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가 시련을 당했을 때 (약1:2-8)
본문
야고보서 1장에는 시험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시험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사단이 우리에게 주는 유혹입니다.
둘째는 역경, 곧 시련이 있습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시험은 두 번째 시험, 시련을 가리킵니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약1:3) 우리 성도들도 이런 시련과 환난과 역경을 당할 수 있습니다. 시련은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다같이 당할 수 있습니다. 시편 34:19에는 의인에게 오히려 고난이 많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고난에서 건짐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시련을 당할 때 좌절하고 낙담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그 시련을 통해 더 큰복을 받게 됩니다. 성도들은 시련을 당할 때도 그것을 맞이하는 태도가 다릅니다. 어떻게 우리는 이런 시련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요 성도가 시련을 당했을 때 오늘의 제목입니다.
1. 온전히 기쁘게 여겨야 합니다.(2-4절) 오늘 본문 2절에는 성도는 시련을 당할 때 오히려 온전히 기쁘게 여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약1:2) 그냥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했습니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 어려운 일을 당한 분이 계십니까 우리 나라에 어려운 시련이 왔습니다. 우리 국민 모두가 그 시련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런 시련을 당할 때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말합니다. 어떻게 시련을 온전히 기쁘게 여길 수 있을까요 이 시련은 믿음의 시련이기 때문에 온전히 여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믿음을 가졌을 때 그 믿음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시련이라는 과정을 통과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느 날 요셉이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하나님은 그에게 비밀을 말해 주셨습니다. 열두 형제가 추수를 하는데 다른 형제들의 볏단이 다 요셉의 볏단에게 절을 합니다. 이것은 요셉이 열두 형제 중에 장자의 명분을 받게 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하나님이 요셉에게 꿈과 비젼을 주셨습니다. 그 꿈을 가진 다음부터 요셉에게 이상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꿈과는 정반대의 상황들입니다.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노예로 팔려갑니다. 억울한 일을 당합니다.
그런데 요셉의 꿈은 이런 과정들을 통해 성취됩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너를 창대케 하리라. 그리고 세계 만민들을 조상이 되게 하리라.” 약속을 받은 그 때부터 아브라함은 어려움을 당합니다. 그 땅에 기근이 찾아옵니다. 나이는 늙어 100세나 되었습니다. 아내는 90세가 되어 자식을 낳을 가능성이 없어졌습니다. 믿음의 위인들은 그 믿음의 결과를 이루기 위해서 시련이라는 과정을 다 통과했습니다. 믿음을 성취하기 위해서 겪는 시련을 믿음의 시련이라고 합니다. 딸기를 심으면 봄에 꽃이 피면 그 다음에는 아무리 온도가 맞아도 꽃이 피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딸기를 얼음 속에 얼렸다가 심으면 다시 꽃이 나옵니다. 그것을 보고 분화라고 합니다. 딸기꽃은 추운 겨울을 만나야 꽃이 만들어집니다. 추운 겨울을 경험하지 않은 딸기는 다시 꽃이 피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의 과일들이 다 그렇습니다. 사과나무, 배나무가 언제 꽃이 핍니까 피기는 봄에 피지만 꽃이 만들어진 것은 겨울입니다. 추운 겨울의 시련을 통과할 때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믿음에도 시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꿈이나 비젼을 가졌을 때 그 일에 대하여 시련이 올 수 있습니다. 큰 축복을 받으려면 큰 시련을 겪어야 합니다. 작은 시련을 거치면 작은 축복밖에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시련을 달게 받습니다. 군대에 가면 사병훈련이 어렵습니까 장교훈련이 어렵습니까 장교훈련이 훨씬 더 어렵습니다. 반드시 훈련을 거쳐야 한다면 여러분은 사병과 장교 중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십니까 어렵게 훈련을 받더라도 장교가 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훈련이 고달파도 달게 받아야 합니다. 만일 시련이 여러분에게 복을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보내주신 것이라고 믿는다면 달게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특별하게 택함 받은 백성인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여러분들을 쓰시기 위해서 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왜 택하셨습니까 고난과 어려움과 시련, 그 자체만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신명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하신 이유는 온 세계에서 뛰어난 백성이 되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무엇인지 알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을 훈련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왜 택하셨습니까 왜 여러분들에게 불러 주셨습니까 복 주시기 위하여 부르셨습니다. 여러분이 건강하고 행복하고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고, 위에만 있고 아래 있지 않게 하기 위해서 여러분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꿈을 가지십시오. 나는 복을 받을 사람이다. 늘 믿으시고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구원받고 주님 앞에 나온 것만으로도 복이지만 이 세상을 살면서도 복 받을 사람으로 하나님이 택하셨습니다. 우리를 고생시키려고 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어려움을 주시려고 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복 주시려고 택하셨습니다.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건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물을 굳은 반석에서 내셨으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신8:15-16)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복을 주시려고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왜 택하셨습니까 복 주시려고 택하신 줄 믿습니다.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히6:14-15)
오늘 이 약속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 약속과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서 시련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시련을 만난 사람은 오히려 기쁘게 여겨야 합니다. ‘이것을 통해서 더 큰복을 주시겠구나.’ 기뻐하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을 하나님이 복 주시려고 택하신 줄 믿습니다. 세상에 한국 같은 나라가 없습니다. 한국처럼 기독교가 번성하는 나라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렇게 열심으로 예수님을 믿는 나라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 땅에는 1200만의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있습니다. 온 세계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세계 곳곳에 선교사역을 이루어가는 나라입니다. 세계 최초로 새벽기도를 시작하여 지속하고 있는 나라, 열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이 나라를 하나님이 반드시 복 주실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세계선교 사역을 이루기 위해 우리 민족을 택하신 줄 저는 믿습니다. 그 복을 이루시기 위해 이번에 이렇게 민족적인 시련을 주신 줄로 믿습니다. 이번 시련이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젊은 세대들은 어려움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았습니다. 옛날에 너무 어려워서 굶었다고 말하면 라면을 먹지 그랬느냐고 의아해합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최초로 라면이 나왔습니다. 동네에 대학생 하나가 라면을 선물로 주고 갔는데 그것을 가운데 두고 전식구가 다 둘러앉았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조금 뜯어서 먹었더니 고소합니다. 그래서 과자로 먹었는데 다음날 날이 밝은 뒤 봉지를 읽어보니까 끓여먹는 것이었습니다. 먹고 싶어도 먹을 라면이 어디에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시대에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복 주시기 위해서 약간의 시련을 통과하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 개인들에게 여러 가지 시험들이 옵니다. 왜 어려움을 당합니까 왜 기도해도 안됩니까 왜 고통을 당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 허락하신 시련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마침내 나에게 복을 주시겠구나!‘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마침내 복을 주실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은 온전히 기쁘게 여길 수 있습니다.
2.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1:5) 시련과 역경에 대하여 말하면서 갑자기 이 말씀이 나옵니다. 어려움을 당하는데 왜 갑자기 지혜라는 말이 나왔을까요 시련에는 뜻이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자녀들에게 우연히 시련을 주시는 법은 없습니다. 왜 우리는 자녀들을 매로 때립니까 미워서 때립니까 아닙니다.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때립니다. 잘못된 것을 고쳐주기 위해서 때리는 것입니다. 매를 맞고도 잘못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 매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매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훈련의 의미를 알지 못하면 고되면 고될수록 싫은 것입니다.
어릴 때 학교를 가다가 가기 싫어서 물가에서 놀아 버렸습니다. 몇 번을 그렇게 반복했더니 학교에서 집으로 연락이 왔습니다. “용식이가 왜 학교에 안 옵니까” “그럴리가요. 도시락까지 싸서 학교에 갔는데요” 아버지 앞에 불려갔습니다. “왜 학교에 가지 않았니” “가기 싫었어요.” “그래.
그렇다면 학교가지 말라. 실컷 놀아라.” 아버지는 가지 말고 실컷 놀라고 하셨지만 생각해보니까 놀면 안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날부터 열심히 빠지지 않고 갔습니다. 요즘 애들이 얼마나 공부하기 힘듭니까 학교에서 늦게까지 공부하고, 밤늦게 또 학원에 갑니다. 왜 그렇게 공부합니까 그 뒤에 오는 합격의 결과가 기대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무 뜻도 모르고 고통만 당한다면 무슨 뜻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시련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련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교훈이 있습니다. 이 교훈을 빨리 깨달을수록 시련의 기간도 짧아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뭐라고 기도합니까 “지혜를 주옵소서!”기도해야 합니다. 인간의 꾀와 방법으로 생각하지 말고 지혜를 구하십시오. 시련 중에 기도할 것은 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게 무엇입니까 그것을 깨닫도록 지혜를 주옵소서!”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1:5) 하나님은 지혜를 구하는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솔로몬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내가 네게 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나이 어린 저에게 이 많은 백성을 맡겨 주셨으니 주의 뜻대로 이들을 인도할 수 있도록 저에게 지혜를 주옵소서!” “네가 내 마음에 합당한 기도를 하는구나. 네가 구한 지혜뿐만 아니라 부귀와 영화, 그리고 모든 것을 너에게 주마!” 어려움 당할수록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인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면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십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119:67) 고난이 없을 때는 잘못 살았습니다.
그런데 고난 당하니까 주님의 말씀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고난이 유익인 것을 알았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고난도 복입니다. 되는 것도 복이고, 안 되는 것도 복입니다.
평안도 복이고 고난도 복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다면 그것은 크나큰 축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 위해서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나에게 그릇된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를 원합니다.” 기도하면서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지혜를 구할 때 하나님이 넉넉히 채워 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이것 때문에 나에게 고난을 주셨구나.’ 잘못된 자아가 고난을 통해 깨뜨려진다면 얼마나 큰복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약1:6-8) 시련을 당할수록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사단은 환경적인 시련을 통해 우리를 꺾으려 합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약속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를 창대케 하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하고,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리라.”
그런데 오히려 어려움을 당합니다. 100세가 되도록 자녀를 낳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믿음이 약해집니다. 마귀는 하나님이 주신 약속과 믿음을 환경을 통해 약화시키고 포기하고 믿음을 버리게 합니다.
그런데 이 믿음이 시련 때 다시 나타납니다. 우리는 시련 때 믿음이 더 강해져야 합니다. 이 믿음을 하나님이 인정해 주십니다. 사실 될 것 같아서 믿는 것은 누구나 믿을 수 있습니다. 불가능할 때 믿는 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롬4:18-22)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가운데 믿었습니다.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겠다는 말씀을 믿었는데 오히려 그는 백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몸이 죽은 것처럼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믿음은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시련을 당할 때 얼마나 믿음이 약해집니까 ‘하나님이 버리셨나봐. 하나님이 이제는 잊어버리셨나봐.’ 믿음은 어떤 때는 취하고, 어떤 때는 버리는 게 아닙니다. 믿음은 어떤 환경과 시련을 만나도 변치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복을 주실 줄 믿습니까 어떤 환경에라도 믿음을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시련은 마귀가 그 믿음을 꺾기 위하여 마귀가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환경에서도 함께하십니다. 언제나 지켜주실 것입니다. 결코 믿음을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창28:15) 우리는 마귀에 의하여 믿음이 약해질 때가 너무 많습니다. 조금 어려우면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는가보다.’ 생각합니다. 그럴 때마다 아브라함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는 바랄 수 없는 가운데 믿었습니다.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롬4:21-22) 의로 여기셨다는 말은 인정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믿음이 어떤 믿음입니까 환경에 관계치 않고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루어질 줄로 믿는 믿음입니다.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믿으므로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이제는 됐다!” 이제는 됐다 하시는 것이 의로 여기셨다는 말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인 모세, 다니엘, 엘리야 등은 모두 인내하며 승리한 사람들입니다. 끝까지 믿음으로 승리한 사람들입니다. 성산교회를 개척해서 14년을 지내면서 제가 한 가지 확실하게 체험한 게 있습니다. 오늘의 고난은 반드시 내일의 축복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돌이켜 보건대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이 복을 안 주신 경우는 한번도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인생의 삶을 돌이켜 보십시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어려움 다음에 복이 있습니다.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고난은 축복의 수레이다.” 하나님의 복을 싣고 오는 게 고난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고난이라는 보자기에 싸여서 온다.” 겉으로 볼 때는 고난이요 시련인데 풀어보니까 그 속에 복이 들어 있습니다. 고난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 위해서 여러분들을 택하셨습니다. 번창케 하시려고 복을 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고 어려움을 당해도 끝까지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시련 중에 믿음을 잃지 않는 게 훈련입니다. 어떤 환경 중에서라도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어질 줄을 믿는다.”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약속을 받고 그 말씀대로 실행하고 나아갈 때 말씀대로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믿음이 약해지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은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하셨습니다. 우리 나라에 어려운 시련이 왔는데 이것을 이길 수 있는 비결은 믿음이 약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이 고난을 이길 수 있는 비결입니다. 언제나 믿음 충만하십시오.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십시오. 하나님만 의뢰하십시오. 하나님 안에 반드시 승리하는 비결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십니다. 다윗에게 너는 앞으로 왕이 될 것이라며 사무엘이 와서 기름을 부었습니다. 평안히 양을 치는 목동이었던 그에게 기름을 붓자 고난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 생겼습니까 계속해서 고난이 연속으로 찾아왔습니다. 그가 왕위에 오르기까지 엄청난 고난을 겪었습니다. 사울과 다윗을 비교해 보십시오, 사울은 고난이 없이 평안하게 왕이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무너짐이 심했습니다. 그의 나라는 지극히 짧았습니다.
다윗은 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랬더니 그의 나라는 영원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대대로 왕권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에게 고난이 필요합니다. 고난이 복입니다. 시련을 당할 때 복인 줄 알고 당하시기 바랍니다. 고난 당할 때도 기뻐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당신은 고난 당하는데 뭐가 그렇게 좋습니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해를 선으로 바꾸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난도 복으로 알고 받아들이는 사람, 고난도 하나님의 은혜로 알고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큰 능력과 은혜와 역사가 함께하실 것입니다. 시련 중에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의뢰하십시오. 지혜를 구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십시오. 주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십시오.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는 사단이 우리에게 주는 유혹입니다.
둘째는 역경, 곧 시련이 있습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시험은 두 번째 시험, 시련을 가리킵니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약1:3) 우리 성도들도 이런 시련과 환난과 역경을 당할 수 있습니다. 시련은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다같이 당할 수 있습니다. 시편 34:19에는 의인에게 오히려 고난이 많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고난에서 건짐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시련을 당할 때 좌절하고 낙담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그 시련을 통해 더 큰복을 받게 됩니다. 성도들은 시련을 당할 때도 그것을 맞이하는 태도가 다릅니다. 어떻게 우리는 이런 시련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요 성도가 시련을 당했을 때 오늘의 제목입니다.
1. 온전히 기쁘게 여겨야 합니다.(2-4절) 오늘 본문 2절에는 성도는 시련을 당할 때 오히려 온전히 기쁘게 여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약1:2) 그냥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했습니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 어려운 일을 당한 분이 계십니까 우리 나라에 어려운 시련이 왔습니다. 우리 국민 모두가 그 시련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런 시련을 당할 때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말합니다. 어떻게 시련을 온전히 기쁘게 여길 수 있을까요 이 시련은 믿음의 시련이기 때문에 온전히 여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믿음을 가졌을 때 그 믿음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시련이라는 과정을 통과하게 되어 있습니다.
어느 날 요셉이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하나님은 그에게 비밀을 말해 주셨습니다. 열두 형제가 추수를 하는데 다른 형제들의 볏단이 다 요셉의 볏단에게 절을 합니다. 이것은 요셉이 열두 형제 중에 장자의 명분을 받게 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하나님이 요셉에게 꿈과 비젼을 주셨습니다. 그 꿈을 가진 다음부터 요셉에게 이상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꿈과는 정반대의 상황들입니다.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노예로 팔려갑니다. 억울한 일을 당합니다.
그런데 요셉의 꿈은 이런 과정들을 통해 성취됩니다.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너를 창대케 하리라. 그리고 세계 만민들을 조상이 되게 하리라.” 약속을 받은 그 때부터 아브라함은 어려움을 당합니다. 그 땅에 기근이 찾아옵니다. 나이는 늙어 100세나 되었습니다. 아내는 90세가 되어 자식을 낳을 가능성이 없어졌습니다. 믿음의 위인들은 그 믿음의 결과를 이루기 위해서 시련이라는 과정을 다 통과했습니다. 믿음을 성취하기 위해서 겪는 시련을 믿음의 시련이라고 합니다. 딸기를 심으면 봄에 꽃이 피면 그 다음에는 아무리 온도가 맞아도 꽃이 피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딸기를 얼음 속에 얼렸다가 심으면 다시 꽃이 나옵니다. 그것을 보고 분화라고 합니다. 딸기꽃은 추운 겨울을 만나야 꽃이 만들어집니다. 추운 겨울을 경험하지 않은 딸기는 다시 꽃이 피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의 과일들이 다 그렇습니다. 사과나무, 배나무가 언제 꽃이 핍니까 피기는 봄에 피지만 꽃이 만들어진 것은 겨울입니다. 추운 겨울의 시련을 통과할 때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믿음에도 시련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꿈이나 비젼을 가졌을 때 그 일에 대하여 시련이 올 수 있습니다. 큰 축복을 받으려면 큰 시련을 겪어야 합니다. 작은 시련을 거치면 작은 축복밖에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시련을 달게 받습니다. 군대에 가면 사병훈련이 어렵습니까 장교훈련이 어렵습니까 장교훈련이 훨씬 더 어렵습니다. 반드시 훈련을 거쳐야 한다면 여러분은 사병과 장교 중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십니까 어렵게 훈련을 받더라도 장교가 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훈련이 고달파도 달게 받아야 합니다. 만일 시련이 여러분에게 복을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보내주신 것이라고 믿는다면 달게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특별하게 택함 받은 백성인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여러분들을 쓰시기 위해서 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왜 택하셨습니까 고난과 어려움과 시련, 그 자체만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신명기를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하신 이유는 온 세계에서 뛰어난 백성이 되고, 하나님이 주시는 복이 무엇인지 알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을 훈련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왜 택하셨습니까 왜 여러분들에게 불러 주셨습니까 복 주시기 위하여 부르셨습니다. 여러분이 건강하고 행복하고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고, 위에만 있고 아래 있지 않게 하기 위해서 여러분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꿈을 가지십시오. 나는 복을 받을 사람이다. 늘 믿으시고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구원받고 주님 앞에 나온 것만으로도 복이지만 이 세상을 살면서도 복 받을 사람으로 하나님이 택하셨습니다. 우리를 고생시키려고 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어려움을 주시려고 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복 주시려고 택하셨습니다.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건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물을 굳은 반석에서 내셨으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신8:15-16)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복을 주시려고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왜 택하셨습니까 복 주시려고 택하신 줄 믿습니다.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하셨더니 저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히6:14-15)
오늘 이 약속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 약속과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서 시련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시련을 만난 사람은 오히려 기쁘게 여겨야 합니다. ‘이것을 통해서 더 큰복을 주시겠구나.’ 기뻐하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을 하나님이 복 주시려고 택하신 줄 믿습니다. 세상에 한국 같은 나라가 없습니다. 한국처럼 기독교가 번성하는 나라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렇게 열심으로 예수님을 믿는 나라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 땅에는 1200만의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있습니다. 온 세계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세계 곳곳에 선교사역을 이루어가는 나라입니다. 세계 최초로 새벽기도를 시작하여 지속하고 있는 나라, 열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이 나라를 하나님이 반드시 복 주실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세계선교 사역을 이루기 위해 우리 민족을 택하신 줄 저는 믿습니다. 그 복을 이루시기 위해 이번에 이렇게 민족적인 시련을 주신 줄로 믿습니다. 이번 시련이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젊은 세대들은 어려움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았습니다. 옛날에 너무 어려워서 굶었다고 말하면 라면을 먹지 그랬느냐고 의아해합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 최초로 라면이 나왔습니다. 동네에 대학생 하나가 라면을 선물로 주고 갔는데 그것을 가운데 두고 전식구가 다 둘러앉았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조금 뜯어서 먹었더니 고소합니다. 그래서 과자로 먹었는데 다음날 날이 밝은 뒤 봉지를 읽어보니까 끓여먹는 것이었습니다. 먹고 싶어도 먹을 라면이 어디에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시대에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복 주시기 위해서 약간의 시련을 통과하게 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 개인들에게 여러 가지 시험들이 옵니다. 왜 어려움을 당합니까 왜 기도해도 안됩니까 왜 고통을 당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 허락하신 시련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마침내 나에게 복을 주시겠구나!‘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마침내 복을 주실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은 온전히 기쁘게 여길 수 있습니다.
2.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1:5) 시련과 역경에 대하여 말하면서 갑자기 이 말씀이 나옵니다. 어려움을 당하는데 왜 갑자기 지혜라는 말이 나왔을까요 시련에는 뜻이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자녀들에게 우연히 시련을 주시는 법은 없습니다. 왜 우리는 자녀들을 매로 때립니까 미워서 때립니까 아닙니다.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때립니다. 잘못된 것을 고쳐주기 위해서 때리는 것입니다. 매를 맞고도 잘못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 매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매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훈련의 의미를 알지 못하면 고되면 고될수록 싫은 것입니다.
어릴 때 학교를 가다가 가기 싫어서 물가에서 놀아 버렸습니다. 몇 번을 그렇게 반복했더니 학교에서 집으로 연락이 왔습니다. “용식이가 왜 학교에 안 옵니까” “그럴리가요. 도시락까지 싸서 학교에 갔는데요” 아버지 앞에 불려갔습니다. “왜 학교에 가지 않았니” “가기 싫었어요.” “그래.
그렇다면 학교가지 말라. 실컷 놀아라.” 아버지는 가지 말고 실컷 놀라고 하셨지만 생각해보니까 놀면 안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날부터 열심히 빠지지 않고 갔습니다. 요즘 애들이 얼마나 공부하기 힘듭니까 학교에서 늦게까지 공부하고, 밤늦게 또 학원에 갑니다. 왜 그렇게 공부합니까 그 뒤에 오는 합격의 결과가 기대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무 뜻도 모르고 고통만 당한다면 무슨 뜻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시련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련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교훈이 있습니다. 이 교훈을 빨리 깨달을수록 시련의 기간도 짧아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뭐라고 기도합니까 “지혜를 주옵소서!”기도해야 합니다. 인간의 꾀와 방법으로 생각하지 말고 지혜를 구하십시오. 시련 중에 기도할 것은 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원하시는 게 무엇입니까 그것을 깨닫도록 지혜를 주옵소서!”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1:5) 하나님은 지혜를 구하는 기도를 기뻐하십니다. 솔로몬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내가 네게 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나이 어린 저에게 이 많은 백성을 맡겨 주셨으니 주의 뜻대로 이들을 인도할 수 있도록 저에게 지혜를 주옵소서!” “네가 내 마음에 합당한 기도를 하는구나. 네가 구한 지혜뿐만 아니라 부귀와 영화, 그리고 모든 것을 너에게 주마!” 어려움 당할수록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인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면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않으십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119:67) 고난이 없을 때는 잘못 살았습니다.
그런데 고난 당하니까 주님의 말씀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고난이 유익인 것을 알았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고난도 복입니다. 되는 것도 복이고, 안 되는 것도 복입니다.
평안도 복이고 고난도 복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다면 그것은 크나큰 축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 위해서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나에게 그릇된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를 원합니다.” 기도하면서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지혜를 구할 때 하나님이 넉넉히 채워 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이것 때문에 나에게 고난을 주셨구나.’ 잘못된 자아가 고난을 통해 깨뜨려진다면 얼마나 큰복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약1:6-8) 시련을 당할수록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사단은 환경적인 시련을 통해 우리를 꺾으려 합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약속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를 창대케 하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하고,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리라.”
그런데 오히려 어려움을 당합니다. 100세가 되도록 자녀를 낳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믿음이 약해집니다. 마귀는 하나님이 주신 약속과 믿음을 환경을 통해 약화시키고 포기하고 믿음을 버리게 합니다.
그런데 이 믿음이 시련 때 다시 나타납니다. 우리는 시련 때 믿음이 더 강해져야 합니다. 이 믿음을 하나님이 인정해 주십니다. 사실 될 것 같아서 믿는 것은 누구나 믿을 수 있습니다. 불가능할 때 믿는 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롬4:18-22)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가운데 믿었습니다.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겠다는 말씀을 믿었는데 오히려 그는 백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몸이 죽은 것처럼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믿음은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시련을 당할 때 얼마나 믿음이 약해집니까 ‘하나님이 버리셨나봐. 하나님이 이제는 잊어버리셨나봐.’ 믿음은 어떤 때는 취하고, 어떤 때는 버리는 게 아닙니다. 믿음은 어떤 환경과 시련을 만나도 변치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복을 주실 줄 믿습니까 어떤 환경에라도 믿음을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시련은 마귀가 그 믿음을 꺾기 위하여 마귀가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환경에서도 함께하십니다. 언제나 지켜주실 것입니다. 결코 믿음을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창28:15) 우리는 마귀에 의하여 믿음이 약해질 때가 너무 많습니다. 조금 어려우면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는가보다.’ 생각합니다. 그럴 때마다 아브라함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는 바랄 수 없는 가운데 믿었습니다.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롬4:21-22) 의로 여기셨다는 말은 인정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믿음이 어떤 믿음입니까 환경에 관계치 않고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루어질 줄로 믿는 믿음입니다.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믿으므로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이제는 됐다!” 이제는 됐다 하시는 것이 의로 여기셨다는 말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인 모세, 다니엘, 엘리야 등은 모두 인내하며 승리한 사람들입니다. 끝까지 믿음으로 승리한 사람들입니다. 성산교회를 개척해서 14년을 지내면서 제가 한 가지 확실하게 체험한 게 있습니다. 오늘의 고난은 반드시 내일의 축복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돌이켜 보건대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이 복을 안 주신 경우는 한번도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인생의 삶을 돌이켜 보십시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어려움 다음에 복이 있습니다.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고난은 축복의 수레이다.” 하나님의 복을 싣고 오는 게 고난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고난이라는 보자기에 싸여서 온다.” 겉으로 볼 때는 고난이요 시련인데 풀어보니까 그 속에 복이 들어 있습니다. 고난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 위해서 여러분들을 택하셨습니다. 번창케 하시려고 복을 주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고 어려움을 당해도 끝까지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시련 중에 믿음을 잃지 않는 게 훈련입니다. 어떤 환경 중에서라도 “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되어질 줄을 믿는다.”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약속을 받고 그 말씀대로 실행하고 나아갈 때 말씀대로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믿음이 약해지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은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하셨습니다. 우리 나라에 어려운 시련이 왔는데 이것을 이길 수 있는 비결은 믿음이 약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이 고난을 이길 수 있는 비결입니다. 언제나 믿음 충만하십시오.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십시오. 하나님만 의뢰하십시오. 하나님 안에 반드시 승리하는 비결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십니다. 다윗에게 너는 앞으로 왕이 될 것이라며 사무엘이 와서 기름을 부었습니다. 평안히 양을 치는 목동이었던 그에게 기름을 붓자 고난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 생겼습니까 계속해서 고난이 연속으로 찾아왔습니다. 그가 왕위에 오르기까지 엄청난 고난을 겪었습니다. 사울과 다윗을 비교해 보십시오, 사울은 고난이 없이 평안하게 왕이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무너짐이 심했습니다. 그의 나라는 지극히 짧았습니다.
다윗은 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랬더니 그의 나라는 영원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대대로 왕권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에게 고난이 필요합니다. 고난이 복입니다. 시련을 당할 때 복인 줄 알고 당하시기 바랍니다. 고난 당할 때도 기뻐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당신은 고난 당하는데 뭐가 그렇게 좋습니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해를 선으로 바꾸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난도 복으로 알고 받아들이는 사람, 고난도 하나님의 은혜로 알고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큰 능력과 은혜와 역사가 함께하실 것입니다. 시련 중에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의뢰하십시오. 지혜를 구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십시오. 주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십시오.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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