 주신사실이 엄청나게 귀하고 중요한 문제인데도 사람들이 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수 있습니다만 무엇보다도 우리의 생활 속에서 그 원인을 찾아본다면 구원받은 사람이나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나 비슷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구원 문제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아니합니다. 구원보다는 내 직업이 더 중요하고, 출세하는데 더 관심이 있고, 자녀들의 진로가 더 긴급하고, 시간이 있으면 육신적인 즐거움을 추구하기가 오히려 더 바쁘다는 것입니다. 미국에는 절기 교인이 많다고 합니다. 이 사람들은 무슨 절기 때나 되어야 교회에 나옵니다. 신년 예배 때는 새해니까 하나님께 세배 드리는 마음으로, 복을 비는 마음으로 나옵니다. 그 외에 성탄절, 부활절 같은 절기에만 살짝 얼굴을 비친다고 합니다. 그리고 날씨 교인도 많다고 합니다. 날씨가 좋으면 낚시질, 등산 아니면 골프하러 가고 비가 와서 다른데 갈 곳이 없으면 교회에나 가자하고 나온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비가 오면 구질구질하게 비 맞으면서 교회에 갈 것 뭐 있나 하면서 비오는 날은 집에서 장기나 바둑을 두고 TV나 보자 하고, 날씨가 좋아야 교회에 나오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날씨가 너무 추워도 더워도 교회에 안 나오고 기분이 좋아야만 교회에 나옵니다. 왜 그렇습니까 구원에 대한 감격과 감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구원을 등한히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경고합니다. 우리가 이 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주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신 것은 너무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이제는 죽는 것도 유익합니다. 살아도 주를 위해 죽어도 주를 위해 살겠습니다 라는 신앙고백이 우리에게 있어야 하겠습니다. 날마다 우리의 입에서 감사의 찬양이 흘러나와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지 않는 신앙이라고 믿습니다.
2. 3:12의 경고입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떨어질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떨어진다'는 말은 '타락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너희는 타락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분은 이 말씀을 들으시면서 설마 구원받은 사람이 타락할수 있겠는가 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나에게는 그런 문제가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고 하 실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목사 자녀입니다. 혹은 집사 자녀입니다. 처음 믿을 때는 모르겠습니다마는 제가 이제 예수 믿은지 10년이 넘었습니다. 이젠 그럴 단계는 지났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제 뭐 타락하겠습니까 라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그렇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타락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교회 생활에서 떠나는 타락이고 다른 하나는 신앙 생활에서 떠나는 타락이 있습니다. 교회는 열심히 잘 다니고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 같이 보이는데도 생활은 엉망진창으로 살고 있습니다. 예수믿는 사람인지 안믿는 사람인지 구분이 잘안되는 삶을 살고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의 타락입니다. 그리고 아예 교회를 떠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열심히 봉사도 하고 섬기던 사람이 구원받았다고 좋아하고 감격도 했던 사람이 이제는 교회하고는 아예 담을 쌓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비방하고 오히려 더 핍박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생활을 떠나는 타락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타락하기 쉽습니까 결단성이 부족하면 타락하기 쉽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한 발은 교회안에 다른 한 발은 세상에 놓고 교회 쪽으로 기울어졌다 사회 쪽으로 기울어졌다 하는 사람은 타락하기 쉽습니다. 교만한 사람도 타락하기 쉽습니다. 예수 잘 믿어 봐야 별 것 없더라, 목사도 그렇고, 집사도 그렇고, 오래 믿었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아도 나보다 나은게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타락하기가 쉽습니다. 반면에 잘못되게 겸손한 사람도 타락하기 쉽습니다. " 저 같은 사람이 어떻게 예수를 믿을 수 있습니까---" 이렇게 지나치게 겸손한 사람도 타락하기 쉽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타락하기 쉬운 것은 본문의 말씀대로 사단의 유혹을 받을 때입니다. 사단의 유혹을 받게되면 자연히 우리의 마음이 강팍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강팍하게 되면 제일먼저 나타나는 현상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말씀을 떠나게 되면 타락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무엇이 타락입니까 떨어지는 것이 타락이라고 했습니다. 무엇이 떨어지는 것입니까 믿기는 한다고 하면서도 간절한 마음이 없는 것이 타락입니다. 주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우리의 심령과 생활에 변화가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여전히 혈기 부리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분쟁하고, 속이고 한다면 우리에게 예수 믿는다는 표가 무엇입니까 아무런 변화가 없는 사람, 이런 사람은 예수를 믿으면서도 믿음에서 타락한 사람입니다. 신앙이 게으른 자는 내일로 미루고, 순종하는 자는 오늘을 중요히 생각하고 일합니다. 오늘 정신 차리고, 오늘 기도하지 않으면 믿으면서도 타락할 수 있습니다.
3. 히5:12절의 경고입니다.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성장하고 성숙하지 못한 것에 대한 경고입니다. 젖이나 먹는 것은 어린아이입니다. 때가 오래되었다는 것은 무슨 때를 말하는 것입니까 예수 믿은 지가 오래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정도 오래되었으면 이제 다른 사람을 돌보고 섬길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직 어린아이가 되어있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오랜시간 배웠다면 이제는 너희가 선생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즉 믿음이 없는 사람 아직 어린 사람을 가르치고 돌보고 전도해야겠는데 왜 아직 못하느냐 이 말입니다. 결국은 자라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새 생명이 얼마나 귀합니까 한 심령이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늘에서도 기뻐서 잔치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가정에서도 어린아이를 낳으면 얼마나 기뻐합니까
그런데 이 아이는 매일 매일 자라나야 합니다. 뒤집을 때 뒤집고, 저지리 할 때 저 질고, 똥 살 때 똥싸고 웃을 때 웃고 울 때는 울어야 합니다. 걸을 때는 걷고 말할 때는 말해야 합니다. 키도 1년 되면 돐이 된 아이만큼 자라야 하고, 일곱 살이 되면 초등학교 1학년 아이 만큼 자라야 하고, 20년쯤 되면 건장한 청년으로 자라서 자기 마음대로 일하게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1년이 되어도 5년이 되어도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아이가 있다면 얼마나 가정에 걱정이 되겠습니까 여러분, 우리의 심령은 어떤 상태입니까 예수 믿은지 5년이 되고 10년이 되었어도 아직 혼자 서지도 걷지도 못하고 젖이나 먹는 상태는 아닙니까 칭찬해야 좋아하고 바로 되라고 책망하면 이것을 소화시키지 못해서 나온다 안나온다 하면서 야단하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심령이 자라나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나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단단한 음식도 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책망을 들어도 마음이 상하지 않아야 합니다. 자랄수 있는 비결은 한가지입니다. 부지런하면 됩니다. 예배도 부지런히 참석하시고 기도에도 말씀 공부하는 일에도 부지런히 참석하시길 바랍니다. 마틴 루터의 작품 중에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귀 다섯이 있는데 졸병 넷이 세상에 나가서 일하고 와서 대장 마귀에게 보고를 합니다.
첫째 마귀가 "저는 저 사막의 맹수들을 풀어 놓아 그리스도인들을 다 잡아 먹게해서 지금 사막에는 뼈만 딩굴고 있습니다". 마귀 대장하는 말이 "그것 쓸떼 없다. 예수쟁이들은 짐승한테 잡아 먹히면 그 영혼은 구원 받어".
둘째 마귀 "저는 지중해에서 예수쟁이들이 타고 가는 배를 파선하게 해서 그놈들이 전부 고기밥이 되게 하였습니다". 마귀 대장하는 말이 "그것도 쓸데 없어. 그것들이 고기밥이 되었어도 영혼은 구원 받지 않았니" 세째 마귀도 열심히 보고합니다. "대장님, 저는 유사 이래 독재 군주들과 유물주의자들과 폭군들을 동원 전멸시켰습니다". 대장 마귀가 듣고 있다가 "수고는 했지만 그것도 소용이 없어. 예수쟁이들은 감옥에 갇혀도, 매를 맞아 죽어도 그 놈들의 영혼은 구원받는데 무슨 상관이냐" 이 때 네번째 마귀는 미안한 듯이 대장의 눈치를 살피며, "저는 뭐 특별한 거 한 것이 없습니다. 저는 한 여자 교인 뒤를 10년을 쫓아 다녔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 교인이 얼마나 열심히 믿는지요. 10년을 쫓아다니면서 어떤 때는 고통을 주고 어떤 때는 평안하고 형통하게 하는 동안에 성경도 별로 안보게 되고 기도도 별로 안하고 주일도 한 주일 두 주일 빠지게 되더니 이 부인이 그만 맥을 못추고 그만 둡디다". 이 보고를 듣고 있던 마귀 대장이 무릎을 치면서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큰상을 주리라" 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탄은 오늘도 우리를 찾아와서 다른데 관심을 쏠리게 하고 믿음에 대하여 무관심하게 하려고 합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이 큰 구원을 등한히 하지 맙시다.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합시다. 우리의 심령이 자라지 못하고 그 자리에 있지는 아니합니까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어 주를 섬겨 하나님이 원하시는 많은 열매 맺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결과는 비극으로 끝난 것입니다.
왜 그 배가 침몰하였는가 대답은 간단합니다. 경고를 무시하고 항해를 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배가 가는 항로에 엄청난 어름 덩어리가 떠내려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무전을 수없이 받았지만 모든 경고를 무시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진주만의 기습은 아침 7시50분에 행해졌는데 7시에 레이다실에서 레이다 망에 잡히는 검은 점들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점점 그 숫자가 많이 나타나서 레이더 스크린을 까맣게 채우는 것을 보았지만 그날은 일요일이었기 때문에 레이다 병의 보고를 받는 당직 장교는 대수롭지 않게 캘리포니아에서 뜬 미국비행기라고 생각하면서 보고를 묵살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뿐입니까 우리 나라의 고급장교들, 정치가들, 38전역에서 이상한 조짐이 보인다고 수 차례의 보고가 있었지만 모두가 다 무시하였다가 당한 것이 6.25라고 합니다. 중요한 사실은 모두가 다 경고를 보내었지만 경고를 무시함으로 엄청난 대가를 치루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것은 우리몸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이 뻐근하고 갑자기 추워지고 입맛이 없다면 이것은 분명히 이상이 있다는 징조이고 경고입니다. 이 경고를 무시하면 결국은 병원신세를 면할 길이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영적인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유대인들은 구약의 약속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불순종함으로 멸망당하고 말았다는 것을 7-11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국 오늘날 우리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면 멸망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강팍해서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인해 저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지를 못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마음이 강팍케됨을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할수 있다는 사실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잘하시던 분이 믿음에서 파산하는 경우를 보면 하루아침에 갑자기 믿음에서 떠나는 경우는 대부분 없습니다.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자세히 살펴보면 신앙이 침몰하기 전에 분명히 징조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징조를 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잘 대처하지를 못한결과가 믿음에서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에 저는 여러분들과 함께 히브리서를 통해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도움을 주는 몆가지 경고를 발견하면서 우리가 이 경고에 잘 대처할수 있기를 바랍니다. 경고라는 것은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을 내다보면서 미리 신호를 보내는 것을 말합니다. 결국 우리의 신앙이 위기를 맞지 않을려면 말씀이 우리에게 보내는 경고를 잘 받아서 대책을 세워야 할 줄로 믿습니다.
1. 히2:3절에서의 경고입니다.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이 큰 구원을 등한히 하면 주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게 된다는 경고입니다. 여기 '등한히 한다'는 말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말입니다. 관심을 별로 가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 큰 구원을 마음에 두지 않고 등한히 하는 것은 타락의 시작이고, 엄청난 죄가 됩니다. 이 죄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무시하는 죄가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무시하는 죄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그 엄청난 고통과 멸시와 수치를 당하신 주님의 공로를 우리가 무시하고 소홀히 하고 가볍게 생각하는 것은 엄청난 죄입니다. 여기 구원을 등한히 여긴다는 말은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을 두고 하신 말씀은 아닙니다. 이 경고는 우리 믿는 사람들을 향해서 하시는 경고입니다. 아마 우리 믿는 사람들이 가장 범하기 쉬운 잘못이 여기에 있기 때문에 우리를 향하여 경고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주일이 되서 교회에 나오는 것이 어떻습니까 부지런히 힘쓰고 주의하지 아니하면 형식적으로 교회에 나오고, 예배도 형식적으로 드리기 쉽습니다. 구원에 대한 감격도 감사도 없이 그저 교회에 나옵니다. 예배는 감격과 기쁨으로 그리고 감사로 드려져야 합니다. 예배는 축제입니다.
그런데 교회 나오면 그저 빨리끝날 시간만 생각합니다. 아니면 예배당에 나와서 앉기만 하면 졸리기 시작합니다. 옆에 있는 분이 옆구리를 찌러면 그 순간 눈을 잠깐 뜨는 것 같은데 금방 또 눈을 감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물론 너무 피곤해서 그럴수도 있습니다. 열심히 뛰고 움직이며 일하다가 의자에 앉으면 졸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습관적으로 마냥 앉기만 하면 주무시는 분들이 있다면 그런분은 조금은 문제가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관심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관심이 있으면 웬만해서는 졸지 아니합니다.
시장에서 장사하시는 분이 물건을 파는데 좀 피곤하다고 해서 손님이 와서 물건을 사려고 이 것 저 것 고르는데 건들건들 졸고 있겠습니까 값이 얼마냐고 묻는 데 의자에 앉아서 자고 있겠습니까 수술하는 의사가 칼을 들고서 혹은 주사기를 들고서 졸면서 수술하고 주사를 놓겠습니까 환자가 와서 진찰하는데 의사 선생님이 피곤하다고 청진기를 끼고 잠을 잘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관심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피흘려 우리를 구원해 주신사실이 엄청나게 귀하고 중요한 문제인데도 사람들이 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수 있습니다만 무엇보다도 우리의 생활 속에서 그 원인을 찾아본다면 구원받은 사람이나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나 비슷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구원 문제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아니합니다. 구원보다는 내 직업이 더 중요하고, 출세하는데 더 관심이 있고, 자녀들의 진로가 더 긴급하고, 시간이 있으면 육신적인 즐거움을 추구하기가 오히려 더 바쁘다는 것입니다. 미국에는 절기 교인이 많다고 합니다. 이 사람들은 무슨 절기 때나 되어야 교회에 나옵니다. 신년 예배 때는 새해니까 하나님께 세배 드리는 마음으로, 복을 비는 마음으로 나옵니다. 그 외에 성탄절, 부활절 같은 절기에만 살짝 얼굴을 비친다고 합니다. 그리고 날씨 교인도 많다고 합니다. 날씨가 좋으면 낚시질, 등산 아니면 골프하러 가고 비가 와서 다른데 갈 곳이 없으면 교회에나 가자하고 나온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비가 오면 구질구질하게 비 맞으면서 교회에 갈 것 뭐 있나 하면서 비오는 날은 집에서 장기나 바둑을 두고 TV나 보자 하고, 날씨가 좋아야 교회에 나오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날씨가 너무 추워도 더워도 교회에 안 나오고 기분이 좋아야만 교회에 나옵니다. 왜 그렇습니까 구원에 대한 감격과 감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구원을 등한히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경고합니다. 우리가 이 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주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같은 죄인을 구원해 주신 것은 너무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이제는 죽는 것도 유익합니다. 살아도 주를 위해 죽어도 주를 위해 살겠습니다 라는 신앙고백이 우리에게 있어야 하겠습니다. 날마다 우리의 입에서 감사의 찬양이 흘러나와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지 않는 신앙이라고 믿습니다.
2. 3:12의 경고입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떨어질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떨어진다'는 말은 '타락한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너희는 타락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분은 이 말씀을 들으시면서 설마 구원받은 사람이 타락할수 있겠는가 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나에게는 그런 문제가 전혀 해당되지 않는다고 하 실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목사 자녀입니다. 혹은 집사 자녀입니다. 처음 믿을 때는 모르겠습니다마는 제가 이제 예수 믿은지 10년이 넘었습니다. 이젠 그럴 단계는 지났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제 뭐 타락하겠습니까 라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그렇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타락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교회 생활에서 떠나는 타락이고 다른 하나는 신앙 생활에서 떠나는 타락이 있습니다. 교회는 열심히 잘 다니고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 같이 보이는데도 생활은 엉망진창으로 살고 있습니다. 예수믿는 사람인지 안믿는 사람인지 구분이 잘안되는 삶을 살고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의 타락입니다. 그리고 아예 교회를 떠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열심히 봉사도 하고 섬기던 사람이 구원받았다고 좋아하고 감격도 했던 사람이 이제는 교회하고는 아예 담을 쌓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비방하고 오히려 더 핍박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교회생활을 떠나는 타락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타락하기 쉽습니까 결단성이 부족하면 타락하기 쉽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한 발은 교회안에 다른 한 발은 세상에 놓고 교회 쪽으로 기울어졌다 사회 쪽으로 기울어졌다 하는 사람은 타락하기 쉽습니다. 교만한 사람도 타락하기 쉽습니다. 예수 잘 믿어 봐야 별 것 없더라, 목사도 그렇고, 집사도 그렇고, 오래 믿었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아도 나보다 나은게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타락하기가 쉽습니다. 반면에 잘못되게 겸손한 사람도 타락하기 쉽습니다. " 저 같은 사람이 어떻게 예수를 믿을 수 있습니까---" 이렇게 지나치게 겸손한 사람도 타락하기 쉽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타락하기 쉬운 것은 본문의 말씀대로 사단의 유혹을 받을 때입니다. 사단의 유혹을 받게되면 자연히 우리의 마음이 강팍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강팍하게 되면 제일먼저 나타나는 현상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말씀을 떠나게 되면 타락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조심해야 합니다. 무엇이 타락입니까 떨어지는 것이 타락이라고 했습니다. 무엇이 떨어지는 것입니까 믿기는 한다고 하면서도 간절한 마음이 없는 것이 타락입니다. 주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우리의 심령과 생활에 변화가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여전히 혈기 부리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분쟁하고, 속이고 한다면 우리에게 예수 믿는다는 표가 무엇입니까 아무런 변화가 없는 사람, 이런 사람은 예수를 믿으면서도 믿음에서 타락한 사람입니다. 신앙이 게으른 자는 내일로 미루고, 순종하는 자는 오늘을 중요히 생각하고 일합니다. 오늘 정신 차리고, 오늘 기도하지 않으면 믿으면서도 타락할 수 있습니다.
3. 히5:12절의 경고입니다.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성장하고 성숙하지 못한 것에 대한 경고입니다. 젖이나 먹는 것은 어린아이입니다. 때가 오래되었다는 것은 무슨 때를 말하는 것입니까 예수 믿은 지가 오래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정도 오래되었으면 이제 다른 사람을 돌보고 섬길수 있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직 어린아이가 되어있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오랜시간 배웠다면 이제는 너희가 선생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즉 믿음이 없는 사람 아직 어린 사람을 가르치고 돌보고 전도해야겠는데 왜 아직 못하느냐 이 말입니다. 결국은 자라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새 생명이 얼마나 귀합니까 한 심령이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늘에서도 기뻐서 잔치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가정에서도 어린아이를 낳으면 얼마나 기뻐합니까
그런데 이 아이는 매일 매일 자라나야 합니다. 뒤집을 때 뒤집고, 저지리 할 때 저 질고, 똥 살 때 똥싸고 웃을 때 웃고 울 때는 울어야 합니다. 걸을 때는 걷고 말할 때는 말해야 합니다. 키도 1년 되면 돐이 된 아이만큼 자라야 하고, 일곱 살이 되면 초등학교 1학년 아이 만큼 자라야 하고, 20년쯤 되면 건장한 청년으로 자라서 자기 마음대로 일하게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1년이 되어도 5년이 되어도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아이가 있다면 얼마나 가정에 걱정이 되겠습니까 여러분, 우리의 심령은 어떤 상태입니까 예수 믿은지 5년이 되고 10년이 되었어도 아직 혼자 서지도 걷지도 못하고 젖이나 먹는 상태는 아닙니까 칭찬해야 좋아하고 바로 되라고 책망하면 이것을 소화시키지 못해서 나온다 안나온다 하면서 야단하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심령이 자라나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자라나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단단한 음식도 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책망을 들어도 마음이 상하지 않아야 합니다. 자랄수 있는 비결은 한가지입니다. 부지런하면 됩니다. 예배도 부지런히 참석하시고 기도에도 말씀 공부하는 일에도 부지런히 참석하시길 바랍니다. 마틴 루터의 작품 중에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귀 다섯이 있는데 졸병 넷이 세상에 나가서 일하고 와서 대장 마귀에게 보고를 합니다.
첫째 마귀가 "저는 저 사막의 맹수들을 풀어 놓아 그리스도인들을 다 잡아 먹게해서 지금 사막에는 뼈만 딩굴고 있습니다". 마귀 대장하는 말이 "그것 쓸떼 없다. 예수쟁이들은 짐승한테 잡아 먹히면 그 영혼은 구원 받어".
둘째 마귀 "저는 지중해에서 예수쟁이들이 타고 가는 배를 파선하게 해서 그놈들이 전부 고기밥이 되게 하였습니다". 마귀 대장하는 말이 "그것도 쓸데 없어. 그것들이 고기밥이 되었어도 영혼은 구원 받지 않았니" 세째 마귀도 열심히 보고합니다. "대장님, 저는 유사 이래 독재 군주들과 유물주의자들과 폭군들을 동원 전멸시켰습니다". 대장 마귀가 듣고 있다가 "수고는 했지만 그것도 소용이 없어. 예수쟁이들은 감옥에 갇혀도, 매를 맞아 죽어도 그 놈들의 영혼은 구원받는데 무슨 상관이냐" 이 때 네번째 마귀는 미안한 듯이 대장의 눈치를 살피며, "저는 뭐 특별한 거 한 것이 없습니다. 저는 한 여자 교인 뒤를 10년을 쫓아 다녔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 교인이 얼마나 열심히 믿는지요. 10년을 쫓아다니면서 어떤 때는 고통을 주고 어떤 때는 평안하고 형통하게 하는 동안에 성경도 별로 안보게 되고 기도도 별로 안하고 주일도 한 주일 두 주일 빠지게 되더니 이 부인이 그만 맥을 못추고 그만 둡디다". 이 보고를 듣고 있던 마귀 대장이 무릎을 치면서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큰상을 주리라" 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탄은 오늘도 우리를 찾아와서 다른데 관심을 쏠리게 하고 믿음에 대하여 무관심하게 하려고 합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이 큰 구원을 등한히 하지 맙시다.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합시다. 우리의 심령이 자라지 못하고 그 자리에 있지는 아니합니까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어 주를 섬겨 하나님이 원하시는 많은 열매 맺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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