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와 성찬 (고전11:23-26)
본문
기독교 의식 중에는 세례와 성찬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의식주의는 아닙니다. 그러나 교회는 의식을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로마카톨릭 곧 천주교는 지나치게 의식주의로 흘러가서 잘못되었습니다. 여기서 개혁해 나왔다고하는 개신교가 요즘은 도리어 카톨릭화되어 나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시 종교개혁을 해야할 지경까지 와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나타난 행위 보다는 그 행위의 동기와 마음의 중심을 더 중히 여기십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교회에 대하여 친히 가르치시고, 행하라고 명령하신 의식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세례와 성찬입니다. 우리는 이 세례와 성찬의식도 그 외부적인 형식만을 취할 것이 아닙니다. 이를 행하라고 하신 주님의 뜻을 깨달아서 이 의식을 행할 때에 크신 은혜가 있을 줄 믿습니다.
친히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던 예수님께서 (마28:19)에는 제자들에게 너희들은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교회들이 주님의 명령을 따라서 세례의식을 행합니다. 또 본문의 바울이 전한 말씀 같이 이 성찬예식도 제자들이 이전에 주님께 로부터 받은 것이었습니다. 누가복음 22:19에는 주님께서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고, 본문 25-26절에는 “이를 행할 때마다 주의 오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교회에서는 이 주님의 명령과 교회의 전통을 따라서 세례를 베풀고, 성찬예식을 거행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에는 세계 교회에 없는 학습이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육개월 계속하면 학습을 세우고, 또 육개월이 지나면서 신앙생활을 하면 세례를 받을 자격을 줍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오늘 세례의식을 너무 값싸게 치러 아무 의미를 갖지 못하는 폐단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실은 세례는 성령님 세례를 받은 자, 곧 예수님을 믿어 죄 씻음을 받아 거듭난자로서 신앙을 고백하는 자에게는 물로 세례를 주어야 합니다.
첫째, 세례의식은 어떤 의미를 가집니까 세례에 대한 방식도 침례식과 세례식이 있습니다. 의식을 깨닫는 면으로는 침례나 세례나 다 장점이 있습니다. 세례는 구약에 짐승을 잡아서 그 피를 죄인에게 뿌려서 거룩하게 했는데, 죄 많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를 뿌려 우리의 모든 죄가 씻음을 받았다는 의미가 더 강한 것입니다.
침례식은 물에 침례 받는 자를 전신을 다 집어넣어 숨을 못 쉬게 했다가 다시 몸을 물 위로 드러내므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체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물로 가지고 이 의식을 행하는 것은 이는 노아 홍수와 이스라엘이 건넌 홍해 바다에서 그 의미가 잘 나타납니다. 노아 홍수에서 살아남은 자가 몇 명입니까 노아 가족 여덟 외에는 다 죽었습니다. 곧 노아 가정은 모든 사람들이 죽었던 그 물에서 노아가정은 오히려 방주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그들을 따라온 애굽 병정들은 홍해 바다에서 다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애굽 군대를 죽인 그 물에서 이스라엘은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그
러므로 우리가 기억해야하는 것은, 세례는 주님의 보배로운 피로 말미암아 죄 씻음을 받았다는 표시인데, 노아 홍수와 홍해 바다에서 보여준 것 같이 이전에 죄 짓던 우리 옛 사람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실 때에 연합하여 죽은 자된 것을 깨닫고, 또 주님의 부활하심으로 진리와 성령님으로 우리의 새 사람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다시 살아난 것을 나타내는 징표입니다. 이 사실을 바로 알고 세례를 받으면 그 은혜의 실상이 이루어져서 그 만난 현실에서 실제로 옛 사람으로 살던 자는 점점 죽어지고, 날마다 새 사람의 생활으로 영생을 이루게 됩니다.
둘째로, 세례받은 자가 참여하는 성찬은 어떤 의미를 가집니까 오늘 교회가 이 성찬식을 하는 것은 주님의 명령입니다. 이 성찬의 유래는 먼저 주님께서 잡히시던 날 전날 밤에 제자들에게 떡과 잔을 가지고서 행하신 것입니다. 이 성찬의 의미는 주님께서 당신의 피와 살을 우리들을 위한 대속의 제물로 주시므로 이 대속을 입은 자들이 구속의 은혜를 입었으니, 이 망극한 사랑을 언제나 잊지 않고 기억하며, 이 사랑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성찬의 떡과 잔을 대하면서 주님의 찢기신 살과 흘리신 피를 생각하며 죄와 더불어 싸우고, 의를 행하는 자 되며, 하나님과 화친한 자가 되기 위해서 어떤 고난과 희생도 당할 것을 각오 결심하는 것입니다. 범죄하여 영원한 죄와 사망과 마귀에게 종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내가 죄를 범하여 고난을 내가 받아야하는데, 내가 받을 고난을 대신 받으시고, 범죄한 값으로 내가 죽어야하는데, 내가 당할 그 죄의 영원한 값을 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지불하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그 찢기신 살과 흘리신 피를 생각할 때에 우리가 그 은혜를 어떻게 감히 보답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이제 진정 갚을 길 없는 이 사랑과 은혜를 입은 자라는 깨달음이 있다면, 주님을 고난 당하게 했던 그 더러운 죄를 다시는 범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죄 없으신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했던 그 무섭고, 더러운 죄를 진정으로 멀리 할 것입니다. 히브리서 말씀에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 까지는 싸우지 않았도다 하셨는데, 주님의 고난과 죽음을 생각하면서 이제 우리들도 만난 현실에서 주님이 입혀주신 사죄를 벗지 않고, 죄와 싸우고, 의를 향하며, 하나님만을 섬기는 이 일을 힘 쓸 것입니다. 이일을 하다가 고난이 와도, 죽음이 와도 끝까지 계속하는 자로 사는 것이 바로 주님의 피와 살을 기념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피와 살은 우리에게 참된 음료요, 참된 양식이 된다는 말씀은 이 주님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으심에 대한 깨달음은 우리로 하여금 신앙에 힘을 주고 승리를 주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지 못한 분이라도, 그래서 오늘 성찬에 참여하지 못하는 분이라도 이 영적인 의미를 바로 깨달으면 하나님께서 함께 은혜를 주십니다. 다시 말씀을 정리합니다. 세례는 십자가의 보혈로써 죄 씻음을 받았다는 표시인데, 자기는 이제 믿기 전의 옛 사람으로 살 자가 아니요, 새 사람으로 살 자라는 깨달음을 가져야합니다. 이제 죽은 사람이 아무런 움직임도 생각도 없고, 힘도 쓰지 못하는 것 같이 구속을 받은 자에게는 옛 사람의 삶은 죽어져 가야 합니다.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가 된 것을 잡아야합니다. 이제 새사람으로 살아야합니다. 또 성찬은 떡은 주님의 살, 잔은 주님의 피를 상징하는데, 이 주님의 피와 살로 구원 얻은 자가 이 피와 살에 연합한 자로 살 것을 결단하는 의식입니다. 어떤 고난이 와도 죽음이 와도 사죄와 칭의와 하나님과의 화친을 벗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성화의 걸음은 계속되어야합니다. 날마다 성찬을 행할 수 없고, 세례는 한 번 받는 것이지만, 그 의미는 우리가 항상 기념해야합니다. 이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며, 또 이 은혜를 세상에 전하는 것이 기념하는 것입니다. 이제 옛 사람의 생활은 다 죽은 것 같이 되었고, 날마다 새 사람으로 살 자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흘리신 피와 찢기신 살로서 구원을 받은 자인 것을 깨달아 죄 짓지 않는 자로, 의를 행하는 자로, 하나님 모시고 사는 자로서의 삶을 계속해야 합니다. 만왕의 주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주셨는데, 우리에게 있는 것을 다 잃어버리고, 빼앗기고, 손해본다고 해도 영생을 뺏기지 않는 자로 살 것을 각오하고 결심하는 것이 이 의식을 행하는 본래의 의미입니다. 날마다 이 은혜를 기억하여 신앙에 새로운 힘을 얻을 뿐 아니라, 승리하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교회에 대하여 친히 가르치시고, 행하라고 명령하신 의식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세례와 성찬입니다. 우리는 이 세례와 성찬의식도 그 외부적인 형식만을 취할 것이 아닙니다. 이를 행하라고 하신 주님의 뜻을 깨달아서 이 의식을 행할 때에 크신 은혜가 있을 줄 믿습니다.
친히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던 예수님께서 (마28:19)에는 제자들에게 너희들은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교회들이 주님의 명령을 따라서 세례의식을 행합니다. 또 본문의 바울이 전한 말씀 같이 이 성찬예식도 제자들이 이전에 주님께 로부터 받은 것이었습니다. 누가복음 22:19에는 주님께서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고, 본문 25-26절에는 “이를 행할 때마다 주의 오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교회에서는 이 주님의 명령과 교회의 전통을 따라서 세례를 베풀고, 성찬예식을 거행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에는 세계 교회에 없는 학습이라는 제도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육개월 계속하면 학습을 세우고, 또 육개월이 지나면서 신앙생활을 하면 세례를 받을 자격을 줍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오늘 세례의식을 너무 값싸게 치러 아무 의미를 갖지 못하는 폐단을 막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실은 세례는 성령님 세례를 받은 자, 곧 예수님을 믿어 죄 씻음을 받아 거듭난자로서 신앙을 고백하는 자에게는 물로 세례를 주어야 합니다.
첫째, 세례의식은 어떤 의미를 가집니까 세례에 대한 방식도 침례식과 세례식이 있습니다. 의식을 깨닫는 면으로는 침례나 세례나 다 장점이 있습니다. 세례는 구약에 짐승을 잡아서 그 피를 죄인에게 뿌려서 거룩하게 했는데, 죄 많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를 뿌려 우리의 모든 죄가 씻음을 받았다는 의미가 더 강한 것입니다.
침례식은 물에 침례 받는 자를 전신을 다 집어넣어 숨을 못 쉬게 했다가 다시 몸을 물 위로 드러내므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체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물로 가지고 이 의식을 행하는 것은 이는 노아 홍수와 이스라엘이 건넌 홍해 바다에서 그 의미가 잘 나타납니다. 노아 홍수에서 살아남은 자가 몇 명입니까 노아 가족 여덟 외에는 다 죽었습니다. 곧 노아 가정은 모든 사람들이 죽었던 그 물에서 노아가정은 오히려 방주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그들을 따라온 애굽 병정들은 홍해 바다에서 다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애굽 군대를 죽인 그 물에서 이스라엘은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그
러므로 우리가 기억해야하는 것은, 세례는 주님의 보배로운 피로 말미암아 죄 씻음을 받았다는 표시인데, 노아 홍수와 홍해 바다에서 보여준 것 같이 이전에 죄 짓던 우리 옛 사람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실 때에 연합하여 죽은 자된 것을 깨닫고, 또 주님의 부활하심으로 진리와 성령님으로 우리의 새 사람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다시 살아난 것을 나타내는 징표입니다. 이 사실을 바로 알고 세례를 받으면 그 은혜의 실상이 이루어져서 그 만난 현실에서 실제로 옛 사람으로 살던 자는 점점 죽어지고, 날마다 새 사람의 생활으로 영생을 이루게 됩니다.
둘째로, 세례받은 자가 참여하는 성찬은 어떤 의미를 가집니까 오늘 교회가 이 성찬식을 하는 것은 주님의 명령입니다. 이 성찬의 유래는 먼저 주님께서 잡히시던 날 전날 밤에 제자들에게 떡과 잔을 가지고서 행하신 것입니다. 이 성찬의 의미는 주님께서 당신의 피와 살을 우리들을 위한 대속의 제물로 주시므로 이 대속을 입은 자들이 구속의 은혜를 입었으니, 이 망극한 사랑을 언제나 잊지 않고 기억하며, 이 사랑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성찬의 떡과 잔을 대하면서 주님의 찢기신 살과 흘리신 피를 생각하며 죄와 더불어 싸우고, 의를 행하는 자 되며, 하나님과 화친한 자가 되기 위해서 어떤 고난과 희생도 당할 것을 각오 결심하는 것입니다. 범죄하여 영원한 죄와 사망과 마귀에게 종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내가 죄를 범하여 고난을 내가 받아야하는데, 내가 받을 고난을 대신 받으시고, 범죄한 값으로 내가 죽어야하는데, 내가 당할 그 죄의 영원한 값을 다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지불하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그 찢기신 살과 흘리신 피를 생각할 때에 우리가 그 은혜를 어떻게 감히 보답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이제 진정 갚을 길 없는 이 사랑과 은혜를 입은 자라는 깨달음이 있다면, 주님을 고난 당하게 했던 그 더러운 죄를 다시는 범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죄 없으신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했던 그 무섭고, 더러운 죄를 진정으로 멀리 할 것입니다. 히브리서 말씀에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 까지는 싸우지 않았도다 하셨는데, 주님의 고난과 죽음을 생각하면서 이제 우리들도 만난 현실에서 주님이 입혀주신 사죄를 벗지 않고, 죄와 싸우고, 의를 향하며, 하나님만을 섬기는 이 일을 힘 쓸 것입니다. 이일을 하다가 고난이 와도, 죽음이 와도 끝까지 계속하는 자로 사는 것이 바로 주님의 피와 살을 기념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피와 살은 우리에게 참된 음료요, 참된 양식이 된다는 말씀은 이 주님의 고난과 십자가의 죽으심에 대한 깨달음은 우리로 하여금 신앙에 힘을 주고 승리를 주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지 못한 분이라도, 그래서 오늘 성찬에 참여하지 못하는 분이라도 이 영적인 의미를 바로 깨달으면 하나님께서 함께 은혜를 주십니다. 다시 말씀을 정리합니다. 세례는 십자가의 보혈로써 죄 씻음을 받았다는 표시인데, 자기는 이제 믿기 전의 옛 사람으로 살 자가 아니요, 새 사람으로 살 자라는 깨달음을 가져야합니다. 이제 죽은 사람이 아무런 움직임도 생각도 없고, 힘도 쓰지 못하는 것 같이 구속을 받은 자에게는 옛 사람의 삶은 죽어져 가야 합니다.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가 된 것을 잡아야합니다. 이제 새사람으로 살아야합니다. 또 성찬은 떡은 주님의 살, 잔은 주님의 피를 상징하는데, 이 주님의 피와 살로 구원 얻은 자가 이 피와 살에 연합한 자로 살 것을 결단하는 의식입니다. 어떤 고난이 와도 죽음이 와도 사죄와 칭의와 하나님과의 화친을 벗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성화의 걸음은 계속되어야합니다. 날마다 성찬을 행할 수 없고, 세례는 한 번 받는 것이지만, 그 의미는 우리가 항상 기념해야합니다. 이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며, 또 이 은혜를 세상에 전하는 것이 기념하는 것입니다. 이제 옛 사람의 생활은 다 죽은 것 같이 되었고, 날마다 새 사람으로 살 자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흘리신 피와 찢기신 살로서 구원을 받은 자인 것을 깨달아 죄 짓지 않는 자로, 의를 행하는 자로, 하나님 모시고 사는 자로서의 삶을 계속해야 합니다. 만왕의 주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주셨는데, 우리에게 있는 것을 다 잃어버리고, 빼앗기고, 손해본다고 해도 영생을 뺏기지 않는 자로 살 것을 각오하고 결심하는 것이 이 의식을 행하는 본래의 의미입니다. 날마다 이 은혜를 기억하여 신앙에 새로운 힘을 얻을 뿐 아니라, 승리하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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