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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을 영접하면 (요7:37-39)

본문

우리는 우리가 구원받을 때 우리 안에 성령님이 들어오심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님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고전 6:19). 비록 성령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셨다 해도 아직 남은 일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 요 7:37-39를 보십시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님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님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이제 이 말씀을 요 20:22와 비교해 봅시다.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님을 받으라.” 이 말씀은 요 7:37-39의 성취입니다. 요한복음 7장에서 주님은 그리스도께서 부활 하시면 믿는자들 안에 성령님이 내주하실 수 있으리라고 약속 하셨습니다.
요 20:22에서 영광을 받으신 우리 주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성령님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받으라’는 동사는 수동이 아니라 능동적인 단어입니다. 그것은 ‘성령님을 영접하라(우리가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과 같이)’로 번역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알듯이 예수님은 세상의 구세주이십니다. 그렇지만 그 분이 우리 개인의 구세주가 되시기 위해서는 그 분을 개인적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성령님은 믿는 자 안에 내주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분을 영접하는 순간이 있어야만 합니다. 행19:1-2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 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님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님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이 제자들은 비록 그들 안에 성령님이 계셨지만 자신들 안에 계신 그 분에 대해 들은 적이 없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안에 계신 그 분에게 관심도 없고, 대화를 나누지도 않으며, 사랑을 표현하지도 않고, 그가 계신 것조차 모르고 지낼 때가 많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님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님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갈 3:2, 14). 미국 동부 텍사스의 조그만 어느 교회의 목사님이 라디오 방송 설교를 하기 위해 강대상 앞에 서 있었습니다. 윗도리는 반쯤 벗고 셔츠 단추는 제대로 잠그지도 않고 넥타이는 목에 걸치기만 한 채, 이른 아침 아무도 없는 빈 예배당에서 라디오 청취자들에게 설교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청취자들에게 말했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살고 계십니다. 그 분은 우리가 하는 말을 들으십니다. 우리가 하는 일을 알고 계십니다.”
순간 그 목사님은 떨기 시작했습니다. 입으로는 말해 왔지만 그날 아침 처음으로 그 분이 나를 보고 계시다는 것과 그 분이 한 인격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 목사님은 겨우 그 방송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설교하는 동안 눈물이 내 두 뺨에 흘렀습니다. 방송을 마치고 그 목사님은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하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령님,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성령님께 한 번도 말씀을 드려 본적이 없습니다. 교리적으로는 성령님께서 내 안에 살아계심을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한 인격으로서 영접해 드린 적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실제적으로 성령님이 제 삶의 일부이신 것을 인정한 적이 없습니다. 성령님, 오늘 제가 주님을 받아들입니다.” 나의 삶이 변하였습니다!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나와 여러분도 성령님을 영접하는 것부터 시작합시다. 마음을 여미며 이렇게 말씀드려 보십시오. “성령님, 저는 성령님이 제 삶 속에 살아오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때 여러분의 삶은 온전히 변할 것입니다. 지금 그 분을 영접하십시오. 그리고 그분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보십시요 당신이 하는 모든 일에 그 분이 간섭하시도록 자리를 내어 드리십시오. 예배하는 이시간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 분이 계시도록 자리를 비워 보십시오. 분명한 징조가 보일 것입니다. 일상 생활을 할 대도 마찬가지 입니다. 식료품을 사로 갈 때 어디에 가야 물건이 싼지 여쭈어 보십시오. 옷을 사로 갈 때도 당신에게 잘 어울리는 옷이 어느 집에 있는지 발걸음을 인도해 달라고 부탁드리십시오. 갈림길을 만나면 어떤 길로 가야 할지 여쭈어 보십시오. 전철이나 버스는 어느좌석에 앉는 게 좋을지 물어 보십시오. 설거지 할 때나 청소할 때도 함께 해 주시고 도와 달라고 부탁드리십시오. 성령님은 인격적 존재 이시기에 그렇게 할때에 분명한 반응을 보이십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
우리는 또한 성령님 충만을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님의 충만을 받으라”(엡 5:18).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님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 11:13). 성령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신 후 우리의 삶에서 섬김을 받고 우리를 충만케 하시기까지, 이미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해서,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조용히 그 분의 일을 해 오신 성령님을 우리가 영접하고 받아들이는 그 순간이 있어야 합니다. 그 분은 우리안에 거하심을 우리 스스로 깨닫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한 인격으로서 우리와 교제하기 원하십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 삶에 새로운 날이 밝을 수 있습니다. 성령님에게 이 순간은 새 시대의 시작이요, 기쁨의 새 날이 될 것입니다. 그 분은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 분은 우리의 안내자이십니다. 우리의 선생님이십니다. 우리의 보혜사이십니다. 지금 머리를 숙이고 그 분을 영접하십시오. 이제 그 분과 교제하지 않고는 단 하루도 살지 않겠다고 말씀드리십시오.
그 분에게 여러분의 사랑을 고백하고 여러분의 삶 속에 그 분이 존재하심을 인정하십시오. 그리하면 여러분의 삶은 늘 승리만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살리실 수 있었다면, 그 하나님은 우리도 살리셔서 그 분 안에서 행하게 하시고 날마다 승리하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귀신을 쫓으신 것이 성령님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님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 12:28). 예수님이 자신을 대속물로 드리신 것도 성령님으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흠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히 914). 천년 왕국에서 우리 주님이 왕노릇 하실 때 주님은 성령님의 능력으로 다스리게 되실 것입니다.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사 11:2). 오늘 본문의 말씀을 들여다 봅시다. 7: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 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초막절은 한 주간이지만, 거기 하루를 더하여 8일 동안 지켰습니다. (레 23:36; 민 29:35). 유대인들은, 이 초막절 기간에 매일 실로암못에서 물을 길어 가지고 행렬을 가지고 행렬을 지어 성전 문에 돌아와서 물을 붓는 행사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선조들이 광야에 있을 때 바위에서 이적으로 솟아나온 물을 기념하는 뜻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은 초막절 행사와 관련하여 영적 생수에 관한 설교를 하셨습니다. "내게로 와서 마시라." 이것은 보통 사람이 할 수 없는 큰 말씀입니다. 이것은, 메시야로서 하실 수 있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권위는 마 11:28 말씀과 같습니다. (마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사 55:1)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만이 인류의 갈증을 멈추어 주실 수 있음이 확실합니다. 인간은 작은 자이지만, 그의 소망과 요구는 무한한 것으로야 채울 수 있습니다.(전3:11). 이 무한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며,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뿐 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인류의 갈증을 참으로 만족시키신다는 사실은, 약
2,000년 동안의 진실한 기독 신자들의 경험이 증거합니다. 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 ” 초대 교회의 신자들은 성령님의 은혜로 충만하였고, 그들에게서 나온 영적 역사는 무수한 사람들에게 미쳤습니다. 후대의 일반 신자들도 잘 믿는 사람들은 이렇게 남들에게 신령한 은혜로 충만하였고, 그들에게서 나온 영적 역사는 무수한 사람들에게 미쳤습니다.
후대의 일반 신자들도 잘 믿는 사람들은 이렇게 남들에게 신령한 은혜를 강수처럼 풍성히 전달해 줍니다. "성경에 이름과 같이"란 말씀은 다음 성귀들을 기억하게 합니다. (사44:3) 대저 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신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내리리니 (사 55:1)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사 58:11)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여기 이른 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란 말은 성령님께서 신자의 가장 깊은 심령 속에서 역사하실 것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성령님의 역사 하심은 이렇게 인간의 가장 깊은 요구를 만족시켜 주며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여 준 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항상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여러분의 삶속에 생수의 강이 넘치시길 축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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